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부수현 (경상대학교 심리학과)
'다르다'와 '틀렸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간단하게, ○와 □는 다른 것이다. 반면, '해가 뜨는 방향은 서쪽이다'는 틀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 둘을 혼동한다. 아마도,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자기-자신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나와 같지 않은 것은 불편하다.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느끼는 불편함의 강도는 달라지겠지만, 불편함이 커질수록 이를 모면하려는 동기도 높아진다. 이러한 심리적 긴장상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저것이 잘못된 거야'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Festinger, 1954). 왜냐면, 나는 언제나 옳고 바르며,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다른 저 사람이 틀린 거다. 실례로, 종교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심지어 응원하는 야구팀이 다를 때도,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생각이나 선호가 다를 뿐인데도 말이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마찬가지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과이든, 일상적으로 체감하는 실재이든 간에, 양성은 서로 다른 점이 많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남성의 키는 여성보다 크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백한 차이도 평균적인 것에 불과하다. 간단한 예로, 전 세계 어디에나 평균적인 남성들보다 키 큰 여성이 있으며, 반대로, 평균적인 여성들보다 키가 작은 남성도 어느 나라에나 있다. 또한 이러한 차이는 어떤 집단을 서로 비교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여성의 평균 키는 동남아시아 거의 모든 국가의 남성 평균 키보다 크다. 그렇다면, 성별보다 인종이 더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더 들어가 보면, 각 인종이 적응한 기후 차이, 즉 서식지의 위도 차이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통계치를 통해 의미를 찾을 때에는 이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지각적 대조(perceptual contrast) 효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무엇을 어떻게 비교하는지에 따라서 별거 아닌 차이도 엄청난 차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Parducci, 1965). 예를 들어, 남학생의 수학 성적이 높고, 여학생의 언어영역 성적이 높다는 것 역시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는 '평균적 차이'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아마도, 학교의 특성이나 지역특성이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나다.' 혹은 여성의 감정-공감능력이 '월등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심각한 오류일수 있다. 특히, 단순한 평균적인 차이를 '차등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차등(우열 구분)이 무분별한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성차에 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논쟁으로 연결된다. 먼저, 본성주의자들은 양성이 원래 다르게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 및 양이 다르다. 또한 성별에 따라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극이 있고, 때로는 같은 자극에도 서로 다른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결과도 보인다. 이들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신생아(즉, 환경적 영향이 거의 없는 시기)에서도 성차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이라는 종 특이성마저도 배제하고 수컷과 암컷의 차이를 일반화시켜 성차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양육주의자들은 어려서 별 차이가 없는 아이들이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남자답게' 혹은 '여성스럽게' 길러진다고 주장한다. 양육자들은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옷을 입히고, 서로 다른 장난감을 사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과업이나 기대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아시아계 여학생들에게 '여성'임을 자각시켰을 때보다 '아시아계'임을 자각시켰을 때, 더 높은 수학성적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답게' 공을 던져보라고 하면 있는 힘껏 던지지만, 성인들은 가냘프고 귀엽게 공을 던지려고 한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련 연구결과들을 정리해보면, 둘 다 옳다.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인 차이는 명백한 사실이며, 성역할 사회화를 비롯한 양육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보다 정확하게 정리하자면, 생물학적으로 다른 아이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양육했을 때 성차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근 우리시회에서 이슈로 불거지고 있는 '여성-혐오'를 들 수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성-대결 구도로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 하나를 해본다. 만약 당신이 이성의 배우자(혹은 연인)로 누군가를 만나려고 할 때, 남성의 경우, 그녀가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면 부담스럽다.'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가? 반대로 여성의 경우, 그가 나보다 '모자라고 능력이 떨어지면 곤란하다.'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가? 아마도 많은 남성들이 자기보다 잘난 여성을 부담스러워 하고, 이와 비슷하게, 많은 여성들이 자기보다 못난 남성을 곤란하게 생각할 것이다. 놀랄 수도 있겠지만, 이게 바로 '여성-혐오'이다.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정도, 혹은 특정한 부류의 여성을 싫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 혹은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다.'는 신념이 여성-혐오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사내대장부가 겨우~', '계집애가 감히~' 등이 모두 여성-혐오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여성-혐오는 결코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별로 진영을 나누어 대결할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양성이 모두 함께 바꿔 나가야 할 잘못된 신념이다.
요약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성차는 존재한다. 또한 이것은 타고난 결과이기도 하며,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성차는 평균적인 차이에 불과하며,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뛰어나다 혹은 모자라다'는 우열을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단순한 차이가 심각한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덧붙여, 성별에 따른 차별은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양성이 대립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공동의 문제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는 그릇된 신념을 버리는데 있다.
  • 참고문헌
  • Festinger, L. (1954). A theory of social comparison processes, Human Relations, 7(2), 117∼140.
  • Parducci, A. (1965). Category judgment: a range-frequency model. Psychological review, 72(6), 407.
  • 글. 부수현
  • 중앙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소비자 및 광고 심리학 전공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경상대학교 여성연구소 운영위원이다. 소비자 행동, 광고 효과,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에 관한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으며, 최근에는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관한 주제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autumn/sub.html?category=14&psyNow=12&UID=175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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