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같은 말을 한다면 분명 그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가 때로는 평소보다 훨씬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 있다. 최근에 필자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던 심리학자가 한 사람 있다. 필자의 학부 동기이자 절친한 학문적 동지인 고영건 고려대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몇 주 전 고 교수가 대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것 중 고 교수가 이야기한 그 하나에 필자 역시 무릎을 탁 치면서 '맞아. 그렇네'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것은 바로 '싫어하는 사람과 용건이 없는데도 통화하기'였다. 맞다. 싫어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다. 그나마 용건이라도 있으면 나의 싫은 기색과 눈치를 감추고 그 대화를 진행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그 용건마저 없으면? 미칠 노릇일 것이다. 이는 굳이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사이가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어색한 사이 정도만 되더라도 용건이 없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난감하고 괴롭겠는가.
그렇다면 이를 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용건 없이도 대화 나누는 사이 말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친밀한 관계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한두 번쯤 용기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 용건이 없는데도 이야기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면? 더 정확히는 거기까지만 하고 대화를 끝낸다면? 용건 없는 안부를 전달받은 사람은 좀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까.
굳이 실험 연구들을 구구절절하게 대지 않아도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심리학자들은 생각한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를 종합하면 이러한 역관련성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행복하니까 웃는다. 그렇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웃게 만들면? 사람들은 좀 더 행복감을 느낀다. 상대방이 예쁘니까 뽀뽀한다. 그렇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뽀뽀하게 만든다면? 상대방이 좀 더 예뻐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태도가 행동을 만들지만 그 행동 자체를 일단 하게 하면 그 행동과 관련 있는 태도를 스스로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도와 행동이 어느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의사소통하는 그야말로 절묘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친밀한 사람과 용건 없는 대화를 하지만 용건 없는 대화를 하고 나면 더 친밀함을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로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간단한 안부를 묻고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간단한 인사를 마친다면? 이 한마디에 우리는 소소한 살맛을 느끼며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수많은 리더들이 자신이 폴로어들에게 친밀하게 느껴지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한 번쯤 되돌아보시라. 거창한 배려와 대단한 리더십 이전에 나는 얼마나 '용건 없이 안부'를 물어왔는가를.
얼마 전 어떤 기업의 한 간부 직원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같이 일할 때는 가장 존경했으며, 각자 다른 조직에서 일하는 지금은 가장 보고 싶은 자신의 상사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귓가에 맴도는 그 상사의 한마디. "뭐해? 잘 지내지?" 그 상사가 자신의 책상 옆을 지나가며 불쑥 고개를 내밀고 약간은 익살스러운 말투로 던지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용건 없는 안부' 아니겠는가. 되돌아보면 필자 역시 용건 없이 안부를 묻고, 용건 없이 말을 건넨 적이 거의 없다. 글을 쓰면서도 반성하게 되는 오늘이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no=471614&year=2016
'Psycho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이혼/심리] 재혼가족에 영향을 끼치는 `관계`들 (0) | 2016.08.10 |
---|---|
[스크랩/심리/경영] [CEO 심리학] 큰 성취 이룬 구성원이 두번 성공 못하는 이유 (0) | 2016.08.04 |
[스크랩/심리] 성공적인 삶을 위한 성장형 마음가짐 (0) | 2016.06.29 |
[스크랩/심리/] 이성친구를 통해 성장하는 나 (0) | 2016.06.29 |
[스크랩/심리] 심상, 미래기억, 그리고 정서 (0) | 201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