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졸부('졸지에 부자'의 준말로 벼락부자라는 의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이버 공동창업자인 김정호(49) 베어베터 대표입니다. 그는 네이버가 잘돼 큰 돈을 벌었지만, 무조건 창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성격이라면 창업 근처에도 가면 안됩니다. 행복, 가족, 삶의 여유가 더 소중한 사람은 그쪽(창업)으로 가면 인생 우울해집니다. (김정호 대표 페이스북)

꽤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김 대표는 10년간 삼성SDS를 다녔습니다. 사내 벤처였던 네이버에 합류해 공동창업을 했습니다. 초창기 네이버와 한게임의 굵직한 사업을 도맡았고, NHN한게임 대표를 지냈습니다.  


지난 2일 고려대학교 파이빌 준공식에서 강연한 김정호 대표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파이빌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머물수 있는 공간으로, 김 대표가 1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지난 2일 고려대학교 파이빌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강연을 하는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파이빌은 실제 전세계를 돌아다닌 컨테이너 38개를 쌓아 만들었다. 스튜디오, 강당, 아이디어 카페 등이 들어가 있다. 창업 등 구체적인 목적 대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다.(사진 왼쪽)

출처 : 고려대학교 제공 

삼성다니는 동안 월급 모조리 저축

김정호 대표는 1990년 삼성SDS에 입사했습니다. 인력개발팀에서 해외 박사급 인재를 영입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는 10년간 80만~200만원 받던 월급을 전부 저금했다고 합니다. 

모든 월급을 모으는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외국에 '출장가라'고 하면 남들은 싫다고 하는데 저는 좋았어요. 숙박비 받은 걸 아껴서 생활비로 쓸 수 있었거든요. 수당이 나오니까 야근도 좋아하고, 회식도 좋아했어요. '내가 어떻게 삼겹살 먹어보냐' 하면서요.

직장생활 10년간 1억1000만원을 모았습니다. 

부모님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았나요? 

네, 안 받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도 학기중에는 4시간, 방학에는 10시간씩 공사판 노동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식 작업 용어를 쓰다보면 노동일하시는 분들하고 말이 통합니다.

인재개발팀에 근무하면서 당시 삼성SDS 직원이었던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을 만났고, 1999년 사내벤처였던 네이버가 독립할 때 합류했습니다. 

김정호 대표는 대학에서 강연할 때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미래 사회에 나갈 학생들이 취업이나 창업에 관해 깊이 있게 이해해야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제공 

사업가의 기질 따로 있어 

삼성 그만두고 네이버 만들 때 제일 힘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월급을 모아 만든 투자금 1억1000만원 외에는) 한푼도 없었거든요.

김 대표는 한국 나이로 서른 셋에 삼성SDS를 퇴사했습니다. 그즈음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시 애 둘 아빠가 되니 '삶의 의미'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0년간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안하고 살았는데 '이거(네이버) 망하면 안된다'라는 결사적인 저항정신이 생겼습니다.

네이버가 자리잡기까지 그는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집에 들어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내가 속옷을 가져다 주는 생활을 4년 넘게 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이 제 사전에는 없었습니다. 창업 또는 사업을 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창업에 적합한 재능은 어떤 것인가요?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보면 약간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한 달 동안 한가지만 생각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걸 버틸 수 있는 (정신적·물리적) 체력이 가장 필요합니다.

사회에 갓 나온 초년생들이 사업적인 재능이 있는지 알기가 어려울텐데요.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꼭 남의 돈이라서가 아니라 내 돈이어도 이상하게 '구멍'이 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생이라면 동아리 등에서 관리업무를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동아리 총무를 했는데, 40만원 적자인 상태에서 이어받았어요. 나중에 60만원 흑자로 만들어놓고 나왔습니다.

학생 신분에서 돈을 불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기질이 따로 있어야 됩니다. 작은 동아리라도 스폰서 관리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근처 가게 주인나 잘 모르는 선배한테도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엉겨붙기도 해야하고.

인터넷에 쓴 창업에 관한 글이 화제였습니다. 20대 초반 학생들을 만나 창업·취업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요? 

한 번도 사업을 해보지 않은 교수님이나 말만 잘하는 취업 강사, 큰 고민 없이 쓴 신문기사나 책,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하는 선배에게 얻은 정보만으로 창업을 하겠다고 동아리방에 둘러앉아서 '말싸움 배틀'만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도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학교에서 끊임없이 수련하고, 직장에서 치열하게 일을 벌여봐야 합니다. 저는 이걸 '남의 돈으로 해본다'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뿐 아니라 함께 일할 사람들도 '이제 (창업할) 실력이 됐다'고 인정할 때, 작은 분야 그리고 새로운 분야, 자신의 수준보다 낮은 분야에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가 창업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크게 성공하는 창업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경쟁심이 강하고 때로는 잘난 척하기 아주 좋아하고 돈독이 제대로 올라있어야 하고 편집적이고 이기적이고 목표 지향적이고 체력과 정력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수요를 파악하는 본능이 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그리고 학생 때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다른 사람과 합작을 하다가 할 수도 있는데 앞서 말한 스타일이 아닌 진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실력이라는 게 공부 잘 하는 것,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결국 문제해결능력이 실력입니다. 이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에 학생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임직원. 베어베터는 곰 같이 우직한 발달장애인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출처 : 베어베터 홈페이지 

사회적기업가로 되돌아오다 

김정호 대표는 2009년 NHN한게임 대표직을 관두고 여행을 다니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5년 전 25억원을 투자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세우고 공동대표가 됐습니다. 대표지만 월급은 받지 않습니다. 


베어베터는 명함·쿠키·커피 등을 만들고 사내 커피숍을 운영합니다. 발달장애인 직원은 203명입니다. 모두 4대보험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정규직입니다. 이들의 월급은 100여만원으로, 발달장애인이 받는 평균보다 10배 가량 높습니다. 현재 150개 넘는 기업에 납품하고, 2014년부터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뭔가요? 

주변에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에게서 발달장애인 취업률이 약 1%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취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한 8개월 정도 전국 복지관을 돌아다녔습니다. 대부분 발달장애인이 비누 같은 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들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가격도 높아지고요. '왜 굳이 손으로 만들까? 기계를 이용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명함을 찍을 때 발달장애인이 프린터 버튼을 누른다고 출력이 늦게 되거나 안되지 않거든요. 단가가 높아지지도 않고요.

작업 방법을 교육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예를 들어 커피 볶는 작업은 비장애인 바리스타 1명과 발달장애인 22명이 함께 합니다. 바리스타가 커피 볶는 과정을 책임지고, 커피를 나눠 포장·배송하는 업무는 모두 발달장애인이 합니다. 사실 이런 교육은 하나 하나가 어렵습니다. 굉장히 쉬워보이는 작업을 못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고, 반복적으로 교육했습니다.

제품이 잘 나와도 굉장히 새로운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처를 뚫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고용에 관한 제도가 있어 수월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장애인을 일정 규모 이상 고용해야합니다. 이를 어기면 고용부담금을 내야하죠. 대신 기업이 장애인이 생산한 물건을 사면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부담금을 줄여주는 연계고용제도가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베어베터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어베터를 운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정부지원이나 예산을 받지 않겠다, 둘째는 이 사업으로 제가 월급이나 배당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투자하지만 이익을 얻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 대신 베어베터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수익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들이 정규직으로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회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출처: http://1boon.kakao.com/jobsN/583d17bae787d00001668c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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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몰락한 노키아의 빈자리를 작은 창업 기업들이 채운다.’

알토대는 헬싱키공대(1849년 설립), 헬싱키예술디자인대(1871년), 헬싱키경제대(1904년) 3개 대학이 통합해 2010년 출범했다. 6개 단과대학 가운데 경영대와 예술대를 뺀 4개가 이공대학이다. 공학 경영 디자인 등을 융합한 창의적인 교육 과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학부 과정은 핀란드어, 석사 이상의 과정은 주로 영어로 가르친다.

 중국 상하이 출신 멜리사 웡 씨(25·여)는 올 4월 자본금 2만5000유로(약 3100만 원)로 핀란드 에스포에 인테리어 소품 회사 ‘칸사니(Kanssani)’를 세웠다. 사무실은 따로 없다. 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경험이 많은 50대 핀란드인을 동업자로 만났을 뿐이다. 알토대에서 디자인경영 전공 석사과정을 밟는 웡 씨는 “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컨설팅까지 받았다. 북유럽 디자인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해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웡 씨 같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기업 설립을 적극 장려할 정도로 창업 분위기 확산에 열심이다. 규제를 없앴고 노동시장 개혁까지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율은 26%에서 2014년 20%까지 내렸다. 


○ ‘핀란드 패러독스’ 탈출 해법은 창업 

 핀란드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자회사인 BMI리서치에 따르면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향후 10년 동안 1% 안팎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997∼2007년만 해도 연평균 성장률이 4%였다. 

 핀란드의 몰락은 노키아의 추락 때문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4%를 담당했다. ‘노키아=핀란드’였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핀란드 경제도 수렁에 빠졌다. 노키아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전화 부문을 팔았다. 

 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위험했다. 핀란드는 이미 정보통신기술(ICT)에서 최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밀라 에로넨 알토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고도의 ICT 기술력을 기업의 수익 창출로 연결하지 못하는 ‘핀란드 패러독스’가 발생했다”며 “이후 대학들이 창업 교육을 통해 기술을 수익으로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만들며 배우는 디자인팩토리 

알토대 디자인팩토리 실습실에서 한 학생이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절삭공구, 3차원(3D) 프린터, 선반 등을 갖춘 실습실은 24시간 365일 학생들에게 개방된다. 에스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옛 헬싱키공대가 모태(母胎)인 알토대는 기술 융합형 제품 개발을 돕는 정규 교과 과정인 디자인팩토리(Design Factory)로 유명하다. 디자인팩토리에선 공학 디자인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제품 개발과 디자인 경영 등 40여 개의 학과를 뛰어넘는 융합강좌를 선택해 이수한다.

