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중물 지원…취업난에 우수인력 창업으로 눈돌려

IT로 쏠렸던 벤처캐피털 자금 바이오·의료분야로 大이동
경제에 악영향 닷컴버블 교훈 삼아 옥석 가리는 작업 필요


◆ 다시 살아나는 벤처 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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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의료기기 벤처기업 힐세리온 사무실에서 류정원 대표(맨 앞)와 직원들이 휴대용 초음파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처음 투자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기업설명회만 10번 넘게 하며 돌아다녔는데 결국 투자를 못하겠다는 곳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에는 회사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투자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지난달 말 산업은행에서 10억원을 투자받은 의료기기 벤처기업 힐세리온 류정원 대표는 달라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201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산업은행 외에 벤처캐피털과 병원으로부터 총 5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제품이 출시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셈이다. 

다른 벤처기업인 와이브레인(대표 윤경식)도 실적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총 4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8월엔 티켓몬스터 투자로 유명한 스톤브릿지캐피탈을 포함해 벤처캐피털 세 곳이 3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2월 카이스트 석·박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이 회사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의료기기 ‘Y밴드’를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적정량의 전기 자극을 흘려보내 뇌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이 제품은 병원에서만 가능했던 뇌질환 치료를 가정에서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벤처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자금과 사람이 벤처기업으로 몰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바이오·엔터테인먼트 ·게임 분야의 창업 초기 기업(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 투자에 1조3845억원이 배정돼 벤처 광풍이 불었던 2000년 이후 가장 액수가 컸다. 올해는 지난 10월 말 현재 이미 1조2295억원을 기록해 연말까지 1조5000억을 무난히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만 해도 전체 투자 규모의 10.6%에 불과했던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가 올해는 총 2215억원으로 18%까지 늘어나 벤처 투자 붐을 새롭게 일으켰다. 영상·공연·음반과 게임 분야 투자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8%, 7.3%에서 올해 15.3%, 9.9%로 증가해 벤처 투자 성황에 기여했다. 

바이오·엔터테인먼트·게임 사업은 한번만 제대로 터지면 투자 비용보다 수십 배가 넘는 수익도 거둘 수 있어 제2 벤처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는다.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은 이들 분야 기업들이 대기업 협력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매출 성장성과 이익률의 기대치가 높다고 설명한다. 게임 분야는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거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밝히고 있어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성공 스토리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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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벤처 투자 활성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정부의 다양한 정책자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하자 각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앞다퉈 벤처기업이나 초기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성장사다리펀드를 내놨으며,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벤처투자도 마중물이 될 자금을 벤처 투자에 집중적으로 쏟고 있다. 대기업 취업난으로 우수 인력들이 창업에 나서거나 스타트업에 속속 유입되는 것도 벤처 붐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자금과 인력이 몰리며 투자처도 확산되는 추세다. 벤처캐피털인 인터베스트는 2~3년 전만 해도 주력 투자처가 IT 분야였다. 회사 투자금의 80% 정도가 IT 쪽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투자액 중 50%가 의료·바이오 분야다. 올해에만 410억원가량을 투자했고, 연말까지 최대 500억원으로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지난해 1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펀드 운용사로 선정돼 바이오·제약회사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기 인터베스트 전무는 “내년에는 1500억원 수준의 신규 제약펀드를 만들어 제약·바이오 관련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 투자해 220%의 수익률을 내며 주목받은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1년에 500억원 정도를 콘텐츠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 중 영화가 50~60%고, 나머지는 게임 드라마 공연 출판 등이다. 신강영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은 “영화 1편당 30% 정도의 예상 수익률을 바탕으로 10억~15억원을 투자하는데 기대 수익률을 훨씬 웃도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옥석 가리기 없이 무작정 벤처 투자만 늘렸다가는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때처럼 오히려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취업이 쉽지 않은 지금의 사회 현실을 감안할 때 창업의 양과 함께 질도 고려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환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수석심사역은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로 창업이 많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창업의 양만큼 질도 높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제관 기자 / 김정범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482336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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