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역사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과 다른 학문 발전의 영향을 받아 왔다. 오늘날의 심리학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 기원은 이해해야 한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심리학의 역사나 이론에 접근한다면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비과학적인 주장들을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사회, 문화, 역사 및 다른 학문의 영향을 받아 온 결과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심리학의 근원 

심리학의 역사적 근원은 철학과 과학에 있다. 19세기 후반, 과학자들이 마음의 연구에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서 심리학은 비로소 하나의 독립적인 과학적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비록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유사하게 지식의 원천으로서 체계적 관찰과 엄격한 추론을 사용하더라도 철학자가 상대적으로 추론을 더 이용한다. 예를 들어, 철학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 경향을 논할 때 추론을 사용하는 반면에 심리학자는 이 문제에 대해 행동하는 사람의 정서적, 상황적 요인을 연구함으로써 접근하는 차이가 있다. 

♡심리학의 철학적 근원 

심리학의 철학적 근간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이며 특히 지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Platon(BC 427-BC 347)과 Aristotle(BC 384-BC 32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으로나 지식인으로 뛰어나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용맹하다고 알려진 Platon은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감각을 의심하였다. 


그는 우리의 감각은 곧은 막대가 물 속에서 휘어보이는 것처럼 우리를 속인다고 생각했다. Platon은 또한 인간은 타고난 지식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는 추론이 이러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고 믿었고, 이러한 철학적 접근을 이성주의라고 불렀다. 


Platon은 꿈, 지각, 정신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심리학적인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였다. 추론을 사용함에 있어, Platon을 비롯한 다른 뛰어난 철학자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눈에서 발산된 빛에 의해 물체를 본다고 잘못 판단한 것이다. 

Aristotle의 경우에는 비록 추론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접근으로 지식의 원천으로서의 감각 경험을 Platon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Platon처럼 Aristotle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였다. 예를 들어, 강한 정서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에는 뇌보다 심장이 더 민감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Aristotle가 심리학에 기여한 것은 심리학적인 주제에 대해 형식을 갖추어서 깊이 생각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점이다. 


중세 기독교 시대 초기에는 심리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Platon이나 Aristotle와 같은 철학자보다는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장 유력한 서구의 권위자는 Saint Augustin(354-430)이다. 젊은 시절 Augustin은 '내일은 죽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즐겨라'라고 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추종자로, 젊어서는 방탕했고 그의 이러한 생활은 기독교에 귀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자서전인 『고백(confession)』에서 자기분석을 통해 기억과 정서, 동기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기술하였다. 그는 인간 이성과 동물적 열정, 특히 성욕(Gay, 1986) 간의 지속적인 갈등에 대한 통찰을 Freud보다 훨씬 더 먼저 제시하였다. Augustin은 비록 이성을 심리적인 과정을 연구하는 데 사용하였으나 연구에 있어 과학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다(Pratt, 1962). 

십자군 원정이 종교적인 신조에 의해 이루어진 중세 시대에는 경험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처벌을 무릅써야 했기 때문에 과학적인 연구는 거의 이슬람 지식인들에게서만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을 용기 있게 극복한 사람이 Bacon(1214-1294)이다. Bacon은 오감을 통해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강조한 아랍 과학자들의 영항을 받았다. 그는 철학자들에게 있어 권위에 대항한 경험주의를 강조하여 결과적으로 종교학자들과 충돌하였다(Linderburg, 1983) 

르네상스의 정신은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서구의 권위자들은 신학보다는 철학에 의존하여 심리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르네상스 정신은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Descartes(1596-1650)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Vrooman, 1970). 

최초의 현대적 이성주의자인 Descartes는 스스로의 추론으로 분명하게 증명되지 않는 모든 것은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의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극도의 추론을 사용하였다. 


Descartes는 종교적인 권위자들에 의해 제안된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고 현대적이고 지적인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위협을 느껴 그의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시키게 하였다. 

