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기자입력 : 2013.06.26 20:33
2000년 이후 종전과는 전혀 다른 마케팅 방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기업은 자사나 자사 제품의 좋은 점을 좀 더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하려고 고민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차츰 낯선 마케팅 기법이 나타났다. 우선 이전과 달리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마치 친구에게 들려주듯 조근 조근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에 회사 소개나 제품 성능을 홍보하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한 번 들으면 끌리는 맛이 있고 여운이 남았다. 그 회사라면 믿음이 가고 호감이 갔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출현이었다.
◇ 마케팅 관점에서 바라본 진실 담은 이야기
객관적인 방법으로 고객의 이성에 호소했던 것이 과거의 마케팅 방법이라면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제품이나 브랜드의 가치를 주관적인 방법으로 고객의 감성에 호소한다. 과거에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팩트를 ‘알렸다’.
그러나 소비자는 팩트를 팩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과거 마케팅의 한계였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에서는 팩트에 감성을 입혀서 고객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때 소비자는 팩트+감성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사실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객은 제품이나 업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은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키고 고객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내, 궁극적으로 고객의 호감과 호의적 태도를 유도하는 최적의 방법으로 등장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어느 정도 상용화되었지만 지금도 아직 개념 정리가 모호하다. 개념 정리가 되기도 전에 관련 분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란 용어를 남발해서 생긴 측면이 강하다.
또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과 마케팅(marketing) 사이의 관계를 사람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대체로 ‘Story telling in marketing’ 즉 ‘마케팅 관점 안에서의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으로 모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마케팅 전문가들도 이 개념으로 점차 수렴하는 듯하다. 한 때 스토리텔링과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대한 개념 혼선으로 관계인들이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 당장의 이익보다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게 더 큰 목표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기존의 마케팅과 지향하는 바에 다소 차이가 있다. 기존의 마케팅은 상품가치를 알려서 이윤 획득을 주목적으로 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이윤 획득을 직접적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브랜드 가치 제고에 더 관심을 갖는다.
물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 다음 단계에서 이윤 획득은 훨씬 구조화되고 쉬워질 것이다.
브랜드 가치 제고와 함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사내 매뉴얼로는 복잡해져 가는 현장 상황과 다양한 고객 취향에 적용하기가 점점 어렵다.
이럴 때 기업과 경영자의 철학이 담긴 한 토막의 이야기가 있다면 복잡하고 많은 분량의 매뉴얼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몇 해 전 국내 초일류 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고객의 출입을 막아 언론의 비난을 산 적이 있다. 직원들은 사내 매뉴얼에 따라 고객의 입장을 막았다. 그러나 회사의 이름, 한국적 멋을 지향하는 이 고급 호텔의 지향점으로 보아 한복 착용자 출입 제한 조치는 생뚱맞았다.
담당 직원이 회사 철학을 담은 한 편의 이야기를 숙지했더라면, 그래서 회사 매뉴얼을 신축성 있게 적용했더라면 이런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사내에서 조직원이 회사의 경영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수단으로는 역시 이야기가 최고의 도구가 된다.
“여러해 전 휴렛팩커드 CEO 빌휴렛은 연구개발부서 앞을 지나다가 창고 문이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절단기로 자물쇠를 부수고 문에 메모를 남겨놓았다. ‘다시는 이문을 잠그지말 것-빌휴렛-’”
이 짧은 스토리에는 부하 직원에 대한 최고 경영자의 무한한 신뢰와 휴렛팩커드의 창의적인 기업 문화가 담겨 있다. 타인에게 휴렛팩커드의 기업 문화와 경영자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려면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동원하고 제시해야 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자료로도 아마 충분히 이해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잘 구성된 스토리는 이처럼 쉽고 간단하게 핵심을 이해시키는 힘을 가진다. 장황한 설명이나 자료보다 짤막한 한 토막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얻어낸다.
