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랑끝 그리스 ◆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옆 플라자호텔 부근에는 매일 오후 1시쯤 기자들이 모여든다. 주로 외국에서 온 기자들이다. 오전에 취재한 내용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한다. 

지난 1일에도 7~8명이 모였고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가 "오후에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성명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여러 기자들이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 내용에 대한 전망을 내놨다. 대부분 `채권단 제안 수용, 국민투표 철회`가 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귀국할 비행기표를 예약해야겠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기자들만 그런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 전에 대화는 없다"며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마저 이날 오후 의회에 출석해 "그리스와의 대화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과 기대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후 5시 30분 TV 카메라 앞에 선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는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다. 반드시 `No`라고 투표해 달라"고 말했다. `성명`보다는 `선동`에 가까웠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를 동원한 것은 채권단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술적 선택으로 보인다. 집권세력인 시리자 그룹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국민투표는 중요한 결정권을 그리스 민중에게 돌려주는 민주적 의사 결정의 복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탄생했지만 이는 고대 아테네 같은 조그만 도시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마르코 빈센초 국제전략계획 책임자는 이 같은 선택을 "치프라스 총리나 시리자 그룹 스스로 나라를 이끌 비전이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투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치프라스 총리는 "`No`에 투표하는 것이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유로존 잔류파`와 `유로존 탈퇴파`의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 국민투표는 국가 분열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계획대로 국민투표 결과를 배경으로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더라도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부채를 몇 % 탕감받든, 혹은 부채 상환 기간을 연장받든, 또 3차 구제금융을 좋은 조건에 받든, 결국 남은 과제는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는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인데 둘로 크게 쪼개진 나라를 이끌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대한민국이 빠르게 구제금융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 된 국민`이었다. 

[아테네 = 김기철 기자]


출처: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633232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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