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43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4.04.29
[서울톡톡]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 국민이 트라우마 상태에 빠졌다. 특히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들이 받은 상처가 심각해서 향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2차, 3차 피해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에서 애쓴 잠수사들이나 봉사자들이 겪는 정신적 상처도 크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ㆍ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란 극도의 충격,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충격을 받은 후 분노와 우울을 느끼는 건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통된 현상이지만, 충격의 강도가 같은 상태에서 트라우마의 정도 차이는 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KBS 과학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큰일을 당하고도 그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한 정신을 갖게 된 사람들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뇌사진을 찍어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전두엽과 변연계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전두엽보다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반대로 외상 후 성장을 이룬 사람들은 변연계보단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변연계는 분노, 공격성, 공포 등 1차원적인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반대로 전두엽은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와 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등은 전두엽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상업적인 대중문화는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한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 자극적인 예능, 선정적인 아이돌 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두엽의 사려 깊은 성찰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인터넷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뉴스가 소비되는 창구다. 인터넷에선 책과 같은 깊이 있는 정보가 유통되지 않는다. 사용자들은 그저 뉴스와 뉴스, 검색어와 검색어, 블로그와 게시판 사이를 파도타기를 하듯 '서핑'할 뿐이다. 스마트폰과 SNS도 단편적인 정보가 난무하는 공간이고, 게임에선 사고기능을 아예 끈 상태에서 몰입만 이어진다.
몰입 연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대중문화가 바로 몰입의 최대 적이라고 했다. 대중문화는 몰입을 유도하긴 하지만 생각하면서 하는 적극적 몰입이 아닌 그저 자극의 연쇄에 빠지는 수동적 몰입이기 때문이다. 수동적 몰입은 생각하는 힘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적극적 몰입은 전두엽을 활성화시키지만 수동적 몰입은 그 반대다.
수동적 몰입에 빠진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극적인 소식을 찾아다니며 악플로 분노를 배설한다. 이런 식이면 우리 사회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우리가 외상 후 성장을 이루려면 우리의 경험과 현실을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하는 힘을 갖춰야 한다.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정신없이 휩쓸리고 단편적인 정보에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독서와 성찰을 일상화하며 전두엽을 활성화시킬 때, 그때 우리는 어떤 상처에도 지지 않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출처: http://inews.seoul.go.kr/hsn/program/article/articleDetail.jsp?menuID=001002014&boardID=185825&category1=NC2&category2=NC2_14&prePageCategory1=N&prePageCategory2=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