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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제물편(齊物篇)에는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저절로 깨치고 멋대로 지내느라, 장자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문득 깨어 보니 어엿한 장자였다. 그러자 장자는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자신이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성인은 꿈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알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장자는 이런 글을 적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접지몽` 고사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그 고사에서 말하는 `꿈`은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장자가 말한 `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영재들의 삶을 평생 추적 조사한 터먼(Terman) 연구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터먼 연구 대상자 중 하나인 라이어(Lyre)는 6세때 영재 소녀로 선발되었다. 여기에서 별칭으로 사용된 `라이어(Lyre)`는 표면적으로는 거문고를 뜻하지만 거짓말쟁이를 뜻하는 `라이어(liar)`를 염두에 두고서 작명된 것이다. 

78세가 되던 해에 연구자가 방문했을 때, 라이어는 자신의 재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한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영재였으면서도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쉽지 않으냐고 연구자가 묻자, 그녀는 자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또 연구자가 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라이어는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과거 기록에 따르면, 라이어는 14세 때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으며 대학 때는 의학 관련 기초과목들을 이수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연구자가 라이어에게 영재 연구 참여자로 선발된 것이 언제냐고 묻자,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 다음이었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50세 때 그녀는 자신이 10세 때부터 영재 연구에 참여했다고 말했고 25세 때는 자신이 6세 때 영재로 선발되었다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라이어는 자신이 영재로 선발되었던 시기를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늦춰서 말했던 것일까? 라이어는 자신이 영재로 인정받았던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영재 소녀로 선발된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춰서 떠올리려는 방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를 `억압`이라고 한다. 

다행히 라이어의 삶이 비극으로 끝을 맺지는 않았다. 인생의 황혼기에 라이어의 삶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성인기 이후로 계속 자신은 단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말을 반복해왔던 라이어는 노년기에 들어서 비로소 자신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무렵 그녀의 숨겨진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던 절친한 친구가 그녀에게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때부터 라이어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해 독주회를 갖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이처럼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그녀는 거짓말쟁이 `라이어(liar)`가 아닌 현악기를 상징하는 `라이어(lyre)`가 되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라이어는 무려 78세가 될 때까지 상징적인 의미에서 `잠든 채로 꿈속에서 살아간 것`이 된다. 호접지몽 고사에 등장하는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라이어 같은 사람들이 변화하기 전에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이어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명백히 잠들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꿈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못 깨닫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라이어처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단, 라이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삶이 아름답게 점화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 경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3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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