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있습니까?”
교수가 말하자 갑자기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질문 있느냐는 말에 “수업 끝났다”며 학생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더러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했다. 교수도 의례적으로 던진 말이라는 듯 말을 하면서 교단을 정리한다. 지난 9월 미국에서 한국 대학으로 유학 온 교환학생 케이티 셔먼이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해온 부분이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은, 수업을 끝내는 말이 아니에요. 수업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 말입니다. 짧아도 5~10분, 길게는 10~20분씩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지니 수업 종료 10~20분 전에 질문 있느냐고 묻는 교수도 많아요. 학생들도 의자에 앉아서 손만 들어 질문하기도 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교수를 붙잡고 물어보기도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교수가 질문 있느냐고 묻자마자 강의실이 조용해지는 것도 자주 봤어요. 수업 종료 시간이 다 돼서 누군가가 교수에게 질문했는데 ‘쟤 때문에 늦게 마친다’며 짜증내는 학생도 봤어요.”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을 들어도 한국 사람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통역을 써도 좋으니 질문하라”고 말했다. 웃음은 터졌지만 여전히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저는 중국 기자입니다만, 아시아를 대표해서 대통령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결국 중국 기자가 일어서 질문하고 난 후에야 침묵이 깨졌다.
최근 한 달간 ‘주간조선이 선정한 어록’에는 두 외국인이 한국 사회의 질문 풍토에 대한 비판이 실렸다. “처음부터 우수한 사람도, 처음부터 질문을 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질문하는 것도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지 않는 것은 교육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 울프재단 리타 벤 데이비드 대표, 주간조선 2380호) “내가 고등학교 퇴학당하기 전에 유일하게 배운 교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은 묻지 않는 질문이다.”(영화배우 하비 케이틀, 주간조선 2377호) 모두 다 질문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정답을 얻기 위한 질문
왜 우리는 질문을 하지 않을까. 이유를 알기 위해 지난 11월 3일 서울의 한 사립대학 대형 강의실을 찾았다. 교양수업 2개의 수강생 205명을 대상으로 수업 시간 중 질문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해봤다. 이 학교 학생 205명 중 “수업 시간 중에 질문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모두 65명, 31.7%에 그쳤다. 10명 중 7명의 학생은 수업 시간 중에 질문한 적이 없다.
이유를 물어봤다. 설문에 응답해 준 137명 학생 중 아예 “궁금한 것이 없다”고 말한 학생이 44명(32.1%)이다. 궁금한 것이 있지만 질문하지 않은 이유 중 가장 많이 답한 것은 “궁금한 것을 질문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84회)였다. “수강생이 많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54회)라는 응답도 많았다. “주변 학생들이 ‘수업 진행에 방해를 받는다’ 등 뭐라고 할 것 같다”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응답한 것도 51회나 됐다. 비슷한 빈도로 “다 아는 내용을 나만 모르고 질문한 것일까봐 걱정된다”(50회)라는 응답도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혹시 내 질문에 대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이 적절한 것일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변 시선이 의식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유는 내가 혹시 잘못해 손가락질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다. 기타 응답 중에는 “내 질문으로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질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있었는데, 질문을 던지더라도 정해진 방향과 결론에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표현해주는 말이다.
아는 내용을 또 질문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질문, 적절하지 못한 질문이 따로 있고 적절한 질문만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질문을 막는 꼴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질문해 보라”고 했을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한국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경제지 기자는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면 한국 모든 기자를 대표해서 던지는 질문이 될 텐데, 내 질문이 그런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손을 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답을 얻기 위한 질문만이 좋은 질문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이 문장이 완성된다. 물론 한국의 교사들도 질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질문을 독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꼭 옳은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니다. 교단에 선 지 24년차, 베테랑 교사로 EBS 프로그램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서 다른 교사의 수업 방식에 대해 상담해주는 역할로도 출연했던 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수업을 이해한 상태에서 심화된 질문이 나오면 어떤 선생님이든 ‘좋은 질문이다’라며 칭찬해준다”며 “문제는 그렇지 않은 질문이 나왔을 때 교사의 반응에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실컷 설명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묻는 질문, 수업의 목표와 어긋난 엉뚱한 질문, 앞서 나온 질문과 비슷한 질문같이 안 좋은 질문이 나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질문을 묵살하거나 대충 얼버무리는 등 질문의 맥을 끊어 버립니다. 아이들은 풀이 죽습니다. ‘아, 내 질문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다음에는 비슷한 질문을 안 하게 되죠.”
‘옳지 않은 질문’에 대한 트라우마는 한국 교실에서 공부하고 자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애초에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질문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시간을 예로 들어보자. 소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 갈등에 대해 설명하는 단원이 있다. 이 단원을 공부하며 정해진 소설을 읽게 된다. 수업의 결론은 어느 학교에서나 똑같이 나온다. 소설의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뚜렷하게 나뉘고 각 단락에서 도출되는 주인공의 갈등 상황도 같다. 학생들에게 질문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지만, 학생의 대답에 대해 교사는 “아깝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란다”라고 말하게 된다. 시간에 쫓기게 되면 아예 질문도 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날 무렵 “질문 있는 사람?”이라고 묻긴 하지만, 그것은 대개 “수업 중에 모르는 내용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질문도 연습을 하면 는다
일러스트 이경국
반면 질문이 활발한 국가의 수업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가 본보기로 흔히 꼽는 핀란드의 수업에서는 질문이 수업의 기본이 된다. 한국의 교실처럼 교사가 수업을 이끌고 부차적으로 질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업 내내 질문이 오고 가며 결론을 이끌어낸다. 교사의 수업은 질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식은 질문을 통해 학생이 이끌어낸다. 엉뚱한 질문도, 시간을 끄는 질문도 모두 공부의 재료가 된다.
