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년 전통 명품 유리공예기업 야코포 바로비에르 바로비에르&토소 CEO

자녀 경영수업은 손때 묻은 공방에서 조상 역사 듣고 배우며 열정 물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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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기업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다. 아쉽게도 평균 수명은 생각보다 너무 짧다. 

포천 500대 기업 평균 수명은 7년에 불과하다. S&P500을 기준으로 잡아도 평균 12년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 평균 나이는 28.9세에 그쳤다. 창업 100년이 넘어 장수하고 있는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등 7개 정도에 불과하다. 

치열한 경쟁,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성장동력 부재, 불확실한 승계 여부…. 기업들 앞에 놓인 환경은 갈수록 더 힘겨워지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 더 단명하지 않을까.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유럽이나 일본엔 100년을 넘는 장수기업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족기업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는 오래된 기업이 유독 많다. 

1000년에 창립돼 종(鐘) 하나만 만들어온 ‘폰데리아 폰티피시아 마리넬리’, 1141년부터 올리브유와 포도주를 생산해 온 ‘바로네 리카솔리’, 1369년 설립된 보석 제조 공방 ‘토리니 피렌체’, 1438년 창립된 조선 기업 ‘카무포’, 1526년 세워진 무기 제조 기업 ‘베레타’ 등 백 살 정도는 가볍게 넘긴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바로비에르 & 토소(Barovier & Toso)’는 장수기업이 많은 이탈리아에서도 눈에 띄는 회사다. ‘무라노 글라스’ 혹은 ‘베니스 글라스’로 이름 높은 베니스 무라노섬에서 1295년 설립돼 수제 유리공예품으로 719년을 버텨온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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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회사 중 세계에서 6번째로 오래된 기업. 20세기 후반부턴 고도로 세련된 유리공예기법을 활용해 고급 조명기기를 만들어낸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등 상류층은 물론 루이비통, 까르띠에, 돌체&가바나, 포시즌 호텔, 리츠칼튼 호텔 등 명품 브랜드, 고급 호텔, 부호들이 바로비에르 & 토소 작품에 열광한다. 

2011년 매출 1140만유로, 2012년 1360만유로에 이어 지난해 1450만유로를 기록해 매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2000만유로였던 기업가치는 현재 3000만유로로 50%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260만유로를 올려 영업이익률 역시 18%를 기록했다. 

이 기업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매일경제신문 MBA팀은 최근 바로비에르 가문 19대손이자 CEO로 바로비에르 & 토소를 이끌고 있는 야코포 바로비에르(Jacopo Barovier)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700년 장구한 역사를 버텨온 비결을 들었다. 

“핵심 역량인 오랜 전통과 고도의 기술을 지켜나가되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젊음을 유지할 것.” 그의 답은 명료했다. 바로비에르 대표 인터뷰를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한 경영을 목표로 하는 한국 기업에 던지는 시사점 위주로 재구성해 봤다. 

◆ 핵심(Core)은 목숨 걸고 지켜내라〓바로비에르 & 토소의 핵심 경쟁력은 탁월한 유리공예 기술과 장인 정신, 최상급 명품 소량 생산이다. 700여 년 역사 동안 회사가 흔들림 없이 지켜온 원칙이기도 하다. 유리공예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달인들이 모여 있는 베니스 무라노. 그중에서도 바로비에르 가문 기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을 받는다. 

바로비에르 가문 선조들은 물론 가문과 함께해 온 장인과 기술자들은 칸네라는 긴 철제 대롱을 통해 불에 달궈진 유리를 입으로 불고 각종 도구를 사용해 모양을 만들어내고 화려한 색을 입히기도 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달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인터넷 발달과 시대 변화로 지금은 모든 기술이 대중에게도 오픈되는 시대다. 더 이상 유리공예 기술에서 ‘숨겨진 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디자인도 쉽게 모방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기술을 사용해도 바로비에르 & 토소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과 감각은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고. 비결은 철저한 장인 정신과 끊임없는 연마. 

