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도급기업, 노조원·비노조원 격차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청년 취업 장애물
고용안정·높은 근로조건 정규직만 누려
고통은 비정규직·하도급기업에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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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부품 회사인 A사의 생산직 근로자 정현식 씨(56)는 27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 회사 노조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4년이다. 그만큼 회사가 좋다는 얘기다. 임금도 높고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까지 지원될 정도로 복지 수준도 높다.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이는 정씨에게 고민거리는 아들과 딸의 취업 문제다. 

정씨는 "우리 회사를 보면 어렴풋하게 우리 아들딸의 취업 문제 원인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평균 근속연수 24년에 높은 복지 수준을 자랑하는 A사는 10년째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있다. 거기다 최근에는 '정년 연장'을 하기로 해서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신입사원 구경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씨는 "정년 연장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마음 같아서는 정년 연장 하지 말고 젊은 신입직원들을 뽑자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고령화가 되니 노동생산성은 떨어지는데 또 반대로 고용비용은 높아져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버텨오던 회사가 급기야는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다. 

최근 A사는 노조에 간곡한 요청을 했다. 신입 직원을 채용하고 전환 배치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으니 조합원들이 상여금 유보 등 고통 분담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흑자로 전환하면 양보한 부분을 되돌려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노조는 '복지 수준의 후퇴는 있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선진국 대부분의 나라에서 직면하고 있는 일자리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다. 이런 거시적인 문제야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 노동 시장은 이런 문제와 함께 왜곡된 노동 시장의 문제도 일자리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왜곡된 노동 시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 일자리 숨통이 트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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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둔화와 사업구조 변화 등으로 일자리 증가가 제한된 현 상황에서 청년 일자리를 가로막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3대 장애물로 △호봉 중심의 임금 체계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강성 노조로 인한 고용의 경직성이 꼽힌다. 

우선 연공성이 강조되는 호봉 중심의 임금 체계가 청년층 고용을 막고 있다. 2013년 기준 제조업의 근속연수별 임금 격차를 보면 1년차 신입 근로자의 임금을 1이라고 했을 때 30년 근속 근로자의 임금은 3.3배였다. 독일의 1.97배나 프랑스의 1.34배에 비해 지나치게 격차가 큰 셈이다. 이런 격차만 줄여도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종업원 750명을 고용하고 있는 B제지회사는 호봉제였던 임금 체계 개편을 통해 일자리를 늘렸다. B사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근속연수가 늘어나면서 생산성은 오르지 않는데 임금만 가파르게 올랐다"며 "노조도 위기감을 느끼고 임금 체계 개편에 동의해줬다"고 말했다. 직무급제로 전환한 후 신규 채용에 숨통이 트였고 생산성도 좋아졌다. 특히 올해부터는 정년 연장까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임금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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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년 연장은 이루어지고 임금 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들의 추가 부담이 104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신규 채용을 할 여력이 그만큼 사라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원도급 기업과 하도급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과 비노조원 간 격차가 확대되는 것도 청년들의 선택폭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392만원이었고,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134만5000원으로 파악됐다. 

청년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는 '임금 체계 개편' '고용유연성 강화' 등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본인들만 '고용 안정'과 '높은 근로 조건'을 누리고 고통은 비정규직이나 하도급 기업에만 전이하고 있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노동 시장의 문제는 정규직의 '고용 안정성'과 '근로 조건' 두 가지 모두를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만 희생되는 구조에 있다"며 "정규직에게는 고용 안정성을, 비정규직 등 취약 근로자에게는 근로 조건의 실질적 향상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세 가지 모두 노사정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만큼 노동계나 재계 모두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월 내 협상 타결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노동 시장 구조개혁 대타협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기철 기자 / 최승진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22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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