 수업은 대부분 실습으로 이뤄진다. 3, 4번 정도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엔 5∼10명이 한 팀을 이뤄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매달린다.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조언해줄 뿐이다. ‘실천을 통한 배움(learning by doing)’이 알토대의 학풍이다. 티나 툴로스 디자인팩토리 프로젝트 매니저는 “학생들은 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가 제안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환경오염 등 지구상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낸다”며 “과정을 마친 뒤 결과물을 토대로 창업하는 학생도 많다”고 설명했다.

 디자인팩토리 실습실은 말 그대로 창업 공장이었다. 이곳은 9월 방학 중임에도 실습실에 있는 절삭공구와 3차원(3D) 프린터 등으로 시제품을 개발하는 학생이 많았다. 회의실에선 학생들의 토론이 한창이었다. 실습실은 24시간 365일 학생들에게 개방된다. 기계설계 전공인 빌레 쿠코리데스 씨(23)는 “스웨덴 대학생들과 팀을 꾸려 습도 측정 기기를 개발했다. 스웨덴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를, 핀란드 학생들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이라며 “졸업 후 막연히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었는데, 직접 제품을 개발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 10월 13일은 ‘실패의 날’ 

알토대의 창업동아리 알토이에스가 주최한 창업 행사에서 학생들이 기업인과 변호사들의 현장 경험을 듣고 있다. 알토대 학생들은 컨설팅이나 투자자 유치 등 창업에 필요한 업무를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 해결한다. 알토이에스 제공

 알토대에는 알토이에스(AaltoES), 스타트업사우나(Startup Sauna), 슬러시 등 학생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창업 동아리가 학생들의 창업을 돕는다. 알토이에스는 외부 재단의 도움을 받아 대형 창업행사를 연다. 스타트업사우나는 학생들을 기업인들과 연결해 무료 창업 컨설팅을 받도록 돕는다. 슬러시는 학생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동아리다. 카스퍼 수오말라이넨 스타트업사우나 대표(경영학 석사과정)는 “노키아의 몰락 이후 대학에도 창업 붐이 일었다”며 “핀란드는 더 이상 노키아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알토이에스는 실패에 관대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 10월 13일에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 행사를 개최한다. 유명 기업인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실패 경험을 소개하고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털어놓는다. 2011년에는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여기서 실패 경험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핀란드 국민 550만 명 중 4분의 1이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해 행사를 지켜봤다. ‘실패의 날’ 행사는 세계 각국으로 전파돼 올해는 영국 독일 캐나다 스웨덴 등 30개 국가에서 열렸다.  

 칼레 아이로 알토대 벤처프로그램 매니저는 “노키아 몰락 이전까지 핀란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며 “하지만 성공은 여러 실패의 경험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디자인팩토리’ 만든 칼레비 에크만 기계공학과 교수 “창의성 키우려 일단 토론하라 가르쳐”▼ 
  

 ‘디자인팩토리’라는 대박 프로그램을 만든 이는 칼레비 에크만 알토대 기계공학과 교수(사진)다. 20년 전인 1997년 자신의 제품 개발 관련 수업을 확대해 디자인팩토리를 만들었다. 해마다 1200여 명이 참여하는 인기 강좌다. 연세대를 비롯해 미국 필라델피아대, 라트비아 리가공대 등 10여 개 대학에서도 디자인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알토대는 학교본부가 단과대학에 예산을 나눠주고 단과대는 교육 성과가 뛰어난 교수에게 예산을 할당한다. 에크만 교수는 대학 공간을 빌려 대학에서 받아낸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 성과가 없으면 디자인팩토리도 문을 닫아야 한다. 철저하게 경쟁 구조로 운영되는 알토대에서 디자인팩토리 자체가 대표적인 창업 성공 사례인 것이다.

 에크만 교수는 “창업의 핵심은 창의성”이라며 “창의성 향상을 위해 학문 간 융합과 다양한 문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 디자인 엔지니어링 과학이 모두 실용과 연관돼 있습니다. 소비자의 경험이나 습관을 이해하는 데 철학과 심리학 같은 학문도 매우 유용하지요. 다양한 전공을 배우는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고 함께 작업하다 보면 제품 디자인의 핵심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에크만 교수는 창의성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로 비판 문화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일반 기업의 사무실에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며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난받을까 봐 그렇다. 이런 문화가 창의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핀란드에선 어릴 때부터 말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린 강의실에서 생각하기 전에 말하라고 해요. 대기업 인턴십 과정에선 시키는 것만 해야 합니다. 사내 정치를 배울 순 있어도 자신의 가능성을 가늠할 순 없습니다. 여기선 모든 걸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경험하고 실패하도록 기회를 줍니다.” 

에스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61103/81141340/1#csidxe91a5b7d88c58c0bccc8a4fcd3e49d0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61103/81141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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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T창업멘토링센터 센터장으로서 아이템이 다양한 500여 스타트업을 만나 그들의 창업 성공을 돕고 있다. 기술 기반 창업에 직접 도전한 벤처 1세대 최고경영자(CEO) 출신 멘토 37명도 함께하고 있다. 센터를 운영하는 동안 수많은 창업가를 만나면서 평소 느낀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어 본다.

첫째 아이템이 비슷한 스타트업이 너무 많다. 이미 시장에 똑같은 업종이 있는 상황에서 해당 업종 창업은 성공 확률을 떨어뜨린다. 창업에서 벤치마킹이란 카피캣(모방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하다.

눈에 띌 정도로 비슷한 창업이 많은 분야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 헬스케어다.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를 토대로 사용자의 신체 정보를 수집,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셉트다. 그런데 그러한 기기들이 몇 가지 정보 수집에 그치고 있다. 디바이스라는 하드웨어(HW)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데이터 확장성이다. 데이터를 담을 콘텐츠가 없다면 사업 지속성은 사라진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데이터를 활용,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펼칠 역량을 갖추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 자주 보이는 사업 아이템으로는 젊은이에게 패션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다. 헬스클럽을 묶어서 이용권을 공유하고 트레이너가 훈련을 제공하는 헬스장 이용 공유 서비스도 비슷한 창업이 많은 사업 분야다.

둘째 정부 자금 지원 의존도가 너무 높다. 대학생 예비 창업가는 물론 일반 스타트업 대부분이 정부 정책 자금에 의존하다 보니 창업경진대회 상금과 연구개발(R&D)비 등 정부 과제 확보를 위한 제안서 작성에 몰입한다.

대학생 창업가 사업비 조달에서 정부지원금이 84%를 차지한다는 조사가 있다. 여러 대회에서 상 및 상금을 탄 경력과 정부과제 수주 실적이 곧바로 사업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 평가와 실구매자인 소비자의 관심은 많이 다르다. 한 창업 3년차 스타트업의 경우 상품 매출은 뒤로한 채 정부 과제 확보를 위한 제안서만 80개가 넘고, 현재 3~4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고객과 부딪치면서 현장에서 얻은 경험만이 지속 가능한 창업을 보장할 수 있다.

셋째 손쉬운 서비스 창업에 몰린다. 언제부터인가 카페가 젊은이들의 창업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컴퓨터를 통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은 손쉽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창업은 경쟁도 치열하다. 기술 기반 창의융합제품을 개발하는 메이커 제조 창업이 더욱 진작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2018년까지 100만 메이커 배출을 위한 정책 발표는 잘한 일이다. 특히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성과물을 활용한 메이커 창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유명 만화가 이현세씨는 창업가들에게 최근 뜨겁게 뜨고 있는 `웹툰`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삼가라고 충고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힘들지만 꿋꿋이 가다 보면 분명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 해 대학 졸업자 13만명이 취업을 못하고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는 고용 없는 저성장 시대에 허덕이는 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멘토링센터 멘토들은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누구나 맘만 먹으면 도전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곤 한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창업가의 발굴·육성을 위해 멘토링센터가 출범한지 올 9월로 3년째가 된다. 멘토링센터는 지난 3년 동안 총 493명의 창업가를 배출했다. 이 과정에서 법인 설립 233건, 고용 창출 289명, 특허 출원·등록 354건, 투자 유치 462억원 등 상당한 성과도 일궈 냈다. 멘토링센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창업 모범 국가로서 글로벌 시장을 견인하는데 앞장서 나갈 것이다.

최병희 K-ICT창업멘토링센터 센터장phchoi@koef.or.kr


출처: http://www.etnews.com/2016092100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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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공모 - 나는 자영업자다] 편의점 재계약과 함께 열린 '시궁창 인생'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래도 한번 써봅니다.

결혼 후 5년간 직장을 휴직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다가 다기 일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와 경력 단절로 직장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이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고 이래저래 직장의 문턱은 너무 높았지요. 남편의 수입으로 대출금에, 앞으로 들어갈 아이 교육비 등을 생각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남편과 합의 하에 점포 하나를 열고자 3개월을 밤낮으로 시장조사를 했습니다. 본사의 추천도 받아가면서 내 점포 하나 차려보고자 무던히 노력해 편의점을 하나 열었습니다. 