한편, 일부 지식인들은 비록 이성주의보다는 경험주의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Descartes와 함께 심리학적인 질문에 대한 신학자들의 대답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지식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Francis Bacon(1561-1626)이었다. Bacon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성격적으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시인인 Alexander Pope로 하여금 그를 가장 영리하고 현명하며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고 부르게끔 하였다(Quinton, 1980). 
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서 Bacon은 다른 관찰자들로부터 증명, 체계적 관찰, 회의법을 장려하는 현대적인 과학적 태도를 이끌어 내었다. 그는 쓸모없는 것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Locke(1632-1704)가 Bacon의 경험주의자로서의 발자취를 따랐다. Locke는, 인간은 감각을 통해 얻어진 인생 경험으로 채워 나가는 백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였다. Descartes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은 지식이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Locke와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이란 단지 인생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유전과 인생 경험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관심은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논쟁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성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의 절충은 독일의 철학자 Kant(1724-1804)에 의해 이루어졌다. Kant는 지식이란 물리적 환경으로부터의 감각의 조직화와 이해의 생득적 정신 기제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비록 태어난 곳의 언어 경험에 의해 특정한 말을 하지만 말하는 능력과 언어는 타고난 기제에 의존하므로, 동물은 언어를 학습할 수는 없지만 말을 들을 수 있고 언어기제를 지닌 동물들은 경험을 통해 언어의 학습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인 주제를 연구함에도 불구하고 Kant는 심리학이 과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그는 정신이 직접 과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그는 정신이 직접 관찰하거나 측정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확신하였다. 더욱이 그 내용은 일정한 흐름에 있기 때문에 정신의 연구는 과학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객관성을 결코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심리학의 과학적 근원 

19세기 들어서 과학자들은 철학자들이 어려움을 가졌던 심리적 과정의 본질에 대한 대답 과정에서 과학을 심리적인 주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 보다 더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에 일반적인 추론에 근거한 믿음은 전기가 선을 통해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신경자극도 신경을 따라 즉시 움직인다고 믿었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독일의 물리학자 Helmholtz(1821-1894)가 수행한 연구에 의해 부정되어졌다. 그는 눈의 내부를 검사하는 데 사용되는 검안경을 포함한 시각과 청각에 대한 현재의 지식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신경자극 연구에서 Helmholtz는 신경의 활동이 몇 분의 일 초 동안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동물과 인간에 대한 실험을 통해 발견하였다. 한 실험에서 인간 피험자들로 하여금 발이나 허벅지에 접촉이 느껴지면 버튼을 누르도록 하였는데, 피험자들은 허벅지에 대한 접촉보다는 발에 대한 접촉에 더 느리게 반응하였다. 그는 이러한 차이가 척수를 거쳐 뇌에까지 연결되는 발에서의 신경이 더 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신경자극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Helmholtz와 같은 시대의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에 대한 중요한 발견을 했다. 주도적인 뇌 연구자는 프랑스의 생리학자인 Flourens(1794-1867)이다. 그는 동물 행동에 있어 특정 뇌부위 손상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대뇌의 손상이 운동 기능의 부조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외과의사이며 인류학자인 Broca(1824-1880)는 인간의 뇌 손상에 대한 유사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는 뇌의 앞쪽의 왼쪽 부분이 손상을 입은 환자는 언어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른 19세기의 과학자들은 뇌의 구조와 별개로 정신 과정의 과학적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과학자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Fechner(1801-1887)이다. Fechner는 당시 과학자들의 주장을 혹평하였다(Marshall, 1969). 그는 또한 Weber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물리학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하였다. 정신물리학은 Fechner로 하여금 물리적 자극과 정신적 경험 간의 관계를 측정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성취는 심리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고 믿었던 Kant에게 있어서는 놀랄 만한 것이다. 정신물리학은 밝기의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빛의 세기 변화는 어느 정도인가, 소음의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소리의 정도 변화는 얼마나 되는가 등의 연구를 하였다. 


정신물리학은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태어난 심리학의 독립된 학문으로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지난 세기 동안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화면을 개발한 연구자는 색, 밝기 같은 텔레비전 화면의 물리적 특성과 보는 사람의 정신의 질적 경험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정신물리학에 의존하여야 했다(Baldwin, 1954). 

19세기 후반의 심리학자들은 영국의 자연주의자인 Charles Darwin(1809-1882)이 주창한 진화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다윈은 5년간의 동식물 연구 결과를 『종의 기원』에서 기술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동물은 그 선대로부터 진화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낸 사람이 바로 Darwin이다. Darwin의 이러한 이론은 그의 사촌인 Galton(1822-1911)의 연구를 통해 심리학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Galton은 많은 분야에 관심을 지닌 훌륭한 과학자였다. Darwin의 진화 이론을 적용하는 데 있어 Galton은 자연 선택이 인간 능력의 발달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그는 고도로 능력이 발달된 개체는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간의 지능, 성격, 물리적 특성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개인차 심리학(Buss, 1976) 분야의 발전으로 이끌었다. 

