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경영 대가 라피 아밋 교수가 말하는 가족 거버넌스
끈끈한 情보다 경영능력이다, 외부 CEO 망설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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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의 유통업체 자샨말(Jashanmal)은 4대째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은 2대만 지나도 쇠락하기 마련이라는 통념과 달리 창업자 라오 사히브 자샨말이 1919년 창업한 이후 성공을 거듭해왔다. 1대 창업주의 아들만 5명으로 가족 구성원이 수십 명이지만 자샨말에 `형제의 난` `사촌의 난` 은 남의 얘기다. 

그 비결은 잘 짜인 가족 거버넌스에 있다. 자샨말에는 가족을 이끄는 원칙과 합의체가 효과적으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첨예한 갈등을 빚곤 하는 경영권의 향방 역시 가족 거버넌스의 원칙하에 해결한다. 가문 구성원 중 최적의 사람이 밑에서부터 경영수업을 받아야 경영권을 얻을 수 있다. 반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가족은 소유 주식에 따라 배당만 받는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공급한다`는 창업자의 가치를 지키는 노력도 가족 거버넌스의 몫이다. 자샨말 가문 사람들은 일상의 경영 현안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이사회에서 창업자의 가치를 대변한다. 경영진이 창업 가치와 어긋난 이윤을 추구하는 결정을 못하게 막는다. 

가족 거버넌스는 가족기업의 운영과 경영 수칙, 승계에 대해 사전에 합의한 틀을 만드는 것이다. 재벌 가문 내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소식이 들릴 때, 또는 최근 삼성처럼 오너 회장이 갑자기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에도 가족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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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경영의 대가, 라피 아밋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플레시먼힐러드가 주최한 `성공적인 기업 승계를 위한 사전 준비 및 커뮤니케이션`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하면서 "가족 구성원 내 다툼을 줄이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존재가 절실하다"며 "거버넌스가 제대로 뒷받침된다면 가족기업은 주주와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배당, 보상에 대한 갈등 없이 뛰어난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아밋 교수와의 일문일답. 

-가족 거버넌스의 큰 축인 패밀리오피스와 가족헌장은 어떤 역할을 하나. 

▶패밀리오피스는 가문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이 주 임무지만 가문의 문화 전승과 투자, 재단 운영도 관장한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 가업 승계 단계에서 일어날 잡음을 줄이기도 한다. 가족헌장이란 가족끼리 지켜야 할 가치와 덕목을 명시해 놓은 약속이다. 가업의 비전과 가치, 가족의 역사와 구성원들의 행동강령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가족 거버넌스는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아들 대에선 가족 간의 불화로 경영권을 포기했으나 손자 대에 다시 경영권을 요청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가족 거버넌스는 이런 경우에 손자에게 어느 정도의 지분을 줘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가족기업에서 경영권 승계란 어려운 일이다. 모범 기업이 있나. 

▶미국 기업 컴캐스트(Comcast)는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승계가 진행됐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떤 형태로 사업을 물려주겠다고 미리 시장에 공개한 후 3년 정도 기간에 지분정리 같은 절차가 이행됐다. 만일 아버지가 승계 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면 회사와 주주들이 동요했을 것이다. 부채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승계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남아 있었다면 은행에서 대출을 회수하거나 주주들이 주식을 대거 매도할 가능성도 있었다. 승계가 매끄럽게 진행되면서 아버지 때보다 회사가 더 번창할 수 있었다. 

-가족 거버넌스에서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예가 있나. 

▶주방ㆍ욕실 브랜드인 콜러(Kohler)가 좋은 예다. 콜러 가문 사람들은 노동윤리와 청렴성, 혁신 등의 가치를 가족 간의 생활과 가업 운영에서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콜러 지분은 콜러 가문 사람들이 100% 가지고 있지만 이윤의 90%는 회사에 재투자한다.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은 말단에서 시작해야 한다(이는 콜러 집안의 청렴성과 노동윤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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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거버넌스가 있다고 승계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에선 장자(長子) 중심으로 경영권이 승계되다보니 여기에 배제되는 딸이나 차남의 불만도 많다. 

