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완성된 것 아닌 사물·메시지 분석해 공감 끌어내는 작업…사회·시장·경쟁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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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평론가를 ‘해석자’로 정의했다. 평론에 관한 이 명제는 광고를 정의함에 있어서도 한 치 오류 없이 정확하다. 광고라는 작업의 본질 역시 ‘해석’이고,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 역시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광고와 평론, 어찌보면 전혀 장르를 달리하는 두 작업이 사실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광고도 평론과 마찬가지로 해석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해석이란 무엇인가? 신형철이 내린 정의를 빌리면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명칭 안에 전령사 헤르메스(Hermes) 이름이 섞여 있는 것은 해석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전달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광고(廣告)라는 명칭 안에는 이미 ‘널리 전달한다’는 정체성이 내포돼 있고,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소비자 관점에서 해석해 공감이라는 가치를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평론과 궤를 같이한다. 

둘째, 광고는 평론과 마찬가지로 ‘제약’을 근거로 하는 창작이다. 평론은 작품 없이는 말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고, 광고 역시 광고주 없이는 말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신형철은 이런 제약이 가끔 축복 같다고 말한다. 작품 없이 말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기에, 과연 자신이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 그러하기에 자신에게 평론이라는 해석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것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광고주 주문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커스텀 메이드 예술이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경쟁이라는, 소비자라는, 소비자가 살아가는 사회의 인식이라는 여러 가지 실험변수를 제대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만족할 만한 결과치를 얻을 수 없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다. 

최근 아디다스는 뉴욕 크리에이티브 대행사 요하네스 레오나르도(Johannes Leonardo)와 손잡고 의미 있는 캠페인을 시도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슈퍼스타’ 농구화 출시 45주년을 기념하여 ‘#OriginalSuperstars’ 캠페인을 새롭게 론칭한 것. 퍼렐 윌리엄스, 데이비드 베컴, 리타 오라, 데미안 릴라드 등 슈퍼스타 4명이 등장하는 이 캠페인은 요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슈퍼스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에게 슈퍼스타라는 의미가 화려한 무대에 서고, 항상 인기 있고, 항상 주목받고, 항상 스타일리스트와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어디서 누구와 무얼하며 무얼 먹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조건들이 슈퍼스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슈퍼스타가 아니다.” 왜 아디다스는 ‘슈퍼스타’ 캠페인에 슈퍼스타를 등장시켜 자신이 슈퍼스타임을 부정하게 했을까? 

1969년 출시 몇 해 만에 NBA 선수 75%가 착용했을 정도로 혁신적이었던 슈퍼스타 농구화는 1983년 힙합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Run DMC와 함께 획기적인 모멘텀을 맞이하게 된다. Run DMC는 반짝이 무대의상을 주로 입었던 기존 흑인 뮤지션들 관습을 거부하고, 아디다스 체육복에 끈도 묶지 않은 슈퍼스타 농구화를 신은 채 무대에 올랐던 것. 이에 슈퍼스타 농구화는 기존 문화에 거부하는 전 세계 힙합 문화의 핵심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듯 론칭 초기에는 기존 방식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명성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슈퍼스타’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혼란스럽게 사용되며 변질되고 있다고 아디다스는 진단했고, 론칭 45주년을 맞아 슈퍼스타가 슈퍼스타를 부정하는, 내가 나를 부정하는 역발상 실험을 감행했다. 

역발상이라는 기법은 광고계에선 이미 흔한 실험기법이다. 하지만 이번 아디다스의 역발상이 새롭게 눈에 띄는 이유는 아주 섬세하게 카피를 이미지화한 비주얼적 도발에 있다. 이 ‘카피의 비주얼적 도발은’ 영상보다는 인쇄광고에서 더 빛을 발하는데, 슈퍼스타란 브랜드 네임과 아디다스 로고타입인 삼선의 정확한 활용이 이 실험의 백미다. 일반적으로는 “나는 슈퍼스타가 아니다!”가 헤드라인으로 올라와야 할 자리에 브랜드명인 Superstar가 자리하고, 그 위에 브랜드 로고인 아디다스 삼선을 쫙쫙쫙 그음으로써 ‘슈퍼스타가 아니다!’를 너무나 명쾌하게 비주얼화하고 있다. 브랜드명을 브랜드 로고가 부정함으로써 브랜드 본연의 정체성을 재강화하는 역발상이라니! 

이런 명쾌한 광고적 해석을 목도할 때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를 그 해석자에게 가슴 저 아래에서 치밀어오르는 강한 질투를 느끼며 오늘도 말과 그림과 음악과 영상과 상품과 시장과 경쟁자와 소비자라는 변수를 앞에 두고 새로운 실험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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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 SK플래닛 M&C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46938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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