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munhwa.com


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④ 관대함의 미덕

날이 더워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역시 여름에는 최고다. 예전에 비하면 값이 올랐지만 지불한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내가 1000원을 내고 어떤 상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그 상품이 최소한 1000원보다는 더 큰 가치를 내게 돌려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좀 놀랍기도 하다. 내 돈 1000원에 대해, 가게 주인은 그 대가로 1000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치를 갖는 상품을 내게 파는 것이 그에게는 더 유리하다. 그냥 포장만 그럴듯하게 한 맹물을 얼린 얼음을 내게 주지 않고, 정말로 제대로 1000원의 값어치를 하는 아이스크림을 왜 내게 줄까. 사실 우리 모두는 답을 안다. 답은 ‘장사 한두 번 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놀라운 일들이 우리 곁에서 늘 벌어지고 있다. 서로 악착같이 등쳐먹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대부분은 속이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팔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도 우린 믿고 구입한다. 휴대폰을 주문했더니 벽돌이 배달되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대부분의 경우에 남을 속이지 않는다. 우린 왜 착하게 굴까.

생각해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신호대기로 멈춘 내 차 옆에 트럭 한 대가 서더니, 자기가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는 사람이라면서 마침 물건이 딱 하나 남았으니 싼값에 줄 테니 지금 나보고 사라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뭔가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한 필자는 덥석 물건을 구입하고 집에 들어와 “잘했군, 잘했어” 칭찬을 잔뜩 기대하며 자랑스럽게 아내 앞에서 포장을 펼쳤다. 그리고 저녁 내내 이어진, 사람이 어찌 그리 순진하게 잘 속느냐는 아내의 핀잔.(이 물건이 ‘딱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살지 말지 ‘지금’ 결정을 내리라고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그날의 교훈. 사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효율적인 전략이다. 중고차를 고르거나 살 집을 구할 때, 그리고 케이블TV의 쇼핑 채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돈을 지불하는 측에서 속이기도 한다. 술 마신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거의 도착한 사람이 택시 안에서 택시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주머니에 잔뜩 있는 동전을 한 움큼 쥐어서 기사님께 드리고는 기사님이 동전을 세는 동안 유유히 걸어서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상황도 학자들은 일반화된 모형을 이용해서(굳이 복잡하게) 설명하고는 한다. 오늘 얘기는 서로 속이는 것이 각자에게는 더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협조하게 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거다. 이런 연구를 하는 분야가 ‘게임이론’이다. 물리학자가 왜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할까 궁금한 분도 많겠지만, 게임이론은, 컴퓨터 과학, 정치학, 경제학, 수학, 진화 생물학, 그리고 통계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는 주제다. 게임이론의 ‘게임’이 사람들이 즐기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과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면이 있다. 게임이론의 게임이든 컴퓨터 게임이든, 내가 내 선택의 대가로 얻는 이익이 상대방(사람이든 컴퓨터든)의 선택에도 의존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접하는 상황들을 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도 게임이고, 온라인 게임도 게임이고, 포커도 게임이고, 사자와 얼룩말의 잡고 잡히는 추격전도 게임이다. 애플과 삼성의 신제품 출시 시점의 결정, 그리고 한 지역의 백화점들이 세일을 언제 시작할지 결정하는 것도 게임이고, 두 나라 사이의 군비경쟁도,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도 게임이다. 상품을 사고파는 것도 게임이고, 월급을 주면서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도 게임이고, 사실 결혼도 게임의 정의에 따르면 게임이다. 결혼해서 얻게 되는 내 행복의 양은 당연히 상대에 대한 나의 사랑뿐 아니라 나에 대한 상대의 사랑에도 의존하니까.

게임이론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죄수의 딜레마’라 불리는 게임이다. 함께 범죄를 저지른 두 용의자(A, B)를 가지고 이 게임을 주로 설명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둘을 따로 격리해 놓고 검사가 A, B 각자에게 얘기한다. “만약 모두 죄를 자백하면 각각 5년형을 받을 거다. 만약 한 사람은 자백했는데 다른 사람이 끝까지 안 했다고 우기면, 자백한 사람은 집에 가고 안 했다고 우긴 사람만 10년형이다. 모두 끝까지 안 했다고 우기면 증거가 부족하니 검찰로서는 별 수 없이 각자 1년형을 구형한다.” 이런 제안을 당신이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A의 입장. “내가 끝까지 안 했다고 우기는데 만약 B가 자백해 버리면 나만 손해야. B는 집에 가는데 난 10년을 감방에서 보내야 하니까. 반대로 만약 B가 끝까지 안 했다고 우겨주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B에게 의리를 지켜서 끝까지 안 했다고 버티면 나나 B나 함께 1년형인데, 내가 그냥 자백해 버리면 난 집에 갈 수 있어. 에잇, B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경우도 자백하는 것이 더 낫지.” 즉, B가 자백하든 의리를 지켜 버티든, A의 입장에서는 자백해 버리는 것이 더 좋다. A가 이렇게 생각하면 B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니, 결국은 검찰이 원했던 결말, 즉 A와 B가 모두 자백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모두 5년형. 여기서 잠깐. 만약 A와 B가 끝까지 의리를 지켜 서로 협조했다면(사법당국에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끼리 서로 협조한다는 뜻임에 조심할 것) 1년형이라는 가벼운 형벌을 받는 상황이 가능한데도, 어떻게 A, B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서로 배신해서 5년이라는 더 긴 시간을 감방에 있게 되는 걸까. 바로 이것이 이 게임의 이름에 ‘딜레마’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A, B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 전이니 ‘죄수의 딜레마’가 아니라 ‘용의자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것이 맞다는 지적도 있다. 또, 참고로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에서는 위와 같이 용의자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검사가 구형량을 조정해주는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가 법으로 허락되어 있지는 않다. 어쨌든, 죄수의 딜레마로 부르든 용의자의 딜레마로 부르든 이 딜레마의 핵심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놀랍게도 높은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거다. 독자를 더 헷갈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을 보태자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이처럼 이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해서 남을 등쳐먹는 이성적인 판단이 당연한 논리적인 귀결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의외로 서로서로 돕고 협조하는 상황이 자주 발견된다는 거다.

