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에 작년 34조원 몰려

애플·맥도널드·파낙 등도 크게 당해


◆ 한국 노리는 글로벌 헤지펀드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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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칼 아이칸은 2013년 8월부터 애플 주식을 꾸준히 사들인 뒤 같은 해 10월 애플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낮다며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아이칸의 끈질긴 요구에 애플은 이듬해 2월 140억달러(약 15조원)어치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실시했다. 아이칸의 애플 보유 지분 가치는 약 30억달러에서 65억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 일본 로봇 제조업체 파낙은 4월 27일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깜짝 놀랄 만한 주주친화 정책을 내놓았다. 향후 5년간 이익의 최대 80%를 주주에게 환원하며, 이를 위해 현재 배당성향 30%를 60%로 높이고,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알짜 기업이지만 평소 주주 정책에는 인색했던 곳이기에 시장 참여자들은 깜짝 놀랐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가 올해 초 지분을 매입하고 주주친화책을 강력히 주문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저금리·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Activist)' 투자가들이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2013년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에 이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에 정통한 투자 업계 핵심 관계자는 "미국에서 투자 트렌드로 자리 잡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자금이 많이 몰리자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을 거쳐 다음 목표물로 한국을 노리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 이슈 때문에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최근 삼성정밀화학 지분 5%를 사들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IB 업계 전문가는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자회사 및 계열사 보유 지분 매각 등을 통한 단기 주주 가치를 높이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최근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수익률 제고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공격 대상을 찾기 어려워진 데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면서 주가 등락이 심해야 수익을 내는 헤지펀드들에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이 덜돼 있고 주가 수준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단기적 주주 가치 제고를 통해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헤지펀드에 최근에는 글로벌 연기금과 대학기금 등도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뭉칫돈을 넣고 있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다보니 행동주의 펀드들의 투자 행태가 단기 차익 실현을 위해 보다 공격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헤지펀드 평가 업체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305억달러(약 34조원)의 투자 자금이 유입됐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큰 자금 유입 규모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분기 39억달러 신규 자금이 몰리면서 행동주의 헤지펀드 운용 자산은 1275억달러(약 143조원)까지 증가했다. 행동주의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펀드 숫자도 2011년 말 기준 89개에서 2014년 말 기준 203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이유는 높은 수익률 때문이다. HFR의 지난 5월 말 기준 최신 자료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 전략의 최근 3년 누적 수익률이 57.4%로 31개 주요 헤지펀드 전략 가운데 가장 수익률이 높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칼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경우 애플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에는 '팔 수 있을 때 팔라'며 페이팔 분사를 권고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재나파트너스는 지난해 미국 최대 약국 체인점인 월그린을 압박해 이사회에서 이사직 2개를 따냈고, 최근에는 실적이 부진한 맥도널드 주식을 대량 매입해 보유 부동산 매각 등을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지자 행동주의 펀드들은 지난해부터 일본 기업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미국 헤지펀드 서드포인트가 일본 로봇 업체 파낙을 공략해 대규모 주주친화 정책을 이끌어냈고, 홍콩계 헤지펀드 오아시스는 일본 IT 기업 교세라 지분 1%를 취득한 후 비영업자산인 일본항공과 KDDI 지분 매각 등을 요구했다. 최근 3~4년 사이 행동주의 펀드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면서 투자 대상 기업 규모도 커졌고 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여전히 투자 개시 후 차익 실현까지 기간이 짧아 투기 성향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JP모건이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투자 기간이 6개월 미만이고, 이를 포함해 약 70%는 투자 기간이 1년 미만으로 집계됐다.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들이 장기간 구조 개선을 요구해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과 달리 행동주의 펀드는 문제를 제기하고 실제 기업 가치가 개선되기 이전에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소액주주의 가치를 함께 증대시킨다는 측면에선 순기능을 갖기도 한다"면서도 "하지만 과도하게 쟁점을 만든 뒤 주가가 오르면 '먹튀'를 하는 일이 많아 평가가 엇갈린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행동주의 헤지펀드 : 주식 매수를 통해 특정 기업의 주요 주주로 등재된 후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이사 선임 등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기업 및 보유 주식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펀드. 

[최재원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642115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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