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17> 온라인 미디어 ‘매셔블’ 창업자 피트 캐시모어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 제342호 | 20130929 입력
스코틀랜드 시골 출신인 피트 캐시모어의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의 성공은 소셜미디어 혁명 시대,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표상한다. [매셔블 사이트]
경제 관련 외신이라고 하면 월스트리트저널·포브스 같은 것들이 주류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있어서는 이것들을 압도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매셔블·테크크런치·올싱디지털·기가옴·엔가젯·더버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온라인 미디어다. 모두 거대 미디어그룹이 아닌 ‘독립 언론’ 형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특종을 잡아내는 능력, 상황 대응 속도, 전문 분야에 대한 트렌드 예측과 분석 수준은 전통 언론을 선도하는 측면이 있다. 이른바 ‘강소 미디어’의 전형이다.

이들 중에서도 지난 5∼6년간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한 것이 매셔블(Mashable)이다.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이를 둘러싼 ICT 이슈를 주로 다루는 이 매체는 여러 측면에서 놀랍다. 매셔블의 한 달 순방문자는 2000만 명에 이른다.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뉴스를 꼬박꼬박 받아 보는 사람만 600만 명이다. 대부분이 세계 각지의 ICT 및 미디어 전문가, 얼리어답터다. 지난해 3월에는 CNN이 이 매체를 인수합병(M&A)하려다 불발에 그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변두리서 19세에 창업
무엇보다 주목받는 건 창업자이자 대표 필자인 피트 캐시모어(Pete Cashmore·28)다. 지난해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당시 만 26세에 불과한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로 선정하며 이런 설명을 달았다. ‘연결 세대(connected generation)의 선두주자이자 빛과 같은 존재’. 게다가 캐시모어는 남다른 스타성도 갖췄다. ‘블로그 업계의 브래드 피트’라 불릴 만큼 빼어난 외모와 남다른 유머감각. 무엇보다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미국 미디어업계나 실리콘밸리에선 흔한 스탠퍼드·MIT 같은 명문대 출신이 아니란 점도 이채롭다.

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변두리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창업 역시 거기서 했다. 겨우 19세 때였다. 미국 온라인 미디어 아이앤시닷컴(inc.co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많은 거대 기업이 차고(garage)로부터 시작했지만 세상을 바꿀 어떤 아이디어는 침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다.

캐시모어는 열세 살 때 심한 맹장염을 앓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회복이 순조롭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벗 삼아 자기만의 공부를 시작했다. ICT 생태계의 새 트렌드와 신기술, 블로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고교 졸업 뒤 캐시모어가 택한 건 대학 대신 다시 ‘침실’이었다. 그에겐 자기주도 학습을 통해 쌓은 방대한 지식, 이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아이디어가 있었다. ‘웹 2.0’의 거대한 물결과 그로부터 촉발된 세상의 변화를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웹 2.0이란 ‘데이터를 특정인이 소유하거나 독점하는 일 없이,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생산하고 인터넷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을 뜻한다. 매셔블의 어원이랄 수 있는 ‘매시업(Mashup)’ 또한 웹 2.0의 핵심 개념이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무료 개방한 각종 서비스와 콘텐트를 혼합해 새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구글이 무상 공개하는 ‘구글 맵’ 서비스에 맛집·부동산정보를 얹어 새 서비스를 내놓는 식이다. 이는 다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표되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개화를 추동한다.

PC뿐 아니라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통해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고,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SNS를 통해 전 지구적 소통을 하며, 수많은 공개 플랫폼과 정보를 매시업해 자기만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세상. 19세 캐시모어가 스코틀랜드 변두리 침대 위에서 글로벌 미디어를 창간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아울러 이렇듯 거대한 트렌드를 조기 포착해 자기담론으로 만듦으로써 캐시모어는 시대를 표상하고 이끌어 가는 젊은 리더로 부상했다.

캐시모어는 2005년 매셔블을 시작하면서 소셜미디어 혁명을 화두로 삼았다. 그 성격이나 영향력 분석에만 매달리지 않고 매우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주제를 폭넓게 다뤘다. 예를 들어 새 서비스가 등장하면 이를 직접 써 보고, 강점과 약점은 물론 효율적 사용법까지 함께 제시했다. 마침 당시는 마이스페이스·유튜브·페이스북 같은 SNS들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때였다. 덕분에 매셔블은 오픈 한 달 만에 3000달러의 광고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캐시모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곧바로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블로거 한 명을 고용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시작은 미국 시간에 맞춰 낮·밤을 바꿔 사는 것이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매일 오전 6시나 7시에 잠들었다. 정오쯤 일어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쓰고 또 썼다. 뉴스가 거의 안 나오는 토요일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잤고, 일요일부터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런 생활을 18개월 이상 했다”고 말했다.

새로 쓴 기사 바로 트위터 올려 독자 유인
노력 끝에 블로그가 자리를 잡자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의 이주를 감행했다. 드디어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것. 정식으로 미디어 면모를 갖추고 체계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트위터 활용이었다. 트위터 서비스 초기인 2007년 매셔블 계정을 만든 뒤 기자들이 새 글을 올리는 순간 이를 트위터를 통해 알려 독자 유입을 유도했다. 사용자를 기다린 게 아니라 직접 찾아나선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도 유사한 활동을 했다. 현재 매셔블의 트위터 팔로어는 350만3000여 명, 페이스북 친구는 145만4000여 명에 이른다. 캐시모어 개인의 페이스북 친구만 해도 46만5000명이다. 현재 50여 명인 매셔블 기자 개개인 또한 각종 SNS의 파워 유저들이다.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캐시모어의 부모는 아들이 매일 낮에는 자고 밤에는 컴퓨터를 끼고 앉아 뭔지 알 수 없는 일을 해도 이를 문제 삼거나 추궁하지 않았다고 한다. 캐시모어 스스로도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군!’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좋아하는 일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이라 해서 자기 방에서 세상을 바꾸지 말란 법은 없다. 성공을 향해 가는 길은 다양하다. 특히 지금처럼 전 세계가 하나로 열려 있고, 창업이나 새로운 시도를 위해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내 아이가 캐시모어 같은 청년으로 자라길 원한다면 부모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출처: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1611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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