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69> 토니 셰이의 다운타운 프로젝트


머니투데이 유병률 실리콘밸리 특파원 |입력 : 2014.03.07 06:00
image라스베가스 다운타운내 조형물. 토니 셰이는 화려한 카지노거리인 스트립과 3km 떨어진 이곳에서 현재 10만평규모, 100여개 크고작은 건물로 이뤄진 도시를 창업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미국최대 온라인 신발쇼핑몰 자포스(Zappos) 창업자 토니 셰이(Tony Hsieh·41). 그는 직원이 늘면서 새사옥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좋다는 본사는 다 돌아봤다. 책상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도 일하고 먹고 운동하고 심지어 빨래까지 해주는 구글 캠퍼스도 근사했고, 디즈니랜드 상점거리처럼 무료 아이스크림가게, 햄버거가게 예쁘게 늘어선 페이스북 캠퍼스도 멋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섬처럼 느껴졌다. 그 너머의 삶에는 관심 없고 세상과는 별개일 것 같은 곳. 

오히려 그를 사로잡은 곳은 뉴욕대학(NYU) 캠퍼스였다. 맨해튼의 빌딩 몇 개가 캠퍼스의 전부이지만, 빌딩을 걸어 나오면 카페와 부티크, 갤러리가 줄지어 있다. 코너를 돌 때마다 각양각색 예술이 툭툭 튀어나온다. 캠퍼스는 보헤미안 문화가 숨 쉬는 동네, 그리니치빌리지에 속한 일부였다. 

그는 NYU캠퍼스처럼, 도시 같은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문제의식은 더 발전했다. 아예 도시를 창업하기로. 그는 문 닫은 카지노모텔이 즐비한, 불모의 땅 라스베가스 구 도심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회사가 30분 떨어진 곳에 10년째 터 잡고 살고 있기 때문. 회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그는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놓았다. 타이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09년 자포스를 아마존에 12억달러(1조3500억원)에 팔았고, 이후로도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더 마주치고, 걷다가도 더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게 바와 카페, 레스토랑을 공들여 만들었다. 마주치고(Collisions), 서로 배우고(Co-learning), 연결되면(Connectedness) 혁신이라는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테크놀로지 창업가들을 부르고, 동시에 뮤지션, 예술가들도 불러 모았다. 매직은 창업가들과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있을 때 나온다고 믿었다. 여기에다 학교와 병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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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스 창업자 토니 셰이. /사진출처=뉴욕타임스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짓는데 들어갔다는 4800억원보다 적은 돈으로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2억달러(2200억원)는 땅과 건물 매입에, 5000만달러(560억원)는 레스토랑 같은 스몰비즈니스에, 또 5000만달러는 교육과 문화에, 나머지 5000만달러는 스타트업 투자에. 그것도 마음 먹은 지 2년 만에 미국기자들이 며칠씩 묵으며 르포기사를 쓸 정도로. 

그는 허물지도, 벽을 두르지도, 유명한 건축가를 부르지도 않았다. 무슨 IT밸리를 만들겠다고 우람하게 올려놓고 분양하지도 않았다. 어떤 곳은 그냥 카지노모텔 간판도 그대로 둔 채, 또 어떤 곳은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었다. 중요한 건 겉이 아니라 안이고,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섬이 아니라 도시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도시를 창업하기 위해 세운 또 다른 회사 이름은 다운타운프로젝트(Downtown Project). 회사라고 하지만 도시공동체에 가깝다. 병원, 교통, 교육, 예술공연, 도시미디어 등 이 모든 것을 해당 스타트업들, 그리도 동네주인들과 협업하고 있었다. 2년 사이 10만평, 100개의 크고 작은 건물로 늘어났다. 남대문시장의 8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4배에 달하는 그 도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녀왔다.

건물, 조경이 무슨 상관인가. 사람과 문화가 있으면 된다 
기자가 여전히 선입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번 확인했다. 그래도 근사한 조경과 아름다운 도시 이미지를 기대했던 것.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닫은 모텔과 카지노 간판, 듬성듬성 공터도 보기가 싫었다. 여전히 버려진 땅 같았다. 하마터면 실망부터 할 뻔 했다. 