개인차 심리학은 Galton과 함께 연구를 수행했던 심리학적 Cattell(1860-1944)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었다. 1890년에 Cattell은 시각, 청각, 물리적 기술 등 다양한 검사를 기술하는 데 사용된 정신검사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Cattell은 1895년 미국심리학회 회장직을 수행하였고 심리학자로는 처음으로 국립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에 당선되었다. Cattell은과학과직업으로서의심리학 발전에 있어 선구자였다(Garfield, 1992) 

♡심리학의 성장 

심리학에 있어 Cattell은 최초의 심리학 교수로 여겨진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교수직을 맡았다. '심리학은 긴 과거를 지니고 있으나 그 역사는 짧다'고 한 Ebbinghaus(1850-1909)는, 지식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심리학적인 주제에 관심을 두어 왔으나, 심리학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독립적으로 분리된 학문 분야가 되었고 하였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출발점을 독일의 생리학자인 Wundt(1832-1920)가 라이프찌히 대학에 실험실을 개설한 시기로 보고 있다. Wundt는 1874년 『생리 심리학의 원칙』이라는 역사적인 저서에서 과학적인 심리학을 위한 그의 생각을 밝혔다. 그의 책 제목에서 생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생리 심리학이 주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생리적인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생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했다는 의미이다. 

1875년에 Wundt는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학생들의 저녁 식사를 위해 사용되던 작은 방에 연구실을 마련하였다. Wundt의 연구실에 대한 요청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음의 내용을 파고 따지게 만드는 심리학과 같은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은 학교 경영자에 의해 거부되었다(Hilgard, 1987). 1879년 초 Wundt의 연구실은 Cattell과 같이 대부분 유럽과 북미의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된 많은 학생들에게 연구의 장이 되었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1979년 100주년 행사를 통해 Wundt의 업적을 기렸다. 

새로운 학문이 초기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과학의 훈련을 받은 카리스마적인 선구자에 의해 주창되는 경쟁적인 접근 방법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 심리학에 있어서 이러한 접근들은 구성주의, 기능주의, 행동주의, 게슈탈트 심리학, 정신분석이다. 심리학에서의 각 학파는 다음의 세 가지 유의미한 특성으로 구별되어진다. 

(1) 연구의 객관성, (2) 연구의 목표, (3) 연구 방법 

♡현대 심리학의 관점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 Thomas Kuhn에 따르면 적절한 목적, 방법, 주제를 결정짓는 모델 즉,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통합되어져 과학이 성숙해져 왔다고 한다. 더 이상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와 추종자에 의한 심리학파의 분열은 없을지라도 심리학은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묘사한 과학적 패러다임을 통합하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보다는 심리학 안에는 대립적이며 경쟁적인 심리학적 관점들이 있는데, 다음에 차례로 설명될 행동주의적 관점, 정신분석적 관점, 인간주의적 관점, 인지적 관점, 생리심리학적 관점이 그것이다. 

♡행동주의적 관점 

행동주의적 관점은 행동주의로부터 나왔다. 행동주의를 이끈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B. F Skinner (1904-1990)이다. Watson과 같이 Skinner는 정신적 과정을 무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행동의 연구로서의 심리학을 제안했다. 극단과정을 무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행동의 연구로서의 심리학을 제안했다. 극단적 행동주의자들은 여전히 심리학적 연구에 있어 정신적 경험에 대한 보고는 적절한 주제가 아니라며 무시하였다. 그러나 Watson과는 반대로 Skinner는 행동 조절에 있어서 환경에 대한 자극보다는 행동의 결과에 대한 규칙을 강조하였다. 

Skinner는 동물과 사람은 긍적적 결과가 따라오는 행동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우리의 행동을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이 공부한 결과 'A'라는 성적이 나왔다면 나중에도 공부하는 행동을 증가하려는 경향이 보일 것이다. Skinner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의 행동은 '긍정적으로 강화를 받은 결과'인 것이다. 