▶능력 있는 딸들을 제쳐두고 아들이란 이유로 가업을 물려줘 갈등이 생기는 건 다른 아시아 국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홍콩의 90세 창업주도 미국 MBA를 나온 똑똑한 딸을 놔두고 망나니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주변에서 말려도 "이게 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집을 부렸다. 가장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방법은 있다. 형제들끼리 협력해 회사를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딸이란 이유로, 막내란 이유로 경영에서 아예 손을 떼게 하지 말고 장자와 함께 회사를 잘 꾸려보라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형제끼리 누가 회사를 맡을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하면 된다. 그들끼리 협의를 해서 그 결과를 아버지 앞으로 들고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미 가족들 사이에 재산을 둘러싸고 몇 차례 분란이 일어난 상황이라면 거버넌스도 소용없지 않을까. 

▶아쉬운 것은 가족들이 거버넌스의 중요성에 대해 평상시엔 무관심하다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나서야 필요하다고 뉘우친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재산 배분은 특히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사전에 정립된 거버넌스 없이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결국 감정끼리 충돌하며 가족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고 기업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버넌스로 돌아가자고 하기 어렵다. 갈등을 인정하고, 화해를 시도하고 쌓인 감정을 모두 풀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가족 간 갈등이 일어난 후엔 가족들이 모두 정신과 의사를 찾아 다같이 상담을 받기도 한다. 쌓인 응어리를 모두 해소해야 다시 가족 거버넌스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기업을 잘 운영하기 위해선 어떠한 형태의 오너십이 가장 적당한가. 오너 일가가 소유는 하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언번들링 매니지먼트(Unbundling Management)`를 주장한 것으로 안다. 

▶사례별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성과주의, 즉 능력에 따라 경영자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가문의 정체성과 사업의 성공 중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경영자 선정이 달라질 수 있다. 성공적인 사업에 초점을 맞추면 가족 구성원보다는 더 역량 있는 사람을 밖에서 데려오는 게 낫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는 가문의 정체성과 창업주 뜻이 우선이라면 자식들이 경영을 맡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가문의 정체성이 중요하더라도 경영능력이 검증 안 된 불안한 사람에게 승계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정에 이끌려 판단을 그르치는 정실주의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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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ㆍ3대로 내려오면서 자식이 여러 명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회사를 나눠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는 창립자들도 있다. 

▶회사를 나누지 말고 주식에 대한 소유권만 나누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자식이 5명이면 회사는 하나로 놔두고 주식만 5명 몫으로 나누는 것이다. 회사를 쪼개면 안 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소유권을 분할하게 되면 가족기업에 대한 결정권은 여러 명이 갖게 되지만 누구 한 명이 경영권을 독점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의 평화가 유지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정말 회사를 경영하기를 원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경영을 원하지 않거나 경영 외 다른 재능을 보이는 자식에게 굳이 가업 승계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가족헌장에 `자아실현` 덕목을 포함시켜 경영에 관심 없는 자식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권장하는 기업도 있다. 

-승계에 가장 적합한 자식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 

▶가업 승계에 뜻이 있는 자녀들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회사 일을 시켜봐라. 이때 자신의 회사보다는 남의 회사가 훨씬 좋은 교육 장소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가업 승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게 좋다. 또 자식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며 외부에서 신선한 시각을 익혀 돌아온다면 자식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실전에 부딪힐 때 나오는 태도와 성과를 보면 누가 승계에 적합한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창업세대와 2ㆍ3세대 경영의 차이점이 뭔가. 

▶1세대 경영자들을 보면 소유권이 집중되어 있고 가업에 대한 통제 권한도 강력하다. 오너가 경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세대로 가고 여러 자식이 가업에 참여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유권의 집중도는 느슨해지고 기업을 통제하는 방식에서도 합의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경영자를 가문 바깥에서 데리고 오라는 이사회나 주주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다. 3세대로 오면 통제권은 더욱 약해지고 경영은 거의 외부 사람들이 맡는다. 주식 지분이 자식들에게 분산되면서 여러 사람이 넓고 얇은 소유권을 누린다. 2ㆍ3세대 경영으로 갈수록 가족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다. 

