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7세 오피스 여성인가… 자신을 위해서 돈 쓰고
애인이나 직장 동료를 데리고 올 가능성도 커
서비스도 차별화…치마 입은 손님에 무릎담요… 식당 나갈땐 탈취제 준비
하나에만 집중했더니… 20대후반 여성도 많지만
남성 등도 60~70% 차지… 11년만에 100호점 내

지난 2002년 10월 서울 지하철 사당역 인근 4층 건물 지하에 주점이 하나 들어섰다. 문제는 상권이었다. 뒷골목에 있는 데다 지하라는 점 때문에 손님이 좀처럼 찾지 않았다. 한 명도 안 온 날도 있었다.

그로부터 만 11년이 지난 지금 그 주점은 어느덧 '와라와라'라는 중견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장했다. 지난 5월엔 성신여대 지하철역 부근에 100호점이 문을 열었다.

와라와라는 어떻게 11년 만에 천지개벽 같은 변화를 일궈냈을까. 유재용 대표는 "표적 고객 하나를 정해 그 '점(點)'을 향해 달린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와라와라가 목표로 정한 핵심 공략층은 '27세 오피스 레이디'였다. 크루즈 미사일이 송곳 같은 정확성으로 타격을 하듯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목표를 설정했던 것이다.

여직원이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과일을 직접 갈아 생과일주를 만들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와라와라 직영점에서 여직원이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과일을 직접 갈아 생과일주를 만들고 있다. / 이명원 기자

27세 여성에게 집중

수많은 음식점과 차별화하려면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유 대표가 몇 달 동안 '다른 주점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과정에 문득 떠오른 것이 '여성'이었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주점이란 개념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주점이라면 으레 남성이 대상이라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민은 어떤 여성이냐에 집중됐다. 생각하면 할수록 대상은 명료해졌다. 자기 뜻대로 돈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단골이 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손님을 끌고 올 수 있는 여성이어야 했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여성이 바로 27세 오피스 레이디였던 것이다.

이제 그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가 남았다. 유 대표는 젊은 여성이 좋아할 수 있는 메뉴를 집중 연구했다. 당시 주점에 거의 없던 메뉴들이 이렇게 해서 등장했다.

과일주를 만든 것은 최대 히트작이었다. 파인애플이나 오렌지, 레몬을 현장에서 갈아 직접 개발한 술과 섞은 과일주는 맛이 좋았고, 도수가 그리 높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기에 즉석에서 갈아주는 퍼포먼스를 곁들이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안주로는 청양고추와 날치알을 넣은 계란말이, 떡볶이가 대표 상품이 됐다. 유 대표는 "여성은 취하는 술 보다는 맛있는 술을 좋아한다는 점을 고려했고, 막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도 참고해 메뉴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서비스도 차별화했다. 와라와라 매장엔 짧은 치마 때문에 불편해 하는 여성 손님을 위해 무릎 담요가 준비돼 있고, 긴 머리가 자꾸 음식에 닿는 손님에게는 머리 끈도 준다. 또 손님이 식당에서 나갈 때 옷에 밴 냄새를 없애기 위한 섬유 탈취제가 있고, 직원을 부르면 휴대폰을 충전해 준다.

모두 27세 오피스 레이디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해야 할지 연구한 끝에 나온 산물이다. 머리 끈은 떡볶이를 먹는 한 여성 손님이 머리가 자꾸 국물에 닿자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먹는 모습을 보고 착안한 것이다. 머리 끈은 한 개에 원가가 100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의외로 찾는 손님도 많았고 반응도 좋았다.

와라와라는 3개월에 한 번씩 5가지 메뉴를 새로 개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새 메뉴를 내놓기 전에는 27세 여성 20명을 초청, 품평회를 열어 반응을 확인한다.

