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는 공정무역과 생활협동조합(생협)이다. 공정무역은 국내에서는 커피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고 생협도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해가 갈수록 조합원이 늘고 있다.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 자본주의’를 넘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우리 이웃들을 만났다.

◇공정무역,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는 공생=“공정무역은 원조나 기부가 아닙니다. 일방적 원조보다 생산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공정한 거래를 하자는 거죠. 우리가 정당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생산자들의 자립, 정당한 대가, 인간의 존엄성. 지난 28일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온·오프라인 공정무역가게 ‘울림’에서 박창순(64) 공정무역연합 대표를 만났다. 그는 EBS 방송본부장을 지낸 전직 언론인이다. 2007년 한국공정무역연합을 창립했고 울림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가나필리핀페루 등 10개국과 바구니, 설탕, 커피초콜릿 등 110여개 상품을 거래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자유무역으로 교역량이 늘어나도 혜택을 보는 것은 다국적기업과 일부 부자 나라뿐”이라며 “원조해주는 것만 받게 되면 가난한 나라 주민들은 자립 능력을 잃게 된다”고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원래 환경·생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0년대 말 ‘한살림’ 운동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했다. 한살림은 농민들에게는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고 도시민들에게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도농간 직거래 운동이다. 

“공정무역은 한살림과 맥락이 같습니다. 한살림이 농민과 도시민이 상생하자는 공생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공정무역은 그 정신을 확대해 국제적으로 경제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대안경제활동이라고 볼 수 있죠.” 

사무실 한켠에는 울림과 거래하는 공정무역 상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필리핀 성매매 여성들이 만든 어린이용 장난감, 아프리카 가나 주민들이 코끼리풀을 엮어 만든 ‘볼가 바구니’, 스리랑카에서 코끼리 똥으로 만든 노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박 대표는 “스리랑카에서는 사람들이 목재 때문에 숲을 해치니까 갈 곳을 잃은 코끼리가 마을을 덮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주민들이 코끼리 똥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노트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갈등이 사라졌다”고 소개했다. 

공정무역에서 커피는 주목을 받고 있지만 수공예품과 의류, 문구류 등은 아직 소비자들의 관심 밖에머물러 있다. 박 대표는 “공정무역 제품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소비자들도 물건을 살 때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듯이 가치에 기반한 소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달부터 라오스 볼라덴 고원의 농부들과 커피 거래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국내 공정무역 커피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 아시아 지역의 상품을 소개하려 한다”고 밝혔다. 

◇생협, 사람 위주의 결합체=‘아이쿱생협’의 이성선(46·여) 팀장은 올해로 생협 11년차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으려는 소비자들이 만든 아이쿱생협에 대해 그는 “경제사업을 하는 조직임에도 자본 위주가 아니라 사람 위주의 결합체라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일반기업은 ‘1주 1표’로 움직이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로 운영돼 좋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윤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협동조합의 이런 원칙은 조합원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1998년 출범 당시 2000∼30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조합원은 현재 16만500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물론 신뢰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2010년 김장철 배추 값이 폭등할 때였다. 당시 배추 값은 포기당 1만6000원으로 치솟았다. 이 팀장은 “생협에서는 배추를 시장가격의 10분의 1인 1600원에 공급했다”며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협에는 시장가격이 요동칠 때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적립하는 가격안정기금이 있다”면서 “기금으로 가격을 일정부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혼자가 아닌 공동의 이익을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출처: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704052&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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