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 지출 논란 / 왜 복지만 갖고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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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핵심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를 사실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세입 문제인 ‘증세’와 세출 문제인 ‘복지’는 저울의 양쪽 끝에 놓여 있다. 현재는 세출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이 저울을 균형 상태로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세입을 늘리는 ‘증세’를 하든지 아니면 세출 예산을 줄이든지 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증세 논란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출 예산 중 유독 ‘복지’ 부문을 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늘어난 복지’가 저울을 기울어지게 한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에 담긴 전제조건이 아직 이행되지 않은 상태다. 박 대통령은 ‘세출구조조정’ 등을 통해 세금 낭비를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예산 외에도 여전히 줄줄 새는 세금이 너무 많다. 세출구조조정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겨야 할 이유다. 

◆ ‘밑빠진 독’ 연구개발(R&D)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R&D 총액 비중은 세계 1위, 정부 예산에서 R&D가 차지하는 비중도 세계 2위 수준이다. 하지만 기술무역수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 수준이고 주요 학술지 게재 논문 수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국력에 비해 엄청난 R&D 예산을 쓰고도 효율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셈이다. 원인에는 R&D의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 동안 연구기획자 일곱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이른바 ‘과제 주고받기’를 했다. 연구자들이 ‘짬짜미’로 과제를 나눠먹기식으로 배분해 예산을 더 따낸 셈이다. 이 밖에도 비슷한 과제를 중복해서 신청하거나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과제로 선정해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가 속속 적발돼 왔다. 

감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공공기관 R&D 투자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21개 공기업들이 중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고 R&D 사업을 벌이는 기관도 있었다. 또 R&D 과제가 중복되는지를 검토할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한 기관은 아예 없었다. 올해 19조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는 R&D 분야에 그동안 감시 체제가 미흡했다. 정부는 뒤늦게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을 단장으로 14개 부처 R&D 담당 부서가 포함된 ‘R&D 심층평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 눈먼 돈, 국고보조금 

‘나랏돈은 눈먼 돈’ 사례가 속출하는 게 국고보조금이다. 경북 안동에 있는 한 농가는 낙후된 축사를 현대화하겠다며 시공업체와 사전에 공모한 뒤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실제 공사비보다 2배 넘는 보조금을 받아챙기기도 했다. 

충남 금산에서는 노인요양시설 원장과 사무장이 짜고 요양보호사 급여비용을 허위 청구해 1억21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지난 2년간 검경합동조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보조금 부정수급 금액만 무려 4000억원이다. 지난해 비복지 분야 보조금을 중심으로 18개 부처가 실태 점검을 한 결과 전체의 5.4%에서 부정 수급사례를 적발했다. 

지난해 국고보조금은 2031개 사업에 52조5000억원이나 지원됐다. 보조금이 부처별로 산재해 있는 데다 워낙 지원 대상이 많다 보니 제대로 감시가 이뤄지지 않았다. 보조금을 관리하는 정보망도 기획재정부의 ‘디브레인’, 행정자치부의 ‘이호조’, 교육부의 ‘에듀파인’ 등 제각각으로 연계성이 부족했다. 보조금 관리 규정 자체가 없는 기관도 30%나 됐다. 

특히 보조금을 총괄할 정부 컨트롤타워가 없는 데다 수급자 정보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말에서야 ‘국고보조금 관리위원회’를 설치해 보조금 운영 및 관리와 부정수급 대책 수립과 집행을 총괄하기로 했다. 보조금 관련 부처별 IT시스템 통합, 부정수급 신고센터 일원화 등 대책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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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분별 중소기업 지원 

지난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쓴 돈은 무려 13조원이다. ‘창조경제’ 깃발 아래 각종 지원책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중소기업청 예산은 1996년 개청 이래 최대 규모인 7조9037억원이나 된다. 작년보다 무려 12.6%나 급증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합해 정부가 직접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만 무려 557개다. 사업 주체별로 예산 따내기에 혈안이 되다 보니 지원 대상이 되는 우수 중소기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한 창업투자사 대표는 “중소기업청 소관 ‘모태펀드’와 금융위원회 ‘성장사다리펀드’는 비슷한 성격에도 한 곳에서 돈 받으면 다른 곳은 절대 기웃거릴 수 없다”고 실토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중소기업 지원기관끼리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 일도 흔하다. 

재정 낭비가 심해지자 정부는 지난해 ‘중소기업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거의 전 부처에 산재돼 있는 지원사업 유사·중복성을 전면 조사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특정 기업에 대한 ‘쏠림지원’을 막기 위해 지원한도제를 도입해 시행할 계획이다. 나랏돈을 받은 기업의 매출·수출·고용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지원 사업별로 분석해 예산 편성 때 반영하기로 했다. 

◆ 이중 삼중 지원 유사·중복사업 

현재 통일부는 ‘탈북 산모 도우미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역시 비슷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일부는 또 ‘폭력피해 탈북 여성에 대한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도 역시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사업과 보건복지부의 ‘희망리본’사업도 사업 성격과 대상이 유사한 공공사업이다. 이렇게 유사한 사업을 다른 부처에서 각각 진행할 경우 예산이 중복 지출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가재정사업으로 진행되는 6000여 개 사업 중 10%인 632개가 유사·중복 사업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2017년까지는 이들 중복사업을 모두 통폐합할 예정이다. 

하지만 명목상으로 유사·중복 사업을 줄이는 것만으로 예상 낭비를 모두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같은 사업으로도 중복 수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까지 스크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인제군은 2011년 ‘용늪 자연생태학교 정비사업’ 명목으로 행정자치부와 문화부에 보조금을 중복 신청하여 각각 40억원과 20억원을 교부받았다. 

염병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많은 부처들이 중복하거나 쓸데 없는 곳에 복지지출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미시적인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세세한 점검을 해야 한다”며 “증세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앞서 정부가 국민적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줄줄 새는 지방재정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채무가 31조원에 이르고 있지만, 경영 개선 노력은 소홀하고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 증액만 요구하는 모럴해저드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감사원은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사업을 찾아내고 그동안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지방교육청에 대해서도 재정운용 상태를 점검할 예정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민선 5기 지자체의 경우 지방세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125곳이나 됐지만, 공무원 정원을 늘린 곳은 117곳이 넘었다. 또 지방교부세 징수태만으로 적발된 건수가 282건이 넘고 과다지출 건수도 222건에 이르렀다. 

반장식 서강대 교수(전 기획예산처 차관)는 “중앙정부에 심사를 의뢰하는 지자체 사업의 규모를 현행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확보하고 지자체 자체 예산 사업에 대해서도 심사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 조시영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2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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