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인가」를 낸 송호근(60)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력사회인 한국에서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시민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에 도움되는 인턴만 할 게 아니라 시민정신을 기르는 사회 인턴을 해 보라고 권했다. 

Q 멘티가 멘토에게 

입시 경쟁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을 과연 꼭 가야 하나요? 대학 진학의 투자 수익률 내지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요즘도 높다고 할 수 있나요? 좋은 대학을 가는 게 과연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대학을 가는 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멘토가 멘티에게 

한국에서 대학 진학은 수익률이 낮습니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적으로 높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건 한국이라는 독특한 사회에서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모두 대학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 잃는 게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학력 격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인식을 떠나 대학에서 얻는 게 있을까요?  

대학은 인생의 의미, 사회와 공동체의 참뜻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기관입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할뿐더러 삶의 지혜를 쌓을 수 있는 도량 같은 곳이죠. 대학에 가지 않으면 대학생활이라는 기회를 잃지만 그보다 거기서 얻어야 할 것, 어쩌면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게 됩니다.  

요즘 대학생들 보면 전공 공부를 참 열심히 합니다. 과거보다 2~3배는 하는 거 같아요. 나는 대학생들이 취업 준비와 전공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오직 대학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기를 바랍니다. 인생에 대한 실험, 목표로부터의 일탈, 다른 길 엿보기 같은 것들이죠. 대학의 본질은 ‘자유로운 유예 기간’입니다. 대학 시절은 자신이 누구인지, 장차 무엇을 위해 살 건지 자유롭게 탐색하는 시간입니다. 졸업 후 새장에 갇히기 전 자유롭게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푸드덕거려 보는 기회죠.

인생에서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이 유일한 기회를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누리지 못한 지 오래됐습니다. 대학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을 대학이 상실한 것이죠. 그런데 대학을 간다면 추상적이지만 본질적인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졸업 후엔 사실상 그럴 기회가 없어요. 사회가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학 시절은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설계하는 유일한 기간입니다. 이게 대학 생활의 의미입니다.  

대학에 간다면 문학ㆍ역사ㆍ철학의 세계에 빠져 보기 바랍니다. 인문학을 섭렵하는 지적 여행을 떠나세요. 이 길을 떠나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10년쯤 지났을 때 예컨대 철학에 빠져 본 적이 있고, 그래서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고, 그에게서 감동받은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말하자면 나중에 방황할 때 인생의 좌우명처럼 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힘이 생겨요.  

대학 시절 스스로 그런 ‘수업시대’를 겪어야 합니다. 이런 수업을 쌓느냐 못 쌓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요. 이렇게 보낸 날들이 돈으로 보상을 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시간 경험이기도 하죠. 이 인생의 유예기간을 즐기면서 인생의 진로를 모색하세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학이 전공을 일찍 선택하게 하고 전공 변경-전과를 어렵게 만든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학의 명성보다 적성 고려해야 

인문학 책을 많이 읽었다고 인문학적 교양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닙니다. 문제의식이 선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그런 나름의 궤적이 있어야 교양이 생겨요. 기본적인 자기 철학이 형성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지혜가 비로소 내면에 자리 잡게 되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빈곤하면 자신을 성찰하는 눈도 빈약할 수밖에 없어요. 타인을 성찰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어요. 삶이란 타인과의 관계로 구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은 삶의 질과 직결됩니다.

대학 시절은 자신이 누구인지
장차 무엇을 위해 살 건지
자유롭게 탐색하는 시간입니다.
졸업 후 새장에 갇히기 전
자유롭게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푸드덕거려 보는 기회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냐고요? 우리나라가 학력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에 진학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인생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래야죠.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 사회적으로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건 물론 아닙니다. 학력 격차에 대한 편견 탓에 대학에 가지 않으면 루저라는 낙인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건 아니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하면서 그 분야와 일체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땐 적성이랄까 기질, 기호를 고려하는 게 좋습니다. 운명적인 건 아니지만, 자기 내면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보세요. 부모의 요구로 인기학과에 진학했다가 결국 적성에 맞는 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내면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성은 대학 가서 발견하겠다고 유보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고요. 학교가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멘토링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내면의 소리를 증폭시켜 보세요.  

대학이 실용적인 기관으로 이행한 건 사실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은 사회적으로 세탁기ㆍ정화기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의 여러 오점을 씻어내고 혼탁한 사회의 공기를 맑게 해줬죠. 대학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시민성을 함양해야 합니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으면 자신의 삶의 조건도 위태로워지게 마련이죠.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목까지 차 있습니다.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어 성장만 구가할 수도 없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그런 반성을 촉구한 아픈 기회였습니다. 하루빨리 공동체적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취업에 도움되는 인턴만 할 게 아니라 시민정신을 기르는 사회 인턴을 해 보세요

※ 이 기사는 더스쿠프 176호 (2016년 1월 25일~2월 1일) Talk! Talk! Interview 청춘멘토링 송호근 교수 기사입니다

출처: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562703&memberNo=12494964&vType=VERTICAL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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