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한국경제 빅2 기업'… 안팎서 거센 자성론]

'애플에 지면 죽는다… 하라면 하라'가 삼성의 조직문화

- 직원들이 전한 '자화상'
"노트7에 新기술은 다 넣고 싶고 애플보다 더 빨리 내고 싶고… 위에서 일정부터 못박으니…"
- 애플 강박증의 결과
"더 작고 얇지만 하루종일 쓰게" 배터리 제조사에 무리한 주문
- 품질 대신 수익성 우선
"아이폰7 나오기 前 노트7 출시… 최대한 팔아 이익 내기만 집착"
- 社內 "그래도 이겨내자" 결의도
"끝까지 원인 밝혀 신뢰 되찾자" "경험이 우리를 지혜롭게 할 것"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의 단종을 결정한 다음 날인 12일 오전 7시 서울 삼성 서초사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수요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옥에 나타났지만 한결같이 무거운 표정이었다. 새벽부터 모인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사장들은 대부분 입을 굳게 닫았다. 노트7 사태와 관련이 있는 신종균 삼성전자 IT(정보기술)모바일 부문 총괄 사장과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 조남성 삼성SDI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 사옥 1층 로비로 수요 회의를 마친 사장단이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 사장단 수요 회의… 굳은 표정의 참석자들 -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 사옥 1층 로비로 수요 회의를 마친 사장단이 나오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와 관련된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 대표와 고동진 무선사업부장, 조남성 삼성SDI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게다가 삼성전자는 이날 오후엔 영업이익을 무려 2조6000억원이나 깎아내린 3분기 수정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7일 처음 공시했던 것보다 매출은 2조원 줄어든 47조원, 영업이익은 33.3%나 감소한 5조200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어닝서프라이즈(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가 기대 이하의 실적으로 바뀐 것이다.

하루종일 서초사옥을 감싼 '무거운 침묵'은 노트7 단종 사태로 인한 삼성전자의 위기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애플에 앞서기 위해 야심 차게 내놨던 노트7이 품질 결함으로 출시 50여일 만에 시장에서 퇴출되고 '품질의 삼성'이란 신뢰의 위기까지 겪게 됐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라는 자부심이 흔들릴 지경에 이르자 내부에서는 삼성 특유의 조직 문화에 대한 자성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선 "최고의 품질이라던 삼성의 명성이 퇴색하는 것 같다" "삼성은 더 이상 가고 싶은 회사 1위도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도 "좋은 제품을 더 빨리 만들어서 빨리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혁신 조급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박현욱 KAIST(한국과학기술원) 부총장은 "삼성이 스마트폰의 후발주자로 출발해 선두주자가 됐지만 지금까지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반적인 시스템과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해 퍼스트무버(선도자)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터질 게 터져… 성공 조급증 반성해야"

11일 노트7 단종이 공식 발표되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의 삼성 게시판에는 내부 조직 문화를 비판하는 글이 쇄도했다. 한 직원은 "노트7 사고는 너무 짧은 신제품 출시 준비 기간, 애플보다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이라며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일정부터 못박는 회사의 조직 문화가 문제다. 언젠가 터질 일이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원은 "노트7에 신기술은 다 넣고 싶고, 애플보다는 더 빨리 내고 싶고, 결국에는 검증은 안 하고 내놓기만 하니까 이렇게 '펑펑' 터진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매출의 역사

'스피드'와 '혁신'에만 집착하다 정작 핵심인 '품질'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양보다 질'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제품 철학을 잊고 '무조건 빨리 하라'고 압박해 품질 테스트를 제대로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를 일으킨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도 무리한 제조 압박과 지나친 조급증이 제품 결함을 불렀다는 내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납품업체인 삼성SDI와 중국 ATL사에 노트7용 배터리를 주문하면서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많은 사용자가 하루종일 충전 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만들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전작(前作)인 노트5보다 두께와 크기는 작아졌는데도 더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삼성 관계자는 "당초부터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무리한 요구로 배터리 제조사를 압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전직 삼성 직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군대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실제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지 못하는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상명하복식 문화"라고 비판했다.

◇품질 대신 수익성… 품질 제일주의 퇴색

삼성전자 내·외부에서는 "그동안 지켜왔던 품질 1등의 신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이건희 회장은 무엇보다 품질을 중요시했고 2010년 처음 '갤럭시S'를 선보일 때만 해도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품질보다는 수익성 강화가 더 중요한 경영 목표가 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 신제품이 나오기 전 한 달 동안 노트7을 최대한 많이 팔아 이익을 내야 한다는 수익 지상주의가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도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계열사를 재편하다 보니 삼성전자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삼성SDI나 삼성전기 등 부품 계열사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계열사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려고 하면 당장 삼성전자에서 '돈 몇푼이나 번다고 그런 곳에 투자하느냐.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식의 냉소적 반응이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한 직원은 "돈 안 되는 계열사는 다 매각하는 상황에서 믿었던 스마트폰 사업까지 초유의 어려움을 겪으니 직원들의 상실감이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힘내자"…재도약 결의도

위기 속에서도 재기 의욕을 다지는 분위기도 있다.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은 11일 노트7 단종 발표 직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모든 고객이 삼성 제품을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밝혀내 품질에 대한 자존심과 신뢰를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는 고 사장을 격려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직원은 "우리 모두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이겨내자"고 했고, 다른 직원은 "경험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마음 아프지만 관계자들이 정말 힘을 내 달라"고 말했다. "단언컨대 내년에는 더 사랑받고 믿음을 주는 갤럭시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삼성에 기대하는 우리 사회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삼성은 품질부터 수익성 향상, 주가 관리 등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고 말했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13/2016101300179.html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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