바로비에르 대표는 “18세가 되면 공방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며 “엄격한 수련과 기술 연마 과정을 20년은 거쳐야 비로소 장인(artisan)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제품 생산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모든 제작 과정은 숙련된 장인의 100% 수작업으로 자체 공방 내에서만 이뤄진다. 저임금 국가 아웃소싱은 절대 없다. 생산량은 한정돼 있고 가격은 입이 벌어질 정도다. 샹들리에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유리공예 성지나 마찬가지인 무라노도 몇 년 전부터 경기 침체와 중국산 제품 공세에 홍역을 앓고 있다. 공방을 운영하며 전통을 지켜 오던 오래된 기업들은 하나둘 쓰러지고, 상점들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중국이나 태국산 저가 제품 판매로 생계를 유지한다. 혹자는 10년 안에 무라노 유리공예 산업이 붕괴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좀 더 대중적인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유혹이 커질 수밖에. 하지만 바로비에르 대표는 단호하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대량 저가 상품을 만들어낼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는 순간 우리 회사 브랜드 파워와 아이덴티티는 사라집니다. 변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롤스로이스에 장난감 차를 만들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가격 경쟁은 자기 기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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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과 원칙은 지키되 계속 혁신하고 확장하라〓미국 경영컨설턴트인 제임스 C 콜린스는 “오랫동안 지속하는 기업은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되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존속하기 위해선 시장 요구와 시대 변화에 맞게 혁신하고 변해야 한다. 때에 따라선 과감한 사업 확장이나 포트폴리오 변화도 필요하다. 전제가 있다. 핵심적인 역량과 가치의 영역에 한 발을 굳건히 딛고 다른 발을 새로운 영역에 내디뎌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비에르 & 토소는 핵심 역량과 가치, 전통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혁신과 변신, 확장을 해 왔다. 700년 역사에서 더 아름답고, 더 정교하며, 더 얇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기술 개발은 멈춘 적이 없다. 특히 17대손 에르콜 바로비에르는 색채와 디자인, 새로운 합성법은 물론 좀 더 효율적인 유리 생산법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며 바로비에르 가문의 새로운 중흥기를 일궈냈다. 

이탈리아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명예기사(Cavaliere del Lavoro) 작위를 받기도 한 그는 무려 2만5000가지가 넘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고 ‘비용융 가열채색법’(염료를 파우더 형태로 유리 표면에 고온분사해 색을 발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도 여러 건 취득했다. 그는 새로운 기법들을 무라노 다른 유리공예 공방들에도 전수하면서 표준으로 자리 잡게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사업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시도한다. 유리공예를 활용한 조명기기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 바로비에르 대표는 “그릇과 잔 등 식기류 공예품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대신 크리스털 글라스 제조와 디자인 노하우를 십분 발휘할 수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고부가가치 상품인 조명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 다양한 디자인과 넓은 활용 범위도 고려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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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분야에서도 변화와 혁신은 계속 진행형이다. 작업은 장인 손을 거치지만 디자인과 개발 과정에선 첨단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품질관리 부서에서도 첨단 정밀 장치로 철저한 품질검사를 시행한다. 최근에는 LED 조명과 에너지 절감 등 신기술을 고유의 심미안적 디자인과 결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족기업이 지닌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경영 시스템도 혁신했다. ‘좋은 제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시대 변화와 시장 요구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 영업과 판매, 수출, 기술, 행정, 구매, 홍보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 수출로 눈을 돌렸다. 5개 대륙에 지사를 설립하고 50여 개 국외 에이전트들 간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바로비에르 대표는 “나는 장인이나 디자이너가 아니라 경영자”라며 “내가 창조성을 발현하기보다는 직원들이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게 내 몫”이라고 강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생산 제품 중 85%는 외국에서 판매된다. 