당시 경쟁사였던 □사와의 계약을 추진했지만, 해당 프랜차이즈의 오픈 규정에 미치지 못하는 계약이 무산됐습니다. 부랴부랴 OOO 편의점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예상 매출은 80만 원이었습니다. 오픈 당시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그래, 경력단절 여성이 취직해서 100만~150만 원 받는다는데 이 조건이면 괜찮지 뭐' 하는 마음을 시작했습니다. 

죽어라 일했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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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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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6개월은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 있었어요. 주변에 가로등도 없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지만, 원룸 단지 인근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망을 갖고 죽어라 일했습니다. 그사이 어린 아들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내 점포의 간판 불빛으로 도로가 환해졌습니다. 또 지나가는 차도 많아지고 건물도 하나둘씩 올라가는 호재를 만났습니다. 편의점을 열면서 대출금도 조금씩 갚아나가고, 아이 학원비를 대고 가끔 외식도 즐기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5년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을 할 시점에 일이 터졌습니다. 경쟁사에서 재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건물로 이전 입주하면서 계약하자고 수시로 찾아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시키고자 하는 곳은 턱없이 높은 임대료로 이름 난 곳이었씁니다. 편의점을 죽어라 운영해도 임대료만 내게 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현재 점포를 연 곳에서 재계약을 했습니다. 물론, 경쟁사의 편의점 개점 압박이 있었기에 재계약 조건도 예상했던 것에 비해 반토막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지원금을 받고 재계약을 한 것을 위안 삼으면서 다시 한 번 발돋움을 꿈꿨습니다. 

시궁창 인생의 시작

매출 향상과 재계약 지원금으로 대출금은 갚았지만, 결국 문 앞에 경쟁사 편의점과 제가 계약한 대기업의 마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시궁창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경쟁사 편의점은 그렇다 쳤습니다. 그런데 같은 대기업의 마트 오픈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해당 대기업은 '편의점과 마트는 법인체가 다르다'면서 오픈에 전혀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법을 모르는 저는 '그래, 노력하면 길이 보이겠지!' 하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버티기보다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으니 마이너스를 받아가면서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그냥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재계약하고 벌써 빚이 3000만 원으로 뛰었습니다. 1년에 1500만 원 정도씩 빚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처음 대출을 받아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빚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 전까지 저는 제가 '자영업자'인 줄 알았답니다. '내 점포니까 내 마음대로 융통성 있게 운영하면 잘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다 보니 본사라는 큰 바위가 경쟁점 오픈 만큼이나 무거운 짐이었네요. 

엄청난 위약금에 지쳐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는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돕니다. 그런 뉴스는 왜 이렇게 잘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본사에 내는 로열티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진상 고객들의 갑질에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신고를 밥 먹듯이 합니다. 동종업에 종사하는 경영주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하게 됩니다. 

나는 경영주일까요? 나는 알바일까요? 나는…,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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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사는 사지에서 가게를 열라고 협상해왔습니다. 이럴 거절하고 재계약했더니... 더 어이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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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배우자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됩니다. 점포에서는 알바 눈치도 보게 됩니다. 클레임의 뜻도 모른 채 클레임을 거는 진상 고객의 눈치까지 봅니다. 이 진상 고객들은 때론 성적 농담을 서슴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하면 신고하겠다"라고 말하면 손까지 치켜 올리면서 머리를 때릴 것 같은 동작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하더군요.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제가 자영업자냐고요? 분명 서류를 보면 저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 사업자 등록증을 발부받은 자영업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알바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영업자입니다. 

법이 개선되지 않고 최저생계도 책임져주지 않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포 오픈과 관련한 법적 장치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목숨을 포기하는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도 프랜차이즈 편의점 자영업자를 위한 법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기업들은 자영업자들이 어렵게 일궈놓은 상권에 숟가락, 아니 국자로 이득을 퍼먹고 있습니다. 

우리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37335&isPc=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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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직장 경력이 25년이 넘으니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끼리 모이면 자주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 ‘직장생활이 끝나면 뭘 해야 할까?’이다. 이제 슬슬 조직생활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회사 내의 다양한 부서의 동료들은 비록 현재 같은 직장에 다니고는 있으나 그동안 해왔던 일이나 전공 등이 상이하기에 같은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각자가 생각하는 미래는 서로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IT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들은 어떤 ‘제2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을까?

대세가 치킨집이라지만 그건 너무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이니 관두도록 하자. 그보단 IT 세계에서 반평생을 보낸 것에 걸맞은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술사나 감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개인 자격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아는 선배들 중에 이렇게 기술사 취득 후 조직을 떠나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다. 문제점은 기술사가 따기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분이 컨설턴트의 길을 걷는다. 프리랜서 또는 개인사업자로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강의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IT의 경험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방향이나 업무가 쉽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제한이 있어 오래 하기는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다면 나이를 초월할 수 있으리라.

다음으로는 IT 관련 기술서적을 저술하는 것도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IT 분야에서 필요한 지식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내고 이를 기반으로 강의를 함께하는 것도 조직 생활을 떠난 후 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쓸 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글 쓰는 습관을 꾸준히 길러 놓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경험이 쌓이면 IT 분야 이외의 영역으로 글쓰기를 넓혀 갈 수도 있고 심지어는 소설을 쓸 수도 있다. 얼마 전 영화로까지 나왔던 ‘마션(The Martian)’의 작가인 앤디 위어는 AOL, Palm 그리고 블리자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IT 엔지니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IT 엔지니어 출신의 멋진 소설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길이 있다.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 중에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자바 관련한 전문 프로그램과 강좌를 활발히 여시는 분도 있다. 향후 이런 분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자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직급이 올라 더는 코딩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됐지만 조직을 떠난다면 다시 코딩을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프로그래머로 나이와 관계없이 활동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프로그래머를 미국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많은 IT 고참들이 이런 대열에 합류해 주면 좋겠다. 그런데 일감은 어떻게 구하냐고?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픈소스와 인터넷과 소셜, 앱스토어가 있는 세상에서 실력과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조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듯 조직생활을 하면서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퇴직 후의 길을 미리 정확히 설계하고 준비하긴 어렵다. 하지만 늘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하다 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가능성 중 어느 하나가 길이 될 수도 있고 또 전혀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 그 이후에 필요로 하는 능력은 크게 다를 수 있기에 자신의 능력을 다양하게 확장하려는 노력은 필수라고 생각된다.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내던 능력 있는 분들이 회사를 떠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척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으로는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따라서 작은 것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제2의 인생’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에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봤다.

우선 첫째로 자격증 취득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 직장에서의 경력이 퇴직 후 유용할 수도 있지만 자격증이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늘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조직에서 경력이 쌓여 직급이 오르면 대부분 지시와 의사결정만을 담당하게 되는데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량과 재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로 책을 손에서 놓지 말자. IT 분야는 쉼 없이 변하는 분야이다. 잠시라도 학습을 게을리하면 금세 뒤처지게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경력에서 오는 직관은 보너스로 쳐두자. 넷째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도하자. 조직 내에서는 자신에게 일이 주지만 조직을 떠나면 일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가 일을 찾아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다양한 인간관계다. 마지막으로 기억 상실자가 되어 조직 내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조직 내 위치가 주는 권위와 능력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갓 대학을 졸업했을 때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계급장 떼고 나라는 순수한 자신을 대면할 수 있어야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이 빠르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했다는 유명한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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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알파고처럼…클라우드 컴퓨팅이 기업을 어떻게 바꿀까


■ 아리스타네트웍스 이끈 앤디 벡톨샤임 창업자와 제이슈리 울랄 CEO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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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이 수표는 앤디 벡톨샤임 창업자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써준 수표를 가상으로 만들어본 것이다. 벡톨샤임의 주소로 나와 있는 곳은 시스코 주소지다.
1998년 8월. 스탠퍼드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당시 25세)와 세르게이 브린(당시 24세)은 당시 시스코의 부사장으로 일하던 앤디 벡톨샤임(당시 44세)을 만나 조언을 구한다. 자신들이 학교에서 만든 검색엔진 구글을 운영하기 위해 학교를 관두고 창업을 할지 아니면 학업을 일단 마치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본 것이다. 평소 두 사람과 알고 지내던 벡톨샤임은 학교는 걱정하지 말고 당장 창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10만달러(약 1억1700만원) 수표를 써주면서 이 돈으로 회사를 만들라고 했다. 구글의 첫 투자자가 된 것이다. 이 10만달러 투자의 가치는 2004년 구글 상장 당시에는 주당 85달러로 2억7200만달러(약 3100억원)로 늘어났고 2010년에는 17억달러(약 2조원)까지 늘어난다. 1만7000배 늘어난 것이다. 

