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를 넘자 / 메르스에 묻혀 우리가 못보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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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격리병동 찾은 朴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메르스 확진 환자 5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함께 CCTV로 격리병동 상황을 점검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동대문 패션타운을 방문한 자리에서 "메르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들에게 6월 세금 납부를 연장해 드리고 특별자금을 지원하겠다"며 상인들을 위로했다. [김재훈 기자]

전국적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우선 주목을 하게 될까. 감염 경로? 발생 환자수?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매킨지앤드컴퍼니는 중동호흡기중후군(메르스)에 대처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해 "다른 환자들을 소홀히 다루지 말라"는 것을 첫 번째 어젠더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 매킨지가 현지 정부를 지원하며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을 통해 낸 제언이다. 하지만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2015년 6월 한반도에 내려앉은 메르스라는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메르스로 인해 다른 환자들은 병원의 보호와 관심권에서 사라지며 방치되고 있고, 비정규직 일자리도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 교육당국은 학생들 보호 대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 탓이라며 간단히 휴업을 결정해 버렸다.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정작 더 중요한 것들을 우리는 이미 놓쳐 버린 것은 아닌가. 

 휴가철 앞두고 사라진 일자리…손님 끊긴 가게 알바생부터 잘라
구직자 '자진 실업'도…6월 최악 고용절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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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분당에 사는 정인혜 씨(23·여)는 지난 4일 한 외식업체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그만둬야 했다. 업체 사장이 "메르스 사태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쓰기 힘들다"며 갑작스럽게 해고를 통보했다. 일주일 전까지 서울 한 한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지영 씨(24·여)도 최근 갑자기 해고 통고를 받고 힘이 풀렸다. 이씨는 "퇴근길에 원장님에게 인사를 하는데 '메르스 때문에 앞으로도 환자가 줄 것 같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면서 "불과 일주일 전까지 바빠서 눈코 뜰 새도 없었는데 괜히 메르스 핑계로 해고를 하려는 건 아닌지 솔직히 의심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사회를 뒤덮은 메르스 불안심리가 지난달 반짝 회복조짐을 보였던 고용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음식 숙박업·도소매업 등 최근 고용 증가를 끌어온 업종들이 '메르스발 타격'으로 시간제 취업·아르바이트 부문에서 채용을 줄이고 있다. 

통계청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취업자수가 37만9000명 깜짝 증가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려오는 중국 노동절(4월 30일~5월 4일) 연휴와 일본 골든위크(4월 29일~5월 6일)가 맞물리면서 숙박·음식업 등 서비스업 부문에서 고용이 확대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메르스 공포로 상황이 급반전하고 있다. 전월 상승에 따른 부정적 기저효과까지 고려하면 6월 통계치는 최악의 '고용절벽' 을 맞을 수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전체 채용공고를 집계한 결과, 영화·공연·전시·여행가이드·뷔페·연회장 등 6개 서비스업종 채용공고 수가 메르스 이전보다 10.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채용공고가 3%가량 소폭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최근 2명의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용인시 수지구의 한 카페 주인 안 모씨(55)는 "손님이 지금같이 적게 오면 단 한 명인 시간제 직원도 내보내고 내가 직접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남 화순의 한 키즈카페 운영자도 "어린이들이 아예 한 명도 안 온다"며 "주말에 안전 관리와 고객 안내를 위해 놀이시설마다 5명씩 아르바이트생을 뽑았는데 지금은 아예 뽑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스 확산 상황을 지켜보며 당분간 구직을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서울 금천구 한 이비인후과 관계자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그만두기로 했는데 도무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후임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스 총력대응 뒤 사라진 환자들…"병실 없어요" 암수술도 못받아
자택 격리된 암환자 숨진 채 발견되기도
 