이 회사가 전통에만 안주했더라면 시대 변화에 뒤처져 잊히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반면 조급증과 무리한 확장 욕심에 핵심 역량과 무관한 분야에 집중했다면 웅진그룹 사례처럼 새 사업도 어려움을 겪고 결국 핵심 경쟁력마저 잃어 추락했을 것이다. 

◆ 때론 좋은 파트너가 가족보다 낫다〓바로비에르 & 토소가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동업자 공도 컸다. 기업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회사는 바로비에르 가문과 토소 가문 간 동업 기업이다. 17대손 에르콜 바로비에르가 회사를 이끌던 시절인 1939년 17세기부터 무라노에서 또 다른 유리공예 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토소 가문을 사업 파트너로 맞이한 것. 바로비에르 가문은 66% 지분, 토소 가문은 33%를 확보해 회사 이름도 바로비에르에서 바로비에르 & 토소로 바꿨다. 에르콜은 회장으로 취임했다. 

두 가문은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모범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바로비에르 가문은 경영과 개발, 토소 가문은 생산을 맡았다. 바로비에르 대표는 “역할을 명확하게 나눴고 양가 기술이 겹치는 부분을 없앴다”며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두 가문 간 분쟁이나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구씨와 허씨 가문이 힘을 합쳐 함께 일궈낸 분리 전 LG그룹 사례를 연상시킨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동업은 잘만 하면 파트너 간 상호 보완과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너 독단과 독주를 견제해 조직이 건전한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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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비에르 & 토소는 2010년 전환점을 맞는다. 새로운 파트너는 사모펀드였다. 지분 80%를 여기에 넘겼다. 회사 정체성 문제, 펀드 투자 목적을 놓고 논란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소유권이 아닌 기업 지속성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로비에르 가문은 여전히 지분 20%와 전체 부동산을 소유하고 경영권을 보장받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 유치 이후 자금 부담을 덜고 안정적 경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매출은 연평균 10%가량 신장했고 기업가치도 50% 커졌다. 

◆ 돈이 아니라 열정과 비전을 물려 줘라〓“우리 가문에선 아이들을 공방에 자주 데려갑니다. 우리 제품들이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광경,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일하고, 직원들을 이끌고 고객을 상대하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회사와 선조들 역사와 스토리를 자주 들려줍니다. 아버지들이 일생을 바쳐온 이 일과 회사에 대한 열정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지요.” 바로비에르 대표가 설명했다. 

바로비에르 가문에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회사를 놀이터처럼 여기고 놀면서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이해하면서 미래에 대한 믿음까지 키운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일에 대한 열정,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물려주는 경영 수업을 하는 셈이다. 바로비에르 대표도 젊은 시절 가업 승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회사가 어려우니 돌아오라”는 아버지 부탁 한마디에 군말 없이 회사를 떠맡았다. 

1000여 년간 종을 만들어온 이탈리아 장수기업 폰데리아 폰티피시아 마리넬리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있다. 자녀들에게 가업을 이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평일에 착한 일을 하면 주조소에 올 수 있고, 이곳을 가고 싶어하는 놀이터로 여기게 된다. 이들 장수기업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미국 사회학자 제임스 콜먼이 정의한 대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자연스럽게 물려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대를 이어 존속하기 위해선 경제적 자본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개인의 지식과 기술, 열정, 비전, 직업관과 윤리의식 등 인적 자본과 가족 간 신뢰와 회사 구성원 간 협력적 관계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He is… 

야코포 바로비에르(Jacopo Barovier)는 719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명품 유리공예·조명 전문 기업 바로비에르 & 토소의 CEO이자 바로비에 가문의 19대손이다. 1950년생으로 1974년 회사 판매부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90년대 초부터 CEO를 맡아 전통을 지켜나가면서도 회사 주력 부문을 고급 조명으로 전환하는 등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호승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494392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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