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2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사슴2단지 아파트 주민 이애경(위쪽 사진 오른쪽)씨가 지난 12일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학교’ 종강식에서 모둠 주민들과 함께 구상한 마을사업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다른 모둠에 참가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임병태(아래쪽 사진 왼쪽)씨는 ‘잔치국수와 커피를 팔아 홀로 사는 어르신 돕기’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⑦ 아파트 모임 꾸리기

아파트나 다가구주택에서 ‘공동체’란 말은 아직 낯설다. 바쁜 일상에 앞장서기도, 이웃과 어울리기도 어색해진 탓이다. 그래도 농산물 직거래, 어르신·아이 돌보기 등을 계기삼아 공동체 일구기의 주인공으로 나서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월계동 사슴2단지 교육이수뒤
수익사업으로 이웃 돕고 공간 마련
주민들 의기투합해 만든 공동체가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꿈꾸는 곳도
“일상속 재미 찾고 삶도 풍성해져요”

“이름은 ‘신나라 직거래’예요, 맘에 드세요? 맘에 드시면 박수~! 목적은 뭐냐면, 사슴2단지 주민들에게 전국 농수산물을 공급해드리고, 이익을 내서, 어, 우리 2단지 공공사업에 이바지할 거예요. 이해되시죠?”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사슴2단지 아파트 주민 이애경(50)씨는 넉살이 좋았다. 두달쯤 전 7월18일 주민들과 함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마을 답사를 갔을 때도 적극적이었다. 농민들이 스스로 구상한 농촌형 마을사업을 꾸려가는 비비정마을(bibijeongin.com)의 농산물 직거래 매장에 관심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12일 사슴2단지 아파트 관리동에서 열린 마을사업 계획 발표회 날 직거래를 들고나왔다.

모둠 주민들과 함께 구상한 마을사업 계획 발표에 나선 이씨가 들고나온 전지 크기 종이엔 알록달록 색종이들이 붙여져 있었다. “전국에서 생산된 농산품, 수산품” “제주도에선 감귤을, 진도에선 김과 멸치를” “충주도 가야” 등 글씨가 빼곡했다. 모둠 주민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한 걸 적었다. 맡을 일도 나눴다. 이씨는 홍보와 주문을, 박정옥·이손림씨는 돈 관리와 주문을 맡았다. 다른 이들은 ‘함께하실 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다음달부터 토요일마다 아파트 관리동 앞에 좌판을 열고 주민들로부터 공동 구매할 직거래 농수산물 주문을 받겠다고 했다. 사업 계획서는 엉성해 보였지만, 이씨의 목소리는 또랑또랑 울렸다.

이날은 희망제작소, 서울시 산하 공공주택 공급 공기업 에스에이치(SH)공사, 노원구, <한겨레>가 함께 추진한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학교’의 종강일이었다. 북한 이탈 주민 80가구를 포함해 755가구가 사는 공공임대아파트인 사슴2단지에서, 두달가량 학교에 참여한 주민 30명은 모둠별 마을사업 계획을 내놓았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 사슴2단지에서 지난 12일 열린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학교’ 종강식에 참가한 아파트 주민들이 카메라로 서로를 찍은 사진들 가운데 우수작을 선정하고(위쪽) 열심히 출석해 상품으로 받은 채소를 들고 있다.(아래쪽) 희망제작소 제공

이씨의 1조 말고도, 2조는 주민 친목 체육대회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임병태(55)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참여한 3조는 잔치국수와 커피를 팔아 홀로 사는 어르신과 밥 굶는 어린이를 돕겠다고 했다. 4조는 경로당 옥상 등에서 콩나물을 길러 주민들을 단합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부분 50~60대 여성인 주민들은 완주군 현장답사에서 시작해 더불어 사는 삶과 마을사업에 대한 강연, 우리 아파트 살피기, 마을살이 생각해보기 등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노원구의 커뮤니티 플래너인 이미숙씨는 “주민들이 공동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가꿔갈지 많이 배우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주민들은 이날 발표한 마을사업 계획을 실제로 실행하게 된다. 사업 주체를 정하고 아파트 단지 현실을 좀더 정밀하게 조사하고 계획도 더욱 구체화한다. 도서관, 사랑방, 공동주방 같은 ‘마을 공간’도 마련한다. 주민들이 모두 모이는 ‘타운미팅’도 열고 마을 축제를 열어 더 많은 주민들과 소통할 참이다. 그렇게 사슴2단지 아파트 공동체를 일구는 주체로 나설 작정이다.

막 걸음을 뗀 사슴2단지뿐만이 아니다. 전국 아파트들엔 다양한 주민 모임들이 활약중이다. 대개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회를 중심으로 등장한다. 기본은 ‘나눔’이다. 서울시가 아파트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도드라진 공동체들은 대체로 자생적 봉사모임이 기반이 됐다. 강동구 고덕동 상록공무원아파트는 ‘꽃과 아파트를 사랑하는 봉사모임’이 중심이 됐고, 강북구 해모로아파트는 홀로 사는 어르신,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을 돕는 ‘만원의 행복’ 활동이 토대가 됐다.

중고물품을 남들과 바꾸거나 재능을 나누는 서울 은평구의 ‘이(e)-품앗이’는 가상의 화폐를 매개로 동네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을 뒷받침한다. 아파트 환경을 꾸미는 활동도 주민들을 묶는 계기가 된다.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같은 기본적 활동 말고도 벽화 그리기, 꽃밭·텃밭 조성 등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주민들이 두달 동안 ‘학교’에 참여한 장면을 찍은 영상을 함께 보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보육이나 방과후 학교에 눈을 돌리는 이도 많다. 송파구 파크리오아파트에선 육아 정보를 나누려는 주부들이 ‘파크리오맘’이란 인터넷 카페를 만들더니 주변 상가나 어린이집 정보까지 공유하며 확장하고 있다. 30~40대 입주자가 많아 영유아 비율이 높은데도 보육시설은 부족한 서초구 우면동 네이처힐2지구 아파트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꾸려 방과후 학교나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같은 틀을 갖추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런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지원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양상이다.

2006년부터 지역 공동체 활동 교육·자문을 해온 희망제작소 뿌리센터의 홍선 센터장은 “사슴2단지 주민들도 처음엔 웃음이 적고 딱딱한 표정이었지만 아파트 공동체 교육에 참여하면서 빠르게 달라져갔다.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이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되찾고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매력적인 활동”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041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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