Skinner는 Watson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자였다. 1948년에 Skinner는 『Walden Two』를 발간하였는데, 이것은 행동의 원리에 기초하여 쓴 이상적 사회를 묘사한 대중적인 책이었다. Skinner의 유토피아에서는 사회란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 긍정적 강화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을 조절하는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버지니아 주의 트윈 옥스 같은 작은 공동 사회에서는 '월덴 투'에 묘사되어 있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행동주의적 이상형은 없을지라도 행동주의적 관점은 아이들 교육이라든지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 향상이라든가 심리적 장애의 치료 등과 같은 많은 부분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Skinner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동주의적 관점의 영향은 극단적 행동주의자들의 정신 과정에 대한 무관심에 반대하는 경향으로 확대되어 갔고, 이러한 영향으로 최근에는 점차 쇠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반대는 심상, 사고 등과 같은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정신 과정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에 의해 생겨났다. 이러한 심리학자들은 이른바 인지적 행동주의자들이라고 불리우고 이러한 심리학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Albert Bandura이다. 

♡정신분석적 관점 

행동주의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적 접근도 초기 심리학의 학파 중 하나였다. Freud 정신분석의 쇠퇴는 프로이트의 제자 두 명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두 제자는 Carl Jung(1875-1961)과 Alfred Adler(1870-1937)이다. 그들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이론의 중요한 측면과 반대되는 정신분석적 이론을 발전시켰다. Jung과 Adler와 같은 소위 신프로이트 학파는 성과 공격성 같은 생리적인 측면을 Freud보다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였고,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Jung은 내향성과 외향성의 개념을 포함한 그 나름의 성격 이론을 발전시켰다. 한편 Adler는 우월감에 대한 투쟁에 의해서 본능적으로 아동기의 열등 의식을 과잉 보호하려는 경향이 그의 신념과 성격 이론의 근간을 이룬다. 

다른 신프로이트주의 또한 정신분석적 접근에 기여했다. Freud의 딸인 Anna Freud(1895-1982)는 아동 정신분석의 분야를 주도하였고 그녀의 경쟁자였던 Melanie Klein(1882-1960)은 역할치료 기법을 발전시켰다. Erich Horney(1895-1952)는 우리의 나약하고 의존적인 유아기 경험의 불안정감에서 오는 불안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성격 발달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Horney는 인간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사회적 순종에 대한 경향성으로 얼마나 잘 설명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유사한 이론을 제안하였다. Harry Staek Sullivan(1882-1960)은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치료에 대한 정신분석적 기법의 적용을 이끌었다. 그리고 Erik Erikson은 인생을 통한 발달 이론에 기여하였고, 특히 전체 인생에 있어서 해결해야 하는 위기를 강조했다. 

정신분석적 관점은 생리적 추동의 중요성은 무시하였으나 초기 아동기의 경험이나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자들은 무의식에 대한 정신 과정의 과학적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러한 기술의 성공은 '무의식적인 심리 과정의 개념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인간이 알고, 배우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심리학적인 모델은 없다.'는주장을지지하고있다(Shevrin & Dickman, 1980). 


♡인본주의적 관점 

정신분석적 접근과 행동주의적 접근에 대한 최초의 대안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인본주의적 접근을 심리학에 있어 '제3의 세력'이라고 한다. 인본주의적 접근은 1950년에 미국의 심리학자인 Abraham Maslow(1908-1970)와 Carl Rogers(1902-1987)가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으며 무의식적인 동기와 환경적 자극에 의해 움직여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발전시키면서 생겨났다. 

1967년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맡았던 Maslow는 처음에는 행동주의 심리학자였으나, 후에 관찰 가능한 행동과 환경의 영향에 대해서만 초점을 두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인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모든 사람의 잠재력의 실현에 대해 적용되는 용어이다. 

Maslow의 견해는 Rogers에 의해 계승되었다. 두 사람은 심리학의 주제는 개인의 고유한 정신적 경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그들은 기능주의 심리학자인 William James와 학문적 유사성을 보였다. 개인은 자유 의지를 가졌으며,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심리학의 가정은 실존주의 심리학과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의 접근은 우리의 정신적 발전은 우리의 궁극적인 유한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의 자각에 달려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유한성을 무시하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순간을 위해 살고 나머지 시간을 즐거움을 찾는 데 보내기도 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Rogers에 의해 심리치료 분야의 변화에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다(Gendlin, 1988). 비록 개인 중심적 치료는 의식의 성장과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의 다른 측면은 과학적 기반은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받아 왔다(Wertheimer, 1978). 이러한 과학적 정확성의 부족은 인본주의 심리학이 심리학에 있어 학문적인 영향을 비교적 적게 미치게 하였으며, Rogers는 생의 말기에서 이를 애석해 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측면에서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 심리학은 사랑, 이타성, 건강한 인격의 발전과 인간 경험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연구를 진작시키는 데 가치 있는 공헌을 하였다. 나아가 많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실험으로 입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Rychalk, 1988). 

