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늘 옳다. '고객은 왕'이라는 절대명제의 이면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라'는 지상과제가 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를 부단히 체크해야만 한다. 그런 사람들, 고객을 왕으로 모시고 그들의 하나하나를 알고자 하는 이들이 적잖은고로, 그네들이 하는 말이 당최 무슨 말이고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느냐를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적잖다.
1980년대 도쿄 리카 대학에서 활동했던 카노 노리아키 교수가 개발한 '카노 모델' 역시 소비자/고객의 목소리(Voice of Consumer; VoC)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어떤 시사점을 얻어내느냐 하는 요구분석 툴의 일종이다. 단순히 고객의 목소리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나를 분석하여 신상품이나 신기능/디자인을 기획하고 개발하는데에 이용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카노 모델은 조직행동론에서 동기부여 내용을 다루는 허즈버그의 2요인이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허즈버그는 개인이 주변에 대해 주관적인 감적을 느끼는 요인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았다. 만족과 '안'만족을 결정하는 동기요인과 불만족과 '안'불만족을 결정하는 위생요인이 그것이다. 카노 요인도 비슷한 논리구성을 갖는다. 고객이 '만족감'을 느끼는 요인(Delight)과 '불만족'을 느끼는 요인(Must-be)은 다르다는 것, 노리아키는 여기에 기대-결과에 따라 만족/불만족을 결정하는 비례요인(Primary) 하나를 더해서 총 3개의 주요 요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indifference요인과 reverse요인이 있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므로 아웃)
각 요인은 허즈버그 동기/위생요인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첫 째로 Must-be요인은 충족되지 않을 시 굉장히 큰 불만족을 불러일으키지만 있다고 해서 딱히 좋은 것은 아닌 요인이다. 극단적인 예로 낙지에서 중금속이 나오는 것. '중금속이 나오는 낙지'는 오마이갓 문제가 되지만 '중금속 없는 낙지'가 딱히 큰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둘 째로는 기본 요인인 Primary요인으로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또 좋은 아주 기본적인 하지만 핵심적인 요인이다. 음식점으로 치면 음식의 맛이다. 음식이 맛없으면 기분 나쁘고 맛있으면 다른 곳과 차별화된 만족감을 준다. 마지막으로는 Delight 요인인데, 없다고 해서 아쉬운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확실히 좋은 요인이다. 통상적으로 제품의 디자인이 이런 요인에 속하며, 알바의 외모(?!)도 매우 전형적인 delight요소라 할 수 있다.
문제는, delight요인이나 Must-be요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굉장히 주관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요인이라도 개인에 따라서는 delight가 될 수도 primary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시대나 상황에 따라 그 요인이 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에서의 '통화 품질'은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delight, 최소한 primary 요인이었는데 지금은 Must-be요인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분석하여 각 요인으로 분류를 할 때에는 통계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쉽지않지만)
카노 분석은 그 자체만으로 뭔가 신제품/기능 개발 방법론에 적용되지는 않고, QFD(Quality-Function Development)라는 제품개발방법론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대충 의역하자면 '고객 요구 기반의 디자인/기능 개발론'에 해당하는 이 QFD는 기능/심미적 요인들과 고객요구사항을 짝지어서 지금의 모습을 더욱 개선하는 일본기업 특유의 '개선(카이젠)' 문화를 나타내주는 모델이다.
신제품이나 신기능에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노 모델이 갖는 의미는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죽어라고 신경썼던 그 기능이 고객에겐 딱히 좋은 기능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적으로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피땀을 흘려 죽을둥 살둥 만들어낸 이 알흠답고 훌륭한 기능이 당신에게도 그 크나큰 기쁨 아닐쏘냐' 하는 굉장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고생한 만큼 알아줄 것이라는 굉장히 순진한 기대인데, 무조건 옳으신 고객 나으리들께서는 그렇게 너그럽지는 않으시다. 생각지 않았던 부분(delight)이 채워지면 기뻐하겠으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Must-be)에서는 놀랄만치 덤덤.
Must-be 요인은 딱 그만큼만 채워놓는 것이, 그리고 Primary에 역량을 집중하되 가능하다면 delight요인에 살짝 살짝 손을 대는 것이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과업이 된다. 이는 비단 경영활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사의 모~든 활동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는 하다. 그런데 왜 이 명명백백한 모델을 지키지 못하느냐 하면.. 일단은 (말했다시피) 어떤게 Must-be과 delight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비중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게 당장 내일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세상사가 이론적 모형대로 가는 경우가 어디 있냐는 거다.
출처: http://sttora2.net/30095281845?Redirect=Log&from=pos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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