이것을 마케팅에 응용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브랜드나 상품, 업소가 보유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 소재와 주제를 하나의 구조물로 구성한 콘텐츠를 만든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고객인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감성적 소구가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 스토리텔링의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장치들
스토리텔링 마케팅에 사용하는 스토리텔링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콘셉트다. 예전 신문광고를 보면 어느 기업은 지면 공간이 아까워서 광고란을 빼곡하게 채운다.
이것도 뛰어나고 저것도 좋고, 수많은 자랑거리를 끝도 없이 나열한다. 그러나 독자는 그런 광고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명쾌하고 단순한 메시지가 광고를 살리고 이야기를 살린다. 뚜렷 한메시지, 그것이 콘셉트다.
두 번째는 (갈등)구조다. 흥부에게는 놀부가 있어서 흥부의 착한 심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만일 놀부가 없었다면 흥부전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흥부의 착한 기록들의 나열로 그쳤을 것이다.
콩쥐에게 있어서 팥쥐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선과 악, 미와 추 등의 갈등구조가 있어야 메시지를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세 번째는 캐릭터다. 예를 들어 고성능 녹즙기를 광고한다고 치자. 녹즙기를 등장시켜 녹즙기의 부품 특징, 성능이나 작동 방법 등을 설명하면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아니다.
그러나 건강미가 물씬 풍기는 젊은 모델을 내보낸다면 그 모델의 건강 이미지가 녹즙기에 투영된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에서도 캐릭터를 내세우면 보다 생생한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다.
네 번째는 구성이다. 잘 짜인 비단옷은 거친 삼베옷보다 고급이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훌륭한 이야기 요소들을 모아놓아도 그것을 제대로 꿰지 못하면 좋은 스토리가 나오지 못한다.
기승전결을 비롯, 주제에 알맞은 여러 가지 구성 방법으로 잘 짜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다섯 번째는 경험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이가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야 이야기를 듣는 이와 교감할 수 있다. 이것은 독자나 스토리 소비자의 참여를 보다 많이유도 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섯 번째는 팩트다. 이야기의 소재는 모두 사실이어야 독자가 관심을 갖는다. 수집한 팩트 가운데 독자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고 충분히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한다. 독자에게 진실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 진실은 곧 진정성이다.
진정성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진정성은 독자의 감동을 폭발시키는 뇌관이다. 독자와 화자가 서로 발가벗고 만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스토리텔링에 쓰일 이야기가 위의 여섯 가지 조건을 동시에 모두 갖춰야할 필요는 없다.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몇 가지 조건만으로도 훌륭한 이야기가 완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급적 이 조건들을 갖춘 이야기일수록 쉽게 독자와 고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 생산-전달-소비 단계 거쳐 완성되는 소통 예술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한다. 생산(product), 전달(communications), 소비(use)가 그것이다. 생산은 마케팅 목표를 숙지한 전문가나 스토리텔러가 담당한다. 이들은 마케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완성된 콘텐츠는 각종 매체에 실려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인쇄 매체와 공중파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유튜브나 트위터 등의 SNS를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의 전달력은 폭발적이다. 전달 매체로서는 가장 파급력이 크다.
중요한 것은 전달과 소비 과정에서의 참여(participation)다. 마케팅 기획자나 생산자는 전달과 소비 과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내야 한다. 입이 간지러워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말을 옮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 속에 재미나 감동을 심어두어야 한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스토리텔링의 파급효과는 커지고 마케팅의 목표도 그만큼 폭넓게 달성하게 된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도브는 ‘순수함’이라는 기업 철학을 가졌다. 여성용 화장품을 취급하는 기업으로서 ‘클린’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어주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이 회사는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 온갖 메이크업과 포토샵으로 멋진 전문 모델처럼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사실 ‘아름다움은 꾸며지는 게 아니다’는 메시지의 광고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이 수많은 패러디 광고를 만들었다. 자신이나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화장을 시키고 머리를 만지고 조명을 비추고 포토샵으로 수정해서 멋진 모델로 변신시키는 과정을 따라 했다.
수많은 패러디 광고를 만든 사람과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도브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출처: MNB http://mnb.moneyweek.co.kr/mnbview.php?no=201306251016802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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