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위 ‘미국 출신’들이 잘나가는 나라다. 경제관료·CEO·경제학자·정치인 등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이들은 미국식 시장경제를 철저히 신봉하고 때론 ‘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며 한국경제의 방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의 미국 사랑은 대단하다. 자녀들 미국유학은 물론이고 1~2년짜리 연수기회가 주어지면 무조건 미국행이다.
이들이 그토록 애정을 품고 있는 미국의 경제수도는 뉴욕이다. 그런 미국에서 이들이 납득하기 힘든 일이 최근 벌어졌다.
뉴욕시내 아파트의 월세 임대료가 1년간 동결됐다. 대상도 100만가구다. 임대 아파트가 200만가구를 약간 넘으니 절반에 해당되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미국 출신’들은 이번 정책을 알고나 있을까. 왜 진작부터 이 정책은 따라하지 않고 있을까.
지난 6월29일. 뉴욕시 맨해튼 쿠퍼유니온대학 강당. 뉴욕시임대료위원회(New York City Guidelines Board)의 표결이 진행되었다.
9명의 위원회 위원들은 오는 10월1일부터 2016년 9월30일 사이 리스를 갱신할 경우 렌트 인상률을 1년 리스는 0%, 2년 리스는 2%로 제한하는 안건을 심의했다. 이어 찬성 7, 반대 2로 가결했다.
임대료 동결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 회원들은 환호했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이날 낸 성명서에서 “뉴욕시의 역사적 순간이다. 이번 결정이 (100만가구) 200만명에 달하는 렌트안정 주택 거주 뉴욕시민의 삶에 근본적이며 명백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자축했다.
임대료 동결은 1969년 뉴욕시임대료위원회가 창립된 이후 46년 만의 첫 동결조치다. 필자는 미국이란 곳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국회입법조사처가 연구해 지난해 발표한 ‘국내외 민간임대주택시장제도의 현황과 시사점’을 비롯해 각종 자료를 찾아봤다. 그러나 그 많은 미국 출신 학자들은 미국의 임대 정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문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임대료 동결의 원천은 3가지였다. 첫째는 법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주택공급 부족으로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임대료 통제(Rent Control) 정책을 만들었다. 종전 후에도 대도시에선 이 정책이 유지됐다. 뉴욕시의 경우 옴니버스 주택법(the Omnibus Housing Act)에 따라 주택소유자는 임대 시 주정부에 임대료와 서비스 내용을 등록해야 한다. 어길 경우 과태료 등 처분을 받게 된다. 뉴욕시임대료위원회는 해마다 임대료를 정한다.
두번째는 세입자 보호 운동이었다. 1950년대에는 할렘 지역을 중심으로 500여개 건물에서 1만5000명이 임대료 납부 거부운동을 벌였다. 1970년 초에는 뉴욕시장이 매년 15%씩 임대료 인상을 허용하자 주거운동단체를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세번째 조건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책 의지다. 뉴욕시장은 9명의 뉴욕시임대료위원회 위원을 임명한다. 세입자 보호 의지가 강했던 드블라지오 시장은 지난 3월 블룸버그 전 시장이 지명했던 3명까지 모두 교체하면서 이번 결정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임대료 인상 한도는 5%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한이 지나면 법적용은 무용지물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폭등하는 전·월세 대책이라기보다는 매매 활성화가 초점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식이다.
한국도 월세가 대세인 나라가 됐다. 경제관료들은 이제라도 뉴욕시처럼 임대료위원회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정치인들도 법을 제정하고 임대료를 동결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미국 출신들에게 한번 ‘호소’해 본다. “배운 대로 해보라”고.
<한대광 비즈앤라이프팀장>
출처: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7162110155&code=990100
'Insights & Trends > Social/Consum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사회] 취업자수 2020년부터 감소…부양가족 부담에 저축도 `뚝` (0) | 2015.07.20 |
---|---|
[스크랩/사회] 한국에는 우울증 치료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0) | 2015.07.19 |
[스크랩/사회] [Why] 개천서 龍 나기 어려운 사회… 선택의 순간, '인생' 사라지고 '가격' 만 남아 (0) | 2015.07.19 |
[스크랩/소비] 나만의 개성 살리는 `네오명품 시대` (0) | 2015.07.16 |
[스크랩/사회/부동산] 쇠락하는 신림동 고시촌 (0) | 201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