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혜진 기자
어느덧 가벼운 민소매 차림도 어울릴 것 같은 강렬한 햇살 가득한 여름의 시작! 시원한 파도가 있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기대할 수 있는 바닷가 여행을 계획하거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그늘진 쉼터가 떠오르는 산속 여행과 같은 바캉스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여름, 휴가, 즐거움, 젊음 이러한 단어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주제는 역시 이성 친구, 교제가 아닐까?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7권 4호에 '이성교제 갈등으로 상담을 경험한 대학생의 심리내적 변화 과정에 대한 연구 (박경은, 2015)' 가 소개되었다. 이 연구는 이성교제에서 갈등을 경험한 남녀 대학생이 상담을 통해 경험한 심리내적 변화 과정을 분석하고, 불안정한 심리내면 상태가 어떻게 안정된 상태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성교제 갈등으로 상담 받은 경험이 있는 남녀 대학생을 선정해서 집중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공통적으로 나타난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첫째, 이성 교제에서 경험한 갈등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다 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 과정을 통해 상담자와 새로운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변화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희망은 교제에 대한 민감성을 갖게 하고 자신과 이성 친구에 대한 수용과 탐색을 지속시키게 하는 반면,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하면서 또다시 좌절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 반응들까지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활용하고 시도했던 참여자들은 긍정적 자기인식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안정된 심리구조를 형성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이성 교제 갈등으로 상담을 경험한 대학생의 심리내적 변화 과정은 불안정, 탐색, 새로운 관계 경험, 저항, 의식의 확장, 안정으로 총 여섯 단계에 걸쳐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은 항상 같은 순서대로 나타나거나 그림에 제시된 화살표처럼 정해진 방향으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며, 다시 처음이나 두 번째 순서대로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특성을 보인다. 특히, 불안정, 탐색, 새로운 관계 경험의 경우 여러 차례 반복될 수 있는 특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심리내적 변화과정 중에 핵심적인 부분은 새로운 관계를 경험할 때에 이성 교제에서 발생한 갈등을 회피하거나 억제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성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적인 대인관계 유형이나 패턴을 나타내는 '취약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한 탐색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 교제에 대한 민감성을 증가,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자기'를 성장시켜 나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취약한 자기'란 불안정한 내적 작동모델1)에 의해 작용하는 자기(self)를 의미하며(Wu, 2009), '새로운 자기'란 상담자와 상담 장면에서 경험한 새롭고 안정적인 대인관계 형성의 경험을 통해 발견, 드러난 자기를 뜻한다. 발달심리학자 Erikson(1968)은 친밀감의 확립을 초기 성인기의 발달 과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녀 대학들이 이성 관계에서 경험한 갈등을 극복한 이후 만나게 되는 새로운 자기란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고 자신의 독특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도, 이성과 함께 있거나 분리되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건강한 친밀감을 유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Collins & Feeney, 2000).
혹시, 이성 친구와의 가슴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면서도 과거의 갈등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만남을 주저하고 있나요? 이성 친구와의 갈등과 헤어짐을 경험하는 것이 두려워서 새롭게 경험할 수도 있는 만남의 기회를 회피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기회로 삼는 건 어떨까요? 상담 과정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자기를 찾아보세요. 긍정적인 이성 관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해가는 삶 속에서 좀 더 편안하고 안전감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 본 기사에 소개한 연구: 박경은 (2015). 이성교제 갈등으로 상담을 경험한 대학생의 심리내적 변화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7(4), 797-824.
  • ※ 본 기사에서 소개한 연구 내용에 대해, 소개한 연구의 연구자이신 박경은 선생님께 감수 받았습니다.
  • 1) 내적작동모델(internal working model):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타인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사고와 감정을 의미한다. (출처: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 참고문헌
  • Collins, N. L., & Feeney, B. C. (2000). A safe haven: An attachment theory perspective on support seeking and care giving in intimate relationshi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8, 1053-1073.
  • Erikson, E. H. (1968). Identity: youth and Crisis. NY: Norton & Co.
  • Wu, Chia-huei, (2009). The relationship between attachment style and self-concept clarity: The mediation effect of self-esteem.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7(1), 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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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종선 (강원대학교 심리학과)
"상상이 없는 곳에는 공포도 없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ayle, 1988).
심상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듣는 정신활동을 의미한다. 심상을 통해 우리는 과거, 미래는 물론 미지의 세계 어떤 곳이든 가볼 수 있다. 즉 심상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시간과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의 중 학생들에게 미래 기억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들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경험하지도 않은 미래에 일어날 것들 = 미래기억을 미리 보는 것이 가능할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심상을 통해 미래 시간과 미래 장소를 마음속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미래의 시간, 미래의 장소로 가 나의 미래를 경험하고 그것을 나의 미래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다.

신경심리학자 샤롯(Sharot et al., 2007)은 미래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이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그들에게 미래에 경험할 정서사건들을 마음속에 떠올려보도록 한 뒤 뇌를 촬영해 보았다. 그 결과, 미래사건을 상상하는 동안 활성화되는 우리의 뇌 영역은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하는 동안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냈다(Addis et al., 2007). 즉, 미래 기억 -심상을 통해 미래 시간과 미래 장소를 투사해 미래 사건들을 마음속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 은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과 유사하게 우리의 뇌에서 반응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미래 기억은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미래기억을 어렵지 않게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미래 시간과 미래 장소를 투사하여 만들어갈 수 있다. 더욱이 미래기억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정서와 유의한 관련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및 행동화 경향성을 높이기도 한다.
어떤 심상을 떠올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분이 달라진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실험 패러다임을 통해 심상과 정서의 관계를 연구해온 에밀리 홈즈(Emily Holmes)와 동료들은 우리가 어떤 사건의 의미에 집중하여 생각하는 것보다 사건을 심상으로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저자들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스크립트를 컴퓨터 화면에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한 집단에게는 스크립트에 나와 있는 이야기의 의미에 집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다른 한 집단에게는 스크립트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마치 영화를 보듯 마음속에 심상으로 떠올려 보라고 지시하였다. 결과 긍정적인 스크립트를 심상으로 떠올려보도록 또는 부정적인 스크립트를 심상으로 떠올려보도록 훈련받은 집단은 스크립트의 의미에 집중해보도록 지시받은 집단보다 긍정정서 또는 부정정서가 더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Holmes & Mathews, 2005; Holmes et al., 2006).

