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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컨퍼런스(I/O)의 구글글래스 세션에서 송현영씨가 발표를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유병률기자

지난 달 16일 구글 개발자컨퍼런스(I/O)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의 한 대형 홀. 500여명 좌중들 앞으로 하얀색 구글글래스를 낀 여성 엔지니어가 단상에 올라, 능숙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글래스 플랫폼에 어떻게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세션이었다. 심지어 해킹을 하는 방법까지. 구글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훌륭한 글래스 앱들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발표가 끝나자, 앱 개발자들은 이 여성을 빙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냈다. 그 틈바구니에 끼여 기자도 인사를 건넸다. 한국인 엔지니어가 구글글래스를 만드는 팀에 있다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도 여성이라니. 거기에다 한 세션을 맡아 진행까지 했으니. 이 여성은 “사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다. 한국에서 온지 8년밖에 안됐다”고 말했다. 건네받은 명함의 이메일 아이디도 ‘김치(kimchi)'로 시작했다.

이름은 송현영(33). 마운틴뷰 구글 본사의 100여명 한국인 엔지니어 가운데 유일하게 글래스팀 소속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글X의 유일한 한국인 엔지니어.

구글X는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직속으로, 구글에서도 가장 박식하고 똑똑한 엔지니어들만 모아놓은 곳. 소설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밀프로젝트가 실험된다. 무인자동차와 구글글래스가 대표적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송씨로부터 여성엔지니어로서의 삶, 그리고 구글글래스에 대해 들어보았다.

“선생님이나 하지, 여기 왜 왔어?”
송씨는 한국에서 대학(서울대 컴퓨터 공학과)을 나오고, 직장(삼성전자, KT)도 다닌 한국 토종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커피 좀 타와!’ 이런 건 없었어요. 하지만, 과장, 부장님들이 ‘선생님이나 하지 왜 엔지니어하고 있어?’라고 할 때면 울컥하더라고요. 남자동기들 때문에 많이 속상했는데, 이것저것 저한테 물어보면 열심히 알려주고 도와주었죠. 그런데 제가 도와줬다는 이야기는 절대 안 하더군요. 회사에 새로운 사업기획이 있으면 저만 뒤늦게 아는 거에요. 그러니 늘 빛 안 나는 일만 하게 됐죠. 회사가 재미가 없더라고요.”

좀더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송씨는 2004년 메릴랜드대 칼리지파크의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했고, 이곳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에 대해 전공했다. 당시만해도 HCI가 한국에 보급되지 않았던 터라, “HCI의 대가가 돼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포부였다.(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사람중심의 산업융합과 혁신이 강조되면서, HCI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송씨는 졸업 후 카이스트 교수직 인터뷰까지 봤지만 아쉽게 임용을 받지 못했고, 이후 남편이 일하던 구글에 지난해 6월 입사했다. 처음에는 구글TV쪽에서 개발업무를 담당하다, 3개월간 공들였던 프로젝트가 상품화가 되지 못하면서 글래스팀의 내부채용 공고를 보고 응시해 선발됐다. 구글은 원래 입사 18개월 이전까지는 팀을 옮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송씨를 인터뷰한 글래스팀 책임자가 즉석에서 송씨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내부 7대1의 경쟁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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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I/O에서 구글글래스로 송현영씨를 찍은 사진.

“어이! 세르게이, 부엌에 가서 샴페인 좀 갖다줘요.”
"회사 생활이 재미없어 유학을 택했다"는 송씨는 "지금은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회사에 빨리 오고 싶고, 돌아갈 땐 아쉽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워낙 재미있어요. 사진 찍는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 음악에 도통한 친구, 스포츠에 대가인 친구… 이런 친구들과 매일 어울리니까 배울 것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파일럿 자격증을 가진 친구가 글래스팀 엔지니어로 왔는데, 그 친구 옆에 앉아 비행기도 몰아봤어요.”

현재 구글X의 여성 엔지니어의 비율은 25% 정도. 4명중 1명이 여자이다. 하지만 남녀에 대한 차별, 위아래 위계질서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송씨의 설명이다. 새로운 일, 중요한 일은 잘하는 사람,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 늘 돌아갔다.

“매니저들이 미팅 때마다 강조해요. ‘프리젠테이션이나 동영상 만들 때 여성들 이미지를 많이 써라. 그래야 여성 엔지니어들이 힘이 날 것 아니냐’고요. 여성 엔지니어에게 늘 기회를 주고 싶어 하지요. 동료들도 마찬가지죠. 예쁘게 입고 출근한 날, 아무런 코멘트가 없어 실망해서 물어보면 ‘오늘 코멘트를 하면 다른 날은 안 예뻤다는 이야기잖아. 중요한 건 네 스스로 만족하는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존중해주는 거죠.”

