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청송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청소년학과)
분노란 무엇인가? 최고의 깨달음을 준다는 힌두교의 경전(Bhagawad Gita)은 ‘분노(anger)의 뿌리는 욕망(desire)이다. 욕망의 좌절은 분노를 일으키고, 분노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면서 인간이 극복해야 할 필수감정 중의 하나로 분노를 꼽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분노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머릿속의 기대가 어긋날 때' 오는 실망과 좌절 때문이다. 머릿속의 기대는 내가 만들어내지만,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 머릿속의 기대가 어긋난다는 것은 자신의 바람이 좌절된 것이요, 욕망이 꺾인 데서 오는 실망감이요, 배신을 당한 것이다. 이는 분노감정과 직결되어 있다.
DSM-5에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라는 진단명이 있다. 이 장애의 핵심증상은 분노조절의 실패이다. 즉,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욱'하고 폭발하는 '분노충동조절장애'이다. 욱하고 분노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자포자기식 행위'가 초래되고,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고통과 불행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분노를 적절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억제하는 경우도 문제가 심각하다.
분노표현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분노표출이다. 분노표출은 분노 유발대상에게 직·간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분노표출은 신체적 또는 언어적으로 나타난다. 둘째는 분노통제이다. 이는 분노를 느꼈을 때 빨리 냉정을 유지하고 내부의 분노감정을 다스려서 상황에 맞게 적절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분노억제이다. 분노억제는 분노가 치밀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분노억제에 있다.
분노억제는 사람을 골병들게 만든다. 분노억제가 반복되어 깊어지면 화병으로 발전한다. 화병은 '울화병'이라고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분노가 내면화된 화병이 많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분노억제를 미덕으로 삼은 결과다. 화를 내는 것은 점잖지 못한 행동이고, 화를 참고 이겨내는 것이 옳은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결합된 화병을 이겨내는 것은 그저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상책이라는 문화적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화병은 여러 증상들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마음이 혼란스럽다. 무슨 감정인지 오묘하게 섞인 분노감정이 나를 괴롭힌다. 버림받은 느낌, 멸시나 무시당한 느낌, 죄책감, 배신감, 복수감 등의 감정이 깔려 있다. 신체적으로는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쉬기가 어렵다. 그 결과 정신력은 떨어지고, 고혈압과 암(특히, 유방암, 결장직장암, 폐암, 위암 등)이 초래된다. 따라서 '울화가 치밀어서 못 살겠다'는 사람은 병에 빨리 걸리고 또 빨리 죽는다.
그럼 화병을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가?
이상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기대심리를 버려야 한다. 즉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화가 나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화가 나기 때문이다. 사랑과 분노는 실체가 없다. 그저 나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나의 모습일 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이 크듯이 마찬가지로 고통과 불행도 크다.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론적으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은 자신의 기대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화를 줄이는 것이 1차 과제이고, 그래도 생기는 화는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화를 줄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화를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화가 날 때 '나의 기대는 정당한가?'를 되물어야 하고, 그 기대가 정당하지 않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 기대가 정당하다면 화를 적절히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억압적이지도, 무조건 허용적이지도 않은 균형 잡힌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분노치료는 나를 존중하는 것에 있다. 나를 존중하는 것은 행복과도 직결된다. 나의 존중감이 떨어지고 무시당할 때 분노감이 치밀고, 동시에 행복은 사라진다. 나의 존중감이 회복되면 대인관계의 관점을 다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대인관계의 통찰력이 생긴다면, 분노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 머릿속의 기대를 저버린 분노까지도 수용할 수 있게 되고, 화병의 집착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인관계의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통찰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고, 매일의 연습을 통해 다가갈 수 있다.
  • 글. 김청송
  • 중앙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중앙대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례중심의 이상심리학(DSM-5)을 출간하였으며, 현재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심리적 결정 요인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5winter/sub.html?category=9&psyNow=12&UID=130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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