즉 심상이 정서에 미치는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떠올리는 미래에 대한 심상이 우리의 정서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순간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나의 정서 상태를 살펴보자. 아마도 홈즈 박사의 연구팀에서 나온 결과와 유사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내일 멋진 사람과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자. 한달 후 원하던 학교, 원하던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는 장면을 그려보자. 5년 후 대기업에 취직해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기분이 어떠한가? 반대로 내일 사귀던 사람으로부터 이별 통보받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10년 후 병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 기분이 어떠한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면 골룸이란 캐릭터가 나온다. 결정의 기로에 서서 골룸은 한번은 악마의 이미지 한번은 선의 이미지를 마음속으로 번갈아 떠올린다. 이미지 속의 어느 쪽과 손을 잡을 것인가에 따라 골룸의 행동방향도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심상을 그려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행동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종종 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난 후 이를 현실화하려는 소망이 극대화되면서 행동으로 실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들의 활동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 특히 그것이 미래의 어떤 결과와 관련된 것일 경우 이를 현실화하려는 욕구가 극대화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이 그리는 이미지를 행동화하려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경험하지 않은, 자신의 미래 기억을 들여다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미래의 특정 시간, 그리고 미래의 특정 공간을 마음에 투사하여 그려보아라. 그리고 가능하면,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그리고 되고 싶은 자신의 미래를 마음속에 매일 1분간이라도 떠올리고 그곳에 머물러 보아라. 그곳에 도달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 참고문헌
  • Addis, D. R., et al. (2007). Remembering the past and imagining the future: common and distinct neural substrates during event construction and elaboration. Neuropsychologia. 45(7): 1363-1377.
  • Sharot, T., et al. (2007). Neural mechanisms mediating optimism bias. Nature 450(7166): 102-105.
  • Holmes , E. A. and Mathews , A. ( 2005 ). Mental imagery and emotion: A special relationship? Emotion, 5 , 485-497.
  • Holmes , E. A. , Mathews , A. , Dalgleish , T., and Mackintosh, B. (2006 ). Positive interpretation training: Effects of mental imagery versus verbal training on positive mood . Behavior Therapy , 37 , 237 - 47.
  • 글. 이종선
  •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에서 우울의 인지편향수정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울장애의 컴퓨터 기반 인지편향 수정법(Cognitive Bias Modification) 프로그램의 효과 등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웹기반 인지편향 수정 프로그램의 개발 및 효과 검증 그리고 심상, 미래 기억 등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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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우영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알'은 좀비다. 다른 좀비들보다 젊고 잘 생기기는 했지만, 배가 고프면 산 사람의 살과 내장을 뜯어먹어야 하는 좀비다. 그의 몸에서는 좀비 특유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입가에는 사람을 뜯어먹다가 묻은 피가 얼룩져있다. 어느 날 알은 친구들과 인간 사냥에 나섰다가 '줄리'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줄리가 좀비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 먹잇감과 사랑에 빠지다니.
조나단 레빈(Jonathan Levine) 감독의 2013년 작 '웜 바디스(Warm Bodies)'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좀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좀비와 인간은 전쟁 중이다. 좀비들은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높은 성벽을 쌓고 살아간다. 가끔 좀비 사냥을 할 때만 밖으로 나갈 뿐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과 좀비를 나누는 기준은 몸의 온도다. 인간은 심장이 뛰기 때문에 따뜻한 피가 도는데, 좀비는 심장이 뛰지 않아 차가운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따뜻한 몸들이고, 좀비는 차가운 몸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좀비 알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 멈춰있던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알에게서 시작된 이상 증상은 마치 전염병처럼 좀비들 사이에 퍼진다. 좀비들의 심장에 불이 들어오고, 좀비들의 몸은 점점 따뜻해진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좀비들의 행동도 달라졌다. 차가운 손으로 사람들을 공격했던 좀비들은 이제 따뜻한 손으로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육체를 갖게 된 좀비들이 이제는 따뜻한 마음까지도 갖게 된 것이다.
로렌스 윌리엄스(Lawrence Williams)와 존 바지(John Bargh)가 2008년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은 좀비만이 아니라 인간도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실험 진행자는 실험에 참여할 학생을 심리학과 건물 로비에서 만나 실험실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실험참여자가 로비에서 진행자를 만났을 때 진행자는 커피가 담긴 컵, 클립보드 그리고 교과서 두 권을 가지고 있었다. 실험실은 심리학과 건물의 4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실험실로 올라가는 도중에, 진행자는 참여자가 실험에 참석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너스 점수를 주기 위해서 참여자의 이름과 참가시간을 클립보드에 있는 참가확인서에 기재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잠깐 동안 커피 컵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실험의 핵심은 바로 컵에 담긴 커피 온도에 있었다. 한 조건에서는 컵에 따뜻한 커피가 담겨 있었고, 다른 조건에서는 차가운 아이스커피가 들어 있었다. 실험실에 도착한 참여자들에게는 A라는 익명의 개인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주고 인상을 형성하도록 했다. 결과에 따르면, A에 대한 참여자들의 인상은 그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잡고 있던 컵에 어떤 커피가 담겨 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따뜻한 커피가 든 컵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아이스커피가 든 컵을 들고 있던 사람들보다 A를 더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의 실험에서는 몸이 따뜻해진 사람들이 실험참여의 대가로 자신이 가지고 갈 수도 있는 선물을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양보하는 비율이 물리적 차가움을 경험했던 사람들보다 더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몸이 따뜻해지면 사람들은 따뜻한 눈길로 타인을 바라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만약 주변에 좀비처럼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어주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알'처럼 달라진 좀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참고문헌
  • Williams, L. E., & Bargh, J. A. (2008). Experiencing physical warmth promotes interpersonal warmth. Science, 322, 606-607.
  • 글. 전우영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적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다양한 사회적 자극이 어떻게 우리의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summer/sub.html?category=13&psyNow=21&UID=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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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낸 오은영 박사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수긍해주는 것이 욱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육아의 제1 원칙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노는 게 더 재미있다고 하면 '그렇지' 수긍해주세요. 어떻게 노는 게 더 재밌지 공부가 더 재밌겠어요."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내가 자주 욱한다면, ‘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말에 ‘내가 무슨 자존감이 낮아?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난다면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은 후 조용히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넣기 위해서다. 그의 새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코리아닷컴 발행)에 나오는 이 대목은 ‘묻지마 살인’과 보복운전, 아동학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신문 사회면에서 빠지지 않는 이 ‘분노공화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저지르는 것이 어디 강력범죄뿐이랴. 뒤끝 없다고 자처하는 나의 ‘욱’은 주위에 감정의 오물을 튀기고, 소중한 사람들의 내면을 할퀴며, 사랑하는 내 아이의 영혼에 깊은 내상을 입힌다. 그렇게 터트린들 내면에 화평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을 다짐하지만 어느새 분노 게이지는 높아져 나도 어찌할 새 없이 터져버리기가 반복된다. 분노는 그렇게 힘이 세다. 


