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 투명콜라

한국인 최초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회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승윤(24)씨. 올해 졸업한 그에게 러브콜이 쇄도했다. 글로벌 투자회사가 억대 연봉을 제시했고, 그가 인턴으로 일했던 컨설팅회사도 매력적인 조건을 댔다. 런던의 금융가 ‘더 시티’행은 정해진 수순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아파트다. 방 2개에 7명이 부대낀다. 이씨의 친구인 대니얼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도 동거인 중 한 명이다. 튜더 역시 이코노미스트를 그만둔 후 서울에서 벌인 맥주사업의 성공을 뒤로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보장된 성공가도를 버리고 이들이 뭉친 건 창업 준비를 위해서다. 실패 확률은 99%. 이씨는 페이스북을 통한 인터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1%도 안 되지만 호텔에서 생활했던 금융회사 인턴 시절보다 즐겁다”고 전했다.

"실패는 실리콘밸리의 뮤즈" 
'투명 콜라' 등 실패작 전시
빛 못 본 작가 멜빌 재조명도

왜 미국일까. 실패를 수치가 아닌 훈장처럼 여기는 미국 특유의 문화도 한몫했다. 이씨와 같은 미국 창업자들은 매일 “시도하는 데 실패하지 말고 실패하려고 시도하라”는 명언을 곱씹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7일 “실패는 우리의 뮤즈(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실패 예찬론까지 폈다.

NYT는 “지금 ‘실패’가 한창 뜨는 중”이라며 ‘실패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문학계 인사들을 소개했다. 『모비딕』의 허먼 멜빌(1819~91)도 그중 한 명이다. 뉴욕 세관 공무원으로 19년간 일했던 멜빌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자비 출판을 했다. 그나마도 돈에 쪼들려 한 번에 25권을 찍어내면 많은 정도였다고 NYT는 전했다. 그의 유작 『빌리 버드』는 그의 생전 빛을 보지 못했고 사후 책상 서랍에서 원고지 묶음으로 발견됐다. 『모비딕』의 생전 판매는 3715부에 그쳤다. NYT는 “멜빌의 작품 질이 높아질수록 독자 수는 줄었다”며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멜빌 본인은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이라 생각하며 숨졌다”고 전했다.

 NYT는 이어 “수많은 꽃이 얼굴을 붉히지만 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그 달콤한 숨결은 대기 중에 버려버리네”라는 토머스 그레이(1716~71)의 시 ‘시골 교회 묘지에서의 애가(哀歌)’를 인용했다. 이어 사뮈엘 베케트(1906~89)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사 “더 잘 실패해라(Fail better)”까지 인용했다. “우아하게 더 잘 실패하라는 (베케트의) 대사는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달았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실패 콘퍼런스’인 페일콘(FailCon)에선 보다 구체적인 실패 사례가 논의된다.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이렇게는 하지 말아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실패’를 주제로 삼은 이 회의는 큰 성공을 거뒀다. 2008년 결성돼 첫 회의를 실리콘밸리에서 치른 후 일본·이란·스페인 등으로 확산됐다. 회의 모토는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자”다. CNN은 “실패자들의 커밍아웃 파티”라고 진단했고, 미 공영 라디오 NPR은 “실리콘밸리가 사랑하는 단어인 ‘실패’에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연사들은 실패담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미국판 싸이월드로 통했던 마이스페이스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드월프는 “다이어트를 종용하는 해괴망측한 광고를 보며 내 회사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했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숙박 공유 주선업체인 에어비앤비 창업자 조 게비아는 “남들이 ‘너 미친 거 아니냐’고 하면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실패한 신제품만 모아놓은 박물관도 있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신제품 전시관’은 별칭인 ‘실패한 상품 박물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펩시콜라가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한 ‘투명 콜라’ 등이 인기 전시물이다. 실패학(failure study) 권위자인 로버트 맥메스가 “신제품의 90%가 실패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의문으로 1990년 설립해 약 13만 점이 전시 중이다.

실패에 주목하는 건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도 실패학 권위자인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도쿄대 명예교수 등에게 강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그는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에서 “인생의 8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그를 ‘실패 지식 활용 연구회’ 실행위원회 총괄로 임명하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출처: 중앙일보] 미국서 뜨는 '실패학'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15486928

Posted by insight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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