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5
2013년 11월 26일, 제네시스가 데뷔 6년 만에 신형으로 거듭났다. 현대차 FR(앞 엔진, 뒷바퀴 굴림) 플랫폼의 자존심이자 대표주자다. 디자인은 아우디처럼 고급스럽다. 성능은 BMW를 지향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로 나날이 시장 점유율 높여가는 수입차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네시스가 당장 명차(名車)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진 의문이다.
오늘날 우린 매일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접한다. 과거 제대로 된 장난감은 해외에서 수입된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 어린이들은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놀았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냉전이 끝났다.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에 동참했다. 우리나라도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유례없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다이소에서는 튼튼하고 디자인 좋은 우산이 2천 원대다. 유니클로에선 청바지가 5만 원대다. 맥도날드에선 점심시간에 빅맥 세트를 3천 원에 살 수 있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이만큼 풍족했던 역사가 과연 있었던가? 이제 부자와 대중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차이는 줄어들었다. 보유한 제품과 서비스의 브랜드 밖에 없는 듯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제품과 서비스가 흔해지면서 ‘명품’ ‘최고급’ 같은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 스스로를 포장해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해마다 30~40차종이 출시된다. 애태우다 한 번씩 제품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란 이야기다. 자동차 역시 더 이상 귀하지 않다. 필수품에서 기호품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 신형 제네시스 역시 최상급 표현을 스스럼없이 앞세운 경우다. 하지만 과연 이 차가 그 밖의 대중차와 뚜렷이 구분되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현대차가 라이벌로 암시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쟁 모델과 비교할 때 무엇이 빠져 있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필자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바로 사람의 차이다.
제네시스가 출시되기 직전 현대차가 인사 관련 보도 자료를 냈다. R&D(연구개발)센터의 수장들이 대거 사퇴했다. 12월 말에는 현대차 북미법인 사장이 갑작스럽게 관뒀다. 어느 회사든 실적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경영진을 교체한다. 하지만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BMW 뒤를 바짝 쫓는다. 실적이 좋은 상태에서 경영진 교체가 빈번하다는 사실은 좀 걱정스럽다.
나아가 왜 교체되었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듣기 어렵다. 때문에 필자는 현대차 경영 문화가 과연 건전한지 우려할 수 밖에 없다. 현대차 그룹의 주력 회사들은 엄연히 증시에 상장된 ‘상장사’다. 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번 경질도 그 중 하나다. 이렇게 중요한 경영적 변화에 대해 주주들에게조차 정확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대 사례로 토요타를 들 수 있다. 토요타는 2000년대 전문 경영인들이 연거푸 3번이나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초기엔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9년 급발진 사고 및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 경영인들의 단기적 성과 위주의 폐허가 들어났다. 이후 도요다 가문의 아키오 도요다가 CEO로 승진하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토요타는 이전 경영진을 해고했을까? 아니다. ‘조용히’ 고문이나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독일의 아우디와 BMW,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임원을 그렇게 쉽게 해고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반면, 현대차는 매년 임원들을 대거 정리한다. 때문에 경영의 지속성을 운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제네시스 이야기로 돌아가자. 1세대만 하더라도 디자인이 나름 독창적이었다. 마치 새로운 ‘창세기’(영어로 제네시스)를 여는 듯 했다. 그러나 첫 제네시스를 디자인한 미국 디자이너는 GM으로 이직했다. 개인적으로 만난 현대차의 R&D 담당자는 “조금만 더 돈을 들였더라면 BMW를 잡을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이번 신형 제네시스는 1세대보다 무게가 200㎏ 이상 늘었다. LED 헤드라이트나 전자식 변속 레버 등 몇 가지 옵션이 마지막 단계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 또는 연기 되었다. 특히 이 같은 장비는 최근 자동차의 주요 세일즈 포인트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차는 신형 제네시스로 독일의 전설적인 서킷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가령 구형 대비 랩타임(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보도 자료 한 줄 없다. 이곳에서 담금질했다고 자랑하는 차라면 대개 이전 대비 또는 라이벌보다 몇 초가 빠른지 밝힌다.
몇 달 전 포스코(구 포항제철)의 전직 최고 임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포스코는 현대차 그룹 산하 현대제철의 경쟁사이기도 하다. 그 분은 포철 공채 0기다. 창업 멤버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항제철의 미래 기획을 정부와 함께 수립한 엘리트였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최첨단 기계는 결국 오래된 기계가 만듭니다.”
오래된 기계로 최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실력 있는 사람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대변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야 말로 최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핵심요소인 셈이다. 그분은 덧붙였다. “최신 기계로는 중저가의 범용 제품을 만듭니다. 고가의 최신 제품은 오히려 오래된 기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진정한 명품(名品)은 제조사가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명품이라고 말하는 제품이 오히려 의뭉스럽다. 명품은 시장과 소비자가 인정할 때 얻을 수 있는 자격이다. 명차는 명장(名匠)이 만들고, 명장은 결국 회사가 키워낸다. 신형 제네시스, 그리고 출시 전후의 상황을 볼 때 현대차의 현 경영방식이 과연 명장을 육성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이 명품을 빚어낼 수 있다. 명차를 만들기 앞서 명장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명장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누구나 인정하는 명차를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명차는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회사의 격을 높여준다. 결국 사람을 아끼는 회사가, 명차도 만들 수 있다.
출처: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isMobile=y&type=Theme&seq=4840&pag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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