그런데 다운타운프로젝트는 순서가 달랐다. 킴 쉐이퍼 대변인은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와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살 것인가'라는 사람에 대한 문제였다. 건물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말했다. 토니 셰이도 "다른 도시를 보면서 배운 것은 아름다운 건물만 세워놓고 모든 게 잘될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제야 다운타운프로젝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곳 한곳 문을 열 때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영업중지한 카지노모텔의 문을 여니 거대한 바가 있었다. 이름은 '골드 스파이크(Gold Spike)'. 한쪽에서는 누군가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수십 명이 파티를 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자리에는 150석 규모 극장, '인스파이어 씨어터(Inspire Theater)'가 들어서 테드(Ted)식 강연이 시리즈로 열리고, 그 위로는 다시 바와 카페이다. 

적십자 로고와 함께 '이머전시(Emergency)' 간판이 있어 응급병원인가 들어가 봤더니, 1층 커피숍 '더비트(The Beat)'에서는 역시 노트북 들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위로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났는데 계단과 2층에는 모든 벽마다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고, 가운데 큰 미술작업실에는 대여섯명 회의가 한창이다. 나와서 간판을 다시 보니 '이머전시 아트(Art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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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과 갤러리,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 들어선 이머전시아트(Emergency Arts).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작업장(workplace)라는 팻말이 있어 들어가 보니, 다름 아닌 스타트업 코워킹(co-working) 공간. 1층 옛 차고는 이벤트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2층에는 작업 테이블들이 펼쳐져 있었다. 월 50달러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워크인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의 니콜 마스트란겔로 매니저는 "3개 코워킹 건물이 더 있다. 일대일 멘토링을 하고,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을 초대한다. 수시로 연사들을 초청해 네트워킹 행사를 연다"고 말했다. 

멀리 체크스캐쉬트(checks cashed)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카지노 관광객들 상대로 수표를 현금으로 '깡'해주는 곳이라는 뜻. 하지만 웬걸! 들어갔더니 힙합패션 컨셉의 부티크였다. 감각 있다고 지역신문에도 자주 소개되었던 여주인의 가게였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와서 마시고 주인과 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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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부티크 코테리. 카지노 고객들에게 수표를 현금으로 '깡'해주던 옛간판을 그대로 달아놓고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모텔을 지나 브런치레스토랑 '이트(EAT)'. 이 가게 히스패닉계 여주인은 카지노거리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일해 오다 토니 셰이를 만나 무이자대출을 받았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출입문은 그저 그런 식당입구 같았는데, 안은 스타트업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북적였고, 맛은 최고였다. 레스토랑 매니저인 마리사 니차르는 "평일도 300 테이블씩 꽉찬다"며 "14개월만에 대출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년전만해도 밤이면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게 달라졌다, 선물포장지 같은 라스베가스 스트립거리와는 반대이다. 즐길 게 많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다운타운 베가스의 수십개 크고 작은 공간들은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기자 앞에 턱하니 다가왔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걸로 말이다.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그 안에 새로운 발견,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그래서 토니 셰이는 "거리를 탐험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했던가. 

예술과 스타트업, 그리고 동네 주인들. 섞여야 매직이 일어난다 
온종일 걷고, 들어가 보고, 들어보았지만 하나 희한했던 게 있다. 그 흔한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 이런 빅체인은 이 도시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킴 쉐이퍼는 "다운타운의 비즈니스는 모두 스몰비즈니스이다. 주인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랬다. 

"작은 공간 하나라도 창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찾아오는 사람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받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에 줄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러면 주인이 운영해야 한다. 누가 내 커피를 만드는지, 누가 내 샌드위치를 요리하는지, 어떤 주인이 고른 옷인지 모른다면, 그건 그냥 가게일 뿐이다. 또 이렇게 해야 다운타운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경제도 살아난다." 

