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창의/육아] 돈 안들이고 내 아이 ‘감성’ 키우는 놀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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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놀아주기가 너무 힘들어요. 차라리 회사일이나 집안일이 쉽지.”
새로 엄마가 혹은 아빠가 된 어른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 버거운 과제다. 늘 잠은 부족하고, 내 시간은 없어지고, 또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는 과제로 시시각각 초보부모를 시험에 들게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은 현대의 부모들은 더 불안해진다. 넘치는 육아책, 인터넷 블로그, 방송에서는 이러이러하게 하면 아이들이 똑똑해진다, 이러이러 하면 아이들이 행복해진다 하며 알려주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리스트는 자꾸만 늘어나기 마련이다.
싱싱한 재료로 만든 유기농 이유식을 색색깔로 먹여야 하고, 충분한 잠을 재워야 하고, 운동도 시켜야 하고, 책도 읽어줘야 하고, 친구들을 만들어 사회성도 길러줘야 하고, 자연을 벗하게 해주며, 또 창의력을 키우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호기심으로 미국에서 한국 EBS방송을 자주 보던 때가 있었는데, 참 좋은 내용의 방송이 많다고 느낀 또 한편으로, 와~ 이 많은걸 다 엄마들 보고 하라니 참 엄마가 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하는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어떤 방송에서는 창의력을 길러줄려면 어떤 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도록 엄마가 유도해야하는지를 가르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부딪치며 배우던 많은 일들도 현대의 바뀐 생활 방식에서는 모두부모가 가르쳐 줘야하는 항목이 되어있다.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것도 버거운 부모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어깨의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또 자본주의사회에서이 모든 교육열은 슬프게도 부모의 경제력과 직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정말 많은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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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추억이 되는 자녀와의 놀이법 2題
어디까지나 이런 부모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 아이들의 인지, 언어, 정서, 사회발달은 물론 창의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는, 그러면서 어른들도 즐거운, 또 지나고 나면 두고두고 추억이 될 수 있는 쉽고도 즐거운, 심지어 돈도 들지 않는 놀이 방법을 소개해볼까 한다.
첫째, 아이들을 관찰하고 무조건 따라하기
아직 엄마가 되기 전 뉴욕에서 대학원 첫 학기로 인간발달 이론 수업을 들었었다. 조금 히피같은 모습의 영국 악센트를 쓰던 남자 교수님이 첫 강의 시간에 내주신 과제가 관찰 과제였다.
분명히 발달 이론 수업이었는데 아무 이론도 방법도 배우기 전에 무조건 놀이터 데이케어 오락실 등 여러 다른 장소에 가서 여러 연령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보고서를 쓰라고 하니 한국에서 온 첫 학기 나에게 정말 막막했던 과제였다.
제일 첫 주에 놀이터에 가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과제가 있었다.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서 센트럴파크 놀이터에 가고 또 가고 나중에는 비디오 촬영까지 해 와서 몇 번을 돌려보고 나서야 겨우 무엇인가 쓸 이야기가 생각났었던 기억이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놀이 기구에도 관계없이 아이들이 모두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에 썼었다.
이같이 발달 이론 수업의 시작이 관찰과제였던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훌륭한 인간 발달 이론들은 모두 편견 없는 세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과제였던 것이다.
삐아제(Piaget)와 같은 저명한 학자의 인지발달 이론도 세밀한 관찰에서부터 출발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여러 이론과 편견들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안경을 벗고 관찰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훈련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아이들이 하는 일을 잘 관찰하다보면 아이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참 궁금해진다. 그럴 때는 한번 아이들 행동을 따라해 보자. 보고서를 쓰기위해 구두를 신고 놀이터에 관찰을 하러 갔었던 나는 두번째 방문부터는 운동화를 신고 가서 그네도 타고 아이들을 따라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관찰은 왠지 더 쉬워지고. 아이들이 하는 일들은 다 무척 재미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다 이유가 있더라는 것!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내 아이를 더 많이 따라했다. 아이가 보는 것을 나도 같이 보고. 집안에서 같이 기어도 다니고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면 나도 같이 앞으로 기어가고 멈추면 나도 멈추고, 그렇게 같이 놀았다. 내가 멈추면 아이는 엄마가 왜 멈추나 싶어 나를 빤히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유사성, 친밀감 높이는 첫째 요소
가끔 아이들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멈추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니 엄마가 도대체 왜 이러나 싶어서 하던 행동을 멈추기 마련이다. 아이가 의자에 앉아서 무엇이든 아래로 던져보던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장난감을 주워주는 대신 다른 장난감을 같이 아래로 던지고 놀았다.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생기면 거기에 첨벙거리고 노는걸 아이가 유난히 좋아했었는데, 그럴 때면 아이와 나는 비옷과 장화로 무장을 하고 나와 더 큰 물웅덩이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눈이 오면 눈밭에서 구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눈바지와 파카를 입고 눈밭에서 구르기도 하고 눈에서 공룡처럼 발자국을 내며 놀기도 했다. 아이가 먼저 시작하면 그저 똑같이 따라하기만 했다.
