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 미국 사실주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Hotel by a railroad'(사진 위)와 SSG.COM 광고의 한 장면. SSG.COM은 과감한 색감과 '쓱' 이라는 의태어로 서비스의 강점을 표현해 화제가 됐다. 
[사진 제공 = www.wikiart.org, 신세계]
어떤 남자가 매일 아침 8시 30분 카메라로 거리를 찍는다.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다음날도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찍는다. 역시 별다를 게 없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그는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10년 넘게 같은 사진을 찍는다. 별다를 게 없는 곳이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10년이라는 관찰로 다른 풍경이 된다. 한두 장 찍었으면 다를 게 없었을 사진이 10년이라는 시간으로, 같은 풍경에서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1995년 상영된 영화 '스모크'의 주인공 오기는 그렇게 4000장이 넘는 사진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얼핏 보면 같은 사진만 4000장이 넘지만 자세히 보면 어느 하나 같은 풍경이 없는 것. 

한 장만 찍었으면 평범한 사진이 되었을 풍경이 몇 천장에 이르니 스토리가 된다. 똑같은 풍경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똑같지만 똑같지 않게….' 어찌 보면 광고의 화두다. 같은 쇼핑몰 광고일지라도 어떤 부분을 비틀어서 다르게 만들어야 하고, 같은 여행지일지라도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소비자 눈에 띄고 기억돼야 한다. 늘 과제는 같고 숙제도 같지만 오기가 전하는 4000장의 메시지처럼 다른 표현을 만들어야 한다. 

'SSG.COM'의 '쓱?'은 그래서 신선하다. 에스에스지. 일일이 발음하기에는 다소 길 수도 있고 기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쇼핑몰 이름인 알파벳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니 '쓱-'이 됐다. 브랜드를 쉽게,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배송이며 결제며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서비스니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의태어처럼 보여서 더없이 잘 어울린다. 과거에는 아이돌의 시초인 'H.O.T.'를 핫이라고 읽으면 트렌드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치부됐는데, 모바일 통신에서는 짧고 쉽게 발음하는 게 미덕이니 그 또한 적절하다. 그게 SSG.COM이 똑같은 쇼핑몰이지만 똑같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또 하나 이 광고에서 눈에 띄는 건 개성 강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색감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면 흔히 볼 수 없는 색감들을 생활 속에 과감하게 녹인다. 그래서 색감만 봐도 그의 영화임을 알아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작가주의적 혹은 예술적 개성이 광고에서도 절묘하게 살아난 듯하다. SSG.COM 광고 또한 과감한 색감 표현으로 고유한 개성을 만들었다. 게다가 두 주인공의 무심한 듯 절제된 연기는 오히려 메시지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사소한 생활 속 대화를 무심하게 또는 진지하게 연기하니 오히려 그게 위트가 됐다. 이 광고는 광고전문 사이트인 'tvcf.co.kr'에서 인기 CF 1위에 오를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크리에이티브도, 친숙함도, 메시지 전달력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잘 만든 작품이다. 

반면 대한항공 광고는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근 온에어된 프랑스편은 절정에 이른 듯하다. 광고는 지구 어느 곳보다 아름답게 프랑스를 그려내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프랑스'라는 테마로 펼쳐지는 광고는 누구나 머무르고 싶은 곳 7군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 7개 방을 비워 놨으니 프랑스로 오라고 한다. 특히 1분 길이로 만들어진 론칭편은 영화적인 그림과 사운드로 프랑스의 낭만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프랑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낭만적일 수 있지만 게스트하우스라는 신선한 주제로 묶고 그곳 호텔들을 보여주며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니 '내가 알던 프랑스'보다 '내가 미처 몰랐던 프랑스'의 매력이 십분 살아난다. 

사실 '프랑스'는 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상징적인 곳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프랑스를 '게스트하우스'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프랑스 풍경보다는 낭만적인 호텔을 위주로 시선을 끌어가니, 같은 프랑스가 신선하고 새로운 프랑스로 다가온다. 광고 완성도는 새롭게 발견한 프랑스를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만든다. 이 광고를 보고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많을 듯하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모든 광고는 같은 과제를 받는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관심을 끌고, 브랜드를 기억하고 호감을 갖게 하는 것. 같은 과제를 받지만 방법은 매번 달라야 하고, 영향력은 더 커져야 하니 어려워진다. 광고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훔치고 관심을 훔치는 예술 또한 같은 운명이다. 마크 로스코처럼 전혀 새로운 표현이지만 오히려 그게 더 위안이 되고 공감이 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예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새롭다'는 건 그전에 없었다는 뜻이고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시인 백석은 추운 만주로 떠나면서 '시 백 편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가 만주로 떠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춥고 외로운 땅, 시련과 고독이 자신에게 시가 돼줄 거라는 걸 알았던 게 아닐까. 새로운 걸 이끌어낸다는 건 '추운 만주땅'을 거쳐야만 나오는 보석일 테니. 예술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상업적인 광고 또한 '만주땅'의 괴로움을 거쳐야 멋진 작품이 되니, 새로운 것에는 모두 진심의 박수를 치고 싶다.  

[신숙자 HS애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103439&year=2016

Posted by insightal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