듣고 보니 '아차' 싶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지 않나. 파는 사람은 규격화된 입맛만 제조하면 된다. 사는 사람은 오히려 익명성을 즐긴다. 그래서 다운타운프로젝트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스몰비즈니스 33개에 사업밑천을 투자했고, 공간만 임대할 때도 '주인이 운영하고, 스토리 텔링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다. 마치 송창식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 속의 주인공처럼 팔기도 하지만 정서도 오가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또 그렇게 중요한가? 왜 이곳에는 창업가들보다 화가, 뮤지션, 사진작가, 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까? 토니 셰이는 가끔 자신이 들어본 밴드를 초대하는데, 밴드가 이곳에 반해 그냥 눌러 앉기도 한다. 그는 라스베가스의 유명 예술공연인 'the First arts Festival' 운영권도 매입했다. 홈페이지(downtownproject.com)에는 가족이벤트, 연사강연, 스타트업행사 만큼이나, 하루가 멀다하고 전시공연 스케줄이 공지된다. 패션 인큐베이터 '스티치 팩토리(Stitch Factory)'는 디자이너들의 아지트이다. 

킴 쉐이퍼는 "테크 창업가끼리 어울린다고 생각해보라. 퍼즐의 한 두 조각이 없는 것이다. 매직은 창업가들과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토니 셰이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이들은 통계적으로 서로 협업하고 나누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면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 

회사가 잘되면 회사주인이 돈 벌고, 그 다음으로 직원들에게 복지가 돌아가고, 회사가 더 잘되면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순서를 생각한다면, 다운타운프로젝트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고정관념이었는지 보여준다. 이곳은 수많은 만남을 주선하는 동네주인들, 수많은 뮤즈를 선사하는 예술인들, 그리고 뭔가에 꽂혀서 태클을 걸고 싶어 하는 창업가들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함께 잘사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작년말 자포스가 본사를 이곳 옛 시청건물로 옮겼을 때, 토니 셰이는 주차빌딩과 본사건물을 연결하는 고가통로를 폐쇄했다. 땅에 발을 딛고 곧바로 동네로 들어가 부딪힘을 즐기라는 것. 구글 캠퍼스와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모든 부딪힘들은 다운타운프로젝트의 스토리텔러들에 의해 스토리로 만들어져 전파가 된다. 홈페이지에 수많은 이벤트 소식과 후기가 바로바로 올라온다. 자포스내의 다운타운팀에는 10여명 라이터들과 사진작가들이 온라인(www.dtZEN.com)과 잡지를 통해 새로 문을 연 네일샵 주인 등 커뮤니티 사람들의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소개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도시계획 매뉴얼이 있어서, 혹은 완장 찬 공무원들이 있어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큰 그림은 있지만 작은 그림들과 액션플랜은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가는 식이다. 물론 토니 셰이는 2년전 프로젝트를 처음 공개할 때 5년을 본다고 했고, 75명 직원들이 다운타운프로젝트를 돌리고는 있지만, 토니 셰이 역시 다운타운의 일개 시민일 뿐인듯 했다. 

이곳 투어객들은 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 오그덴(the Ogden)을 투어할 때면 아침 파자마 차림으로 시리얼을 씹으며 침실을 나오는 그와 종종 부딪히기도 한다. 오그덴에는 토니 셰이 외에도 자포스 직원, 예술가, 창업가들이 모여 사는데, 그는 투어객들에게 침실 빼고 다 공개한다. 그의 거실 벽에는 '도넛가게 만들자' '동물병원이 필요하다'는 등 다운타운 시민들의 소원수리를 담은 포스트잇이 수백장 붙여져 있었다. 또 저녁이면 바나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는 그와 수시로 마주치기도 한다. 마침 그가 다운타운에 없어서 기자는 그와 마주치지 못했지만, 미국기자들이 취재를 와도 길 가다 마주쳐서 인터뷰하는 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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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셰이의 집 거실 벽에는 다운타운 주민들의 소원수리를 담은 수백장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의료, 교통, 교육도 스타트업. 도시가 스타트업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우연한 만남과 배움, 그리고 협업을 내재화하는 도시, 좋다. 그런데 오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지 않는가? 라스베가스는 의료, 교육이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가족이 볼 거라고는 카지노 호텔의 쇼뿐. 이런 인프라에서 살 수 있을까? 아무리 태클을 좋아하는 스타트업이라하지만, 이런 인프라까지 태클을 걸 수 있을까? 

킴 쉐이퍼는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시스템 전체를 우리가 뒤집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작은 스케일이지만, 이런 큰문제를 혁신할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턴테이블헬스(TurnTable Health)라는 병원. 들어가니 왼쪽으로는 주방이 있고 오른쪽엔 소파가 쭉 있고, 그 옆으로 강의실이, 다시 그 안쪽으로 들어가야 진료실이다. 