두 사람이 벡톨샤임을 찾은 것은 그가 당시에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통해 연쇄적으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 다른 3명의 창업자와 함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이하 선마이크로)를 창업한다. 선마이크로는 1986년 성공적으로 기업을 공개하고 벡톨샤임은 첫 번째 창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1995년 선마이크로를 떠나 그레나이트시스템을 창업한다. 이 회사는 1996년 시스코에 2억2000만달러에 인수되고 벡톨샤임은 시스코의 부사장이 된다. 2001년에 그는 키알리아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이 회사가 다시 선마이크로에 인수되면서 그는 10여 년 만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 복귀한다. 하지만 그는 또 아리스타네트웍스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2008년에는 선마이크로를 떠나 이 회사의 수석개발임원(CDO)으로 이직한다. 아리스타네트웍스는 2014년 6월 성공적으로 기업공개를 마쳐 현재 기업가치 50억달러(약 5조9000억원)의 회사가 됐다. 그사이 그가 2010년 창업한 DSSD라는 스타트업도 2014년 5월 EMC에 인수되면서 그가 지금까지 창업한 5개 회사는 모두 성공을 거뒀다.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는 이달 초 모나코에서 열린 EY최우수기업가상 시상식에서 미국 대표로 참석한 벡톨샤임 아리스타네트웍스 창업자 겸 최고개발책임자(CDO)를 한국 언론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에는 제이슈리 울랄 아리스타네트웍스 CEO도 함께했다. 벡톨샤임 창업자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풀고 싶어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비전과 아이디어' '회사를 만들고 인재를 모으는 능력' '제품을 판매하고 돈을 버는 경영능력'의 삼박자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이 중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가 울랄 CEO를 영입했던 것처럼 외부의 인재를 쓰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이 앞으로 기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innovation)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래는 두 사람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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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앤디 벡톨샤임 아리스타네트웍스 창업자(왼쪽 첫째)가 제이슈리 울랄 CEO(왼쪽 둘째)와 함께 모나코에서 열린 EY최우수기업가상 행사에서 언론사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EY한영]
―당신은 다섯 개의 회사를 창업해서 모두 성공시켰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도 흔하지 않은 것인데 무엇이 성공요인인가. 

 앤디 벡톨샤임 창업자(이하 앤디) =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풀고 싶어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모든 스타트업은 기회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있고 나의 제품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당신은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직접 실행할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사업적인 성공을 거둬야 한다. 이런 세 가지는 모두 연결돼 있는데 모두 성공해야 한다. 회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이는 제각각 다른 능력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요약하자면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시장에서 좋은 사업기회를 발견했고 과거 몸담았던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을 고용해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고 결국 큰 회사에 이를 매각했다. 이 세 가지는 한번에 갖기는 어려운 것이다. 

 2009년 과거 인터뷰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이 향후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실제로 가장 중요한 서비스가 됐다. 앞으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어떻게 보는가. 

 앤디 = 우리는 여전히 클라우드로 할 수 있는 것의 초기 단계에 있다. 알파고가 좋은 예다. 머신러닝과 AI(인공지능)를 이용해 5~6년 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알파고가 탄생했다. 머신러닝과 AI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컴퓨터와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과거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 인식, 감정 인식, 번역 등을 컴퓨터도 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시장 전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향후 가장 중요한 혁신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들을 위해 클라우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회사다.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는 검색, 소셜네트워크, AI 등을 하는 회사를 말한다. 이와 같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의해서 소프트웨어 기술의 진화와 발달 속도는 비할 데가 없을(unparalleled)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창업했을 때는 인터넷이 이처럼 발전할 줄은 몰랐을 것 같다. 기술의 빠른 발달로 궁극적으로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앤디 = 1980년대 선마이크로가 출발했을때 네트워크 기술의 주된 관심사는 지역(Local) 네트워크였다. 한 빌딩의 여러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1990년대에는 전 세계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졌고 이는 엄청난 변화였다. 

특이점이란 컴퓨터가 자기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되거나 사람보다 더 똑똑해지는 것을 말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기 전 유럽챔피언을 꺾었다. 그리고 구글은 알파고가 스스로 대국을 두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특수한 분야에만 국한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골프를 잘 칠 수는 있다. 빅데이터 분석도 그럴 수 있다. 빅데이터 분석의 경우 훌륭한 데이터 분석가가 없다는 것이 주된 문제였다. 주어진 데이터와 패턴을 어떻게 잘 분석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는 사람보다 데이터 패턴 분석을 훨씬 잘한다. 이와 같은 분야에서는 점점 더 컴퓨터가 인간보다 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감정과 같은 것을 컴퓨터가 가진다는 것은 아니고 순수한 데이터 분석에만 국한해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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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구글의 최초 투자자였다. 당신의 투자가 구글의 성공에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하나. 

 앤디 = 구글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스타트업 중 가장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진 곳이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의 양방향적인(bidirectional)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질문을 입력하면 구글 컴퓨터는 당신이 뭘 찾는지를 안다. 그러면 그와 관련된 광고를 (검색결과에 연동해)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검색광고는 과거 배너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또한 이런 검색광고는 광고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구글은 디지털시대에 가장 좋은 광고 플랫폼으로 계속 남아 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구글이 창업하기 전부터도 창업자들과 알고 지냈다. 그들의 아이디어에 나도 매료됐고 그들이 창업한다고 했을 때 졸업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회사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회사를 위해 10만달러 수표를 써서 줬다.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구글의 지금 성공이 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팀을 만들고 실행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도왔다는 점에서는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큰 스타트업은 아니고 주로 초기 상태의 스타트업들이다. 

 여전히 독일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분야의 강국이지만 IT(정보기술) 분야에서는 그 정도 수준의 강국은 아니다. 베를린에 많은 스타트업이 생겼지만 독일이 이 분야에서 약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앤디 = 베를린에 많은 스타트업이 생겼다. 하지만 독일에 있는 벤처캐피털의 숫자는 미국의 2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회사도 있지만 많지 않다. 독일에 좋은 인재가 없어서 IT가 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기회는 제한적이다. 실리콘밸리나 미국에서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내수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독일은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성공의 가능성이 더 낮기 때문이다. 

 아리스타네트웍스는 신생업체로 기존 네트워크 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기존 회사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제이슈리 울랄 CEO(이하 울랄) = 기존 회사들과 우리 사이에 3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는 비전이다. 앤디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놨다. 둘째는 복잡성이다. 지금의 네트워크 서버는 확장을 하기위해서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파괴하는 혁신성이다. 우리의 경쟁사인 시스코와 주니퍼네트웍스 모두 각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하지만 IT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필요한 서버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테라바이트 단위를 넘어 페타바이트 단위의 저장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수요에도 잘 대응할 수 있다. 

 무섭게 부상하는 중국 화웨이에 대한 생각은. 

 울랄 = 화웨이는 강력한 경쟁자다. 하지만 우리의 주력시장인 미국시장에는 강하지 않다. 반면 우리가 아직 적극적이지 않은 중국에서의 영향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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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앤디 벡톨샤임 아리스타네트웍스 창업자 겸 최고개발책임자(왼쪽)가 제이슈리 울랄 CEO와 함께 모나코에서 열린 EY최우수기업가상 행사에서 미국 대표상을 수상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EY한영]
 많은 기업들이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 시장을 파괴하려고 할 때 이를 인수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이나 와츠앱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리스타네트웍스도 유사한 제안을 받았을 것 같은데 왜 인수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공개를 선택했나. 

 울랄 = 대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단순히 파괴적 혁신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을 인수해서 성장을 하기 위해서인데 우리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 고객들은 아리스타네트웍스가 큰 대기업에 인수되기보다는 독립적인 회사로 남기를 원한다. 인수 제안은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앤디 벡톨샤임 창업자는 기업공개와 회사매각을 모두 경험했다. 창업하는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나. 

 앤디 = 이는 케이스마다 다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시장이라면 기업을 파는 것이 낫다. 반면 그렇지 않으면 기업공개를 거쳐 성장하는 것이 낫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성장을 위해서는 IPO를 하는 쪽이 나은 기업이었다. 상장 이후 정말 빠르게 고속성장을 했다(선마이크로는 2010년에 오라클에 인수돼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타네트웍스도 선마이크로처럼 유기적인 성장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벡톨샤임 창업자는 독일 출신이며 울랄 CEO는 인도 출신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미국에서 살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 왜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여든다고 생각하나. 

 앤디 =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창업을 하기 좋은 곳이다. 또한 외국인들이 와서 일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기업공개를 한 스타트업의 3분의 1이 외국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는 제조업 회사들이 공장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옮기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에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 파리로 가야 했다. 또한 영화를 만들려면 할리우드에 가야 했다. 실리콘밸리에 테크 기업들이 몰리는 것은 이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울랄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미국이 아니라 세계 하이테크의 수도다. 실리콘밸리의 개방성, 창조성을 비롯해 이곳의 코스모폴리탄 문화가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여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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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랄 CEO는 테크 업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여성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여성 직원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업계에 비해서 훨씬 낮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여성에 대한 이공계 교육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울랄 = 아리스타네트웍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례적인 기업이다. 여성 CEO와 CFO가 있고 이사회에도 나를 포함해 여성이 두 명 있다. 하지만 IT업계 전반적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두 딸이 있는데 모두 수학과 과학을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내성적으로 변하는 때가 있었다. 여성들에게 기술을 접하게 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최근에 시스코가 아리스타네트웍스에 특허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화웨이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기업들 간 소송에 대한 생각은. 

 울랄 = 시스코와 소송 중이라 구체적 사안을 언급하기 어렵다. 

 앤디 = 네트워킹 분야는 오픈 스탠더드(기술 표준이 문서로 공개돼 있어 사용이 자유로운 것)가 지배적이다. 시스코가 우리가 도용했다고 주장하는 패턴은 업계에서는 다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실망스럽다. 

 아리스타네트웍스는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데 한국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울랄 = 아리스타는 미국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는 이제 막 진출했다. 그중 한국은 우리가 좋게 보고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장이다. 앞선 기술을 빨리 도입하는 문화가 있다. 나는 CEO가 된 이후 3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중에는 8시간만 머문 적도 있다.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을 알려달라. 

 앤디 = 나도 한국에 몇 차례 방문했는데 모든 게 새롭게 만들어진 환경과 깨끗한 도로가 인상적이었다. 스모그가 너무 심했지만 중국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들었다. 한국을 잘 모르지만 미래가 밝은 국가다. 

 울랄 = 테크 기업, 자동차 기업, 게임 기업 등을 보유한 한국은 혁신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해서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 <용어 설명> 

▷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 대용량 서버에 정보를 저장해 놓고 언제 어디서나 불러다 쓸 수 있게 해주는 기술. 