위에서 설명한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놓고 벌이는 나와 가게 주인의 게임도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많이 다르지 않다. 나는 아이스크림만 받고 1000원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 낫고(이에 수반하는 체면의 상실은 계산에 넣지 말자), 가게 주인은 돈 1000원을 받고는 그냥 맹물 얼음을 주는 것이 더 낫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 믿고 협조해 둘 모두 만족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협조가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그 가게에 다시 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으니, 만약 가게 주인이 맹물 얼음을 아이스크림이라고 속여 팔면, 난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을 테고, 그럼 결국 그 가게 주인 손해다. 또, 내가 만약 오늘 아이스크림만 받고 도망갔다면 다시는 그 가게에 갈 수가 없다. 즉,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협력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바로 이처럼 게임의 양쪽 당사자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되는 경우다. 

이를 직접적 호혜성(direct reciprocity)이라고 부른다. 한번 만나고 다시 볼일이 없다면 협력의 상황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백화점 납품하는 물건이라고 필자를 속인 트럭 아저씨나, 택시 기사에게 택시비에 모자라는 잔돈을 잔뜩 주고는 내려버린 손님의 경우에도, 만약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대를 만난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물론 상대를 다시 만났을 때 누군지 정확히 알아봐야 한다. 잠깐만 봐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우리가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도록 진화한 이유도 게임이론의 틀로 설명하기도 한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익명의 판매자로부터 물건을 구입하는 온라인쇼핑의 경우는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온라인 쇼핑몰에는 워낙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오늘 물건을 구입한 같은 판매자로부터 다시 물건을 구입하게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으니 위에서 설명한 상황(직접적 호혜성)과는 좀 다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판매자가 상품을 제대로 보내주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판매자의 평판(reputation)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는, 판매자가 과거에 상품을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 그리고 구매자가 만족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고 보통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과거의 평판을 통해서 협조가 가능하게 되는 경우를 게임이론에서는 간접적 호혜성(indirect reciprocity)이라고 부른다. 

최근 박혜진(27·성균관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씨와 정형채(52·세종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평판을 고려한 진화하는(evolutionary)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한 사람의 평판을 그 사람이 과거에 협조한 횟수에 비례한 양으로 정의했다. 연구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전략을 고려했는데, 첫 번째 전략을 택하는 사람들은 협조자로서, 게임을 할 상대를 고를 때 평판이 높은 사람을 더 선호하도록 했다. 두 번째 전략을 택하는 사람들은 배신자들인데, 이들은 상대의 평판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확률로 상대를 마구잡이로 고르는 사람들로 정의했다. 협조자들이 과거에 협조한 적이 전혀 없는 상대의 경우 절대로 게임을 하지 않는 상황에선 전체 집단에서 협력의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결론이었다. 이는 사실 놀랍지 않은 일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배신자들이 협조자들을 상대로 항상 더 큰 이익을 얻어 성공을 거두니, 시간이 흐르면 협조자들이 배신의 행위를 점점 따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배신자는 협조자로 바뀔 수가 없다. 과거에 늘 배신만 했던 사람의 평판의 점수는 ‘0’이라서 이 사람이 어제까지와 달리 오늘 협조하기로 우연히 마음먹었다고 해도, 아무런 관대함이 없다면 절대로 협력하는 사람들의 사회로 편입하는 게 허락되지 않아 내일이면 다시 배신자로 돌아가게 된다. 그 반면, 협조자들이 약간의 관대함을 가져 과거에 늘 배신했던 사람들하고도 게임을 하도록 하면 놀라운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경우에는 협조하는 회개자들(어제까지는 배신하다가 오늘은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들)이 협조자들의 사회에 편입될 여지가 있게 돼 시간이 흐르면 하나씩 협조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논문을 마무리하다가 우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뉘우친 사람을 끌어안는 약간의 관대함이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날, 내가 낸 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다 떠오른 생각이다.(문화일보 7월 22일자 24면 3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81901032403000001&mobile=false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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