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없는 세상을 상정할 수 있을까? 굳이 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이 ‘뉴스’다. 세계가 종말을 고하지 않는 한, 뉴스는 세상과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뉴스를 읽지 않고, 또 보지도 않고 살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이들이 있다. 한 천문학자는 오래 전부터 신문을 끊었다. TV 뉴스도 일부러 보지는 않는다. 물론 인터넷 기사도 읽지 않는다. 가끔 교수 휴게실에서, 혹은 식당에서 우연찮게 마주치는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접하는 것이 전부다. 일상적인 뉴스 소비를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필요한 정보는 별도로 찾아본다. 

한 역사학자도 신문이나 방송 뉴스 보는 것을 오래전부터 끊었다. 천문학자야 그렇다지만, 명색이 역사를 다루는 학자가 오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어떻게 역사를 다룰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활에도 별 불편이 없다고 했다. 신문과 방송을 끊은 것이 오히려 세상의 큰 흐름을 읽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스 많이 보면 면역계 교란…성장호르몬도 억제”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뉴스로 먹고 사는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신문 등 뉴스 미디어는 말 그대로 존재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최근 외국에서도 이런 논쟁이 한창이다. 스위스의 저명한 작가이자 기업가인 롤프 도벨리는 최근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뉴스는 우리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되레 건강에도 안 좋다”며 뉴스를 끊을 것을 주문했다(그는 최근 이런 내용이 담긴 ‘명료하게 생각하는 방법(The Art of Thinking Clearly)’이란 책을 펴냈으며, 이 책은 최근 국내에서도 ‘스마트한 생각’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 마델레인 번팅 <가디언> 부주필은 도벨리의 ‘뉴스무용론’은 타깃을 잘못 잡았다고 비판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뉴스’ 그 자체가 아니라, ‘뉴스 소비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도벨리의 주장을 오히려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번팅 부주필의 칼럼에 게재된 <가디언> 뉴스룸.

최근 <가디언>에 소개된 그의 뉴스 무용론의 근거는 이런 것들이다. 우선 뉴스의 오도성이다. 뉴스가 전달하는 정보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또 뉴스는 사실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혹은 축소해 우리의 인식을 오도한다. 

그는 또 뉴스가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보통 1년에 만 건 이상의 기사를 읽거나 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이나 경력, 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들 기사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 새로운 것(뉴스)은 많지만, 그것이 실제 도움이 되는 때는 별로 없다는 것. 뉴스를 많이 보면 볼수록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뉴스를 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 

그가 보기에 뉴스는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뉴스란 것은 도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표피적으로 불거져 나온 피상적인 현상의 단편일 뿐이라는 것. 이런 단편들을 아무리 많이 접해 본들 실제 이뤄지고 있는 ‘큰 그림’을 포착하고 파악하긴엔 역부족이다. 기자들의 레이더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큰 에너지를 갖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 이런 흐름과 변화를 포착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뉴스의 해악은 이밖에도 많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뉴스를 과다 소비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 뉴스는 인체의 기본적인 감정이나 욕구 등을 관장하는 신경계인 대뇌 변연계를 끊임없이 자극하게 되고, 충격적인 뉴스는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글루코코티코이드를 분출해 면역계를 교란시키고, 성장 호르몬을 억제해 성장 발달을 저해한다. 한마디로 만성적인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만든다는 것. 또 단편적인 뉴스의 소비는 생각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더욱 더 뉴스 소비에 집착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다. 뉴스 소비는 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며, 창의성을 둔감시키고,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는 한마디로 “(지금과 같은) 뉴스는 덜 볼수록 좋다”고 단언한다. 그는 실제 “4년 동안 뉴스를 끊고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저널리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는 저널리즘을 필요로 한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뉴스가 아니라) 정치와 우리 사회 체제에 대해 안목 있는 탐사저널리즘이어야 하며, 긴 글의 저널 기사나 깊이 있는 책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대한 정보․호기심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당장 반론이 나온다. <가디언>의 부주필이자 칼럼리스트인 마델레인 번팅은 <가디언>에 롤프 도벨리의 글이 실리자 즉각 이를 반박하는 칼럼을 실었다. ‘뉴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롤프 도벨리의 생각은 위험하다’는 칼럼에서 번팅 부주필은 “인터넷을 통해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뉴스가 유통되는 오늘날 뉴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도벨리의 뉴스 무용론을 일축한다. 그는 만약 도벨리처럼 뉴스를 완전히 끊고 산다면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사람들이 세상사에 대한 정보와 이해, 호기심이 없다면 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번팅 부주필은 일상적으로 뉴스를 접하지 않고도 별 불편을 못 느낀다는 도벨리 같은 사람은 “매우 예외적인 특별한 소수”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주변에는 그가 굳이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꿰뚫고 있어 그들과의 대화만으로도 세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바로 그런 유용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그의 지인들은 그가 불필요하다고 역설했던 뉴스 중독자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결국 ‘뉴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도벨리가 지적한 것처럼 단편적인 뉴스의 과다소비가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말하고자 한 ‘천천히 생각하기(slow thinking)’는 생각해볼만하다는 것. 번팅 부주필은 잡다한 파편적인 뉴스의 과잉 소비가 집중력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일반론적으로 경청할만한 지적이고 실제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인간의 두뇌는 다양한 정보를 복합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또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 역시 인간 정신의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도벨리의 뉴스 무용론이 자칫 민주주의의 근간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세상의 온갖 뉴스들, 특히 좋지 않은 뉴스들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분노나 적개심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보스턴 테러와 같은 소식은 분명 끔찍한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이를 외면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것은 곧 사회와의 단절이며, 사회적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번팅 부주필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어쨌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의 온갖 일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점에서 도벨리 같은 뉴스 무용론은 무척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한다. 

번팅 부주필은 그런 점에서 도벨리가 ‘타깃’을 잘못 설정했다고 말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뉴스’ 그 자체가 아니라, 뉴스의 ‘소비방식’이라는 것. 파편적인 뉴스의 과다 소비가 집중력을 저해할 수 있지만, 중요한 사안에 대한 집중의 방식과 집중력은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뉴스의 소비자로서 시민들은 표피적인 뉴스의 소비를 줄이고, 심사숙고할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며 언론사의 편집자들 또한 독자와 시청자들을 보다 사려 깊은 ‘생각’으로 이끌 수 있는 뉴스 제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넬리의 뉴스 무용론은 번팅 부주필의 지적처럼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매일 양산되고 있는 수많은 뉴스들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성찰적 자성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선 시사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특히 영향력이 막강한 주류 언론의 상당수가 건강한 사회 인식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과도 같은 왜곡된 정보와 주장으로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는 한국의 언론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는 그러나…

<가디언>은 도넬리의 글과 번팅 부주필의 칼럼을 게재한 이후 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이에 대한 온라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지는 다음과 같다. 

“뉴스는 당신에게 나쁘다고 하는 롤프 도벨리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뉴스는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며, 생각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몸에도 독소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않는 게 정말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일까요?” 

여론조사 질문지 치고는 다소 편향적일 수 있겠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렇다’는 응답이 63%,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7%였다. 

이 설문조사에 대한 댓글을 보면 “폭스뉴스를 보는 사람보다 아예 뉴스를 안보는 사람이 오히려 진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는 등 뉴스와 언론기관에 대한 불신을 토로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뉴스 불신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167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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