[모나코 = 이덕주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452637&year=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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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하고 창업하려는 한국 청년에게 던지는 김범수의 고언


■ EY Entrepreneur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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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과 한게임을 창업해 한국 인터넷 업계에서 '신화'로 불리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50·사진)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앞서나가는 것은 기업이고, 가장 느린 것은 교육"이라며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와 같은 교육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창업도 일자리도 모두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글로벌 회계법인 EY가 모나코에서 개최한 'EY최우수기업가상'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자리에서 매일경제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평소 그의 생각을 털어놨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해왔지만 한국 EY최우수기업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우리 교육과 젊은이들의 기업가정신을 위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처럼 수능과 연결된 교육을 받아서는 (한국에서) 창업하겠다는 마인드가 생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좋은 대학=안정적 직장'의 성공 공식이 이제는 무너졌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예전 같은 고속성장 시대에는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 공식이었다"며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들어가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다행히 최근 알파고 충격으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알파고 때문에 부모들도 10~20년 후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더 이상 앞만 보는 교육이 아니라) 이제는 옆을 보고 (해답을 스스로) 물어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의 창업 열풍에 대해선 우려를 드러냈다. 오히려 "20대일 때는 창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의장은 "작은 벤처에 들어가서 경험을 하고 미국보다 5~6년 늦게 창업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한데 지금 교육과정에서는 이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교육과정과 현실의 괴리를 '열심히 축구 경기를 준비한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야구장으로 바뀐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김 의장은 지난달 총장으로 부임한 경기도 스타트업캠퍼스를 통해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내볼 생각이다. 

그는 "내가 (대한민국) 교육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은 없다. 하지만 혁신가들을 불러 네트워킹을 시키고 빨리 (새로운 모델로) 넘어갈 수 있도록 가속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캠퍼스를 통해 "정규직(직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업(業)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물론 업을 찾을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교육하겠다"고 설명했다. 

[모나코 = 이덕주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420457&year=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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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걱정이 많아지는 노후. 하지만 매일 조금씩만 투자한다면 그 불안감을 깨끗이 지워낼 수 있는데요. 막막한 퇴직 후의 삶을 안정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좋은 노후 대비법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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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시가 넘은 시간, 쓰레기봉투를 들고 김장수 씨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풍경입니다. 늘 각 잡힌 제복을 입고 어깨를 쭉 펴고 다니던 그였는데,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이런 신세로 전락할 줄이야 한창 재미있게 TV를 보다가 쓰레기 좀 버리고 오라는 아내의 말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섭니다. 괜스레 다퉈봐야 본인만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 평균수명으로 봐도 30년은 더 살아야 할 텐데….’ 김장수 씨는 한숨을 내쉬며 미리 퇴직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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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이 같은 후회를 하는 사람이 어디 김장수 씨뿐일까요? 퇴직이 남의 일 같이 느껴져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허송세월 하다 보니 퇴직해있더라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퇴근 후 2시간>의 저자 정기룡 씨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현역시절부터 퇴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군분투 끝에 성공적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정씨에게서 현직에서 시작하는 퇴직 준비의 노하우를 들어봤습니다.


퇴직 D-5, 퇴근 후 2시간, 나를 위해 투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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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까지 남은 시간 5,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얼마만큼 알차게 보내느냐가 퇴직 이후의 삶을 결정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떻게든 현역으로의 삶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현역이란 정년퇴직 이전만큼 많은 보수를 받고, 대단한 직책을 가진 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돈을 버는데 그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돈을 버는 시간 동안 돈을 쓰지 않는 것까지 계산하면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퇴직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더 일찍 준비한다면 좋겠지만, 5년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먼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 직장의 특징을 살려 전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라면 경비지도사 자격증을, 은행에서 근무했다면 공인중개사 손해사정인 교육을 받는 등 현재 업무와 연관된 일을 찾는 것입니다. 여의치 않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일을 배워보는 것도 좋습니다. 대인 관계가 좋다면 상담을 공부해볼 수도 있고,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해설가를 준비해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현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퇴직이 두렵다면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런 다음 퇴근 후 2시간, 나를 위해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회사 상사나 부하직원 뒷담화하는데 시간을 버리지 마세요. 수다를 떨고 싶다면 차라리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낫습니다. 동호회에 가입해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거나 낯선 지역에 가서 호기심을 자극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어떤 일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세요. 당장 노후도 걱정되고, 생활비도 빠듯한데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에게 투자해서 5, 10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노후준비입니다. 퇴근 후 2시간만 잘 활용해도 더 많은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퇴직 D-3, 돈돈돈, 스트레스를 버리고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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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입니다. 한 번쯤 자산을 정리하고 계획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할지, 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노후 소득으로 마련한 금액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꼼꼼히 계산해봐야 합니다.

 

우선, 퇴직 이후 기본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금액을 계산해보시길 바랍니다. 아파트 관리비, 각종 공과금, 식비, 자녀들 학비, 개인 용돈까지 매달 지출해야 할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다음으로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매달 고정적으로 받게 될 수입을 계산하시길 바랍니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올 수입과 지출이 엇비슷하다고 해도 병원비, 경조사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부분이 퇴직 후 연금을 받을 때까지의 공백 기간입니다. 개인연금의 경우 수령 시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퇴직 후 바로 받을 수도 있지만, 연금의 특성상 수령 시기를 늦출수록 수령액이 늘어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수령 시기를 늦추는 것이 유리합니다.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1953~1956년생은 만 61, 1957~1960년생은 만 62, 1961~1964년생은 만 63, 1965~1968년생은 만 64, 1969년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퇴직 후 짧게는 5, 길게는 10년 정도 소득이 없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야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 노후 생활비를 미리 계산해봐야 하는 이유는 퇴직 이후 몇 년 정도 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지 따져보기 위함입니다. 현실적으로 소득이 없어도 되는 상황인지,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얼마를 벌어야 생활이 가능한지 미리 계산해봐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퇴직 D-1, 구직 활동 3종 세트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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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실전입니다. 정년퇴직까지 1년 정도 남았다면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취업준비생들처럼 재취업에도 나름의 전략과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익히고, 면접 준비도 해야 합니다. 한 직장에 오랫동안 근무한 중장년층의 경우 이력서를 써 본지도, 면접을 본지도 너무 오래돼서 감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재취업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보시길 바랍니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서울인생이모작센터,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취업지원센터 등에 직접 방문하거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취업 교육프로그램에서는 이력서 작성 방법, 면접 모의고사, 좋은 이미지 만드는 방법 등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합니다. 또한, 대부분 직업상담사가 상주해 있어 자신에게 맞는 직업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업과 연계해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재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무료로 취득할 수 있는 방법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재취업을 위해서는 구직 활동 3종 세트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력서 작성입니다. 이력서를 작성할 때는 회사의 구인조건이나 요구 사항에 적합하도록 작성해야 합니다. 분야와 맡았던 업무, 회사명, 근무 기간 등을 분류해서 적고, 지원 업무와 직접 관련된 경력이 없다면 업무와 연관이 있는 다른 교육 경험이나 팀 프로젝트, 사내 활동, 외부 활동 등을 강조합니다. 지원한 분야의 일과 자신이 과거에 이뤄낸 성취 결과를 강조해서 적으면 유리합니다.


구직사이트도 적극 활용 하시길 바랍니다. 잡코리아, 사람인, 워크넷, 리크루트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 업데이트된 자료를 수시로 확인하고, 일자리희망센터에 직접 방문해 오프라인 정보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경력이 뛰어나거나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전문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채용 박람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세요. 구직자가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이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장년 취업 교육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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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취업아카데미

대학이나 연구소 등 각 기관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위탁을 받아 중장년을 대상으로 교육합니다. ‘생애 재설계 멘토링’ ‘기본역량 강화교육’ ‘기업맞춤형 취업훈련 등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됩니다. 지난해까지는 만 45세 이상만 지원할 수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만 40세 이상이면 지원이 가능합니다 

 

● 중장년희망일자리센터

중장년층의 성공적인 재취업과 제2의 인생설계를 지원하기 위해 구직활동 전략과 인생설계, 이력서 작성방법 등의 내용으로 진행됩니다.  40세 이상 중장년층 퇴직(예정) 구직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며, 참여자에게는 구직 상담·중장년층 맞춤 구직스킬 향상·경력 관리 팁을 제공합니다. 

 

●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

은퇴 후 인생 설계, 사회 공헌, 재능 나눔, 창업, 재취업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합니다. 재무, 여가, 건강 관리 등 기본 프로그램을 4주에 걸쳐 운영하며 이후 개인별 맞춤 심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취업 알선 전담팀에서는 구인 기업을 발굴하고 매칭 지원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재취업교육과 창업교육이 따로 진행된다. 시시때때로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신청해 들으면 됩니다. 35세 이하의 청년을 위한 신규입직 프로그램,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프로그램, 30~50세를 위한 이·전직 프로그램, 51세 이상을 위한 재진입 장년 프로그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노후 준비는 예상 퇴직 5년 전부터 순차적으로 준비해도 그다지 늦지 않습니다하루에 2시간씩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데요막연한 걱정은 접어두고실천으로 돌입하시기 바랍니다미리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더욱 안정적이고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설명: https://www.smartlifedesign.co.kr/cms/lifedesign/wealth/income/__icsFiles/artimage/2015/01/12/creg_11/sld_stamp.jpg

 

<출처 : 라이프디자인, 2015 5월호>


출처: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996630&memberNo=15194788&clip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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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할 때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만두는 게 나을까? 경영 연구자 조지프 라피(Joseph Raffiee)와 지에 펭(Jie Feng)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기업가가 된 20대, 30대, 40대, 50대 사람들로 구성된 전국적으로 대표성 있는 집단 5,000명을 추적했다.