와라와라가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가 적혀 있는 안내문.
 와라와라가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가 적혀 있는 안내문. / 이명원 기자

집중하니 개성이 뚜렷해지고 소문

그렇다면 왜 26세나 28세가 아니고 27세 여성일까? 유 대표는 "26세냐, 27세냐, 28세냐 하는 것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며 "우리가 서비스와 메뉴를 개발할 때, 항상 맘속에 그려둬야 할 구체적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이 뚜렷한 이 주점은 자연스레 소문이 났다. 고무적인 것은 손님이 27세 여성에 머물지 않고 다른 층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와라와라 매장 손님 중 20대 후반 여성의 비중은 30~40% 정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머지 60~70%는 남성이나 다른 연령층이라는 점이다. 뚜렷한 목표는 직원들의 몰입을 이끌어 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일부 가맹점 점주는 "이제 손님 중에 30~40대 이상도 많아졌으니 그에 맞는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유 대표는 "정체성을 상실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고 설득한다.

'와라와라'가 본 27세 오피스 레이디의 특징 그래픽

평범해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사실, 유 대표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땐 특별한 목표도 전략도 없었다. 그저 남이 하는 대로 소주와 맥주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손님들의 입맛을 확 당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 하나 없는 평범한 메뉴판이 전부였다. 투자비와 월세가 싸다는 것만 믿고 덜컥 가게를 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대로 가다간 쫄딱 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블루오션'이 절실했다. 유 대표는 "항상 주변에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걸 보지 못했을까' 하며 무릎을 탁 칠 수 있고, 큰돈이나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지금 수준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블루오션인 27세 오피스 레이디는 여러 매력과 특징을 갖고 있었다. 우선, 경제력이다. 여성은 통상 24세를 전후로 사회에 진출한다. 27세라면 최소한 2~3년은 직장 생활을 했을 것이고, 20대 초반 학생이나 30대 이후 기혼자와 달리 자기 맘대로 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연령층은 사회 활동도 활발해 친구, 직장 동료와 많이 어울리고, 미혼이라면 남자 친구도 데려올 가능성이 컸다.

둘째, 입맛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입맛은 음식점으로선 모험이자 기회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점은 술에 초점을 맞추지 다른 먹거리에는 신경을 안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 입맛에 맞는 제대로 된 메뉴를 만들어낸다면 다른 가게와 달리 확실히 손님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셋째, 한번 마음에 들면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단골이 될 수 있다. 남성은 술 그 자체를 즐기는 것에 의미를 두지만, 여성은 좋은 곳, 마음에 드는 곳을 찾기 때문에 '충성도'가 훨씬 높다.

넷째, 소문을 잘 낸다는 점이다. '괜찮다, 마음에 든다'는 인상을 받으면 가족은 물론, 친구와 직장 동료에게 빠르게 전파한다. 한 손님이 두 손님을, 두 손님이 여러 손님을 부르는 소문의 힘은 아주 무섭다.

27세 여성은 다른 연령층과 남성을 불러모으는, 일종의 '인간 자석'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연령대의 여성이 몰리면, 자연스레 젊은 남성 손님도 따라 몰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계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은 나중에 사업이 성공하면서 증명됐다.

와라와라 유재용 대표
 와라와라 유재용 대표

가맹점 수보다 질적 차별화에 주력

차별화된 서비스와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발품도 숱하게 팔았다. 유 대표는 강남역의 거의 모든 주점을 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그곳에서 여성들이 어떤 술과 음식을 찾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와라와라는 10년이 넘는 역사에 비해 가맹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좀 뜬다 싶으면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늘리는 다른 프랜차이즈 전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육주희 월간식당 부장은 "와라와라는 가맹점 수 확장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 아주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와라와라 가맹점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본 조건으로 매장이 60평 이상이어야 하고, 5억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자본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구체적 사업 계획서를 내야 하고 특히, 까다로운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인터뷰 때는 "다른 프랜차이즈도 있는데 왜 이곳을 선택했는가" "매장은 3개 이상 가본 적이 있는가" "왜 이 가게에 손님들이 찾아오는지 아는가" 등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유 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한지, 손님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며 "결국, 고객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영점과 가맹점 비율을 2대8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좋은 메뉴와 최고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직접 매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경험과 노하우가 밑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본사가 직영점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때, 가맹점 주인들도 믿고 따라온다고 한다.

와라와라는 한 달에 한 번 본사 직원은 물론, 가맹점주와 매니저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가맹점이 본사의 기업 이념, 정책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9/2013071901509.html?rsMobile=false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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