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2


‘아파트 비리척결 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6월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아파트 비리 차단을 위해선 공동주택의 공공관리가 시급하다며 전담 조직인 공동주택관리청 신설 등을 촉구하고 있다. 아파트 비리척결 운동본부 제공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⑧ 아파트 관리·운영, 주민이 나서야

500가구 넘으면 주민 직선제지만 
선관위에 부녀회·관리소장 입김 
사실상 선거때 거수기 노릇 일쑤

공동주택법 통합·관리청 신설해 
이해당사자들 관리·감독 확대해야

대구 달성군 가창스파밸리 컨벤션센터에 지난 5월29일 450여명이 모여 ‘투명, 공정’ 구호를 외쳤다. 대구지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 회장, 감사, 동대표, 부녀회장, 관리사무소장들이었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와 방법으로 공동주택을 운영·관리하고, 비리와 부정을 척결하겠다’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딱딱한 자정 결의대회에 참가한 연유는 이렇다. 아파트 주민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꾸린 입대의가 언젠가부터 ‘비리의 온상’처럼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전국 주택 1487만7000호 가운데 아파트가 58%가량인 867만1000호(58%)에 이른 상황인데도,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아파트 입대의 구성·운영은 주민들의 기대와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협력하는 ‘거버넌스’, 곧 협치(協治) 방식이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아파트 입대의까진 영향이 닿지 않고 있다. 형식적으론 주민들이 직접 대표를 뽑은 법정 단체인데도,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입대의 사이의 반목이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입대의 구성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부터 공정한 관리자라는 ‘필터’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다. 2010년 7월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선 주민 대표를 직선으로 뽑도록 규정이 바뀌었지만, 입대의 회장 선출이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체감하는 주민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 주민들은 ‘입대의 회장이 주민 동의 없이 장기수선충당금 4억원을 다른 용도로 썼다’며 회장 해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할 것을 아파트 자체 선관위에 요구했다. 하지만 아파트 선관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소송으로 번졌고, 법원은 올해 3월 선관위에 ‘투표 이행강제금 명목으로 하루 10만원씩을 입주민에게 지급하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아파트 선관위가 주민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입대의 회장 쪽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음을 법원이 인정한 사례다.

대구지역 한 아파트에서 지난 6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후보자 합동연설회를 앞두고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가 연설회장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제공

아파트 선관위 구성부터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관리규약 준칙에는 선관위원 추천권을 입대의 회장, 관리사무소장, 부녀회, 노인회 등이 갖도록 규정돼 있다. 선관위원들이 ‘아파트 권력’이라 할 이들의 거수기 구실에 그칠 공산이 큰 것이다. 대구아파트사랑시민연대 신기락 사무처장은 “입대의가 입주민들이 아니라 부녀회·노인회 등 일부 기득권 단체만을 대표하는 기구로 전락하곤 하는 것은, 입대의 회장·임원 등을 선출하고 감시하는 아파트 선관위의 구성부터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천시는 아파트 선관위를 구성할 때 입주자 가운데 희망하는 자를 우선적으로 공개 모집해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신진세력’이 선관위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우선권을 준 것이다. 시민단체와 법무법인 등으로 선관위를 꾸리자거나, 지방정부가 전문 인력을 활용해 입대의 회장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기락 사무처장은 “입대의 비리를 원천 차단하려면, 자치단체나 독립기구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입대의 선거를 감독하는 등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8월24일 새벽 울산의 아파트에서 입대의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놓고 입대의 안에서 내분이 빚어진 상태였다. 업체들은 가구당 연간 위탁수수료로 25만원, 26만원, 27만원을 제시했는데, 가장 비싼 27만원을 제안한 업체가 뽑힌 뒤였다. 당연히 입대의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시가 지난 3월 변호사·회계사·기술사 등으로 ‘맑은 아파트 만들기 추진단’을 꾸려, 비리 의혹이 제기된 아파트 단지 103곳 가운데 11곳을 골라 6월 한달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입대의와 관리사무소는 ‘비리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주먹구구식 공사 발주, 수의계약 남발, 입찰 짬짜미(담합) 등 모두 168건의 부조리가 드러난 것이다. 지난 6월 아파트 관리 비리 특별단속에 나선 인천지방경찰청은 지금까지 1명을 구속하고 39명을 입건했다. 비리 유형은 서울시 조사 결과와 비슷하게 공사·용역업체로부터 금품 수수 30건, 관리비 횡령 11건, 입찰 비리 등이었다.