조사 결과 재정적인 필요는 그들이 직장이 계속 다녀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또 높은 가계소득이나 고액 연봉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전념할 가능성을 높여주지도 낮춰주지도 않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창업에 전념한 사람들은 대단한 자신감을 지닌 위험 감수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창업을 함으로써 실패에 대비한 기업가들의 경우는 훨씬 위험 회피적이었고,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전념한 사람들이 분명히 유리할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다. 직장을 계속 다닌 창업가들이 실패할 확률은 직장을 그만둔 창업가들이 실패할 확률보다 33%나 낮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위험을 대하는 기질과 관계가 있다. 창업가가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고 사업 구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업이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는 도박꾼 기질이라면 그 창업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업이 있으면 창업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데 성공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하며 집중적인 노력 없이는 기업이 번창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안정적인 위험분산 포트폴리오가 지닌 핵심적인 장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한 분야에서 안정감을 확보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자유롭게 독창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어설프게 쓴 책을 내거나 조잡하게 만든 예술품을 판다는 중압감이나, 아무도 시도해본 적 없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 목록에 오른 기업들을 운영하는 기업가들은 창업한 뒤에도 계속 직장에 다녔다. 전직 육상 선수였던 필 나이트(Phil knight) 나이키 공동 창업자는 1964년에 자동차 트렁크에 러닝슈즈를 싣고 다니면서 팔기 시작했지만, 1969년까지 본업인 회계사 일을 계속했다. 애플 I(Apple I) 컴퓨터를 발명한 후 스티브 워즈니악은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 창업했지만, 1977년까지 본래 다니던 직장인 휴렛팩커드에서 엔지니어로 계속 일했다.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는 처음에 취미 삼아 이베이(eBay)를 창업했는데, 창업 후에도 아홉 달 동안 계속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온라인 시장에서 얻은 수입이 월급보다 많아지고 나서야 직장을 그만두었다.

위험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적당한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친 채 계속 활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공한 창업자들은 한 분야에서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다른 분야에서는 극도로 신중을 기함으로써 위험을 상쇄한다는 뜻이다.

*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에서 펴낸 애덤 그랜트(Adam Grant)의 《오리지널스》의 내용 일부를 요약, 재정리했습니다. 이 내용과 관련하여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참고바랍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ksc12545/22062502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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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커뮤니티 KLDP에 올라온 글입니다. 

 

"대학졸업후에 국내 D모 대기업의 입사하여 3년만에 IMF후 계열사 파산하여 정리해고.. 그리고 IT분야의 공부하여 JAVA 프로그래머로 이제 10년째.. 휴..이제 40넘어가니.. 갈데가 없군요... 모아둔 돈으로 치킨집이나 해야하나... 하지만, 내안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은 끓어오르는데... 에고... 젊은 후배님들.. 젊을때 열심히 개발하시길... 나이들면 하고싶어도 할곳이 없군요"

 

여기에 많은 분들이 리플을 달았는데요. 개인적으로 너무 유익한 말과 가르침이 많아 혼자 보기에 아까워서 정리 및 공유해봅니다.

 

 

 

"며칠전에 PD수첩보니까 40대에 직장그만두고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려고 하시는 분들의 사연이 소개가 되었었습니다. BBQ 치킨, 파리바게트,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등등의 소위 유통 대기업의 체인점 창업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아주 심각하던걸요.. 


겉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속빈 강정이었습니다. 대기업들은 창업주들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갑을관계보다 더 하더군요. 대표적 착취사례가 정기 리모델링 계약조건이예요. 


리모델링 사업을 대기업이 3자에 사업권을 주는데 3자 사업자로부터 커미션을 대단히 챙겨먹고 있었습니다. 창업주 사장님들은 5년동안 벌어서 리모델링 사업에 퍼주는데 돈 다 쓰시고, 한달 평균 순수익 100 에서 200 정도 얻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방송 보니까 체인점 사업 할게 못된다 싶더라구요.. 


그나마 직원을 최대한 고용 안하고 사장님이 직접 일을 하는 경우의 얘기였습니다. 근무는 회사원들 평균 근로시간을 훨씬 상회하더라구요. 주 7일 근무에 빨간날은 모두 영업을 해야 합니다. 이것도 계약조건.."

 

 

 

"kldp 구인란에서도 나이제한 없음/학력제한 없음/ .. 성별제한 없음 이란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회사에도 최근 지원해보았으나.. 결국 돌아오는건 역시나 예상대로... 나이가 팀장보다 많아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뭐 이력서 내기전에 나이문제를 물어본것이오니 결국 나이제한이 있음 으로 귀결되더군요.. 제가 지원한 중소벤처도 그러한데.. 대기업은 사실 불가능입니다.. 아주 특별한 능력? 이 있으면 모를까요.. 근데 그것도 사실 우리나라 기업환경에서는 쓸데가 없습니다.. 질이 아니라 인력의 양으로 거의 커버가 되거든요"

 

 

 

"나이 40에 맞는 능력을 갖추셨다면... 이런 고민을 할 이유가 없겠죠 나이 40이면 자기자신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입니다. 근데 젊은 사람들 몸값으로는 못다니겠고 , 40대에 맞는 취업자린 없으시다면 ... 뭔가 님에게 문제가 있는겁니다 나이 39에 게임 신입으로 들어가 프로그래밍 하시던분이 생각나는군요"

 

 

 

"님... 나이 40넘어보시고 그런 얘길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저도 30대까지만 해도 패기넘치고 40넘어도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느꼈습니다.. 이 땅의 40대 아버지들의 어깨의 짐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학부형으로 애 둘키우고 가장노릇한번 해보시고도 그런얘기 하시는거면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 중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서울대를 꿈 꿉니다. 연고대는 서울대를 못가면 가는 대학이라고 생각하죠. 그들은 재수생이나 본인들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죠


얼마나 공부를 안했으면 재수를 하거나 그런 대학에 갔을까하고 생각하죠. 그러길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고 핀잔하겠죠. 


고등학생들은 다 공부만 해야 하고 공부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고등학생이 되면 열심히 공부해서 그에 맞는 결과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보면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많은 대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청년실업자들을 보면서 혹은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학교 다니면서 얼마나 공부 안하고 자기계발을 안했으면 취직도 못하거나 그런 회사에 다닐까라고 핀잔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20대 때는 쉽게 30대를 비웃고 30대는 쉽게 40대를 비웃을 것입니다. 열심히만 공부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서울대를 못갔다고 선배들을 비난하는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의 비난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사실이니까요"

 

 

 

"30대 후반까지도 잘 모를겁니다. 현실을.. 국내 기업, 조직에서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 아마 '나이'일겁니다. 대기업은 더 심하죠. (나이 많으면 입사 신청하지 마십시요.. 정신건강상 좋을겁니다.. 저도 대기업 출신입니다..)


글쎄요.. 40넘어서는 거의 운으로 앞으로 10년이 결정된다고 보는데요.. 실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력... 실력.. 젊은 친구들은 입에 달고 다니는데요..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해 줄 시장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기때문에 실력으로 뭔가 돌파구를 찾으시려는 분들은 다른 방법을 찾으시는게 좋을겁니다. 정확하게는 이런 '실력'이라는 정성적인 entity를 정량적으로 표현해 보자는 시도 조차 아예 없다고 보시는 게 맞을겁니다. 


이런 '평가'의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히 주관적이기때문에 '운'이라고 표현한겁니다. 특히 타인에 대해서는 주관적이다 못해 가혹하죠.. 저 같은 경우에 중소기업에 일단 자리를 잡았습니다만..


연봉이 대단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빼고는 그럭저럭 견디고 있습니다. 목표는 빨리 은퇴해서 조용히 사는 것인데요 .. 현실이 제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고 있질 않군요.. 아! 오해하시지 마시길.. 저 실력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ㅎㅎㅎ"

 

 

 

"가끔씩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지? 하고 저한테 물어 봅니다. 나만 바라보는 두 딸과 아내가 없에 있어서 힘이 듭니다. 


후배들에게 가끔씩 얘기합니다. '지금 아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물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셔서 항상 같이 지내셨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 부모님은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나름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20 대 중후반때 처절하게 준비한 결과물인 듯 합니다. 


운도 포함되어 있고요. 하지만, 이글 제목과 댓글에서 40 대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이제 다음 10년을 천천히 준비해야 될 듯 합니다. 통닭집은 저한테는 힘들고, 일반음식점이나 문구점을 개업할 수도...


오른쪽 프로필 사진은 제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유중의 하나인 딸입니다. 객관적으로 너무 귀엽습니다. (지금까지는)"

 

 

 

"29 살에 이쪽에 발을 들여 놓아서... IMF 지나고 얼마 안되서 결혼하고... 결혼 반년만에 월급 밀리고... 다니던 회사 문닫고 나오고... 


2002년 월드컵을 마누라 출근 시키고 집에서 혼자 보면서 점심에는 앞집 아줌마와 마주치지 않으려 몰래 짜장면 시켜먹고... 그후로 세번을 이직하면서... 이제 저도 40이 훌쩍 넘었네요..


현재 다니는 회사는 연구소장이 저보다 한 살 어리네요...물론 연구소장은 코딩을 안합니다. 저는 코딩을 하지요. 제품의 핵심 엔진을 공개소스 (많이) 안쓰고 2년만에 새로 만들어서 제품을 팔고 있지요...