오은영 박사를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어떻게 하면 ‘욱’을 없앨 수 있을까 물었다. 지난달 발간된 그의 책은 온라인 서점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위협하며 2위에 올라 있다. 

-욱하는 것과 자존감이 무슨 관계인가?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개념이다. 자신감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나, 이상한 사람과 섞여 있을 때나, 누가 날 공격할 때나 변화가 없다. 실패, 성공, 위기 상황에서도 별로 편차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좌절을 잘 이겨내고, 누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땡큐’도 잘하고, ‘쏘리’도 잘한다. 


반면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난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는 자존감이 낮다는 증거다.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승복을 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부정적인 타인의 감정이 나에게 왔을 때, 이걸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꾸 화를 낸다. 충고나 피드백도 잘 안 받아들인다. 내가 자꾸 욱하고 화를 낸다면 나의 자존감과 감정조절 문제를 잘 점검해 봐야 한다.”


-국어사전은 ‘욱하다’를 ‘앞뒤를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다’로 풀이한다. ‘욱’이란 무엇인가.

“딱딱하게 뭉친 감정의 덩어리다. 인간에게는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모두 중요하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긍정적 감정’은 표현하는 사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편안하다. 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열 받고, 좌절하고, 불안하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은 느끼는 사람도, 그걸 표출할 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불편하다. 그래서 잘 못 다룬다. 특히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억압, 억제하도록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런다고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남아서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그게 쌓이고 뭉쳐 있다가 압력솥처럼 폭발하는 게 ‘욱’이다.”

-어른만 욱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도 욱한다. 과도한 학습부담 때문인지 분노가 많고 공격적인 아이들도 많아졌다.

“행위가 아니라 원인을 봐야 한다. 아이가 자주 욱한다면 어릴 때부터 아이의 분노, 화, 울음, 신경질 등 부정적 감정을 부모가 수긍을 안 해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냥 인정해 줘야 한다. 옳다는 게 아니라 ‘네가 화났다는 걸 알겠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공감만으로도 분노는 크게 완화된다. 아이의 격분이나 화를 어른들은 두려워한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을 치받는 애가 될까 봐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 든다. 아이는 감정이 수긍되지 못하니까 억압, 억제하고 그러다 결국 욱하게 된다. 화를 내는 아이에게 부모가 ‘그거 나빠. 너 나쁜 아이야’라는 메시지를 흔히 주는데 좋지 않다. 화가 났을 땐 화도 내야 한다. 화도 중요한 감정이다. 단 적절한 방식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는 ‘욱’을 보자기 같은 감정이라고 말한다. 분노, 섭섭함, 억울함, 화, 적대감, 비장함, 절망, 애통, 슬픔 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뒤엉킨 채 보자기에 싸여져 있는 게 ‘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욱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자기를 열어 그 안의 감정을 세밀하게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부모(자기 부모)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를 보살피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런데 책에서 나이든 부모님은 절대로 안 바뀌니 사과 받고 싶어하지 말 것을 권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대체는 부모-으로부터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의존적 욕구다. 본능적인 것이고, 반드시 부모가 만족스럽게 채워줘야 한다. 이것이 결핍되면 두 가지 감정이 생긴다. ‘어떻게 이들이 나에게 이럴 수 있지’ 하는 분노와 ‘내가 오죽 못났으면 부모 사랑도 못 받았을까’ 끊임없이 우울하고 좌절스런 감정이다. 우울했다가 분노했다가의 반복이다. 일평생 의존적 욕구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과도한 것들이 생겨난다. 