"수시로 엔지니어들을 찾아온다"는 세르게이에 대해서도 송씨는 한마디 했다. "창업자이지만 격이 없어요. 가끔씩 동료들 집에 모여 포커파티를 하는데 다들 세르게이에게 ‘샴페인 떨어졌으니, 부엌에 가서 좀 가져와달라’고 편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구글글래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글래스팀에서 송씨의 업무는 글래스용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만드는 일.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글래스팀 동료들도 안드로이드에 대한 의문이 있으면 늘 송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때로는 안드로이드를 ‘해킹’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 때문에 송씨는 글래스팀에서도 ‘해커’로 통한다.

송씨는 글래스팀에 합류하면서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로 바꿨다. 콘택트렌즈를 낄 수 있는 시간 동안은 구글글래스를 끼고 산다.

아침에 자전거로 출근할 때는 글래스의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이런저런 길로 회사로 오고, 집에서 요리를 할 때는 '구글 행아웃(영상통화)'으로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요리를 한다. 컨퍼런스 발표준비를 위해 글래스에 스크립터를 띄워놓고 연습을 했고, 동료가 이메일로 코드 리뷰를 부탁하면 글래스로 읽어보기도 한다. 기자가 전화를 했을 때도 글래스로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송씨는 "구글글래스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많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전자파 때문에) ‘브레인 마루타’가 될 것이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그런데 글래스는 와이파이가 장착돼 있고, 블루투스로 폰과 연동됩니다. 전자파가 거의 없어요. 셀칩이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오히려 훨씬 위험한 거죠.”

송씨는 또 “미국 언론의 보도를 봐도 절반은 틀린 얘기”라고도 했다. ‘앞으로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가 '지금 이런 것까지 된다'는 식이라는 것.

단적인 예가 증강현실(AR) 기술. 이 기술을 이용하면 글래스로 사물이나 사람을 응시하기만 해도, 그 사람 등에 대한 정보가 곧바로 스크린에 뜬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글래스에 이 기술이 탑재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여러 가지 기술적 제약이 있어요. 카메라를 켜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량이 많은 것이 하나의 이유고요. 또 광학 연구원들이 아직 풀지 못한 과학적 한계도 있어요."



“구글글래스는 스마트폰과는 다른 새로운 카테고리”
송씨에게 '구글글래스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인지, 아니면 스마트폰의 또 다른 디스플레이 역할에 머물 것인지' 물어보았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랩탑에서 다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폄하한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다 아이폰을 실제 경험하게 되면서, 스마트폰은 새로운 카테고리가 됐어요. 구글글래스도 ‘스마트폰에서 다 할 수 있는 거잖아’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보세요. 스마트폰 앱들 가운데,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수많은 앱들이 있어요. 두 손이 자유로워진다면 스마트폰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앱들이 새로 만들어 질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얼굴·사물·건물·바코드 인식 기능을 예로 들었다. "지금도 이런 앱이나 기술들이 굉장히 많아요. 문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폰을 꺼내서 갖다 대는 것이 불편하니까요. 하지만 글래스에서는 엄청난 히트를 칠겁니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일상 비즈니스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의사나 간호사가 글래스를 끼고 환자 바코드를 향하거나 혹은 환자를 보면 진료기록을 쭉 확인할 수 있어요. 실시간 화상통화 기능을 이용하면 의사들은 수술을 하면서 다른 의사와 의견을 나눌 수 있죠. 지금도 이런 기술이 있지만, 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없잖아요. 또 얼굴 인식기능이 더 발전하면 비즈니스맨들은 일일이 얼굴과 명함을 대조하며 사람들 기억할 필요가 없겠죠. 사물 인식도 마찬가지인데, 여행을 갔을 때 센서가 나의 위치정보를 읽고는 내 앞에 있는 건물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이죠.”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송씨의 생각은 이랬다. “현재, 사진을 찍으면 글래스 디스플레이에 불이 들어오고, 동영상을 찍으면 디스플레이 전체가 환해집니다. 우리 목표는 이런 시그널을 충분히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그럼에도 해커들이 우회할 수 있다고 비판을 한다면, 구글이 너무 불쌍해지는 것 아닐까요? 이미 수많은 종류의 스파이 카메라들이 나와있는데…”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송씨는 “스티브 잡스가 더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스티브 워즈니악이 더 행복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잡스는 물론 위대했지만, 참 고달프게 살았죠. 행복으로 따지자면 워즈니악이 더 행복했을 겁니다. 사실 경영보다 엔지니어의 일이 더 재미있거든요. 더욱이 엔지니어들이 상품 매니지먼트나 세일즈 쪽을 리드할 때 더 훌륭한 제품이 나오게 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서비스, 여러 사람들을 조율하며 상품을 만드는 것은 여자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유병률기자 트위터계정 @bryuvalley>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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