다른 직원들은 그거 손 안대려고...서로 안 맡을려고...눈치 봅니다. 그런데 저는 왜 항상 불안하지요... 언제 짤릴까... 여기서 그만 두면 옮길 회사가 있기는 한건가... 이 회사가 상장을 준비하는데... 


상장하고 팔리면 어떻하지... 그때가서 나 개발 열심히 했으니... 나 짤르지 말아줘... 할수도 없고... 여기서 열심히 개발 하면서 익힌 기술이 다른 분야에서는 필요한 기술이 맞는가???"

 

 

 

"생산성이 안되면 월급을 줄이더라도 하시던가 해야죠. 공무원입니까? 자신만의 따라올수 없는 경륜을 보일만한게 없으면 20대 젊은 사람과 생산성 차이도 없는데 월급은 5할을 더 받아야 한다면 , 그건 공무원밖에 할게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직업이든 다 똑같아요 IT만 그런거 아닙니다


아니 IT가 그나마 가장 나은편이죠 , 그나마 기술이라는게 있으니까 기술직에서 남들보다 10년이상 더 쌓은 경력으로도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고 월급은 훨씬 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IT의 어느직업이든 환영 받지 못합니다. 


설사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리더로 능력이 뛰어나면 그것으로도 충분할순 있지요"

 

 

 

"40대에 일감이 없어지는건 생산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랍니다. 룰없이 대충 뭉게고 나이로 삐대는 조직관리 분위기상 젊은 팀장이나 pm들이 불편해해서 그렇죠.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을 팀장이나 pm으로 앉히면 인건비 많이 나가니까 그건 또 안하는 거고요.


그리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월급을 줄일 수 있는 사회는 노후나 자녀양육에 대한 사회보장이 되어있는 사회입니다. 가장 한명의 월급에 대다수 가정의 노후와 자녀양육이 걸려있는 한국사회에서 호봉제에 대한 공격은 결국 미래를 파괴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이신지 모르겠지만 한국같은 환경에서 IT에서 10년간 일해봐야 차별성 없습니다. 지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경험이 많아지고 팀원들이 존경하고 이 쓰레드에서 그런 차별성 얘기하는게 아니잖아요. 


회사가 각별히 신경써 줄 정도의 이윤을 창출하고 그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경영진에게 알려낼 수 있는냐.. 제 생각은 엔지니어로서는 불가능하다.


리더로서의 뛰어난 능력... 엔지니어 10년하면 리더쉽이 생길 것 같으세요? 안생기죠. 오히려 그렇게 발담그면 그냥 팀관리 찔끔, 제안서 찔끔, 어 연구개발찔끔... 마흔에 생산성 떨어지는 사람되기 딱좋죠."

 

 

 

"귀한 의견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40 넘으셨습니까? 글타래에서 몇번 이야기 나왔듯이 30 대가 40 대를 바라보는것과 40 대가 자신을 보는것에는 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있습니다.


법정스님께는 구제해야 하는 많은 중생들이 있지만, 평범한 40 대의 가장에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크고 있는 자식들과, 자식들을 돌보느라 힘쓰는 배우자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열반하신다 해도 법정스님의 말씀을 영원히 남아 중생들을 인도 할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가장이 실직하거나, 큰 병이 걸리기라도 하면, 본인의 불행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게 됩니다.


대부분은 노후나 갑작스런 질병, 사고에 대한 대비가 없을 뿐더러, 대부분 왠만큼의 빚을 안고 살게 마련입니다. 직장과 사회에서는 이미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있는 만큼 그에 맞는 대우를 받겠지만, 그만큼 따라오는 책임과 부담도 큽니다. 


이 와중에 부모님들은 벌써 돌아가셨거나 크게 아프시거나 하십니다. 세월이 가면서 이 모든것들이 40 대 가장의 어깨위에 하나씩 하나씩 소리없이 짐으로 올려집니다.


그런데 마침 생물학적으로 40 - 41 세가 되면 인간의 신체가 급격히 (이 '급격히'가 얼마나 급격한지 30 대이신분들은 모릅니다) 노화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던 지병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덧붙혀 체력도 급격히 쇠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불규칙한 식사와 음주, 스트레스 등으로 망가진 위장때문에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젊었을때 막연히 하던 '열심히 살면 어떻게 되겠지' 생각이 이제는 '열심히 살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안이 있는것도 아니죠. 더 물러설데도 없쟎습니까? 이 상황에서 열정이 해결해 줄까요?"

 

 

 

"30대 말에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중급/고급/특급 식으로 나이와 경력에 맞춰 인건비를 지급하는 프로젝트 세상에서는 40대가 넘으면 더이상 코딩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뭐 규모가 되는 회사에서는 아키텍트다 해서 분석/설계 쪽이나 품질 관리 등 전문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도 소수의 사람에게만 문이 열려져 있고...  정말 개발 능력이 뛰어나서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인하우스 개발로 핵심엔진 개발 쪽에 있을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내가 Java 개발 전문이다... 이런 식이 아니고 ERP전문이다. SCM전문이다. 금융 쪽 전문이다식의 자기의 확실한 비즈니스 도메인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문서 작성 능력을 포함한 컨설팅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그나마 40~50대를 그나마 PM이니, 기술영업이니, 컨설팅이라는 영역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General한 것은 경험이 적은 30대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ROI를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PM(SI쪽은 특히)은 (고객과 회사 중간에 껴서) 맘고생이 심해서 솔직히 명을 단축하는 직군으로 보였고 기술영업 쪽은 붙임성도 떨어지고 주도적으로 휴먼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기가 코딩만 했던 습성에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1-2년 정말 죽도록 공부해 볼 자신이 있으시면 기술사 공부를 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기술사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고 공공부분의 정보시스템 감리를 할 수 있는 수석감리원 자격을 주고.. 


한가지 명심할 것은 정말 올인하지 않으면 몸만 고생만 하고 학원 좋은 일만 시키는 상황만 생긴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40대 화이팅입니다"

 

 

 

"40대가 되면 그렇게 갈 곳이 없나요? 제가 아는 40대 분들은 정말 잘 나가시던데... 개발자에서 아키텍트/기술영업/기술마케팅/엔지니어/매니저 등등으로 잘 올라가시던데.... 


제가 봤을때 소위 잘 나가는 제 주위의 선배님들의 공통점은 끈임없는 자기 계발이였습니다. 자기가 가진 기술력(위에 어느분께서 말씀하신 '이분야에 대해서는 제가 엑스퍼트입니다'라는 자기 분야를 확립하셨습니다. 


이외에 어학(3개국어), 학위(mba/mot), 특정 포럼의 자문위원 , 논문, 특허등등... 차갑게 보기 보다는 '이런'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신후 '갈 곳이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40대가 됬을땐 또 다른 페러다임/자격요건이 등장할테고, '이런 건 기본으로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젊은 사람들이 얘기할테지요. (그런식으로 인류가 진보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잘못이해했을수도 있습니다만....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한탄'을 하면  '선배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라고 납득할수 있겠습니다만... 윗글/답글에 다신 40대분들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것 같아 조금 그렇네요"

 

 

 

"후배님.. 그런 스펙을 갖추는 분들이 과연 40대에서 몇분이나 계실거라고 보십니까? 1% 정도일겁니다. 그 1%안에 못속해서 경쟁에서 도태되는건 당연하다라고 하시는건가요?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무한경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할말 없습니다만... 후배님도 언제라도 그 1%안에 못들면 대다수가 힘들어하는 99% 안에 속한다는걸 아시기 바랍니다"




"젊은 시절은 대개 나약하고 추악하고 비겁한 존재에 대해 환멸과 조소를 날리게 되지요. 그건 거의 당연한(?) 것이며 나이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게 되면 모든 고귀함과 추악함 사이의 분명한 경계가 희미해지고 오직 고귀한 무엇인가가 있기라도 하다면 그건 추함을 밟고 올라선 신기루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로소 여기에서만,이를 절감한 바탕서만 우애나 사랑이 싹틀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40대에는 이걸 알기는 하지만 생활속에 스며들지는 못합니다.


40년을 우리는 99%안에서 서로를 이기는 데 골몰하도록 강요당해 왔으니까요. 우리들,우리의 앞세대들 중 다수는 죽을 때까지 여기서 거의 전진하지 못합니다.그러나 전진하지 못해도 고뇌는 느끼죠. 님은 뒷세대에 해당합니다"

 

 

 

"시대의 앞서서 살아간 사람의 경험을 들을 때는 주의 깊에 들어보세요. 경력 3년차에서 5년차... 머리 회전은 여전히 빠르고, 실무에 대한 감을 대략 잡은 시기, 시간의 여력이 있어서 공부하기도 수월하고, 회사에서 주는 압박도 그리 심하지 않아요.


마치 스폰지와 같아서 공부하는대로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선배의 푸념이 한심하게 느껴지죠. 40대가 되면 신체적인 능력(무엇보다도 체력)이 떨어집니다. 


아내와 성장하는 아이들이 아빠의 시간과 체력을 쪽~쪽~ 가져갑니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내가 40대에서도 같을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면, 절대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꺼예요.


공룡 시대에 공룡은 결코 멸종하 지 않을 줄 알았죠. 미래의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공룡과 같은 운명이 됩니다. 누군가는 선배의 경험담에서 미래는 제대로 준비할 것이고, 누군가는 평생 착각 속에서 살아가다가 한방에 훅 가게 될 꺼예요"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이들의 경험은, 설령 그게 최신 유행이나 교과서와 딱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 같더군요. 


