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인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나누며 배꼽을 쥐고 웃기도 했다. 오래된 일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기억한다는 사실에 애틋해졌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서로 조금씩 달라서 더 재미있었다. 그때와 그 시절이 있었기에 이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슬프게도, 우리는 과거를 향해 있을 때에만 행복했다. 이미 지나가버려 손쓸 수 없는 시간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요새 하는 일은 잘되고 있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직장을 다니다 최근에 큰맘 먹고 사진관을 연 친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냥 그렇지 뭐.” 그 친구가 되물었다. “너는 좀 어때?” “그냥 그래.” 둘 사이에 앉아 있던 친구가 잔을 높이 치들며 외쳤다. “다 그렇지 뭐. 그냥 술이나 마시자!” 우리는 힘차게 잔을 부딪쳤지만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나눌 때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미 깨진 뒤였다. 과거는 견뎌내서 아름다운 시간이었지만 현재는 우리가 관통해야 할 무시무시한 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무수한 ‘그냥’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그냥 줬단 말이야?” “주말에는 그냥 잠만 자고 싶다.” “배고픈데 그냥 아무거나 시켜.” “그냥 좀 놔둬.” “근데 왜 넌 결혼 안 하냐? 사는 거 별거 없어. 그냥 사는 거지.” ‘그냥’의 홍수에서 벗어나고자 잠시 밖으로 나왔다. “왜 나와 있어?” 뒤늦게 도착한 친구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알은체하며 물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그냥’을 내뱉고 말았다. 그냥이 싫어서 나왔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도 모르게 “그냥”이라고 답해버린 것이다.

친구가 내 옆에 와서 섰다. “그냥이 어디 있어.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었어?”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우리 모두가 ‘그냥’의 늪에 빠진 것 같아서.” 나 또한 그냥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는 씁쓸한 말도 덧붙였다. “그냥”이라는 말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올 때마다 늘 가슴에 무거운 돌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속내를 감추고 정말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구하면서, 그냥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말았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취향이 뚜렷했던 우리는 이제 적당한 것,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을 가늠하고 거기에 스스로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내일 오전까지 짤막한 원고를 하나 써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달력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나온 게 화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친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좀 더 있다 가. 긴 원고 아니라며. 대충 하면 되잖아. 우리 정말 오랜만이잖아.” “그래, 대충 써. 어차피 지금 가도 늦었어.” “대충 해. 대충 써도 어차피 잘 쓸 거잖아.” ‘그냥’의 홍수를 벗어나자 ‘대충’의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삼십분 정도 더 앉아 있다가 몰래 자리를 빠져나왔다. 마감할 원고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짧은 원고라 할지라도 대충 쓸 수는 없었다.

밖에 나오니 아주머니 한 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냥이 아닌 필시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편의점으로 새벽에 팔 물건들을 나르는 청년도 있었다. 액체가 든 용기가 엎어질지 몰라 조심스레 운반하고 있었다. 결코 대충이 아니었다. 그냥으로 나를 감추고 대충으로 남의 눈을 속이던 요즘의 나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취향과 감정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문장은 절대로 대충 쓰이지 않는다. 하는 일이 아무리 익숙해져도 결코 그냥 하지는 않아야겠다고, 결코 대충 하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질서와 침묵에 익숙해진 이들,/ 돌이 그러하듯.” 질서에 익숙해져 아무 생각 없이 대충을 받아들이고 차마 침묵할 수 없어 그냥을 불러들이면 우리는 언젠가 “돌”의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정작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몸이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한 걸음 한 걸음 힘주어 걸었다. 그냥 살 수는 없으니까, 대충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오늘부터 저 단어들과 애써 멀어지려고 한다. 돌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힘써 구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일상적으로는 순간의 의미를, 궁극적으로는 생의 이유를 찾아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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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32043005&code=990100#csidx5909d0bbf7d8023981755787aa2c3ce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232043005&code=990100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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