이곳은 미국의료 시스템을 풍자한 랩으로 유명한 내과의사 주빈 다마니아 박사(인터넷에서는 ZDoggMD로 불린다)가 토니 셰이와 손잡고 세운 병원이자 스타트업. 그는 지난해 테드 강연에서 "좀비의사들이 미국을 접수했다. 몇시간 보험회사와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또 몇시간 서류 작업이다.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병원부터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보험료 비싸기로 악명 높고, 보험이 없으면 죽을 병 아니면 참는 게 낫다고 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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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없이 월 80달러로 무제한 1차진료와 건강강좌를 제공하는 새로운 모델의 병원 턴테이블헬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그런데 이곳에서는 보험 없이 월 80달러만 내면 무제한 진료와 상담이 가능하다. 24시간 스카이프로 의사와 상담하고 요가, 건강관리, 식이요법(주방에서 만들어 보여준다)도 배울 수 있다. 이곳의 철학은 1차 진료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 매니저 엘리자베스 세발로스는 "아프기 전에 미리 돌보고, 사람들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게 가르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과의 2명과 함께 헬스코치 5명이 일하고 있었다. 현재 등록고객은 150여명. 물론 큰 병 생기면 더 큰 병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지만 1차 진료 못 받아, 관리를 못해 큰 병 생기는 걸 생각하면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것도 보험 없이는 감기 한번 걸려도 100달러인 미국에서 말이다. 

한 블럭 지나니 고풍스러운 교회건물을 개조한 학교가 나왔다. 나인브리지(9th Bridge). 토니 셰이는 새로운 학교모델을 만들기 위해 씨티그룹 부사장이던 사촌과 교육전문가 4명으로 팀을 구성해 1년내내 교육컨퍼런스를 다니게 했다. 자포스 직원들과도 수없이 토론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학교이다. 교사들을 뽑기 위해 수도 없이 인터뷰를 했는데, 기준은 '혁신가이면서, 배움의 과정을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디리머(dreamer)일 것'. 커리큘럼도 신경과학, 인지발달에 기반해서 감정표현과 조절, 기업가정신까지 가르친다. 지난해 6주에서 킨더(유치원) 학생들을 받았는데, 목표는 한국 고교과정인 12학년까지 학교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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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개조한 새로운 모델의 학교, 나인브리지(9th Bridge).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토니 셰이는 또 대졸자들을 공립학교로 자원봉사를 보내는 스타트업인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와도 협업중인데, 목표는 1000여명을 초대해 다운타운 일대에서 가르치면서 살게 하는 것.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집도 제공하면서 말이다. 자포스 직원들도 지역 초중고에서 가르치며 커뮤니티와 밀착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처럼 시험으로 선발된 교사 1명이 교실 문 꼭꼭 닫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지역의 혁신가들이 공동으로 아이들 교육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통문제도 프로젝트 100(Project 100)이라는 스타트업 몫이다. 목표는 되도록이면 차 안가지고, 걸어 다니며 살게 하는 것. 필요하면 자동차든, 자전거든 공유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에 모델S 100대를 주문해놓은 상태. 단일 발주량으로는 세계 최대이다. 이미 다운타운으로 입고되기 시작했는데 군데군데 충전시설에 한두대씩 주차돼 있었다. 

컨테이너파크(Container Park)는 마치 인사동 주말을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옮겨놓은 듯했다. 40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원형으로 늘어섰는데, 갤러리, 부티크, 카페, 레스토랑 39개가 빼곡히 입점해있었다. 원형 안쪽으로는 4층높이 미끄럼틀과 놀이터도 있다. 음악공연은 연중무휴이고, 공연장 뒤쪽으로 열차 두 칸으로 만들어진 이발소도 있다. 해가 지자 입구의 거대한 사마귀 조형물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월요일인데도 수십명 아이들이 북을 두드리며 이벤트를 즐긴다. 작년 11월 만들어졌는데 벌써 30만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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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가족공간 '컨테이너파크'. 39개 카페, 갤러리, 부티크와 놀이시설 등이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도시가 마치 거대한 스타트업같다, 테크, 패션, 사진, 예술, 음악, 레스토랑, 바, 카페 뿐 아니라 병원과 학교, 교통, 놀이시설 등 도시의 그 뼈대까지 어떤 도시도 안해본 방법으로 혁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스타트업들로 이뤄진, 스타트업 시티인 셈이다. 