질문에 대해 연구해온 김수란 우석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실제 대학원 수업에서 질문으로 지식을 얻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수업 시작 전 미리 글을 읽고 질문을 준비해오도록 한다. 수업 시간에는 서로 그 질문에 답해가며 공부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무척 힘들어했어요. 엉뚱한 질문도, 맥이 닿지 않는 질문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모두가 같은 상황이니까요.” 김 교수는 학기말로 갈수록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의 질(質)이 급격히 좋아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질문이 나오는 교실은 여백이 있는 교실이다.” 김현섭 소장의 말이다. 아무리 질문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교사들 역시 질문을 주고받는 수업을 하고 싶어도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 과정은 3년에 맞게 짜여 있지만, 수능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상 2년 안에 진도가 나가야 한다. 질문을 주고받는 수업 분위기는 불가능하다. 학년이 올라가고, 경험이 쌓여갈수록 ‘질문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익혀 나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질문은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시간을 뺏는 일’이 되고, 빡빡한 학사 일정에 맞춰 선행학습을 해온 친구들과 달리 ‘혼자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이런 인식은 어른이 돼서도 이어진다. 대부분 한국 회사에서는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다. 지시사항 중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지만, 반박이나 대안의 의미로 꺼내는 질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취업준비생인 이지은씨는 얼마 전 한 국제영화제를 준비하는 인턴으로 일했다. 영화제를 홍보하는 일을 맡았는데, 주변에서 예년에 비해 홍보 효과가 덜 나타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씨는 회의 시간에 팀장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다른 방식을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고, 왜 효과가 덜한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인지도 물어봤어요. 팀장이 웃으면서 ‘이지은씨가 팀장 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했어요. 그날 회의의 결론은 ‘영화제가 일주일 남았으니 하던 대로 합시다’라는 것이었어요.” 이씨는 이 경험을 두고 “사회생활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반면에 질문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질문받는 사람의 태도가 열려 있어도 질문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뭐라고 질문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질문할 내용이 있는데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질문할 내용조차 모르는 경우다.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은 학습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김수란 교수는 학부 학생들에게 종이로 질문을 써내는 방법을 장려한다. “사실 말로 질문하려고 하면 꼬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질문을 써보게 합니다. 정기적으로 질문 종이를 받을 때도 있어요. 질문하는 것을 계속 연습하면, 나중에는 말로도 잘하게 됩니다.” 박홍문 옥천고 교사는 수학 수업에서 특별히 학생의 질문을 독려하는 방식을 쓰는 ‘질문 강화 수업’을 몇 달간 한 적이 있다. 질문을 만드는 연습을 많이 해보게 한 것인데, ‘만약 ~라면 ~인가’ ‘~은 어떻게 ~인가’ 등 빈칸이 많은 질문 형식이 쓰인 카드를 주고 빈칸을 채워넣게 하는 방식 등이다. 박 교사는 별도로 질문 카드의 수준을 1~4점으로 평가했다.
의심이 있어야 질문도 있다
질문 카드를 수차례 받고 채워넣은 학생들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처음 질문 카드를 쓸 때만 하더라도 질문 수준이 낮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 질문이 늘어났다. 질문 수도 증가했다. 처음에는 학생 1명당 1개도 안 되는 질문을 제출했지만, 나중에는 1명당 1.4개의 질문을 제출했다. 박 교사는 이 결과를 ‘학생 질문 강화 수업의 효과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썼다. 그러면서 “질문은 연습하면 할수록 늘어나고, 질문의 수준도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예 언어로 표현을 못할 때도 많다.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 기자들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것은, 질문에 익숙한 기자들이 표현을 못해서가 아니라 질문할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많다. “한국 기자 대부분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빨리 받아적어 기사로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지, 연설 내용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내용에 의문을 품지 않으니 궁금한 것도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들려준 말이다.
이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부터 국가권력의 핵심 청와대까지 ‘받아쓰기’만 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의(民意)를 모아 선출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국무위원들은 묵묵히 대통령의 말을 받아적기만 한다. 서 있는 대통령 앞에 삐딱하게 앉아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미국의 백악관 풍경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비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기자단도 마찬가지라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시간에도 기자들은 침묵을 지킨다.
황혜진 이화여대 경영대학 국제사무학과 교수가 논문 ‘외국인이 인지하는 한국의 문화간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장애요인에 관한 연구’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국제회의 시간에 먼저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don’t want to be thefirst to express their idea), 질문을 받지 않는 한 조용하며(quiet unless asked), 회의 중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don’t object at all)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이런 특성이 “토론을 경험하면서 추상적인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고 개념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듣고 읽는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할 내용도 없다. 유학생 케이티 셔먼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는데, 같은 내용을 한국에서 들을 때와 미국에서 들을 때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미디어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느냐에 대해 배우는데, 한국 학생들은 주로 필기를 하더라고요. 교수 역시 칠판에 빽빽하게 내용을 썼습니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삐딱하게 앉아 교수의 설명을 들었어요. 시청자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들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받아적고 밑줄을 치고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어요.”
즉 질문이 없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대통령부터 대기업 회장까지 창의성을 강조한다. 창의성은 의심과 질문을 먹고 크는 열매와 같다. 한 대학 교수는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해결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만들 줄 모르는 사회의 발전동력은 결국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진보는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질문이 꼭 필요한 이유다.
/ 김효정 기자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3&aid=0000021025&viewType=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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