저도 사회 초년생 때, 나름 떨어지지 않는 학벌과 실력을 갖고 있다고 나이 많은 회사 동료들을 내심 무시하다가(ㅋ 제가 좀 싸가지가 없습니다) 아 꼭 그런게 아니구나 싶은 때가 꽤 있었습니다. 이젠 좀 조심할 줄 알게 됐죠. 


그런데 어차피 한국의 IT산업이란 게, 기술의 숙련이나 생산성의 향상보다는 사람 때려박아서 만들어내는 걸 지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생산성 향상이란 같은 노동량을 투입하더라도 더 많은 생산량을 낼 수 있도록 "물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일텐데, 거꾸로 노동자 개개인을 다그쳐서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걸 생산성 향상이라고 사기치고 있으니 산업의 수준도 여전히 요 모양 요 꼴이고, 기술자 개개인들도 젊을 때 최대한 빨리고 나이 들면 버려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작 생산성이 낮은 건 나이든 기술자들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자들의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폐기 밖에 못하는, 산업 그 자체라는 거죠.


그래서 아직 40대가 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인생 선배 또는 같은 분야의 선배들께 좀 일방적이다 싶으면서도 부탁이랄까 드리고 싶은 얘기는, 


어차피 대기업으로부터 돈과 자원이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이 질서 자체엔 백날 가봐야 별로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이 되는 이상, 좀 스스로들의 경험과 잠재력을 최대한 살려서 좀 다른 가능성들을 고민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치킨 집 하실 생각들만 하지 마시고 ㅋㅋ) 


좀 능력 된다 싶으신 분들은 창업도 좀 그런 방향으로 해보시고, 혼자가 어렵다면 뜻 맞는 분들끼리 모여서 좀 도모도 해보시고, 정치적 조건이 질곡이 된다면 좀 결집도 하시고(요즘 안철수씨 같은 분들도 하다 하다 안되겠으니까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좀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동년배 분들끼리 서로 그런 얘기들도 좀 많이 하시고요. 물론 말은 쉽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ㅎㅎ"



 

"특히나 소프트웨어한다는 사람들이 그런 것 같은데, 외골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댓글을 읽어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컴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식이 컴한다 그러면 적극 말릴 생각입니다. 치킨집은 아무나 하나요? 비즈니스마인드가 있어야 하죠.


정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기업 3년차 일때, 천재(S대 출신)라고 불리던 상사가(그 당시 40대) 일 순간 훅하고 잘리는 경우를 봤는데, 


당연히 다른 직장으로 갈 줄 알았죠. 애 보다가 창업했다가 빌빌거리다가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네요. 영업직 동기분(고졸)이 지금은 몇백억대의 중소기업사장님으로, 그 상사님을 스카웃제의했을 때, 그 놈의 엘리트의식이 뭔지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선택을 잘 하세요"

 

 

 

"나는 나의 이런 미련과 지식의 짧음을 전해주려 하는건데.. 후배님들은 이런걸 그냥 그건 당신이 나이먹도록 준비않하고 노력않해서 상위 1%안에 못껴서 그런거 아니라고밖에 안보시니.. 그럼 99%는 다 죽어나가면서 고생하며 힘들게 사는게 당연한건가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상.. 이제 상위 10%도 아니라 1% 안에 못들면 다 똑같이 죽어나갈 정도로 고생하게 되가고 있습니다"

 

 

 

"저역시 40대입니다. 한때 저역시도 정말 열심히했죠. 정말 잘나갔습니다. 오라는곳은 많고 몸은 하나고 그런데 나이가 먹다보니 그것이 여의치가 않아지더군요... 저하나 쓸 돈이면 다른 엔지니어 2~3명은 채용한다는 말에 충격이였답니다.


적어도 한국시장은 그런 논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인거죠... 40대 여러분들 그래도 기운냅시다. 너무 쳐져있는 모습이 같은 상황을 격는 제가 보기에도 후배들이 보기에도 좋지않을꺼같아요"

 

 

 

"제이야기인 듯 해서 ... 전 40 중반, 외국에 있고 최근 3-4년간 아주 잘나갔는데... 사표 제출했습니다. 부서장도 만류했고 와이프도 속상해했지만 대기업에 정떨어지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요. 면접도 몇 군데 해보았는데 마음에 안들더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 경력으론 기존회사는 어렵겠더군요. 그 이유는... 군대로 치자면 저는 장군급이 되어버린 겁니다. 기존회사면 이미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거죠. 


이런 급은 전쟁을 해야하는데 얼서부터 해야할지 모르는 스타트업, 즉, 벤처회사에서나 필요한 인력입니다. 그런데 저는 더이상 남을 대신해 전쟁하는 것은 피하고 싶고 하더라도 제 기준으로 해볼만한 곳 아니면 안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하니 갈 곳이 더 없더군요. 


그래서 구멍가게 스타일 소프트웨어 샵을 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기간에 만족할만한 소프트웨어를 제작해주지 못하면 개발비를 안받는 진검승부 사업이 그겁니다. 여지껏 거창한 프로젝트만 했었는데 이제 보통사람을 대상으로 일해보려 합니다. 자리가 없으면 만들어 봐야죠. 쉬진 않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43세까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전날 보다 더 건강해진 나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20대 젊은 분들과 기초체력 테스트를 하면 제가 더 좋습니다. 


몸매는 22세에 산 양복이 아직도 잘 맞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지금은 좀 약해 지네요. 특히 식욕이 많이 줄었습니다. 성욕도 많이 줄었습니다. 


정신은 아직 마라톤 뛰고도 남는데, 몸은 이미 정점을 지난 모양입니다. 저는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75세 정도 되 보이는 직원분에게 몇살이냐고 물었더니 65세랍니다. 


그러면 20년 뒤엔 저런 노인 모습이 될꺼라니 상상이 안갑니다. 나중에 후배분들에게 욕 안 먹을려면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한국의 사회구조에 원인이 있습니다. 40대에 개발자로 일하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아직 현업에서 개발자로 일을 한다손 쳐도, 연봉에 있어서는 결국 팀장이나 부장 레벨로 받기 어렵지요. 


즉, 상하 계층구조로 되어있는 직장문화를 고착시켜온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야말로 "노가다" 나 다름없는 개발자로 있다는것 자체가 누가 알면 창피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 자신 역시, 대학동기나 첫 직장 동기들은 모두 부장이나 이사 반열에 올라가 있지, 저처럼 개발자로 허구한날 Java 다 C 다 Perl 이다 하고 여기저기 플렛폼(중형컴퓨터, 유닉스, 라이넉스 PC 등등) 옮겨가면서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제 저 하나 남았네요.


저, 64년 용띠입니다. 하하~ 완전 노친네지요. 다행히 제가 일하는 곳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입니다. 회사도 운좋게 좋은곳에 속합니다. 자랑하려고 글을 남기는 것 아닙니다. 그냥 40대 개발자로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고, 제가 보고 느낀것을 알려드리고 싶을뿐입니다"

 

 

 

"프랜차이즈를 시작한지 아니 점주가 되어 사장님 소리 들은지 2년째되 갑니다... 나이는 38이며 서울에서 작은(20평 가량)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 다닐때는 중견기업에서 ERP쪽을 했었는데요.. 그래서 벌어논 돈으로 고시원을 시작했구요... 꽤 많은 돈이 들어갔으나 기대와 달리 돈을 벌지 못하고 2년만에 처분하게됩니다. 그후 1년간 백수 생활하면서 돈 까먹고... 프랜차이즈를 하게 되었네요.. 제가 형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건 이제부터입니다...


저희 동네에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 가보니 맛이 정말 괜찮은 겁니다... 몇번을 가게 되고 그러다 사장님 부부와 대화할 상황도 생겨서... 물어봤죠... "프랜차이즈하시면 잘되실거 같아요... 맛이 너무 좋아서.." 그랬더니 사장님이 "저희 하고 있어요.. 허허허" 그러시더라구요... 


그후에 너무 좋아 보이는 분들이라 아무 의심 없이 서로 친해지게 되었고 결국 프랜차이즈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6개월간 발품을 팔며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자리를 얻었고 기술 이전 받았구여.. 개업을 하였습니다... 3일동안 너무 잘 됐습니다. 매일매일 100만원 넘게 매출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재료값 명목으로 본점으로부터 날라온 영수증을 보니 굉장히 실망 스럽더군요... 너무 비싸서요.. ㅠㅠ 그래도 많이 팔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열심히 했죠.. 


그렇게 첫 달 지내보니 순익은 200만원대 초반이었습니다.. 14시간 서서 일해서요.. 그래도 이만큼 벌었으니 됐다... 먹고 살수는 있지 않냐... 그런 생각으로 6개월을 버텼어요... 


6개월이 오픈발이 끝나는 시점입니다... 그후에 가을이란 계절이 왔어요... 추석이 끝나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15만원 정도인 날도 있었구요... 점점 점원을 한명 뒀었는데 그분 월급날은 다가오지.. 월세내는 날도 다가오지.. 점점 위축되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자.. 긍정적으로 하자.. 그런 생각으로 지내다 결국 빚을 지게 되었고... 그래도 들어간 돈이 있기에 포기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여름 기간에 또 짤막하게나마 돈을 벌고 갚고.. 그렇게 2년을 되풀이 했는데요... 프랜차이즈 그냥 먹고는 삽니다... 


글을 너무 오랜만에 써서 너무 두서 없이 적었는데요... 죄송합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장 생활을 할수 있는데까지 무조건 하고.. 그 후에 장사를 하셔도 늦지 않을거 같습니다.. 치킨집은... 나중으로 미루시고..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startreport/40210026479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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