3년 전 암수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던 A씨(48)가 지난 13일 새벽 강원도 원주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간암 말기였던 그는 지난달 28일 14번 환자가 입원했던 서울삼성병원을 다녀온 뒤 발열증상을 보여 보건당국에 의해 지난 10일부터 자택에서 격리됐다. 숨지기 전 사흘 동안 외부와 격리된 A씨는 메르스 감염을 파악하기 위한 보건당국 조치 외에 말기 간암과 관련한 어떠한 의학적 도움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A씨는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 이뤄진 유전자 검사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이 나왔다. A씨 주위 사람들은 "암 환자로서 받아야 할 도움이 메르스에 묻혀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B씨(42)는 지난 13일 오전 심한 복통을 느꼈다. 집에서 가까운 대전선병원을 찾았지만 소화기내과 의사가 없다며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병원들 대부분이 메르스 환자에게 노출된 병원이라 우선 다른 몇 곳을 들러 위내시경을 찍었다. 그리고 2~3일 뒤 또 다른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통해 비로소 출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안해진 B씨는 결국 메르스 확진 병원이긴 하지만 을지대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들이 격리 중이라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B씨는 다시 건양대병원으로 갔지만 출혈로 인해 일단 응급치료만 받고 15일 진찰을 받기로 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30대 중반 C씨는 요 며칠 새 밤잠을 계속 설쳤다.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다인실 병실이 나지 않아 수술 일정이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다. 병실이 나지 않아 C씨와 가족들은 애만 태웠다. C씨는 지난 13일 입원실이 잡혀 곧 수술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한시름 놨지만 혹시 또 연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대학병원은 평소에도 병실 잡기가 쉽지 않은데, 최근 메르스 병원 환자들이 '국민안심병원'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C씨처럼 '잠 못 이루는 환자들'이 생기고 있다. 메르스 공포에 따른 '풍선효과'가 병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광풍이 불었을 때 "중증환자들이 메르스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면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각 병원들이 메르스 대응 총력전을 펼치며 취약계층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운영되면서 지난 9일까지 기존 입원환자를 모두 내보냈다. 이로 인해 에이즈와 결핵환자들은 의료원과 연계한 전국 병원으로 흩어졌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최근 보건복지부에 보낸 공개질의서를 통해 "국립의료원이 적극적 전원(병원 옮김) 대책을 펴지 않고 환자에게 스스로 전원을 알아보라며 퇴원을 종용하고 있다"며 적극적 대책을 촉구했다. 

 휴업 장기화 사라진 공교육…하루 20만원 개인과외 성행
PC방에 학생 넘치고…학원 결석률 5%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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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PC방에는 200석 자리가 초·중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인근 텅 빈 학교 교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PC방 주변에는 초등학교 2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몰려 있다. 이 중 초등학교 1곳은 이날까지 휴업 중이었고 나머지 1곳은 오는 19일까지 휴업할 예정이다. PC방에서 만난 이 모군(11)은 "9일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늦잠도 잘 수 있고 친구들과 PC방에 올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PC방 직원은 "메르스 감염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성인 이용자는 줄었는데 휴업으로 학생들은 오히려 늘었다"고 전했다. 

사교육 시장도 건재했다. 목동 강남 등에서 학원을 운영 중인 교육기업 하늘교육의 이날 기준 학생 결석률은 5% 수준으로 메르스 발생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임성호 대표는 "고등부는 결석이 거의 없다"며 "학교는 '휴업하라'는 민원을 많이 받는데 학원에 대해선 그런 요청이 뚝 끊겼다"고 밝혔다. 

공교육이 마비된 틈을 타 개인 과외도 성행 중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차라리 잘됐다"며 하루 10만~20만원 교습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학교 휴업에 아이들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맞벌이 부부들이 대거 동참하고 있다. 

서울 방화동 최 모씨(43·여)는 "지난 9일부터 초등학생 두 딸을 위해 과외 선생님을 구했고 학교 휴업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부탁할 것"이라며 "하루 15만원씩 교습비를 지불하기로 했고 주변에 다른 엄마들 몇몇도 이렇게 과외 선생님을 구해서 아이를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휴업이 계속되면 공교육은 정상 수업 일수도 채우지 못해 파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수업 재개를 권고함에 따라 15일부터는 휴업을 중단하는 학교가 크게 늘 전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15일 휴업 예정인 학교는 지난 12일 2900여 곳에서 크게 줄어든 440곳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는 14일 오후 3시 현재 지역별 휴업 학교가 경기 153곳, 서울 102곳, 충남 43곳, 전남 38곳, 충북 22곳, 대전 14곳 등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15일부터 일단 수업을 재개하고 방역 체계를 갖추는 학교의 '능동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메르스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 경기 등 일부 지역 학교들은 휴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서울 역시 강서구·양천구의 메르스 전염 위험이 높아지면서 강서교육지원청 관내 학교 중 80여 곳이 15일 또는 16일까지 휴업을 결정했다. 

[김시균 기자 / 박창영 기자 / 박윤예 기자 / 안갑성 기자 /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 지홍구 기자 / 이동인 기자 / 문일호 기자 / 김수영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70659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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