지금의 노년 세대는 너무 척박하게 살았다. 밥 안 굶기고,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죽을 고생을 다해야 했다. 그런 부모에게 힘들게 얘기해봤자 노여워하고 섭섭해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 감정을 수용 받지 못하는 경험을 또 하게 되면 더 상처가 된다. 하지만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그걸 소화하고 처리하는 것도 나다. 부모의 사과, 배려, 위로가 도움이 될지언정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내가 나의 감정을 직면하고, 보자기를 열어 ‘나는 어떤 때 화를 내지?’ ‘이게 진짜 화야? 다른 감정이 화로 표현된 것 아닐까?’ ‘나는 왜 불안하면 화를 낼까?’ 등을 디테일하게 스스로 분석해봐야 한다.”

-미국식 육아 방침에 따르다 보면 아이에게 질질 끌려 다니게 되고, 프랑스식 육아 방침을 추구하다 보면 타이거맘이 된다. 육아의 헌법은 무엇인가.

“절대로 아이에게 욱하면 안 된다. 아이들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 건 만고의 진리다. 문제는 아이에게 반드시 지침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Firm and Warm’, 단호하지만 다정한 태도로 지침을 주는 것이다. ‘우리 딸, 약 먹을까요?’ 틀렸다. 그건 선택의 문제도 아니고, 아이에게 결정권이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약 먹어라’고 말해야 한다. 지침이란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동의하든 안 하든,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그냥 따르는 것이다. 이걸 헷갈리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애가 징글징글 말을 안 듣는다는 게 모든 부모의 하소연이다. 부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욱하지 않기가 어렵다.

“자꾸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면, 지도나 지시가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거나 동영상을 찍어서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내용만 전달했다고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아이가 자꾸 놀이터 안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집에서 나가기 전에 미리 안 된다고 분명히 얘기한다. 지키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말한 후 실제로 단호하게 집행한다. 애가 난장을 쳐도 그 꼴을 보셔야 한다. 애를 비난하거나 ‘너 또 그랬지. 못살겠다’, ‘안되겠다, 너’ 같은 양육포기 선언은 하면 안 된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자전거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나아진다.”

학습은 부모와 아이의 분노가 격돌하는 한판승부의 장이다. 그가 책에 쓴 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성과, 효율성에 집착하면 욱할 일이 많다.” 학원 보내며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면, 분쟁은 불가피하다. “부모는 부모의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과는 아이의 몫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이 없어야 한다”지만, 지키기 어려운 금과옥조다. 

-부모들이 자주 욱하는 원인 중 하나가 아이들 공부다.

“공부라는 건 머릿속에 지식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릇이 바로 정서적 안정감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넣어줄 수가 없다. 그릇이 깨지면 내용은 다 샌다. 혼내고, 야단치고, 소리지르는 것은 절대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없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를 많은 양의 지식을 빨리 집어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가르치려고 하니까 굴복의 기전이 들어가는 것이다.” 

-공부 시키지 말라는 얘긴가. 