실리콘밸리 만들 생각 없다. 우리 사는 곳,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누가 봐도 라스베가스는 도시를 창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도박도시에다, 좋은 대학이 있는 것도, 돈 많은 투자자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이 몰리고 있지만 성장하면 실리콘밸리로 돌아가 버릴 수 있다. 저녁 무렵, 네온사인 안으로는 어떤 만남들이 이뤄지는지 몰라도, 네온사인 사이로 홈리스들이 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시청은 돈이 없어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열고, 많은 공공서비스를 중단했다. 어느 큰돈 번 젊은 재벌의 또 다른 도박일 뿐이라는 원주민들의 소외감 섞인 시선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일까? 

킴 쉐이퍼는 "토니 셰이가 여기 살고 있고, 자포스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감이 있다"고 말했다. 토니 셰이는 자포스 직원이 74명이던 10년전, 본사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네바다주 핸더슨으로 옮겼다. 라스베가스에서 불과 26km 떨어진 곳. 직원들 대부분이 콜센터에서 일하고, 24시간 순환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직종의 근로자들을 모으기 쉬운 곳을 선택했다. 라스베가스에 도시를 창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그와 자포스 직원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땅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그가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킴 쉐이퍼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홈리스, 도박폐해 같은 사회문제들도 해결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선단체도, 비영리도 아니다. 3억5000만달러도 많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다운타운프로젝트는 회사이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들이라 믿고 있다. 물론 우리가 항상 옳을 수는 없다. 많은 경우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어떤 도시도 가보지 않은 다른 루트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기자가 내뱉고도 공허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물론 테크 스타트업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랩탑 하나로 20명, 30명씩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를 빠르게 스케일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리콘밸리를 만들 생각이 없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만들 생각이 없다." 

다운타운프로젝트는 베가스테크펀드(VegasTech Fund)를 만들어 이미 68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팀리(Teamly), 무비라인(Movieline) 같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전도유망했던 스타트업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이곳은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다른 궤적으로 테크 허브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빈부격차 때문에 구글 버스를 멈춰 세우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없는 테크 허브. 어쩌면 어떤 곳처럼 돼야 한다는 목표가 없다는 게 정답일지 모르겠다. 그냥 동네주인, 창업가, 예술가가 한 덩어리가 돼서 기적을 만드는 곳.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 토니 셰이는 고층건물의 으리으리한 집무실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변두리 어느 골목 귀퉁이 샌드위치 가게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가게 구석에 앉아 일을 하거나, 길에서 만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이 도시의 일개 시민일 뿐이니까. 

물론 그의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도시를 보면서 무릎을 치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 그동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던 그 문제에 대한 답이다. 우리가 바로 뒷북을 치고 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실리콘밸리를 따라하면 그건 짝퉁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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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스파이크 내부. 멀리 수십명이 파티를 열고 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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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은 150석 규모의 극장 '인스파이어씨어터'. 왼쪽으로 연사들의 초청강연을 알리는 입간판이 서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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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워킹 공간 워크인프로그레스의 2층.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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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레스토랑 이트(EAT). 카지노거리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여주인이 무이자대출을 받아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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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캠핑카처럼 쭉 늘어선 에어스트림으로 거주공간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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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건물 벽화.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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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전시아트(Emergency Arts)의 2층 전시공간.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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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셰이가 사는 아파트 주방. 그는 침실 &#48820;고는 모두 공개하고 있다. 가운데 조형물은 그가 좋아하는 라마.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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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셰이는 자포스 본사(오른쪽)와 주차건물을 이어주는 고가통로를 폐쇄했다. 직원들이 거리의 커뮤니티와 더 많이 접촉하라는 취지이다.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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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셰이의 집 거실에 걸려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는 미친 짓에서 시작된다'는 내용의 포스터. /라스베가스=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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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news.mt.co.kr/mtview.php?no=2014030606480142894&cast=1&STAND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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