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영원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최근 '결정 장애'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엄격하게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간단한 점심 메뉴 선택에서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사결정의 문제들을 앞에 놓고 속 시원하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우유부단함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의사결정 장애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판단과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그러나 많은 판단과 의사결정은 우리의 의식 영역이 아닌 비의식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갈증을 느낄 때 자판기에서 자신도 모르게 반자동적으로 콜라를 사서 마시는 경우, 소비자들은 별 생각 없이 대안을 선택한다. 그에 비해 의사결정자가 어떤 대안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차이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은 어느 대안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같은 고민의 정도가 지나쳐 사회적으로 부적응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결정 장애'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의사결정일수록 선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문제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현대인들이 선택 상 고민을 많이 하도록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선택 대안이 많아지면 의사결정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본 심리학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캘리포니아의 슈퍼마켓에서 이루어진 한 현장 실험에서 "제한된 선택 조건"의 참가자들을 위해서는 잼 판매대에 6개의 잼이 진열되어 있었고, "광범위한 선택 조건"의 참가자들을 위해서는 24개의 잼이 진열되어 있었다. 결과, 제한된 선택 조건에서는 30%의 참가자들이 잼을 구매하였고, 광범위한 선택 조건의 참가자들은 겨우 3%의 참가자들만 잼을 구매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너무 많은" 선택 대안 (24개의 잼)은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을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렵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선택 대안이 너무 많다보니 자기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대안을 고르기 위해서는 여러 제품들을 서로 비교해 보기도 해야 할 것이고 가격이나 제품 속성들을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과정이다. 또한 소비자들은 어떤 잼을 골랐을 때 자신이 그 잼보다 다른 잼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자신이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지 비용'과 '예견된 후회'는 잼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선택을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만들 수 있다.
단지 두 개의 선택 대안만이 주어진 경우에도 의사결정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졸업을 앞둔 학부 학생을 예로 들어보자. 그 학생은 그 어렵다는 입사시험을 통과하여 취업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평소에 가고 싶었던 대학원의 입학시험에도 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취업과 대학원 진학은 각각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선택 대안이지만 이 학생은 현재로서는 대학원 진학에 약간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대학원에 진학한 뒤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서 대학원 생활보다 취업을 더 선호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점이다. 이런 경우 그 학생은 아마도 두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가능하다면 선택을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을 것이다.
의사결정에 관한 심리학 연구들에 의하면 의사결정자들의 심리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여러 대안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심사숙고 마인드셋'과 자신의 판단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주로 생각하는 '실천 마인드셋'으로 나눌 수 있다. 두 가지 마인드셋은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의사결정이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심사숙고 마인드셋'에서 '실천 마인드셋'으로 이행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 어떤 소비자가 백화점에서 명품 핸드백을 사고자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일단 여러 핸드백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핸드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끝났고, 그 핸드백을 구매할 경제적인 여유도 있지만 막상 사려니 왠지 선뜻 구매하는 것이 꺼려지는 경우다. 아마도 이 경우는 그 소비자로 하여금 마인드셋을 바꾸도록 만드는 계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비교적 저가지만 매력적인 장신구를 핸드백 옆에 진열한 경우, 그 소비자의 심리는 '심사숙고 모드'에서 '쇼핑 모드'로 전환하면서 비교적 쉽게 고가의 명품 핸드백을 구매하는 일이 가능해 진다. 물론 이 같은 마인드셋의 전환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하는 충동구매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인들은 많은 의사결정 상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같은 어려움을 '의사결정 상의 장애'로 생각하는 것은 당면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과도한 비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의사결정 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첫째, 선택 대안의 수가 많더라도 자신이 양보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진 대안들로 선택 대안의 수를 신속하게 줄여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둘째, 미래에 자신의 선호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은 자신의 선호 체계를 포함하여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정보에 기초해서 정당화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 한다" 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의사결정 상의 어려움은 조그만 일이라도 관련된 일들을 실천에 옮겨 봄으로써 좀 더 큰 의사결정을 수행하기 위한 계기로 삼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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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yengar, S. S., & Lepper, M. R. (2000). When choice is demotivating: Can one desire too much of a good th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9, 995-1006.
  • 글. 하영원
  • University of Chicago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Rutgers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Confirmation bias 에 관한 논문을 Psychological Review,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Learning, Memory & Cogni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등에 발표하였으며, 현재 소비자 의사결정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출처: http://webzine.kpsy.co.kr/2015winter/sub.html?category=9&psyNow=23&UID=134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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