유사성(similarity)은 친밀감을 높이는데 첫째가 되는 요소다. 친구를 만들 때 우리는 나와 비슷한 점에 먼저 끌리기 마련이다. 아이와 놀이도 똑같은 것 같다.
어떻게 놀아줘야하는지 모르겠다면 그냥 아이들을 따라해 보자.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 즐겁게 노는 방법을 아이들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자기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그리고 이렇게 놀이를 통해 생기는 친밀감은 아이와 관계를 더 가깝게 한다.
물론 아이를 따라하다 보면 할 말도 많아지고 눈을 마주치고 웃을 일이 많아지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엄마와 아이의 정서적 유대감(emotional synchrony)은 이후 아이의 발달과 관계에 소중한 재산이 된다.
인간발달 이론들이 관찰에서 출발한 것처럼 아이와의 관계도 편견없는 예민한 관찰이 좋은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 아이를 따라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즐거운 놀이 방법이 되기도 한다.
두번째, 열심히 가상놀이, 상상놀이 같이 하기
가상(假想) 놀이는 영어로는 pretend play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가상적인 물건이나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상징화 하는 놀이로, 소꿉놀이, 학교놀이, 병원놀이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엄마가 되어보기도 하고 의사선생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공룡이 되어보기도 하고, 스파이더맨이 되어보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가상놀이는 아이들의 발달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상놀이는 아이들이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도와주어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달하게 한다.
또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 표현능력이 향상되게 하며, 마음이론 (theory of mind: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나 생각이 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의 발달을 도와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마음이론은 이후 사회성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상놀이는 인지적 유연성과 창의력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에게 닥친 여러 어려움들을 가상놀이를 통해서 극복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 가기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다면, 병원 놀이를 해보자. 아이가 의사선생님이 되고 엄마는 아이가 되어 놀이를 하면서 아이가 두려워하는 상황을 재연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가기를 아주 무서워하고 울던 아들이 나와 병원놀이를 하면서 내가 똑같이 울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자기가 의사선생님이나 엄마가 되어 나를 달래주기도 하고, 왜 병원에 가야하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면 다음번 병원 방문은 거짓말같이 수월해 지기도 했다.
가상 놀이, 자녀의 감정 조절에 도움
‘놀이’는 아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들을 마음껏 표현하게 해서 감정 조절을 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놀이를 통해서 감정 조절 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감성 지능이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바쁜 엄마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학교에 오랜 시간 있어야 했던 아이는 네살이 넘으면서부터 학교에서 오후에 자는 낮잠을 너무 싫어하게 되었었다. 낮잠시간이 너무 너무 싫어서 아침에 학교가는 것이 두려워하게까지 되었었다.
그때 우리는 함께 학교 놀이를 하면서 아이가 마음껏 규칙을 바꾸도록 했다. 아이는 먼저 낮잠 자는 방을 꼭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싸인을 문에 붙이자고 했다.
낮잠 자는 게 얼마나 싫은지 이야기를 하던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진짜 순식간에 싸인을 만들어 오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이내 곧 착한 아이들만 갈수 있는 상상속의 ‘헛간(barn)’을 만들어, 낮잠시간에 착한아이들은 그곳에 가서 동물들과 놀 수 있다고, 그곳에 갈수 있는 열쇠를 자기만 선생님에게서 받았다고 말을 하며 아이는 상기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상상 속에서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아이는 이내 낮잠시간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고. 낮잠시간에 잠이 안 올 때면 누워서 상상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중 하나는 아마 상상력인 것 같다. 어디서든 눈을 감고 상상을 하면, 지금 있는 곳이 하와이가 되기도 하고 달나라가 되기도 하고, 나는 공주님이 되기도 슈퍼맨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모든 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을 만들 수 있으니까 어린 시절 가상놀이야 말로 부모도 아이도 모두 즐거운,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출처: http://insight.co.kr/view.php?ArtNo=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