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3억쓰고 성과없자 논문 바꿔 제출…논문·특허 수로 평가

연구과제 재탕 삼탕…유망과제 선별지원 없이 정부도 나눠주기


◆ 대한민국 R&D의 역설 (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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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R&D 투자는 양적으로는 세계 정상급이지만 질적으로는 취약하다. `안전한` 연구만 진행하니 사업성 있는 성과물이 부족하다. [매경DB]

서울의 한 사립대 이공계열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A교수는 요즘 걱정이 많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2년째 진행하고 있는 A교수는 "도전적인 과제를 신청해 연구비를 3억원 가까이 받았는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과제 마감 1년을 앞두고 연구비를 다른 비슷한 연구에 지원해 논문 수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A교수가 이처럼 평가 제출용 논문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과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A교수는 "계속 연구하고 싶지만 결과가 이렇다면 연구비를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학과 출연연구소 연구실에서 벤처정신과 도전정신이 실종됐다. 연구자들은 연구자로서의 지위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한 사립대 이공계 연구실에서 만난 박사후 연구원 B씨는 "대부분 성공할 만한 것을 연구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일반 기업체 연구소에서도 `벤처정신`은 찾기 어렵다. 권 모씨(42)는 최근 한 대기업 연구소에서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모바일 기기 사용자환경(UI)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완성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관련 연구에 대한 중단 지시가 내려오자 연구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권 교수는 "기업 연구소는 연구자가 자율성을 갖고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고 기술에 대한 경영진의 간섭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인용색인(SCI) 논문 수는 2008년 2만2258편에서 2012년 2만8613편으로 연평균 6.2%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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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올해 5월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구인력, 논문, 특허 수, R&D 투자 규모 등의 양적 성과가 꾸준히 향상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과학 연구 수준이 국제적 기준보다 높은 정도` 부분에서는 지난번 조사보다 5단계 하락한 26위를 기록했으며, 산학 간 지식 전달 정도(29위), 기업의 혁신 역량(28위),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41위) 등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R&D의 질적 측면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지를 나타내는 `피인용도`도 여전히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2008~2012년 우리나라 SCI 논문 한 편당 평균 피인용도는 4.23으로 세계 평균(5.86)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주요 7개국(G7) 국가의 평균(6.80)에 한참 못 미쳐 여전히 연구의 질적 수준은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정부 R&D의 질이 떨어지는 데는 성공이 보장된 `안전빵 연구`만 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R&D 과제에서 실패하면 향후 3년 동안 연구비를 받지 못한다. 이런 제재가 무서워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연구를 기피하면서 `논문을 위한 연구`만 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성공이 뻔한 연구만 하다 보니 R&D에서 그치거나, 사업화로 연결된다 하더라도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5월부터 연구자가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낸다면 이를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 `성실실패 인정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우선 부처 입장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부담이다. 미래부 관계자도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정성적 평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연구비 감사가 들어왔을 때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 사립대에서 박사과정 중인 C씨도 "결과를 내지 못한 연구자들이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인맥, 친분 등이 작용해 편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고부가가치의 우수ㆍ유망기술이 부족하고, 기술 이전이나 사업화ㆍ창업 등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현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실장은 "한국처럼 정부가 개별 기업에까지 연구개발을 지원해주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특허등록 수를 늘리는 데만 연연하지 말고 사업성 있는 연구개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획취재팀=김기철 기자 / 원호섭 기자 / 이현정 기자]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28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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