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비추어볼때 일단 먹고 사는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현재 한국에서 박정희,전두환을 추종하는 장년,노년층이 많은데, 이건 박정희,전두환의 치세에서 일단 먹을것 그리고 안보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민주주의의 배고픈 시민보다는 독재에서의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원한다고 볼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건 민주주의나 독재가 아니라, 배부르냐 , 배고프냐의 차이일뿐이다. 민주주의든 독재이든 사람, 민중이 원하는건 자신들을 먹여줄수 있고 보호해줄수 있는 정치세력이다. 장년,노년층이 보기에 박정희,전두환은 자신들에게 안보와 먹을 것을 제공해준 정치세력이다. 따라서 그들은 박정희,전두환을 지지할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분명 좋은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보다 더 중요한건 먹고 사는 것이다. 왜냐면 민주주의는 욕구이론에서 보면 최 상위의 단계에 위치한다. 즉 자기 실현의 욕구이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국가를 결정하려는 움직임이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보면 독재자는 맨처음에는 추종받는다. 이때 독재자의 움직임은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북한의 김씨 일가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반대파를 압제하여 마침내 한 나라를 살아있는 지옥으로 만드는 경우
두번째 한국이나 중국, 싱가폴처럼 독재자들이 반대파를 압제하고, 언론을 억압하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더라도 어떻게든 경제는 살려놓는 경우.

이때 순차적으로 욕구가 달성되기 시작한다. 먹고 살만해지니, 안보를 생각하게 되고, 안보를 생각하니 집단에 충실하게 되고(회사,가정,동호회,종교),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어하게 되고, 이 세계에 대해 이 세상이 대체 왜 이런가 인지하고 자각하게 되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독재자를 타도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이 모든건 독재자가 국민을 먹고 살만하게 해 줬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김씨 일가처럼 국민을 꽉 휘어잡는다면, 아예 먹고 살수 없게 만든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끼니를 생각하는것도 바빠서 더 고 차원적인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 무수한 예시가 있다.

프랑스 혁명당시, 혁명을 주도한건 가난에 굶주리던 민중이 아니라, 사회의 지식층이였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은 민중이 아니라, 귀족이엿지만 혼혈로 태어나 상류층에 편입하지 못한 계층이 일으켰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젠트리가 주도했다. 소비에트연방의 레닌은 브루주아 계층이였다.막스 역시 마찬가지다

무수히 반복되는 하나의 구도가 있다.

국가가 발전하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는 출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독재적인 체제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출현한다. 
이 세력은 그런데 중간자적인 계층에서 발생한다. 
사회 하류층은 먹고 사는것에 매달리느라, 그리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변화를 주도할수가 없다. 
기득권층은 이미 자신들이 사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질서를 바꾸려는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중간자적인 입장 , 이들은 충분한 부와 지식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있는 권력구도에 자신들이 들어갈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다.

즉 변화는 사실 중간 계층(중산층)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이 중산층은 사회를 인지하고 있으며, 보다 나은 사회를 바라며,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만, 세상의 권력구도가 이미 꽉 짜여져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변화를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하류층이 좌파이고, 상류층일수록 우파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과는 다르다

사회의 지배계층+하류층은 보수우파이며 그 지배계층에 끼치 못한 중산층이 진보좌파가 되는것이다.
이때 사회 하류층은 교육의 부재에서, 인지의 부재에서, 그리고 먹고 살기 바빠서, 기존질서에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기존질서의 강력한 옹호자가 된다.


출처: http://www.ilwar.com/poli/42831?from=my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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