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분자 크기로 만들어진 잠수정을 타고 환자 몸속으로 들어가 혈류를 따라 항해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핏덩어리를 제거한다. 1966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환상 여행(Fantastic Voyage)`의 줄거리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6년 이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화할 수 있음을 암시한 책이 출간됐다. 미국 나노기술 이론가 에릭 드렉슬러가 펴낸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이다. 나노기술은 1~100㎚(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다룬다. 1㎚는 10억분의 1m다. 드렉슬러는 나노기술에 관한 최초의 저서로 자리매김한 이 책에서 나노기술의 활용이 기대되는 분야 중 하나로 의학을 꼽았다. 인체의 질병은 대개 나노미터 수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가공할 만한 나노기계라 할 수 있다.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에서 사람 몸속을 돌아다니는 로봇을 상상했다. 이런 나노로봇(나노봇)은 핏속을 누비고 다니면서 바이러스를 만나면 즉시 박멸한다. 드렉슬러는 자연의 나노기계인 바이러스를 인공의 나노기계인 나노봇으로 물리치는 이른바 나노의학을 꿈꾼 셈이다. 또한 드렉슬러가 세포 수복 기계(cell repair machine)라고 명명한 나노봇은 세포 안에서 마치 자동차 정비공처럼 손상된 부분을 수선하고 질병 요인을 제거한다. 드렉슬러 주장대로라면 나노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나노의학의 가능성은 미국 나노기술 이론가 로버트 프레이터스에 의해 더욱 확장된다. 1999년 펴낸 `나노의학`에서 그는 개념적으로 설계한 나노봇 두 종류를 소개했다. 적혈구와 백혈구를 본뜬 나노봇이다. 적혈구 기능을 가진 나노봇은 일종의 인공호흡세포다. 이런 인공 적혈구를 몸에 주입하면 가령 단거리 경주 선수는 15분간 단 한 번도 숨 쉬지 않고 역주할 수 있다. 요컨대 적혈구 나노봇을 사용하면 몇 시간이고 산소호흡 없이 버틸 수 있다. 백혈구 기능을 가진 나노봇은 일종의 인공 대식세포(매크로파지)다. 대식세포는 식균세포이다. 백혈구 나노봇은 몸 안에 들어온 병원균이나 미생물을 집어삼킬 수 있다. 

물론 의학용 나노봇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노의학은 질환의 조기 발견, 약물 전달, 질병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먼저 분자 수준에서 질병의 발생을 진단하는 이른바 분자진단으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게 됐다. 암이 진행돼 악성 종양 덩어리가 포도알 크기가 되면 그 안에는 1조개의 세포가 들어 있다. 따라서 종양 덩어리가 되기 전에 세포 몇 개 정도 또는 아주 작은 분자 수준일 때 암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만큼 환자의 생명을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 나노기술을 사용해 암세포를 조기에 찾아내는 방법이 다각도로 개발됐다. 

나노의학에서는 약물을 환자 몸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연구한다. 오늘날 항암제의 경우 종양 부위 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몸 전체를 강타해 정상적인 세포도 파괴한다. 

이런 화학요법의 부작용을 나노기술로 해결한 대표적 인물은 미국의 로버트 랭어다. 랭어는 항암제를 주사기로 몸 안에 넣지 않고 폴리머(중합체)에 집어넣어 입안으로 삼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항암제가 필요한 부위에 전달돼 종양만을 공격하고 다른 부위에는 타격을 주지 않는 약물 전달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나노입자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도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다. 10개에서 수천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물질을 나노입자라고 한다. 세포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나노입자는 세포 안 목표 지점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으므로 암세포로 들어가 집중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나노의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드렉슬러와 프레이터스가 꿈꾼 나노봇의 개발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4월호 나노의학 특집에 따르면 이런 의학용 나노봇이 나타나려면 10~2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환상 여행`의 잠수정 같은 나노봇이 마침내 개발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출처: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599535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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