-창업주 자식 중에는 단순히 주주로만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경영능력이 없는데도 작은 계열사라도 만들어 경영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심을 낼 수 있지 않은가. 

▶가족헌장에 승계의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알리고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 별 욕심이 없더라도 주변 사람의 기대치 때문에 경영권에 미련을 두는 자식이 많을 수 있다. 이런 기대를 차단하려면 가족헌장에 승계 프로세스와 자손들의 권한을 미리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 

■ 가업승계자 공개되면 권력누수?…미래 리더 확정돼야 주가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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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족기업은 대체로 가업승계 계획이 불투명하다. 언제 어떻게 가업이 승계될지에 대한 계획은 오너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심지어 후계 당사자인 자식조차도 잘 모른다. 국내 10대 재벌 중 장래 승계 절차를 제대로 공개한 곳은 거의 없다. 중견ㆍ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단지 후계 그룹의 윤곽만 잡을 수 있다. 

플레시먼힐러드가 주최한 가업승계 세미나에 참석한 법무법인 충정의 황주명 회장은 승계에 관해 오너들의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오너들은 자신의 죽음과 승계 문제를 직면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미리 승계 계획을 밝힐 경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 누수될 것이라 생각해 최후 순간까지 승계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어느 자식이 가업을 승계할지가 분명히 보이는 기업들에서조차 승계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라피 아밋 교수는 승계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가족기업이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 주장한다. 그는 "승계 여부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결국 가문과 기업 모두에 나쁜 결과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승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이 절실하다. 그는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인력 풀이 협소해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리더 자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확실하지 않으면 비전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유능한 인재들이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밋 교수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그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삼성그룹의 승계 정보 부족은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적어도 글로벌 이해관계자들에게 불확실성은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의 건강 악화로 삼성그룹의 승계 프로세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승계에 대한 큰 그림은 깜깜이다. 계열사 상장 공시만 간간이 나올 뿐 시장에서는 온갖 시나리오만 난무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승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승계를 세습으로 인식하는 국민 정서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발표를 미루다 결국 최후 순간이 닥치면 후다닥 상속과 승계가 이뤄지기 일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승계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키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황 회장은 "가업이 국가경제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밝힌다면 가업승계도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기부, 법인세 납부 이력, 창출된 일자리 수 같은 기업의 실적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 내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업승계가 거론되고 있는 삼성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모범 사례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황 회장은 "한국에서도 좋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가업승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설명> 

▷ 가족 거버넌스는 가족의 대소사와 가족기업의 경영ㆍ승계 등 가족에 관한 모든 사항에 대해 가족 구성원이 사전에 합의한 원칙과 절차를 뜻한다. 창업주의 가치ㆍ신념과 같은 무형의 요소와 가족헌장을 기반으로 패밀리오피스, 가족회의 등의 기구를 통해 운영된다. 가령 경영권 승계에 대해 창업주가 능력주의를 신봉했다면 가족헌장에 명시된 실력 우선주의에 따라 가족회의를 거쳐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경영자로 추대한다. 패밀리오피스는 경영자의 월급과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가족에 대한 배당금을 결정한다. 

■ who he is… 

라피 아밋(Raffi Amit) 교수는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재직 중인 가족경영의 대가다. 와튼 글로벌 패밀리 얼라이언스(Wharton Global Family Alliance)라는 가족경영 산학 협력 연구과정을 창립해 이끌고 있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MBA에서 수학했으며 가족경영, 거버넌스, 벤처캐피털 분야에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1000억원대의 한국 글로벌 IT펀드인 `코리안 글로벌 IT펀드(Korean Global IT Fund)` 자문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 

[김제림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909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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