“과도한 사교육은 심각한 문제지만, ‘공부 시키지 마세요’는 틀린 얘기다. 적절하게 인지적으로 학습을 시키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다만 그릇 안에 많이 빨리 담으려는 것이 문제다. 공부란 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학습을 하지 않으면, 뇌가 잘 발달을 안 하는 건 사실이다. 미·적분을 배우는 과정에서 뇌가 발달하고 나중에 다 잊어버릴지언정 그걸 통해 훗날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갈 수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점수와 성적만 생각한다. 10개 중 9개를 틀려도 나머지 하나를 맞추는 과정에서 자기효능감과 자기신뢰감이 생긴다. 그 과정이 공부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것을 빨리 넣어주려고 하면 10개 중 9개를 맞고도 루저가 된다.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다. 모두가 공부를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한다. 공부를 한다는 건 설령 꼴등을 하더라도 열심히 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보는 경험은 인생의 기본 자세이자 자산이다. 한 문제도 못 맞췄더라도 머리 쥐어뜯으며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던 경험이 있다면 과일장수를 할 때도 그 경험에서 도움을 받는다. “공부를 통해 네가 균형 있게 성장하고, 최선을 다하는 걸 배우고, 몰랐던 걸 하나씩 알아가면서 너의 효능감, 너 자신을 신뢰하고 틀린 것을 수정해가는 법을 배우는 거야. 인생도 틀리면서 배우고 잘못하면서 깨닫는 거거든.” 이게 공부의 목표여야 한다. 과학자가 꿈이었다는 아이에게 왜 포기했냐고 물으니 ‘전 틀렸어요. 성적이 안 돼요, 선생님’ 하더라.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야 할까.”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출처: http://www.hankookilbo.com/m/v/8ab2d8ce55d143c29340bb6a6b0fe5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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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성열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우리 사회에는 유독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위 '안전불감증'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쉽게 말해 '안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증세'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증상이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것일까?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행동 특징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공통적 성격, 즉 '문화(文化)'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왜 우리는 안전에 둔감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라고 질문해야 하고, 그 대답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한국 문화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식'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불감증'이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잘살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참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설명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한강의 기적'을 내세운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이룬 경제적 업적을 우리는 단 몇십 년 만에, 그것도 전쟁의 참화 속에 완전히 잿더미가 된 상태에서 이룬 것을 자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빨리 경제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물론 한국 사람들이 능력이 많고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착실하게 차근차근 성과를 축적해가기 보다 '빨리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의 생활이 몸에 밴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안전하게 일을 하려는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는 '꽁생원'이나 '쩨쩨한 사람' 또는 심하게는 '쪼잔한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에 무모하게 일을 진행하거나 법을 어기면서까지 성과를 빨리 내는 사람을 '통이 큰 사람'이라든지 '배짱이 있는 사람' 또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 등으로 부르면서 오히려 칭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강하다는 것이다. 낙관주의(樂觀主義)를 '세상과 인생을 희망적으로 밝게 보는 태도'라고 정의한다면, 낙관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세다. 하지만 낙관주의가 진정한 위로와 힘을 주려면 그것은 현실적(現實的)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희망적 태도의 근거가 현실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현실적 낙관주의'를 가지게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현실이 살아가기에는 비관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Kierkegaard, Soören Aabye)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다. 절망에 삶은 결국 '죽음을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비현실적'으로나마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안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제는 '현실적 낙관주의'를 가질 만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직도 '과거'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단지 경제적으로 윤택해진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 자체가 인권을 존중하고 인명을 제일 귀하게 여기도록 바뀌어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된다.
  • 글. 한성열
  •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심리학, 통일심리학, 성인심리학 등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한국 문화와 상담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summer/sub.html?category=13&psyNow=13&UID=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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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누미야 요시유키 (서정대학교 애완동물과)
현재 같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 중 평소에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는 친구(대부분 같은 학년)와의 의견 불일치 시의 대처전략에 대해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학생은 남녀 모두 일본과 미국 학생에 비해 '지배' 전략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해결전략으로서는 회피, 지배, 양보, 타협, 통합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들 중 '지배' 전략의 사용은 한국인이 가장 많았다. '지배' 전략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도록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대처방식이다. 논의를 주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한다.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경쟁구도를 설정하여 상대방에게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한국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갈등해결방식으로서의 '지배' 전략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관철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많은 민·형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사회다. 2009년의 자료를 예로 들어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009년의 민사사건은 한국 413만여 건, 일본 240만여 건으로 인구 대비로 계산하면 한국의 인구 1인당 민사사건 건수(0.083)는 일본(0.019)의 약 4.3배이다. 그리고 최근 일본의 민사사건 건수는 감소 추세에 있으나 한국의 민사사건 건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2009년에 발생한 형사사건도 한국 197만여 건, 일본 121만여 건으로 한국의 인구 1인당 형사사건 건수(0.039)는 일본(0.009)의 약 4.1배다.
한국에서 일본보다 많은 형사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인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화' 때문이다. 민사 채권자들이 채무자로부터 받을 돈을 민사소송을 통하여 받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채무자를 사기죄나 횡령죄로 고소하여 우선 구속시키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고소·고발이 유달리 많으며 2013년 기준으로 검찰과 경찰을 합한 고소·고발 건수는 69만9865건에 달한다. 인구 1만 명당 약 73.2건 꼴이다.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1만 명당 약 1.3건)에 비해 6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민사사건의 형사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한국 사람들이 조정과 타협에 인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경제 관련 형사사건 이외의 심각한 사건·사고도 많은 사회다. UN의 범죄조사통계(Crime Trends and Operations of Criminal Justice Systems)에 의하면 인구 10만 명당 살인발생건수는 한국(2012년)이 0.84명이고 일본(2013년)은 0.28명으로 한국은 일본의 약 3배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12년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은 10.8명이고 일본은 4.1명으로 한국은 일본의 약 2.5배였다. 또한, 2012년의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은 2.4명이고 일본은 0.6명으로 한국은 일본의 4배였다.
재산 관련 분쟁으로부터 이러한 극단적인 범죄와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비하면 심각한 갈등에 휘말리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한국사회의 특징이다. 한국과 일본 간에 이러한 민·형사 사건 건수에 차이가 있다면 거기까지 발전하지 않았던 크고 작은 싸움의 발생 건수에는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큰 차이가 있다면 수면 아래에 숨어있는 부분에도 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한국에서의 갈등이 그렇게 많은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사회는 일본사회보다 상대적으로 일반적 신뢰(일반인 신뢰, 낯선 사람 신뢰)와 대부분의 제도신뢰(사회기관 신뢰, 제도공정성 신뢰, 지방행정부 신뢰, 사법부 신뢰)가 낮고 공동체 기반이 약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방지하거나 조정하는 공동체의 기능이 약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인구 이동성(한국은 일 년에 전체 인구의 20%가 이동하지만, 일본의 인구이동은 한국의 1/4밖에 안 된다.)으로 인해 단단한 공동체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사회에 비해 한국사회의 갈등 억제력이 약한 것이다. 공동체 기반이 보다 강한 사회에서는 갈등을 외재화 시키려면 평판의 하락 등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하지만, 공동체 기반이 약한 사회에서는 갈등을 일으켜도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갈등 외재화의 동기는 강해진다.
이러한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강한 주체성이 요구된다.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는 강한 주체성이 매우 적응적이며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존중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한 갈등 상황에서는 그러한 태도나 전략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며 일방적으로 큰 손해를 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강한 주체성을 발휘해야만 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곳이 한국사회다.
한국은 일본보다 갈등이 많은 사회이기 때문에 강한 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문화적 과제가 된 것이다. 한편 일본은 한국보다 갈등이 적은 사회이기 때문에 강한 대상성을 형성하는 것이 문화적 과제가 된 것이다.