♡인지주의적 관점 

최근 10년간 심리학에 있어 인지적 관점에 의해 주도되는 소위 '인지 혁명'이라 불리는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Gardner, 1985). 인지적 접근은 게슈탈트 심리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의 결합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처럼 인지 심리학은 유기체의 지각과 정보 처리, 경험의 해석 등 활동적인 정신의 작용을 강조한다. 그리고 행동주의 심리학과 같이 인지 심리학은 객관적이고 잘 통제된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강조한다. 따라서 인지 심리학은 언어적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찰 가능한 반응을 통해 정신적 과정을 추론한다. 그러나 생각과 같은 정신적 작용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엄격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과는 달리 많은 인지 심리학자들은 정신 작용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O'Connor, 1981). 

인지 심리학은 아동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면담에 기반을 두고 아동의 정신적 발달에 대해 인지 발달 이론을 제시한 스위스의 생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Jean Piaget(1896-1980)의 연구에서 나타난다. 인지적 관점은 또한 뇌를 정보 처리기로 시뮬레이션한 지난 30년간의 컴퓨터 혁명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자는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Herbert Simon이다. 어떤 인지 심리학자는 인간 사고 과정 모델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하고, 컴퓨터 체스 게임과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간의 사고 과정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지적 관점은 심리학의 대부분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지 심리학자인 George Kelly(1905-1967)는 성격과 심리 치료, 정신 이상에 대한 연구에 적용되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Kelly는 우리가 개인적 구성 개념이라고 부르는 인지 구조에 의해 행동한다고 믿었다. 이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이다. 

♡생리 심리학적 관점 

20세기 초기의 대부분의 심리학파는 19세기의 생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심리학에 있어서 엄격한 의미의 생리학적인 학파는 없다. 최근 10년간 복잡한 연구 기기들과 더불어 증가된 행동과 정신 과정의 생리학적 기반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생리 심리학적인 관점이 나타났다. 
생리 심리학은 뇌에 연구, 호르몬 체계, 심리학적인 기능의 유전에 관심을 두었다. 비록 생리 심리학의 연구자들이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들의 중요한 연구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지기도 한다. 에를 들어,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인 Penfield(1891-1976)는 간질 환자의 발작을 줄이기 위한 외과적 수술 도중에 약한 전류로 뇌의 표면에 자극을 주어 뇌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는 뇌의 한쪽의 특정 부위에 대한 자극은 반대편의 신체 일부의 움직임을 유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981년에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Roger Sperry는 뇌의 양반구가 분리된 간질 환자의 발작을 줄이기 위한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Sperry와 그의 동료는 각 반구는 특정 심리적 기능에 대해 다른 한쪽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생리 심리학적 관점의 영향이 증가함으로 인해 심리학은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 정의될 수 있다. "심리학은 행동과 정신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생리적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각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 교수의 행동을 각 관점에서는 어떤 식으로 설명하는지 생각해 보자. 

교수가 항상 웃고, 농담을 잘하고 학생들의 통찰에 대해 칭찬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이라고 하자. 행동주의 심리학자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고 흥미로워하는 등의 긍정적인 강화인이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는 그 교수가 무의식적인 공격성을 라켓볼을 치거나 매우 어려운 시험 문제를 만드는 등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그 교수가 친구로서,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예술가로서, 운동 선수로서, 심리학 교수로서의 잠재력에 도달하여 자아를 실현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인지 심리학자들은 그가 자신에 대해, 세계에 대해,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낙천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생물학적 심리학자는 긍정적인 기분과 관련된 뇌의 화학 작용의 수준이 보통 이상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각 심리학적 관점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지식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 관점을 지지하는 심리학자라고 해서 다른 관점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각 접근들을 절충하여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 데 활용한다. 1세기 전 William James는 심리학자들이 독창적인 심리학을 찾는 과정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Viney, 1989).


출처: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56437072&qb=7Ius66as7ZWZ7J2YIOyXreyCrOyggSDtnZDrpoQ=&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PgdjF5Y7tGsssczwMssssssss4-299677&sid=UeTP2nJvLCUAAFpaJJU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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