글. 안정태 (애경산업)
필자는 대학원에서 소비자광고 심리학을 전공하고 마케팅 리서치회사와 광고회사를 거쳐서 지금은 약 8년째 국내 생활용품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브랜드 매니저로서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 관리를 하는 업무에 심리학의 어떤 지식이나 이론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다고 설명하기가 조금은 난처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은 마케팅을 하면서 발생하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방법론보다는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고방식의 틀을 보다 소비자 관점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 측면에 초점화하여 고민하게 해준다.
2010년에 '리큐'라는 액체세제 New Brand를 개발할 때, 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기존 액체세제 용기의 불편함과 정량 계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주부의 65%는 세탁시 세제를 계량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한다고 답했으며 뚜껑이나 별도의 계량용기를 사용하는 주부는 35%에 불과했다. 더불어 이러한 계량의 생략이나 불편함으로 세제를 과사용 하는 것에 대해서 소비자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이나 가족 건강에 대한 우려(guilt)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고민(concern)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A) 대다수의 주부들은 세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건강이나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안다. B) 그래서 세제를 정량만 혹은 조금만 사용하고 싶어한다. C) 그러나 여전히 10명 중 7명은 계량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대충 부어서 사용해서 세제를 과사용을 하는 행태를 보인다. 왜? 소비자는 알고 있으면서 여전히 행동하지 않는가?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고 나서 그것을 태도적으로 수용한 다음 행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들 대다수가 데카르트의 귀로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사람은 메시지를 이해하고 나서 나중에 그것을 수용할 수 있다 즉,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은 개별적이고 순차적인 조작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시대에서 300년이 지난, 현대의 심리학은 "어떤 생각을 숙고하는 것"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고 더 앞선다는 개념을 여러 이론과 실험에서 설명하고 있다.
세탁세제는 전형적인 저관여 효과 위계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하는 상품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탁세제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소비자가 정량사용이 좋은 소비 행태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거나, 정량 사용에 도움이 되는 제품(예를 들어, 적게 쓰는 농축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세제를 정량만 사용하라고 백번 말을 하고, 이 세제가 적게 써서 정량을 사용할 수 있는 세제라고 강하게 어필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행동이 순수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준학습 모델 적용의 오류)
저관여 학습의 모델을 적용하면, 소비자는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나, 그 행동이 제품의 기능과 연계하여 자연적으로 변화하고 그 행동의 변화에 따라서 신념과 태도가 이어서 변화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제를 적게 정량만 사용하라고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적게 정량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제품의 기능에 탑재되어 있어야 비로소 소비자의 태도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리큐는 앞에서 말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소비자가 어떻게 하면, 제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 세제를 적게 쓰고, 정량만 사용하면서 만족하게 할 것인가?" 이는 기존의 액체 세제가 일반적인 통에 담아서, 계량컵에 부어 사용하는 방법을 탈피하는 데서 해결점을 얻었고 그래서 리큐는 세탁볼에 겔타입의 세제를 짜서쓰도록 설계되었다.
일단 리큐가 갖고 있는 특징 중에 '세탁볼'은 기존의 계량컵과는 다르게 세제를 세탁볼에 짜고, 세탁조에 세탁볼을 그대로 넣는 타입이다. 다시 말해서 세제를 더 쓰고 싶어도 세탁볼에 넘치게 두세 번 더 붓거나 눈대중으로 대충 부어서 쓸 수 없는 이용 행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두번째, 리큐는 기존의 액체타입이 아니라 겔타입이다. 이는 계량의 정밀도를 더 높이는 한편 적게 사용해서 세척력이 약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줄이고, 고농축 겔타입의 제형이 세척력에 대한 믿음을 시각적으로 보증하는 효과가 있다.
세번째는 부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짜서 쓰는 방식이다. 액체를 부어서 사용하면 붓는 과정에서 넘치거나 계량의 용이성이 줄어들어서 소비자들이 세탁기에 그냥 눈대중으로 붓는 행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겔타입의 세제를 짜서쓰면 세제를 세탁볼에 담을 때 깔끔하게 토출하여 사용자 만족을 높여줄 수 있고 이는 계량을 습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치 케첩이나 마요네즈를 핫도그 위에 짠다고 생각해보면, 액체와 겔타입의 토출 용이성의 차이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실, 리큐는 출시 후 10개월 만에 액체 세제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의 큰 성과를 거두고, 소비자들에게 큰 반응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도 리큐의 이러한 정신은 브랜드 정신으로 유지, 강화되어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물론 리큐의 성공에는 액체 세제 시장이 성장하는 시대적 트렌드와 광고모델 유재석의 모델 효과, 회사의 역량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의 틀이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세제를 적게 쓰고 정량사용이 좋다'고 수긍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행동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를 풀어갔다. 특히 세탁세제와 같은 저관여 상품에서는 행동이 선행되고 그런 행동이 습관화되어야 비로소 강한 태도를 형성한다. 그래서 리큐는 소비자의 태도나 인식을 먼저 바꾸기보다는 제품 자체가 소비자의 행태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고, 그러한 방향이 결국 지금의 리큐를 있게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필자의 사례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마케팅의 현장에서 생각과 고민을 정리해가면서 심리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 하나의 단편적인 경우일 것이다. 필자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마케팅을 하면서 앞의 사례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깊게 심리학적 사고가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마케팅이건 실제 우리의 생활 속이건 대부분의 문제와 현상은 결국 인간의 행동과 사고의 다이나믹으로 연결된 총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때문에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본원적인 학문의 주제인 심리학을 학문의 안에서와 밖에서 매 순간 발견하고 해석해보는 것은 아주 유용하고 재미나는 일이다.
  • 참고문헌
  • Michael R. Solomon(2004). Consumer Behavior
  • Daniel T. Gilbert(2001). Heuristics and Biases, chapter 9 Inferential Correction 167-184
  • 글. 안정태
  • 중앙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소비자광고심리 석사학위 취득 후 현재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며, 애경산업에서 개인용품마케팅팀에 재직중이다. 애경산업에서 세탁세제 스파크, 울샴푸, 리큐의 브랜드 매니저를 하였으며, 현재는 덴탈케어 브랜드인 2080의 카테고리 매니저를 맡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autumn/sub.html?category=14&psyNow=21&UID=177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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