즉, 한국인이 자신을 대인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심적 존재로 생각하고, 자신의 지향성을 중시하는 주체성 자기가 강한 것은 외재화 된 대인적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일본인이 자신을 대인적 영향력을 수용하는 주변적 존재로 간주하고 상대의 지향성을 존중하는 대상성 자기가 강한 것은 그러한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글. 이누미야 요시유키
  • 고려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화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학교, 명지대학교, 서강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문화심리학, 종교심리학, 일본문화의 이해, 비교문화심리학, 사회심리학, 건강심리학 등을 강의해 왔으며, 현재 서정대학교 애완동물과 일본어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summer/sub.html?category=13&psyNow=12&UID=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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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규석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한국심리학회가 70번째 생일을 자축하면서 풍성한 학술잔치를 벌였다. 1946년에 7명의 심리학자로 출발한 학회가 이제 16,000명이 넘는 회원 수에, 15개 분과학회를 갖추고, 전문학술지 13가지를 발간하는 정도로 성장하였다. 전임 학회장 몇 분들께서 여러 분야의 학술활동 성과를 점검하고 과제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국심리학회의 현황을 놓고 보았을 때 모든 국내의 학회를 통틀어서 가장 활성화된 학회라는 평가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매우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우리는 여전히 '달빛 학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햇빛 학문'을 하기보다는 연구와 응용하는 힘을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구미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해는 자가발전을 하면서 만물을 살리는 햇살을 천하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햇빛을 받아서 반사하기 때문에 어슴푸레한 달빛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예술 장르나, 반도체, 가전 산업 등의 분야에서 한국은 해처럼 자가발전을 하며,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살이를 들여다보는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학자들 대부분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물론 개념과 이론마저도 미국과 유럽이라는 해가 내뿜는 빛을 받아서 쓰고 있다.

('햇빛 학문'과 '달빛 학문'의 비유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전임 회장이었던 항공대학의 최봉영 교수가 '교수신문'의 글에서 제시했음). 물론 쓸모가 있다고 여기니까 그리한다. 그러나 사람살이가 같지 않기 때문에 달빛이라는 어스름한 빛으로 본다면 보이는 것만 보게 되어 대충 볼 수밖에 없다. 달빛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처럼 여기고, 어스름한 불빛으로 보게 되니까 정확하게 볼 수 없다.

한가지 예로 자기(self)의 개념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중등 및 고등 교육을 받으면서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자기에 대한 정체감이 흐릿하면 무언가 잘못 된 것으로 여기고 이를 모색해 왔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한국의 성인들이 자기정체감을 확고히 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근자에 들어 비교문화심리학의 여러 연구들은 자기 명료성, 자기 일관성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의 덕목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를 포착하여 문화적 자기의 특성을 제시한 이론(Markus & Kitayama, 1991)은 심리학사를 통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라는 임자가 '너'라는 임자를 만나 독자성을 유지하는 대신에 '우리'로서 '쪽'을 이루어 어울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상호의존적 혹은 상호협조적(Interdependent) 자기'라는 모호한 개념으로는 적절히 다루어지기 어렵다. 두리뭉실하게 다루어질 뿐이다. 문화적 자기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한국인의 '쪽' 자기가 어떻게 우리의 부분으로서 기능하고, 영향받고, 변화되며, 한국사회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탐구된 바가 거의 없다. 이론적 개념을 빌어다 번역해서 쓰는 한에서는 두리뭉실함을 벗어 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대충하면서도 대충한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 학문의 식민성 논의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가실 줄 모른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심리 현상은 우리의 생활 말로 벌어지지만 이를 분석하는 틀과 개념은 외국에서 가져다 비추어보는 것이 식민적 학문하는 모습이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 한자를 빌어다 써야만 학문하는 것으로 여겼고, 우리말과의 개념과 쓰임에서의 차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고 무시하였다. 이황과 정약용이라는 두 걸출한 학자가 이러한 차이에 주목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미국, 프랑스, 독일어의 생소한 개념들을 가져다 적용하면서 이 개념들에 맞추어 현상을 재단하였다. 그들 개념을 알아야 우리의 마음과 사회현상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겨왔다. 사실 우리가 익숙한 심리학의 이론은 구미인들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삶을 파악하고 이론화시킨 토착 심리학이다.

1970년대 필리핀의 심리학자 엔리쿠에즈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필리핀 사람을 연구하면서 이를 깨닫고 '토착(indigenous) 심리학'이란 용어를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고 최상진 교수(2011)가 이에 눈을 뜨고 한국인의 마음을 우리말로 분석하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구미인들의 사회와 삶에서 개인이 중심에 있기에 '자기'니 '정체성'이니 하는 것들이 심리학에서 핵심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심지어는 연인관계마저도 정체감의 융합으로 설명하려고 든다. 그래서 서구의 대표적인 인류학자 기어츠는 미국을 그야말로 '독특한(peculiar)' 문화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문화의 심리학 이론들은 참고용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통째로 가져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하고 분석의 틀로 삼는 것이 식민지 학문이고, 바로 달빛 학문 이다.
마인드는 마음이라고 번역되어 같은 의미라고 여겨지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만 유사할 뿐, 실생활 속에서의 의미는 매우 다르다. '마음'은 심장에 비유되며 다스리는 의지(마음먹기, 마음챙김 등)와 상대방과 주고받는 돌봄의 의미(마음 주고받기 등)가 강하다.

반면, '마인드'는 머리에 비유되며 생각, 기억, 인지의 의미로 주로 쓰인다. 서구의 심리학이 20세기 후반에 펼쳐지는 정보혁명과 더불어 크게 발전한 것은 인간의 마음을 정보의 기억과 운용과정으로 보는 서구인의 마음 관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런 정보처리 관점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인의 토착 심리학이 보편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마음에 대한 이해로 충분한가?
 
