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은 어느 때보다 노련하고, 컴퓨터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고, 정보가 풍부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여러 설문조사 앞에서 힘을 잃는다. 2006년 미국지리학협회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63%는 지도에서 이라크를 찾지 못했다. 2008년 제이 르노는 ‘투나잇 쇼’에서 전구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대부분의 청소년은 에디슨이라 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읽은 책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2007년 한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18~29세 중 56%의 지식 수준이 ‘낮음’으로 나타났다. 50~64세의 ‘낮음’은 22%에 불과했음에도 말이다. 1994년 미국 성인 중 학사 학위 소지자는 20%에서 2005년 27.6%로 증가했다. 동시에 독해력 테스트에서 낙제점을 받은 사람들도 1992년 20%에서 2005년 27%로 증가했다. 미국 내 박물관, 공공도서관, 미술관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지적인 능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작가 필립 로스는 2000년 소설 ‘휴먼 스테인’에서 오늘의 젊은이들을 ‘가장 멍청한 세대’라고 표현했다. 더 이상 그의 독설에 반박할 여지는 줄어들고 있다. 이 책은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오늘의 청소년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지적인 습관이 도태된 세대가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책은 가장 강력한 적으로 전자기기를 지목한다. 

청소년에겐 ‘또래집단’의 힘이 크다. 서로 강렬하게 의식하고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10대에게 또래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이런 사회적 압력이 이들을 그들만의 오락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지금 또래 친구들이 무엇을 하는지 엿보고 ‘좋아요’를 누르기 위해 24시간 스마트폰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1980~1990년대 경제·디지털 혁명은 기적처럼 손쉽고 빠르게 각종 정보와 상품, 오락과 친구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재미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만큼 지식에 대한 갈망은 커지지 않았다. 18세는 15만8000시간을 살았다. 이 중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11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세대를 만드는 건 가정·사회·여가생활이라는 말이다. 이 시간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독서시간 감소다. 미국에서 1982년 18~24세 중 문학 독자 비중은 59.5%였지만, 2002년 42.8%로 급감했다. 동시에 그들은 휴대전화나 TV 없이는 살 수 없다.


저자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서 발견한 특이한 현상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다. 1960년대 히피도, 1980년대 X세대도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기는 했지만 독서를 구시대적 관습이라 선언하거나 반지성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손바닥 안에 든 인터넷 정보에 의지하고 “책이나 읽는 노땅들은 쥐뿔도 모르는 어른”으로 치부한다. 그들에게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우승자를 아는 것이 로마제국의 역사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가 발견한 학교는 유행하는 음악이나 옷에 대해 남보다 잘 알기 위한 경쟁을 월가보다 무자비하게 벌이는 곳이었다. 

저자는 “아이에게는 유예와 은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간곡하게 말한다. 사려 깊은 시민으로 안목 있는 소비자로 자라려면 청소년은 반드시 이런 식의 패거리 문화와 학교 담장을 벗어난 세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은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미묘한 시기다. 훌륭한 시민이자 양식 있는 소비자가 되기 위한 수준 높은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하는 시기에 양서를 읽고, 위대한 사상을 논하고, 역사를 논평하고 도덕적 양심을 형성하는 시기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게 되면 헌법이나 단테의 ‘신곡’을 숙고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고 지도해줄 사람도 없다. 페이스북에서 보내는 시간은 악기를 연습하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정치 방송을 볼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활동이 요즘 청소년이 디지털기기에 접속해서 기분 전환을 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기회비용’이다. 

저자가 청소년의 지적 성취에 이토록 관심을 쏟는 이유는 지식은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년들이 이런 오락에만 매달리다가는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는 도덕적 버팀목마저 잃어버릴지 모를 거라고 염려한다. 

마크 바우어라인은 워싱턴포스트 등 매체에 글을 써온 에모리대 영문과 교수다. 단지 학문의 사멸을 앞둔 인문학자의 고민이 아닐까도 싶지만, 그의 논증은 미래 세대를 위한 충분히 설득력 있는 고민으로 읽혔다. 2008년에 나온 책이다. 저자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가? 미래 세대는 한층 더 강력하게 전자기기에 몰입하고 있을 따름이다. 

[김슬기 기자]


출처: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36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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