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이후부터 (아마도 최근까지를) 흔히 마케팅의 시대라 한다. 기업에선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유일한 차별화 전략으로서 마케팅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고 경영학,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등 관련 분야는 기꺼이 스스로 마케팅의 아바타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점차 사회가 복잡해지고 대중매체의 집중도가 흐려지면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중심의 마케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빠르게 싹트기 시작했다. 상태가 안좋아지려던 찰나, 마케팅에게 링거를 놓아준 워드가 바로 IMC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통합 마케팅)이다. 

아직도 마케팅 교과서는 IMC로 시작해서 IMC로 마무리된다. 이 워딩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해 온 이유는 '통합'하겠다는데 굳이 딴지를 걸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경쟁 심화와 광고비 축소로 수익이 줄어든 광고회사가 다양한 매체로 광고 예산을 확장하도록 광고주를 설득하는데 요긴했기 때문이다. 광고회사는 이 용어를 프레젠테이션마다 굵은 폰트로 끼워 넣고, 마케팅은 자고로 통합이 생명인데 모르셨냐며 파트너를 다양화하거나 매체비를 축소하면 안 된다고 광고주를 협박하는데 써먹었다. 실제로 통합 마케팅은 각종 미디어를 죽 늘어놓고 메시지를 끼워 맞춰 광고 노출을 확장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통합 마케팅의 다른 표현이 360º 마케팅이나 미디어믹스(Media Mix)다.

개인미디어 시대에 이러한 방식의 통합 마케팅은 의미가 없다. '통'부터 되지 않는데 '통&합'이 될 리 만무하다. 단 하나의 사소한 콘텐츠가 순식간에 전 세계 소비자들을 흔들어 놓고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수십 년 동안 쌓아왔던 브랜드 자산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통합' 보다 '유효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광고의 예상된 노출 경로에 대한 소비자의 회피는 점점 용이해지고 있다. 최근 애플이 발표한 OS에는 강력한 광고 차단기능이 탑재되었다. 사용자의 컨텍스트를 놓친 광고는 아무리 전 방위적으로 노출된다고 해도 나카야마 미호가 오타루 설원에서 정처 없이 외치던 '오겡끼데스까'의 메아리가 될 뿐이다.

'마케팅 무용론'은 시장에서 점점 더 힘을 얻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마케팅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가치 교환 행위를 촉진하는 일체의 과정이라는 정의에 입각해 보면 마케팅의 중요성엔 논의의 여지가 없다. 

다만 지금의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VMC (Valid Marketing Communication, 유효마케팅)이다. 시청률이나 클릭수로 측정하는 미디어 효율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량적 도달률을 넘어, 다양한 미디어에 연결된 사용자의 컨텍스트와 브랜드의 스토리가 만나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고 공유되는 '유효한 (Valid)' 마케팅만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그래비티>나 <노예12년>이 아니라 삼성전자였다는 말이 있다. 이 주체 못하는 익살의 사회자 엘런 드제너러스가 갓 출시된 따끈따끈한 갤럭시를 들고 시상식 중간 중간, 지구를 들었다 놨다하는 스타들과 셀카를 찍으며 실시간으로 이를 SNS에 공유했고, 이 전 과정이 생중계 및 리트윗되면서 마케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간접광고(PPL)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소위 '뜬' 광고와 그렇지 못한 광고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기존의 대중매체가 가지는 일방성으로 인해 투입된 광고비에 어느정도 비례하는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지상파의 저녁 드라마와 9시뉴스 사이의 광고는 국민의 반이 멍하니 봐주지 않았던가. 이제 더이상 그런 너그러운 미디어 컨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통합'이 마케팅 생산자가 주체가 된 행위라면 '유효성'이라는 공은 생산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다. 이제 광고의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유효한(Validity) 가치(Value)를 줄 수 있어야 하며 역시 유효한 미디어(Vessel)에 담겨야 한다. 이것이 유효마케팅의 3V이다. 

질 낮은 브랜드 인지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생산자 중심의 IMC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VMC로 관점을 전환해 보자. 사용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브랜드와 관련된 가치(Value)있는 경험을 나누고 퍼트리는 장(Vessel)을 만들며 이 과정을 도와주어 유효성(Validity)을 높이라는 것이다.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 디자인경영학과 교수 박보람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18773467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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