서구인의 마음씨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듯이, 우리의 마음씨도 우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서구인도 돌봄의 마음, 의지로서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런 의미로 쓰기도 한다. 마음챙김(mindfulness) 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사람의 본질을 개체로서가 아니라 어울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우리성을 삶의 중심에 두어온 한국인의 심성에 대한 연구와 이론의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간의 본질로서의 우리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온전한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의 균형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맞고 있는 생태계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우리말의 뜻과 쓰임새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토착 심리학은 우리의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말의 쓰임에 관심을 두는 학자들이 많아야 비로소 햇빛 학문으로서, 환한 빛을 사위에 내뿜게 될 것이다.
  • 참고문헌
  • ※ 본 글은 최봉영 교수와의 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 최상진 (2011). 한국인의 심리학. 서울: 학지사.
  • 한규석, 최상진 (2008). 마음의 연구와 심리학: 마음의 문화심리적 분석에 바탕한 심리의 작용 틀.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27, 281-307.
  • Markus, H., & Kitayama, S. (1991). Culture and the self: Implications for cognition, emotion, and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98, 224-253.
  • 글. 한규석
  • 미국 Ohio 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사회심리학의 이해'(4판 출간 예정)를 저술하였으며, 현재 한국인의 마음의 특성, 서열교류 양상, 도덕성 발달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6summer/sub.html?category=9&psyNow=11&UID=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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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면 사회성 떨어져 리더에 적합치 않다고?


■ 크리스티나 시몬 IE 비즈니스스쿨 교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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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영세계에서 진정한 리더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다수의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사회성이 뛰어나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하며 본인의 매력으로 청중을 설득시키는 게 '진정한 리더'라고 느껴질 것이다. 물론 이는 맞는 말이긴 하다. 

그렇지만 항상 예외는 있었다. 스티브 잡스처럼 앞서 말한 리더의 모습에 해당되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리더가 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 한 가지가 떠오른다. 과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좋은 관리자가 될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성격에 관한 편견들을 따지고 봐야 한다. 외향적인 사람들(extroverts)에게 반드시 사회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성적인 사람들(introverts)은 태생적으로 수줍은 사람들이 아니다. 각 개인이 어떻게 에너지를 충전하고, 본인이 속한 환경에서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무언가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예를 들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긴 하루를 마치고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함께 웃고 떠들고, 혹은 TV에서 방영하는 운동경기를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똑같이 긴 하루를 보낸 후 나를 포함한 내성적인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아주 친한 사람들과 모여 조용한 저녁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팀을 이끄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객들,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며 교류하는 행사에서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다는 의미 역시 아니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행사에 기여한다. 하지만 MBTI처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성격 유형 검사는 우리가 놓인 환경과 상황에 따라 해당 성격이 나타난다고 추정한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실제로 본인이 외향적인 정도보다 더 외향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나아가 관리자들의 성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명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에 해당하는 기술들이 그들의 성공적인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감성지능은 어떠한 사람이 얼마나 내성적인지와는 무관하다. 대신 다섯 가지 요소가 감성지능을 좌우한다. 바로 자기 인식(self-knowledge), 자기 조절(self-control), 동기(motivation), 공감능력(empathy), 사회성(social skills)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기 인식과 자기 조절을 발달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크고, 나머지 세 능력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더 발달될 수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보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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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일러스트 = Miguel Panadero]
나와 같은 내성적인 사람들은 침착하고 어떤 일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생각한다는 강점이 있다. 그렇지만 내성적인 사람들 역시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단지 그 일이 우리에겐 피곤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경영세계의 환경은 복잡하다. 이와 더불어 최근의 경제위기 때문에 '중간관리자층' 중 일부가 사라졌다. 그 결과로 직급이 더 높은 관리자들은 더 많은 일을 부담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CEB(Corporate Executive Board)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간관리자층이 단순화되는 것은 남은 관리자들이 맡아야 할 업무가 훨씬 많아질 뿐만 아니라, 돌봐야 하는 직원도 늘어나며, 전반적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경영세계의 변동성은 높아졌다. 이는 관리자들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이 속한 조직문화의 사람들뿐 아니라 동종직종의 사람들과 외부 전문가들과도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이는 지속적으로 하기 힘든, 매우 '시끄러운' 일이다. 사실 이런 복잡하고 말이 많이 오가는 일은 내성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마음 챙김(mindfulness) 수련이나 명상이 유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오랫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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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팀원들을 침착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더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리는 내성적인 성격의 관리자들이 경영세계에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직장 내에서의) '다급함'이 '침착함'을 갖고 생각하는 능력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성적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정리 = 윤선영 연구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452636&year=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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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 청년 체감실업률 34.2%... 통계청장, "임의로 지표 혼합" 발끈


'청년 체감 실업자가 179만2000명에 달하며, 체감 실업률이 무려 34.2%에 이른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청년실업 통계와는 사뭇 다른 수치다. 통계청은 뒤늦게 "임의적으로 지표를 혼합해 만든 수치"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실업률 논쟁은 현대경제연구원이 14일 내놓은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이번 보고서는 청년들의 고용을 둘러싼 정부의 고용지표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가 지난 8월 기준으로 내놓은 청년층 공식 실업자는 34만5000명이며 실업률은 8%다. 여기에 청년층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직장을 구하는 취업준비생(시간 관련 추가취업 가능자)과 입사시험 준비생(잠재경제활동인구) 등을 더할 경우 청년실업자는 113만8000명(고용보조지표3)까지 올라간다. 실업률 역시 22.6%까지 상승한다. 

