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직원, 국가 아닌 장사꾼에게 월급 받아 생계
무상의료도 무너져 ‘어쩔 수 없는 의약분업’ 등장
北시장화 가속도…‘김정은 제도화 방식’에 촉각
◆ 2015년 신년기획 광복70돌 북한은 지금 / 북한체제 파고드는 자본주의 ◆
매일경제신문은 광복·분단 70주년을 맞아 북한 원산경제대학에서 사회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실무에 종사하다 한국에 입국한 김영희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북한경제팀장을 명예기자로 초빙했다. 남북 관계가 최대 화두로 등장한 을미년 새해, 김 팀장이 최근 입국한 탈북민과 북한 내부 인물 등 5명을 심층 인터뷰해 북한 밑바닥 경제의 따끈따끈한 변화상을 전한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 북한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해온 ‘장마당’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시장 기능을 넘어 체제의 밑바닥을 소리 없이 바꿔가고 있다.
탈북민 J씨에 따르면 북한에 남아 있는 그의 동생 A씨는 국방대학을 졸업하고 6년 전에 평양 인근 평성·순천에서 북·중 국경도시인 혜산까지 물건을 대량으로 사서 옮겨주는 장사(도매·운송업)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열차 수화물 지도원에게 뇌물을 주고 한 번에 500㎏ 이상을 운반했는데 자칫 한눈을 팔게 되면 물건을 도둑맞는 일도 허다했다. A씨는 피 같은 물건을 지키기 위해 수화물 칸에서 일주일이나 뜬눈으로 보냈으며 혜산에 도착해서는 물건을 넘겨주고 대금을 직접 받은 뒤 갖은 고생을 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처럼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장사를 한다. 북한 전역에 300만대나 개통된 휴대폰을 통해 물자와 돈이 오가는 특유의 북한식 물류·결제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A씨는 휴대폰으로 혜산에 있는 고객 B씨와 통화해 필요한 상품의 품목·수량을 주문받는다. 그리고 평성 시장에서 도매가격으로 주문받은 물건을 구입한 뒤 기차에 실어 주기만 하면 된다. A씨가 물건을 실은 열차의 수화물 지도원이 물건들을 안전하게 혜산까지 옮겨줄 뿐만 아니라 B씨에게 직접 ‘배달’도 해 준다.
열차 수화물 지도원에게 주문품을 전달받은 혜산의 고객 B씨는 물건의 품질과 수량을 확인한 다음 휴대폰으로 평성에 있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받았으니 물건값을 지불하겠다”고 알려 준다. 그러면 물건값은 혜산의 B씨가 거래하는 평성의 ‘돈주’(신흥 부유층) C씨가 운영하는 ‘개인금고’를 통해서 A씨에게 지급된다. 이처럼 평성에 있는 A씨는 국경지대 혜산까지 찾아가 고객을 만나지 않아도 ‘돈주’를 낀 사적 송금 시스템을 통해 물건대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객열차의 수화물 지도원은 도매·운송업자인 A씨로부터 매달 운송 수량·횟수에 따라 100~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사실상 수화물 지도원의 고용주는 국가가 아닌 도매업자 A씨가 되는 셈이다.
만약 운송 과정에 사고가 났을 경우 약속한 돈의 일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하게 월급을 타내기 위해 위탁받은 물건을 철저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반해준다. 개인들의 물자유통업이 당국의 묵인하에 ‘시스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과거와 달리 구두로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의 개인적 상행위가 확산되면서 구두 계약에 의한 채권·채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민법을 개정해 관련 규정까지 만들었다.
‘장마당’ 20년을 거치면서 북한에서 사적 신용기반의 형성에 따른 ‘유통서비스업’이 등장하고, 그만큼 신흥 부자들의 자본 축적도 효율화·기업화하고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도 밑으로부터의 시장경제가 더 확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변형된 다양한 거래 및 금융 형태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 사회를 크게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탈북민 출신인 김병욱 경일대 초빙교수도 “북한(시장)이 사적인 신용기반에 의해 새로운 자본영역을 양산해가는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제도화해 공적인 영역으로 양성화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 앞에 나선 또 하나의 경제개혁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상품 유통 시스템은 북한 체제의 또 다른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무상의료’의 모습도 크게 바꿔놓았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의약품이 부족해 진단만 해주고 항생제, 기타 의약품들을 시장에서 개인이 사서 쓰도록 하고 있다. 궁핍이 가져온 ‘의약분업’의 씁쓸한 풍경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과 약 장사꾼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의사는 ‘어느 장마당의 어느 약장수 약을 사와야 된다’며 물량을 몰아주는 처방전을 써준다. 결국 의사를 찾았던 환자들은 모두 특정 장사꾼의 약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몰아주기’의 혜택을 입은 약 장사꾼은 사실상 북한에서 ‘약국’ 역할을 하고 있다. 의사는 약국(약 장사꾼)이 약을 판 액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무상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그 자리를 변형된 의약분업 시스템이 조금씩 메우고 있는 것이다.