아파트 관리비는 개별 가구 처지에선 한달 몇십만원 선이지만, 공동주택에선 뭉칫돈이다. 그 쓰임새와 관리·감독 권한은 사실상 입대의에 맡겨져 있다. 곳간의 열쇠를 쥔 입대의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의 송주열 회장은 “현행 아파트 관리·운영체계는 입대의가 의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불법도 합법으로 둔갑한다.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잘못 집행된 관리비는 회수할 수 없다. 따라서 아파트 비리는 예방적 차원에서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공동주택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전담 관리조직으로 공동주택관리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서울시 공동주택지원센터를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꼽기도 한다.

서울연구원은 ‘2010년 아파트 관리의 공공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서 “아파트 관리 관련 소식의 통로는 관리사무소 50.3%, 입대의 21.5%, 자생조직 12.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입대의와 주민들의 소통이 일방적 전달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줄줄 새는 관리비, 조목조목 따져보셨나요?

입대의가 적립·쓰임새 쥐락펴락 
장기수선충당금·잡수익도 살펴야 
지출 등 회의록 주민에 공개해야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낸 관리비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곳간 지기’입니다. 따라서 곳간 지기 역시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4년 동안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푸른마을 2600여가구의 살림을 맡았던 김병욱(49) 전 입대의 회장은 비리의 근원이 된 관리비를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져 볼수록 ‘비리 사슬’도 약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주민 스스로 관리비의 의결과 집행 내역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입대의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고 깨질 수 있다는 깨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국 아파트에서 징수·집행되는 관리비는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등 국민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촘촘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관리비는 새고 권리는 묻히는 경우가 많다.

관리비는 크게 △공용관리비와 △사용료로 나뉜다. 공용관리비 가운데 일반관리비란 관리소 직원의 인건비와 교육훈련비, 관리용품 구입 등이다. 또 수선유지비란 건물의 유지·보수에 쓰이는 비용을 뜻한다. 규모가 적은 공사비나 각종 점검비용이다.

장기수선충당금도 있다. 외벽 도색, 옥상 방수 등 아파트 수명 연장을 위해 집주인에게 다달이 거둬들여 적립해두는 돈이다. 늘 쌓여 있는 이 ‘목돈’ 관리는 입대의 회장이 맡고 있다. 당연히 목돈 유치를 위한 은행의 로비도 치열하다. 일부에선 이를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일이 벌어져 다툼이 잦다. 특히 장기수선충당금은 집 소유주가 내는 게 원칙이어서 세입자는 관리비에 부과된 장기수선충당금을 이사 갈 때 돌려받을 수 있다.

또한, 결산서 등에 표시된 잡수익은 단지 안에 들어서는 재래시장인 이른바 ‘알뜰시장’ 업자들한테 받은 수익금이나, 입주민들이 모은 폐휴지 등 재활용품을 팔아 모은 돈이다. 이 역시 연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해 ‘견물생심’이 되기 쉽다.

김 전 회장은 “관리비는 아파트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뼈대이자 끈이다. 따라서 ‘아파트 거버넌스’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관리비의 사용내역과 씀씀이 등이 담긴 입대의 회의록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민에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openapt.seoul.go.kr) 누리집에 접속하면 아파트 관리비를 따져 볼 수 있는 ‘아파트 관리비 내리기 길라잡이’란 파일을 볼 수 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04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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