현대경제연의 청년 체감실업률 34.2%, 정부 청년실업률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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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8월)를 활용해 산출. 
ⓒ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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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지난 2015년부터 국제노동기구(IL0) 권고에 따라 고용보조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공식 실업자뿐 아니라 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 잠재경제활동인구 등까지 포함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들과 함께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청년까지 포함했다. 보고서는 '고용보조지표 3'에 포함돼 있지 않은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에 일하고 있는 청년'도 '사실상 실업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 비정규직 청년들의 경우 임금뿐 아니라 공적연금이나 고용보험, 교육훈련 등에서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이들 비정규직 청년과 함께 '그냥 쉬고 있는' 청년들도 사실상 실업 상태"라고 밝혔다.

그가 밝힌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의 경우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을 말한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179만 명 체감실업자'는 어떻게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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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장된 고용보조지표로 본 청년실업 현황 (2015년 8월 기준, 단위, 만명, %) 
ⓒ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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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은 비자발적인 비정규직 청년이 45만8000명,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이 19만7000명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정부의 '고용보조지표 3'에 나온 청년실업자 113만8000명을 더할 경우 청년 체감실업자는 179만2000명, 체감실업률은 34.2%가 된다는 것. 

또 청년 체감 실업률에서 남성(37.1%)이 여성(31.4%)보다 높았고, 대학 재학생이 49.1%로 높게 나타났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남성이 여성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구직 활동을 계속하거나, 잠시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남성들은 취업이 어려워질 경우 아예 취업 자체를 포기하고 쉬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청년 고용의 특수성에 따라 고용보조지표를 확장하고, 체감실업자에 맞춘 고용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한 근본 대책은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줄이고, 일자리 상승 사다리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쉬고 있는 청년을 줄이기 위해선 직업훈련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번 발표를 두고 정부는 '임의적', '자의적 해석' 등의 용어를 써가며 반박했다. 통계청은 "보고서에서 밝힌 '비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는 취업자로서 실업과 무관하며, '그냥 쉬고 있는' 인구는 비경제활동인구"라며 "임의적으로 여러 지표를 확대 혼합해서 체감실업률을 작성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특히 유경준 통계청장은 이날 오후 정부 세종청사 기자실을 직접 찾아와 이번 보고서를 강하게 비판했다. 유 청장은 "자신이 노동 분야에서 30년간 연구해왔다"면서, "이번 현대경제연의 보고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서 내용 중에)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비경제활동인구까지 보조지표에 포함하는 것은 국제기준에 맞지도 않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8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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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람 절대 안 변한다!'고. 그런데 또 한쪽에서는 이런 말도 한다. "사람이 굉장히 쉽게 변한다. 심지어 간사하다" 어느 말이 맞는가.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어느 말이 어떤 경우에 맞는 말인가. 그 차이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이 시대 리더들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된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잘 변하지 않는 것은 능력과 성격이다. 이 둘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세를 넘어서면 그 사람 일생에 있어서 잘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 여기서의 능력은 일의 숙련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IQ, 기억력, 연산능력, 사고 속도와 같이 기초적인 개별 인지능력을 말한다. 이런 능력은 이후 노화가 진행되면서 약간씩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크게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IQ와 같은 지능검사를 고등학교 때까지는 받지만 성인이 되면 그 검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다. 안 변하니 굳이 다시 검사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성격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학창 시절 친구들을 수십 년 후 동창회에서 만나면 대부분 성격은 그대로이다.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능력과 성격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리도 많이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능력과 성격을 바꾸려면 그야말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동창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생각을 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중에 사람이 확 바뀌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그 친구들을 만난 후 흔히 '큰 성공을 해서' 혹은 '일이 지독히 안 풀려서'라는 말로 친구가 변한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수많은 연구를 종합해 보면 그 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자아존중감(혹은 자존감, self-esteem)으로 귀결된다. 이는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과 직결된다. 동창회에서 우리에게 무언가 확 바뀌었다는 느낌을 주는 친구들은 지난 시간 동안 무엇이 변화한 것이겠는가. 결국 그들의 바뀐 자존감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그 방향이 상승이든 하강이든 말이다. 물론, 자존감이 무조건 높은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타인을 무시하고 아집과 독선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으로 자존감을 높게 가질 수 있게 되면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구성원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작은 실패나 역경에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반면에 자존감이 약하면 이른바 열등감에 매우 쉽게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관점이나 기준이 없으니 남의 시선과 평가에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자존감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즉 리더) 요인은 무엇인가. 당연히 칭찬과 격려다. 이는 어떤 자존감 연구를 찾아봐도 한결같다. 그런데 칭찬과 격려를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자존감을 높이는 진정한 칭찬은 먼저 '정확한 칭찬'이다. 두 번째는 '결과보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 칭찬'이다.  

전자는 결과를 만들어 낸 진짜 이유에 초점을 맞추게 하니 바둑으로 치자면 질 좋은 복기에 가깝다. 후자는 일의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다음 일에도 긍정적 자세로 뛰어들게 만들 수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 두 원칙을 지키지 못한 칭찬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자식과 부하의 자존감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대부분 연구 결과들이다.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자존감이 대부분 이런 어리석은 칭찬을 받으면서 만들어진다. 영국 천문학자 존 허셜은 '자존이야말로 모든 미덕의 초석이다'고 말했다. 자신을 적절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구성원들과 협동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선 품질 좋은 칭찬을 해야 한다. 정확하게 무엇을 칭찬해야 하는가와 결과가 아닌 노력도 충분히 칭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자.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361841&year=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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