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펴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진 지난 17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53)은 친구가 운영하는 경기도 산속 한 캠핑장에서 혼자 불을 피우고 있었다. 전날 만났을 때 "먼 옛날 사냥을 마친 남자들이 동굴에 돌아와 모닥불을 바라보던 것처럼 나도 '불멍'을 때려 보겠다"고 했던 터였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 전작(前作)에서 일과 삶의 균형, '휴(休)테크'를 주장했던 김정운은 최근 신간(新刊)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를 통해 "초고령화 시대에 누구나 겪게 되는 '외로움'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혼자 캠핑을 간 것도 그 때문. "다들 외롭죠. 그렇다고 인생 잘못 산 것 아닙니다. 인류 최초로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외로움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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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캠핑장에서 김정운은 혼자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의 캠핑 붐에서‘잊힌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읽어내기도 했다. /이진한 기자

외롭지 않은 척 폭탄주 돌리고
SNS에는 '좋아요' 넘쳐나는
우리나라는 고독 저항 사회

그가 보기에 한국은 외롭지 않은 척 폭탄주 돌리고, 산악회·동문회 쫓아다니며 억지로 공통 관심사를 만드는 '고독 저항' 사회다. 그게 다 외로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한동안 멘토에게 매달리고 힐링을 찾더니, 이제 허접한 용기의 시대가 됐다"며 "우리 사회는 여럿이 뭉쳐 '으샤으샤' 하며 압축 고도성장을 해오느라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며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 콘텐츠를 쌓고, 콘텐츠가 쌓이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네트워크 만드는 것도 사실은 외로움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그는 "대학마다 만드는 '최고위 과정', 무수한 자기계발서에서 반복되는 '혼자 밥 먹지 마라'는 조언(助言)도 사실 외로움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라며 "삶에 재미가 없고 화젯거리가 없다 보니 공통의 소재를 찾아 건배사 만들고 키득거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외로움 인정하지 못할 때 분노…
나만의 시간 통해 정체성 찾아야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적(敵)을 만든다. "내 편이 있어야 덜 불안하니 어디에 소속되어 편을 만들고, 페이스북서 '좋아요' 마구 누르며 서로 자위하는 거예요. 분노와 적개심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태도를 극복 못 하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면 사회적 소통(疎通)도 원활해진다. 분노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성찰이 부족하다. 그는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먼저 내 속의 나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더 외로워야 사실은 덜 외롭다"고 했다.

고령화와 저성장이 함께 닥친 시대에 삶의 태도로 '외로움' 운운하는 것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재벌이 덜 외로운 것도 아니고, 돈이 있으나 없으나 외로움은 본질"이라고 했다. 책에 쓴 대로,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치 않으면 돈은 재앙이며, 사회적 지위 역시 뭘 하고 싶은지 분명치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고 했다.

그 역시 13년의 독일 유학 생활이나, 끝내 적응하지 못했던 교수 사회에서 항상 외톨이였다. 심리적으로 과부하가 걸려 주변에 짜증만 낸 시간이 많았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실제로 2007년 신문에 난 사진을 봤더니 지금과는 딴판인 2대8 가르마에 스트레스 가득 찬 표정의 '교수님'이 계셨다.

그는 지금도 외롭다. 더 이상 대학교수도 아니다. 나이 오십에 멀쩡한 직장 사표 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2년제 미술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자, 타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보였다. 고령화 시대에 수반하는 고독사 등의 문제를 극복한 일본 사회의 내면(內面)도 확인했다. 이번 책은 그 경험과 사유의 산물(産物). 책의 근간이 된 조선일보 칼럼을 연재하면서 그림을 먼저 그리고 글을 쓰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도 체득했다. 작가 특유의 유머는 이번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혼자 일본에서 4년 동안 생활하며 차가운 방바닥을 구르고 또 굴렀으면 충분히 외로웠을 텐데, 그걸로 부족했는지 그는 "내년 3월에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면,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여수에 집을 얻어 혼자 그림 그리고 책 쓰며 살겠다"고 했다. 책 제목대로 '격하게' 외로울 참인 모양이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1/2015122100330.html?outlink=facebook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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