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구루를 만나다 (2)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비지니스스쿨 교수


‘콜드터키(cold turkey)’라는 말이 있다. 담배나 술, 마약 등을 약물에 의존하거나 점진적으로 줄여 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끊는 것을 뜻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기업들이 바로 ‘콜드터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데이터 중독’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 ‘혁신기업의 딜레마’란 초우량기업들이 고객이나 경쟁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고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데 자원을 집중하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실패하는 것을 뜻한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1997년에 내놓은 책 제목이기도 하다. 올해 초 경영전문 사이트 ‘싱커스 50(Thinkers 50)’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철학자 1위로 선정된 크리슨텐슨 교수를 그의 보스턴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 세계 기업들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혁신이 있다. 첫번째는 파괴적 혁신이다. 보통 산업이 발달하면 상품이나 서비스가 비싸고 복잡해져 부자들만 살 수 있게 된다. 파괴적 혁신은 이런 복잡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단순하고 저렴하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이런 혁신은 기업뿐 아니라 전체 경제의 성장을 이끈다. 한국도 과거 고도성장기에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장했다. 예를 들어 LG는 중산층도 살 수 있는 에어컨을 만들어 수입을 대체했고 이를 통해 한국 전자업계를 일으켰다.” 

▶나머지 두 종류의 혁신은 어떤 것인가.

광고


“두번째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해 더 비싼 제품을 만들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혁신이지만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된다. 대체재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요타가 몇 년 전 미국 시장에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프리우스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이상 캠리를 사지 않게 된다. 세 번째는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율적 혁신(efficient innovation)이다. 이는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월마트 등 대형매장은 효율적이지만 기존 소형 점포들이 사라지면서 고용은 줄어든다. 한국은 더 이상 파괴적 혁신에 투자하지 않고 지속적, 효율적 혁신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기업과 경제가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게을리하는 이유는

“금융이라는 신(新) 종교 때문이다. 이 종교의 고위 성직자들은 경영대학원에서 금융을 가르치는 교수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파트너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업 이익에 대해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다. 바로 이익을 ‘비율(ratio)’로 측정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기업들에 “과정은 중요하지 않으니 무조건 비율을 맞추라”고 강요한다. 


대표적인 것이 내부수익률(IRR)이다. 기업들이 IRR을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금을 최소 5~8년 안에 회수할 수 있는 곳에만 투자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파괴적 혁신보다는 존속적 혁신에만 자원을 집중한다. 


물론 수익성은 개선되지만 성장은 하지 못한다. 또 한 가지 예는 순자산수익률(RONA)이다. RONA를 올리는 방법은 분자인 수익을 높이는 것도 있지만, 분모인 순자산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베트남 등으로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다. 이러면 수익성은 올라가지만 그 어떤 것도 새롭게 창조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시기를 놓쳐 애플에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당했다. 

“불행하게도 신은 데이터를 오로지 과거를 분석하는 데만 유효하게 창조했다. 미래를 보는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분석을 끝내고 의사 결정을 내릴 때쯤이면 이미 게임은 끝난 뒤다. 데이터 없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완벽한 직관력을 가진 리더를 가지고 있든지,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을 만들거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인도에 고드레지(godrej)라는 가전업체가 있다. 과거 LG는 고드레지보다 저렴하고 단순한 냉장고를 출시해 인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고드레지 경영진이 나를 찾아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LG가 당신들을 파괴(disrupt)했던 것처럼 당신들도 똑같이 LG를 파괴하라’고 조언했다. 


고드레지는 이후 서로 다른 금속에 특정 방향으로 전기를 흘리면 열을 흡수한다는 ‘펠티에 효과’라는 과학 원리를 활용해 작고 단순한 보급형 냉장고를 내놨다. 가격이 65달러에 불과했다. 


이에 LG는 기존 제품을 더 좋고 비싸게 만드는 존속적 혁신으로 대응했다. 이것이 바로 혁신 기업의 딜레마다. 삼성이나 LG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장 데이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줄여서는 담배나 마약을 끊지 못한다. 데이터 중독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끊어야 한다.” 

▶삼성전자도 혁신기업 딜레마에 빠졌나.

“그렇다. 삼성은 위대한 기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 우리는 5년 전에 이론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은 모듈화된(modular) 개방형 시스템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캐나다 림(RIM)과 삼성 등에 이를 경고했다. 하지만 삼성은 애플처럼 독점적(proprietary) 폐쇄형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아이폰, 블랙베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유럽과 중국에서는 안드로이드로 대표되는 개방형 시스템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과거 소니가 그랬고 최근 RIM이 어려워진 것처럼 애플과 삼성도 폐쇄형 시스템에 발목 잡혀 머지않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삼성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이미 너무 늦은 건가?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인텔 인사이드’가 돼야 한다. 부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처음 산업이 시작될 때 가장 좋은 전략은 전쟁에 나가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이 개방형 시스템으로 바뀐 후에는 다르다. 전쟁에 참여하기보다 총알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중국에서 완제품을 조립하는 회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메모리반도체와 회로기판을 사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2년 후면 게임은 끝날 것이다.”

▶국가도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하나.

“물론이다. 일본은 1970~1980년대 파괴적 혁신으로 미국을 제쳤다. 도요타는 소형차, 소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값싸고 단순한 제품으로 시장의 밑바닥을 공략해 성공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성장을 멈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게 됐지만 고가 시장에서는 성장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추격을 당하고 있는 한국과 대만을 비교하면 한국은 일본, 대만은 미국에 가까워 보인다. 대만에서는 어디를 가나 벤처캐피털을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명함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닌다. 대기업 명함과 창업기업 명함이다. 그래서 대만은 중국이 쫓아와도 성장의 엔진이 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대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을 게을리하고 있고 창업 분위기도 아직 부족하다. 지금 모습대로라면 한국은 중국의 추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보스턴=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52203131

Posted by insightal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