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개혁 외치면서 대기업 취업 원하는 ‘이중잣대’

오너와 회사를 동일시, 개인 비리에 회사가 타격 받아
선진국, 비리 행위만 엄벌…기업에 대한 반감은 적어


◆ 기업 10敵 반기업 정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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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전반에 재벌기업에 대한 반기업 정서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국내 최대 재벌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김호영 기자]

재벌 개혁은 정치인들에겐 첫 번째 공약사항이며, 대학생들에겐 단골 토론주제다. 하지만 정치권은 늘 대기업에 협찬을 기대하며, 대학생들은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삼성 현대차 SK LG 등을 꼽는다. 이 같은 ‘이중 잣대’가 반기업정서를 해소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기업 오너를 비난하면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까지 궁지로 내모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대표 황상기 씨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보상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지만 둘째 딸과 사위는 삼성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황씨뿐만 아니라 대기업 개혁을 주장하는 많은 인사 가운데 자기 자식은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허다하다.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을 바라보는 ‘이중 잣대’도 만연해 있다. 많은 사람은 빌 게이츠 재단을 통해 기부에 앞장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이츠재단에 들어간 돈은 빌 게이츠와 부인 멀린다 게이츠 그리고 워런 버핏 기부금이 전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회사 차원에서 단 한 푼도 출연하지 않았다. 

반면 국내 대기업은 매년 수백억 원씩 기부금을 낸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50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LG그룹도 120억원을 성금으로 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그룹이 내는 성금에 대해 대부분 국민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이는 기업이 해야 할 일과 기업 오너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혼동해서 생긴 일이다. 우리 국민은 기업과 기업총수에 대한 구분도 모호하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대다수 국민이 기업에 대한 불만과 기업총수에 대한 불만을 혼동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반기업정서를 해소하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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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만 19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대한 호감도는 85.1%에 달한 반면 재벌기업에 대한 호감도는 32.0%에 불과했다. 

기업총수 개인 비리로 인해 기업이 타격을 받는 사례가 허다한 것은 물론 기업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대주주에게 묻기도 한다. 

이처럼 기업과 기업총수를 동일시하는 인식 때문에 반기업정서 해소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 영국 독일 등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나라들은 구체적인 불법 또는 비위에 대해 엄한 처벌을 가할지언정 기업 자체에 대한 반감은 높지 않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 반기업정서가 높은 나라들과 차이 나는 점이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환경 고용 부패 분식회계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엄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기업 자체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2002년 엔론과 월드컴 분식회계 스캔들이 드러나 미국 월가가 떠들썩했다. 관련 법을 강화하고 수위 높은 처벌이 잇따랐으나 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 거대 화학기업인 듀폰이 제품 생산 과정에 사용한 독성 화학물질을 유출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장이 인접한 오하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화학물질 유출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지만 듀폰이라는 기업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화학물질 유출과 고용 납세 등은 별개 문제라는 인식이다. 

[이진명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65349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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