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 친환경주택 ‘오경재’ 


자연을 좋아하는 것과 달리 자연에 순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산을 깎고 바다도 메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집 한 채 짓는 것쯤이야…. 땅이 못생겼으면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바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들어선 친환경주택 ‘오경재’다. 솔직히 톡 까놓고 땅이 ‘아니올시다’ 쪽이다. 기울기 25도인 오르막길에 놓여 있다. 이처럼 경사진 땅에 집을 지으려면 대개 땅을 밀어버리거나 옹벽을 치고 흙을 메워 평평하게 만든 뒤 건물을 쌓아 올린다. 그런데 건축가와 건축주는 땅을 건드리지 않고 역발상을 했다. “집을 땅에 묻자.” 요새 참 보기 드문 ‘지하 주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대지면적 930㎡, 연면적 317㎡, 지하 1층 규모다.

“햇빛과 바람, 눈, 비 등 자연과 화합하면 훌륭한 친환경 주택을 지을 수 있다.” 김용만 품 건축 대표는 친환경 주택 예찬가다. 건축주가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은 천차만별인 만큼 거창하고 비싼 기술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바람길과 녹지축 등 건물 주변의 자연환경을 살리면 현실적인 가격 선에서 얼마든지 에너지 절감형 녹색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건축주의 참여가 중요하다. 그는 2011년부터 ‘행복집짓기+(플러스)’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형 주택 등 녹색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김용만 대표는 “건축 과정에서 기술이 30%라면 건축주와 건축가의 집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주택은 건축주 의지가 중요한 만큼 공부하는 자세로 건축에 접근해야 건축가를 신뢰하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행복집짓기+’ 학교를 거쳐 건물이 준공되면 특별한 집들이 음악회를 열고 명패도 달아준다. 현재까지 이 학교 수강자는 1200여 명에 달한다. 

‘행복집짓기+’가 추구하는 친환경 주택은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쓰고 패시브하우스 디자인에서 착안한 시공 기술을 적용한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량이 12ℓ 수준으로 일반 소형 주택(15~20ℓ)보다 눈에 띄게 적다. 최근 에너지 소비량을 5ℓ까지 줄이기 위해 단열 재료 등을 개선하고 있다. 오경재가 이 목표를 달성한 첫 사례다. 김 대표는 “자연과 사람 모두가 건강하고 편안한 집을 지어야 한다”며 “에너지 절감형 주택이 확산되려면 주택에 대한 인식 전환과 녹색건축 기술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행복집짓기’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에 친환경 건물 9채가 완성됐다. 오경재를 비롯해 파주 교외형 단독주택 ‘하늘재’, 철원 펜션형 공동주택단지 ‘미래촌’, 목포 직원 복지형 문화 오피스 ‘성문피아’ 등이다.


밖에서 보면 정말 집이 땅속에 파묻혔다. 그나마 낮은 쪽에 위치한 입구는 일반 주택 모양새를 갖췄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건물 외벽이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지붕(옥상)이 훤히 드러난다. 집 뒤로 산이 있는데 산 아래 큰 바위가 박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집은 경사진 땅에 맞춰 계단식으로 설계됐다. 대문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 현관과 거실에 이른다. 집 내부 중앙에 놓인 계단을 또다시 오르면 반대편 끝에 있는 옥상에 다다르는 식이다. 안방과 자녀방, 드레스룸 등은 계단 양옆에 차례로 배치됐다.

좁은 계단을 올라 현관에 도착하면 양옆으로 넓이 50㎡(15평)인 앞마당이 펼쳐진다. 마당에서는 훤칠한 운길산이 보인다. 남서향이어서 햇빛도 풍부하다.

집 안에 들어서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을 연상시키는 살구색 벽돌로 쌓은 긴 복도식 계단이 나온다. 

부드러운 목재와 곳곳에 큼지막하게 낸 창문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과 어울려 낭만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천장 높이가 최고 5m에 달해 개방감도 높다. 벽마다 걸린 그림과 조각 등 인테리어까지 더해져 이 공간만 놓고 보면 집이라기보다 갤러리 같다. 시공을 맡은 김용만 품 건축 대표는 “흙을 구워 만든 벽돌이 대표적인 자연 소재”라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상에 있는 것 이상으로 공기도 쾌적하다.

신기하게도 집 안에서는 지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비법은 창문에 있는 것 같다. 일반 주택 못지않게 창이 많다. 특히 복도식 계단 초입 바로 옆에 중정(中庭)을 뒀다. 각 방에는 외벽과 집 본체 사이에 데크가 있는 데다 창 높이와 위치를 절묘하게 조절해 바깥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친환경 기술이 총동원됐다. 태양광은 전기를, 태양열은 온수, 지열은 난방을 각각 감당하고 있다. 패시브하우스 원리를 적용해 바닥, 외벽과 천장은 우레탄 고효율 단열재를 사용하고 창문은 외풍을 최대한 막아주는 알루미늄 삼중 로이유리로 시공했다. 모든 지붕은 임업학(林業學)을 전공한 건축주 지식을 살려 자귀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꽃을 심거나 흙으로 덮었다. 이른바 100% 옥상 녹화다. 덕분에 실내 온도가 적정하게 유지돼 여름이든 겨울이든 냉난방 기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겨울 평균 에너지 사용료는 30만원가량으로 같은 규모의 일반 주택(100만여 원)에 비해 70%가량 절감된다.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한 건물 외벽도 평범하지 않다. 오목 볼록한 디자인으로 마감했다. 각종 줄기식물들이 벽을 지지대로 삼아 자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연에 대한 배려였지만 밋밋할 뻔한 벽면에 입체감이 생겼다.

김용만 대표는 “건물에서 벽체, 지붕, 창문, 바닥 등을 통해서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오경재는 경사를 활용한 덕택에 건물 외피(外皮) 면적을 20~30% 줄이고 그나마 외부로 드러나는 지붕과 벽도 흙과 식물로 뒤덮음으로써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사지라는 악조건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집이 자연과 ‘한 몸’이 되면 이런 일도 생긴다. 작년 겨울 집이 흰눈에 가려지자 뒷산에 살던 고라니가 뭣 모르고 뛰어 내려오다 중정에 떨어졌다. 야생 고라니조차도 발 디딘 곳이 설마 집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진가를 발휘한 적도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큰 비가 내리면 집이 지하에 있으니 한 방에 떠내려가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주위에서 들었다고 한다. 건축주도 내심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준공을 앞둔 2011년 여름 서울에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고 오경재가 들어선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다. 가뜩이나 동네 이름도 비가 오죽 많이 오면 ‘시우리(時雨里)’다. 당시 큰물이 여기저기 할퀴고 지나갔지만 이 집은 끄떡없었다. 

김 대표는 “자연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바람·물길을 설계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주택은 관리도 중요하다. 집 가꾸기를 좋아하는 건축주 부부가 옥상 곳곳에 나무를 심고 꽃밭과 채소를 가꾼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을 닮아가고 있단다.

‘오경재’는 2011년 남양주시에서 ‘친환경주택’ 대상, 작년 ‘대한민국 녹색건축대상’ 주거부문 우수상, ‘경기 건축문화제’ 은상 등을 수상했다.

[임영신 기자]


출처: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367913

Posted by insightal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