[김영희 명예기자 / 도움 =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북한경제팀장 김성훈 기자]
탈북민 J씨에 따르면 북한에 남아 있는 그의 동생 A씨는 국방대학을 졸업하고 6년 전에 평양 인근 평성·순천에서 북·중 국경도시인 혜산까지 물건을 대량으로 사서 옮겨주는 장사(도매·운송업)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열차 수화물 지도원에게 뇌물을 주고 한 번에 500㎏ 이상을 운반했는데 자칫 한눈을 팔게 되면 물건을 도둑맞는 일도 허다했다. A씨는 피 같은 물건을 지키기 위해 수화물 칸에서 일주일이나 뜬눈으로 보냈으며 혜산에 도착해서는 물건을 넘겨주고 대금을 직접 받은 뒤 갖은 고생을 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처럼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장사를 한다. 북한 전역에 300만대나 개통된 휴대폰을 통해 물자와 돈이 오가는 특유의 북한식 물류·결제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A씨는 휴대폰으로 혜산에 있는 고객 B씨와 통화해 필요한 상품의 품목·수량을 주문받는다. 그리고 평성 시장에서 도매가격으로 주문받은 물건을 구입한 뒤 기차에 실어 주기만 하면 된다. A씨가 물건을 실은 열차의 수화물 지도원이 물건들을 안전하게 혜산까지 옮겨줄 뿐만 아니라 B씨에게 직접 ‘배달’도 해 준다.
열차 수화물 지도원에게 주문품을 전달받은 혜산의 고객 B씨는 물건의 품질과 수량을 확인한 다음 휴대폰으로 평성에 있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받았으니 물건값을 지불하겠다”고 알려 준다. 그러면 물건값은 혜산의 B씨가 거래하는 평성의 ‘돈주’(신흥 부유층) C씨가 운영하는 ‘개인금고’를 통해서 A씨에게 지급된다. 이처럼 평성에 있는 A씨는 국경지대 혜산까지 찾아가 고객을 만나지 않아도 ‘돈주’를 낀 사적 송금 시스템을 통해 물건대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객열차의 수화물 지도원은 도매·운송업자인 A씨로부터 매달 운송 수량·횟수에 따라 100~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사실상 수화물 지도원의 고용주는 국가가 아닌 도매업자 A씨가 되는 셈이다.
만약 운송 과정에 사고가 났을 경우 약속한 돈의 일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하게 월급을 타내기 위해 위탁받은 물건을 철저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반해준다. 개인들의 물자유통업이 당국의 묵인하에 ‘시스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과거와 달리 구두로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의 개인적 상행위가 확산되면서 구두 계약에 의한 채권·채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민법을 개정해 관련 규정까지 만들었다.
‘장마당’ 20년을 거치면서 북한에서 사적 신용기반의 형성에 따른 ‘유통서비스업’이 등장하고, 그만큼 신흥 부자들의 자본 축적도 효율화·기업화하고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도 밑으로부터의 시장경제가 더 확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변형된 다양한 거래 및 금융 형태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 사회를 크게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탈북민 출신인 김병욱 경일대 초빙교수도 “북한(시장)이 사적인 신용기반에 의해 새로운 자본영역을 양산해가는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제도화해 공적인 영역으로 양성화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 앞에 나선 또 하나의 경제개혁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와 같은 상품 유통 시스템은 북한 체제의 또 다른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무상의료’의 모습도 크게 바꿔놓았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의약품이 부족해 진단만 해주고 항생제, 기타 의약품들을 시장에서 개인이 사서 쓰도록 하고 있다. 궁핍이 가져온 ‘의약분업’의 씁쓸한 풍경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과 약 장사꾼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의사는 ‘어느 장마당의 어느 약장수 약을 사와야 된다’며 물량을 몰아주는 처방전을 써준다. 결국 의사를 찾았던 환자들은 모두 특정 장사꾼의 약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몰아주기’의 혜택을 입은 약 장사꾼은 사실상 북한에서 ‘약국’ 역할을 하고 있다. 의사는 약국(약 장사꾼)이 약을 판 액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무상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그 자리를 변형된 의약분업 시스템이 조금씩 메우고 있는 것이다.
[김영희 명예기자 / 도움 = 산업은행 통일사업부 북한경제팀장 김성훈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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