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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부라더소다'와 '카누 디카페인'은 각각 술을 잘 마시지 못해 고민인 사람, 카페인에 과민한 커피 애호가 등 소수자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소수자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누구나 어디에선가, 또 언젠가는 소수자가 된다. 필기를 할 때마다 노트를 세로로 놓고 손목을 비틀어야 하는 5.8%의 왼손잡이도, 구내식당에서는 메뉴를 찾을 수 없는 채식주의자도 소수자다. 서른이 넘어 왜 결혼을 안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들어야 하는 이유도 상대적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투표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들처럼(스위스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71년의 일이다). 

이야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46년 미국 연방 대법원. 군의관을 따라 여러 주를 떠돌던 흑인 노예가 주인의 미망인을 상대로 자유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노예제가 금지됐던 주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니 자유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판결은 단호했다. "노예 흑인도, 자유 흑인도 미국인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은 연방법원에 제소할 권리가 없다." 대법원 판사 9명 중 흑인 노예의 편을 든 사람은 딱 두 사람이었다. 7대2. 노예제 폐지는 당시에 소수의견이었고 판사 두 사람은 당시 법정에서 소수자였다. 

대법원의 판결은 다수결이다. 소수 의견은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의견은 소중하게 기록된다. "대법원 판결에서 반대 의견은 새로 움트기 시작하는 법의 정신에 대한 호소요, 오늘의 법원이 범하는 오류를 시정해 줄 미래 법원의 지혜에 대한 간청"(윌리엄 더글러스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이기 때문이다. 

광고 이야기를 하면서 소수자와 연방 대법원 판례까지 들먹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움 그리고 미래의 변화. 광고는 '날것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새로움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래서 실현되지 않은 욕망을 찾는 일이다. 누가 어느 때 소수자인지. 다수의 욕망이 획일화돼 있는 자리에서 어떤 욕망이 눈치 보며 숨어있는지. 

술자리에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소수자다. 한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 나라에선 집단이 모여 끼니를 해결하는 자리가 대체로 술자리다. 직장은 물론이고 대학 모임도 그렇다. '알쓰'. SNS상에서 스스로를 '알코올 쓰레기'라고 부르며 자조하는 사람들은 받아놓은 술잔을 요령껏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혹은 사이다를 탄산 거품 가려가며 끊임없이 들이켜기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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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주시장을 흔들고 있는 과일 소주 돌풍에는 술자리에서 소수자인 알쓰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쓴 소주가 식도를 자극하는 고통을 감내하거나 분위기 어색하지 않게 만들면서 술자리에 어울릴 수 있는 술.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을 위한 술. 술자리의 소수자를 위한 술. 잠재된 욕망은 분출했고 한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했던 소주회사들이 뒤늦게 뛰어들었다. 

하연수가 등장하는 보해양조의 '부라더소다' 광고는 술자리 소수자를 위한 술 광고다. 신나고 왁자지껄한 술자리는 소수자들에게는 광장의 무대 같은 자리다. 알쓰는 아무도 따라주지 않고, 아무도 권하지 않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그런 술자리를 욕망한다. 술잔이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술병을 들고 권하는 상사도 없고, 분위기 못 맞춘다고 눈 흘기는 선배도 없는 나만의 공간. 게다가 맛있어 보인다. 무료함을 달래줄 만큼 흥미롭고, 빨대로 빨아먹고 싶을 만큼 달콤해 보인다. 집은 알쓰들의 파라다이스다. 소수자의 자유공간이다. 

소수자는 마케팅에서 TPO(Time Place Occasion)라고 하는 존재이자 상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한때, 또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도 잠시 소수자가 된다. 

디카페인은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락토우유처럼 카페인에 과민한 사람들을 위한 커피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피 브랜드는 디카페인 제품을 출시·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산모를 위한 커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마케팅 요소를 투입할 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의외로 저녁이나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해가 지면 출현하는 야간 소수자인 셈이다. 이때까지 커피의 소수자는 산모라는 '누구'였다. 하지만 동서식품 카누의 디카페인 광고에서 커피의 소수자는 '언제'라는 '상태'다. 광고는 그들의 밤을 배려하고 위로한다. "굿 나이트(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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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멀리 돌아 '소수자'라는 키워드로 시장을 바로 보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새로움과 가능성. 새로움은 늘 소수에서 시작하고, 가능성은 소수의 전유물이다. 이는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광고가 찾은 첫 번째 방법은 새로움이다. 익숙한 것을 그냥 지나침으로 인해 수많은 정보에서 유익한 정보를 찾아내는 두뇌활동의 첫 번째 문턱을 넘는 방법이다. 소수자의 눈으로 시장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세상은 소수자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기회가 거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도 아직은 소수 의견이기는 하지만. 

[서용민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168776&year=2016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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